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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종합탐구 스크랩 중국 서안의 피라미드(Pyramids).
호두까기 추천 2 조회 1,227 12.08.25 00:32 댓글 21
게시글 본문내용

 

구글어스로 중국 섬서성 서안(Xi'an) 지방을 살피다가 발견한 거대한 피라미드(Pyramids).

(사진 확대=클릭.스크롤하면 하단에 좌표)

 

 

 

 중국 서안 (Xi'an)의 Dizhai 피라미드-1.jpg

 

서안 남동쪽 Dizhai (적채;狄寨 )라는 곳이다.(그 동안 알려져온 서안의 서남쪽,남쪽이 아니다)

협곡과 절벽이 외워 싼 평원지대다.

 

 

 

 중국 서안 (Xi'an)의 Dizhai 피라미드-2.jpg

 

예사롭지 않은 지형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것 같다.주위에는 특이시설들이 서너곳 보인다.

( 연구시설?). 마치 요새같기도 하고, 성 같기도 하고.

항공기를 이용하기 전에는 서안시내 어디서도 눈에 띄지 않을것 같다.

 

 

 중국 서안 (Xi'an)의 Dizhai 피라미드-3.jpg

 

전체가 반석처럼 높게 올라 온 지형이다.

중앙의 백색 시설의 하단에 있는 타원형 축구장이 피라미드의 크기를 짐작케 한다.

 

 

 

 중국 서안 (Xi'an)의 Dizhai 피라미드-4.jpg

 

3번 사진의 좌측 피라미드. 엄청나다.

진입도로를 만들고 시설(정문?)을 한것으로 보아 관리를 하긴 하는 모양이다.

 

 

 

 중국 서안 (Xi'an)의 Dizhai 피라미드-5.jpg

 

3번사진의 우측 피라미드.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현재로 선 이 두개의 피라미드에 대한 정보가 없다.

 

 

 

 중국 서안 (Xi'an)의 Dizhai 피라미드-5의확대 

 

석재로 들여쌓기 한 모습이 계단처럼 뚜렷하다.

흙무덤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서안 Banpocun피라미드-1

 

중앙에서 오른쪽이 위의 Dizhai (적채;狄寨 )지역이고,  중앙부 부터 왼쪽이  Banpocun (반파,반포) 라는 곳으로. 7000년전의 유물이 다량 발굴된 앙소문화,고대 유적지이다.

A지역은 피라미드군 지역.

 

 

 

 서안 Banpocun피라미드(Pyramids)-2

 

바로 위 사진의 A지역 부분이다.

1945년 미 공군 조종사가 촬영했다는 그 지역이고,

오리온 별자리 모양을 닮았다는 피라미드군 이다.

현재까지는 상태가 대체로 양호하지만 작은 고분들은 과거 사진과 비교해 볼 때,

그 선명한 형태가 많이 변형,훼손된듯 하다.

 

 

 

과거 미 공군이 촬영한 항공사진과 비교.

 

 

 

 

그 동안 서안(Xi'an)의 피라미드 이미지 들은 모두 수십년 전의 것이거나, 그 진위를 알수없는

것들이었으나 구글어스로 몇번의 시도끝에 그 존재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서안의 피라미드라고 넷상에 나돈 여러 이미지 (모양새만 피라미드형인 흙무덤들도

있다) 들은1945년 미 공군이 촬영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함양(Xianyang) 북쪽에 동서로 은하수 처럼 깔린 무수히 많은 피라미드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적어도 서안의 남,서남,동남쪽에서는 수십년 동안 신뢰성있게 밝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구글어스 피라미드 탐사를 하면서 느낀것은 중국의 피라미드형 고분은

두 종류로 구별된다는 것이다.

한 종류는 이집트형 처럼 최상단이 뾰족한 모양이고, 다른 한 종류는

만주의 고구려 장군총이나 마야 피라미드와 같이 상단의 각뿔이 잘려나간 듯한 형태인데,

이 두 종류는 다시 들여쌓기가 분명한 것과 단지 표면을 진흙으로 다져놓은 듯한

민 피라미드로 구별된다.

물론 형태가 뚜렷한 큰 규모의 것들을 비교한 결과이다.

이것이 어떤의미가 있는지 연구의 여지가 있다.

 

 

아래사진은 위의 서안 Banpocun피라미드 배열과 기타지역.오리온좌의 삼태성을 비교한것이다.

 

 

1.서안 피라미드 현재    2.1945년 촬영당시   3.이집트 피라미드   4.마야 피라미드  5.오리온좌

  (Banpocun 지역)

 

 

규모의 대소를 불문하고 서안지역의 고분들은 대체로 양호하나. 함양지역의 것들은

훼손된 상태로 방치되거나 그 흔적만 (위장? 변형?)보이는 것들도 여럿 발견된다.

상당수의 것들이  개발로 인한 도로,주거시설,방대한 산업시설들에 채이고

지반용 복토로 깎기고, 무차별적으로 파헤쳐 나가는듯해 안타깝다.

지평선이 보일정도의 평원지대 (농경지)라 매립용 토사 구하기가 쉽지 않을테니 더욱 그렇다.

이대로 가다 간 수년내에 상당수가 소리 소문없이 사라져 버릴것이 라는 생각이 든다.

 

서안,함양지역은 확인된 것만해도 60-70기가 훌쩍 넘는데 (그 중 20여기 정도가 대형)

근대화 이후,  필요불을 논하지 않더라도 상당수가 발굴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함양,서안 모두 개방이후 조성된듯한 도로,주거시설,경지등이 고분군 일대를 잠식해 가고

있으니 말이다.

 

중국과 중국인의 속성을 생각컨데,하늘의 눈인 위성이 내려다 보는 오늘날 까지도 유물공개나

공개발굴은 커녕. 존재마저 쉬쉬 하는것은 그들의 기를 무참히 꺾는 뭔가가 있음이 자명하다.

나라와 민족을 따지기 전에 이것은 인류 최고,최대의 유물이 아닌가?

얼마전 발견되었다는 네이멍구 Chifeng (하가점, 홍산문화지) 인근지역의 피라미드형 고분은

발굴한건지 어쩐건진 모르지만

 상당량 유물수습까지 했다고 발표해 놓고 사진 한 장 공개를 안하고 있다.

5,500년 전 인류 최고의 것이라고 하면서도.....

 

 

 

 

 좌표: 34 23'51.66" N 108 42'43.49" E

 

위의 이미지는 함양과 함양공항의 중간지점 에 위치하고 있는 피라미드다.

기단이 뚜렷하여  적석총(돌,전돌,흙별돌)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나무를 열을 지어 심어서 계단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기는 하지만.

이 고분 주위의 다른 진흙 피라미드,함양북서쪽 건능이나 진시황능이라는 것들 처럼 흙으로 형태만 갖춘 민 피라미드가 아니라, 고구려 장군총과 같은 들여쌓기 공법으로 만들어진 적석총이다.

 

이 고분은 발굴 되었는가?

연대 측정은?

고분의 유물과 실제 주인은?

위의 고분을 보고 한족식 봉토분(흙무덤)이라고 하는 사람은 정신병자일것이다.

 

함양 서안지역의 규모가 큰 피라미드형 고분들 중, 위와 같이 뚜렷하게 적석총이라고

판단되어 지는 피라미드(장방형)는 많지않다.

그러나 이는 서안 함양 지역의 여러 장방형 고분 형태 중 가장 오래 된듯 하면서도

앞선 문화,문명이 축조한 것으로 보여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이다.

장군총과의 유사성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고,

이 지역의 수많은 장방형 토총고분들은  이러한 적석총을 후대에 모방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기천년을 버텨 온, 말 그대로 인류 최고의 유적이다.

그런데, 중국정부는 원형관리는 물론 공개조차 하지 않고있다.

 

 

 

 서안 Orion좌 모양의 Pyramid 중 일부.

 

위의 이미지는 Banpocun(반파) 지역 오리온좌 모양의 고분군 중, 큰 순서대로 첫번 째와

두번 째 고분이다.

그런데 나란히 있는 규모가 비슷한 두 고분의 모습이 많이 다르다.

그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두 고분의 축조 연대가 상당기간 차이가 나거나,

인위적으로 한 쪽을 변형시킨 결과일 것이다.

우측고분의 형태에 복토를 하여 좌측처럼 변형되었을 수도 있다,

좌측고분에 나무심기가 진행 중인 것으로 보아 후자의 경우가 설득력이 있다,

그 이유는 뭘까?

왜 중국정부는 원형대로 보존 관리하지 않는걸까?

 

이곳 뿐만이 아니다.

여러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 주위엔 어김없이 무수히 많은 나무를 재배하는 모습도 한결같다.

진입로를 정상까지 만들고, 그 양편에 석물들을 나열하고,정상에 누각을 세우고,

초입에 문을 세우고....

화족식 고분형태로 변해가는 것이다.

수년 내에 서안 함양에서는 우측과 같은 형태의 들여쌓기 장방형 고분은

더 이상 보기 어려울 것이다.

동북공정과 맞물려 씁쓸하기만 하다.

 

 

추가---------------------------------------------------------------

 

적토 (積土)                                                               적석 (積石)

 

위의 이미지는 고구려 초기 또는 그 이전의 고분모습이다.

지표위에 시신을 안치하고 흙으로 덮던 묘장에서 점차 매장물등 묘실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과

신분,권위적인 요소가 곁들여 대형화 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대형과된 고분의 붕괴를 막기 위하거나,북방민족의 토템신앙(우리의 성황당 같은)과

결부되어 그 소재가 돌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표에 묘실을 만들고 그 위에 적토( 현재사용하는'봉토분'의 의미가 아닌) 를 한 고분은

우리나라 백제 신라 고분에도 많다.

(묘장법을 일컫는 말 중에 '봉토분'은 외형이 흙으로 된것을 말하지만, 그것을 다시 묘실이 지표이상에 위치하느냐, 지하에 완전매장 되느냐의 분류는 하지 않고 있는듯 하다. 그래서 전자의 경우를 적토, 후자의 경우를 봉토로 구분하여 쓴다)

 

 

 장수왕릉(장군총) 의 전체모습                                이집트 피라미드의 초기형태인 기단식

 

위의 두 고분은 매우 유사함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묘실이 지표이상에 동일하게 위치하며.묘실입구가 확연하다.

 

위 네기의 고분들의 공통점은 묘실이 지표, 또는 그 이상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인데,

함양, 서안지역의 장방형 고분들과 고구려,또는 그 이전 시대의 '적총'과의 연결고리를

의심하는 것은 피라미드 형태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적총=지표이상에 묘실위치=묘실을 보호하기 위한 외형유지 필요(돌,전돌,진흙벽돌 등)

봉토(적토가 아닌)=지하에 묘실위치=지표이상에 매장된 것이 없으므로 형태유지 불필요.

 

라는 근본적인 묘장 형식에서 유사성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함양,서안 관중평원의 수많은 고분들 중, 적어도 몇기의 대형 피라미드(장방형)고분은

적총으로 여겨지고,대부분은 그 적총을 모방한 형태들이 아닌가 한다.

 

고대 한(漢)족의 묘장문화 중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왕릉이라 할지라도 전혀 석재(石材)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석실을 조성하지 않고,목곽(木槨)으로 내부공간을 만들어 완전 매장하고, 또 흙만을 사용하여

봉토하고 봉토보호를 위해 작은나무들을 심는  형태이다.

신분에 따라 목곽의 겹이 다른 듯, 최고 아홉겹에 이르는 고분이 발굴되기도 했다.

 

 

맺음.

 

관중평원(함양,서안)의 장방형 봉토분은 한나라시대 것이라고 이미 몇몇을 공개하고 있지만,

더 많은 수가 비밀에 쌓여 있고,적석총이라고 예상되는 것들은 더욱 그렇다.

현재 까지 밝혀진 내용 만으로는 한나라 능들보다 뒤늦게 만들어진 장수왕릉(장군총)이 한나라 왕릉들을 모방,계승한것이라고 생각되는것은 당연할수 있지만.

서한과 고구려의 관계,그리고 위치를 생각해 볼 때, 고구려가 서한의 묘장문화를 받아 들인 것이라고

볼 이유는 털끗만큼도 없다.

그렇다면 고구려와 서한시대 이전에 공통된 묘장문화를 받아 들이는 계기가 두 지역간에

있었으리라는 방향설정도 있을 수 있는것이다.

 

어떤 시대든 시대는 시작과 단절이 있기 마련이다.

화하족이 서남방에서 올라와 서한을 세워 서안의 주인이 된것은 B.C202년 부터이고 존속기간은

214년 간인데, 반파에서 발견된 앙소문화 유적은 연대가 최고 7000년을 넘는다.

이 문화는 아직까지 우리가 알고있는 동이문화와는 이질적인 것이지만,

그렇다고 화하족의 문화도 아닌것이다.

그럼,한나라 이전 5000여년 동안 이 지역의 주인들은 누구였을까? 

 

서한(西漢)에의해 멸망한 진(秦)과 그 전의 상(은),주(周)와 전설의 하나라 밖에는 밝혀진게 없고,

그 기간도 모두 합쳐 1600년 이내이며, 이마저도 거의 동이정권으로 밝혀지고 있다.

한 이후로  수(隨)는 진(秦)과 마찬 가지로 2대밖에 존속되지 않았고,

당나라는 능역을 몽땅 서안 서북쪽 고지대에 조성하였다.

 

중국정부가 서한시대 무덤이라고 극구 우기는 것은 그들 역사상 서안에 이런 고분유물을 남겼다고

드리 댈  왕조는 눈씻고 봐도 한나라(서한)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서한은 200여년 동안 총동원하여 대형만 수십기가 되는 저 거대한 무덤만 만들며 살았단 말인가?

서한시대 최대라는 한무제릉은 과연 그 주인이 한무제인가?

 

고대로 올라가면 올라 갈 수록, 고구려 이전의 유일대국인 고조선의 동이의 활동영역이

중국 대륙 전체에 걸쳐 있음이 강단사학들이 좋아하는 "실증"으로 드러나고 있고, 신화가 아닌 신화인

단군의 태백산이 바로, 중앙아시아 천산(天山)이라는 다국적어로 된 옛기록도 발견 되었다.

 

관중평원엔 분명히 적석 거대 피라미드들이 고대로 부터 존재해 왔으며, 상,진,한등이 점유해

내려오며 그 형태를 흙으로 모방한 것들이 서로 혼재되어 있다.

다시말하면 언뜻 보기엔  동산과 같이 모두 한족식 토총으로 보이지만,진품과 모방물을 각각 축조한

세력의 문화,문명과 연대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동서문명의 교차점으로 여겨지는 함양,서안지역의 피라미드형 적총들과 고구려 적총을 연결해

보는것은 바로 '적총'의 기원 문화,국가를 찿아 보자는 것이고,

고대문명의 두 축인 이집트 이전문명의 동진이냐, 아니면 동이문명의 서진이냐하는

인류문명의 시원을 밝히는 것 까지도 연결되는 것이다.

 

 

--하우스돌프(Hartwig Hausdorf)의 하얀 피라미드는 무릉(茂陵)이다.

   http://blog.daum.net/sabul358/4399090 

 

--장군총과 서안(西安)의 피라미드-(杜陵).

   http://blog.daum.net/sabul358/852915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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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8.25 00:59

    첫댓글 역시 삼태극입니다.

    해를 기준으로ㅡ> ㅇㅡ>천
    땅에 동서남북방향으로 맞추어서ㅡ>ㅁㅡ> 지
    사람 모양으로 완성 ㅡ> ㅅㅡ> 인

    역시 천부세력의 만든 작품입니다.

  • 작성자 12.08.26 06:19

    감사합니다.

  • 12.08.25 07:33

    잘 봤습니다. 지나가 분명 저 피라미드들에 대한 계획도 가지고 있을텐데 안타깝습니다.

  • 작성자 12.08.26 06:19

    이것도 꽤 오래된 자료입니다. 지금은 더 심하게 훼손이 되었겠지요.

  • 12.08.25 09:11

    잘 봤읍니다.
    호두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전해지네요.
    유물로 증명이 된다면 그보다 확실한 것이 없 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다른 방법도 있다고 봅니다.
    정신과 관련된 흔적은 감출수도 조작할수도 없는 성질의 것이니 동서문명에 널려 있는 여러흔적들을 연계시키면 이 또한 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 공을 들이고 있는 것도 동서문명에 널려있는 정신적 흔적들이 나타난 배경과 그 공통성을 연계시키는 작업을 통해 고대한국학의 실체를 증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핵심에 천부경의 우주론이 있다고 보기에 동서문명을 포괄하는 보편적인 해석을 유도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글 잘 올려 주셨읍니다.

  • 작성자 12.08.26 06:21

    감사합니다, 돌둘님. 연구가 결실을 맺으시길 바랍니다.

  • 12.08.26 21:24

    돌돌님의 글을 보면 깊이 있는 인격의 수양을 느기며
    학문의 연구가 훌륭한 결실을 맺기를 바랍니다

  • 12.08.25 11:14

    호두님께서 라의 뜻을 태극임을 이해하셨습니다. 라침판..
    결국 피라묏은 태극뫼 ㅡㅡ> 태극산으로 풀리게 됩니다.

  • 작성자 12.08.26 06:22

    ^^;;;아나사마님 글을 읽고는 있지만 전부 이해하고 있는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꾸준히 읽다보면...하는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 12.08.26 11:38

    라는 본래 태극인데 후에 4방의 뜻으로 확장됩니다.
    신라의 라나 라후족의 라나 티벳의 라다크 라마나 동일한 소리입니다. 라무도 있군요.

    라자 한문을 파자풀이 하면 4개의 막대기입니다. 4방이죠.
    모든 피라묏은 4방이정확합니다.

  • 12.08.25 19:00

    결국 피라묏은 태백산에서 시작되어 태극원리데로 전세계로 퍼져나간 것으로 풀림니다.
    손성태 교수님의 주장에 의하면 인디언들은 피라묏을 태백이라 불럿다고합니다.

  • 작성자 12.08.26 06:23

    윗글의 아래쪽 본문에 보면 하얀피라미드는 무릉이다란 제목이 보이는데. 실제론 회색피라미드라고 합니다.
    옛날엔 아마 흰색에 가까웠겠지요.

  • 12.08.26 11:31

    무릉이란 태백과 통하는 소리입니다.
    무와 태가 통하고 흰색과 백색이 통함니다.

    태의 본래 뜻도 공개 할 예정에 있습니다.

  • 12.08.26 11:53

    우선 태백산이 되려면 물이 있어야 합니다.

    중공의 주산인 태산에는 물이 없습니다.

  • 작성자 12.08.26 17:58

    아, 물이....환경변화로 오아시스나 강이 없어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 12.08.29 17:30

    좋은글 올려주셨네요~
    돌무지-돌무덤-적석총-피라미드 이렇게 보면 한민족의 고분문화의 전승, 고분문화의 세계화가 이뤄졌다고 봅니다^^
    한민족의 이동 경로에 따라 각지에서 생겨난거로 아메리카 한겨레, 유럽에서도 헨지스톤 등 너무나 광범위하여 입을 못다물 정도라 생각됩니다!!!

  • 12.08.25 22:56

    지금이 국경때문에 좁게 살고 있지 당시는 국경이 없는 지구자체가 하나였을 것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말 타고 어딘들 못가나요?

  • 작성자 12.08.26 06:25

    지금 지나의 인류문화유산에 대한. 그리고 티벳을 비롯한 여러 소수민족들에의 반인륜적 행태가 이슈화 되고 세계적 비난여론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 12.08.26 11:49

    지금 티벳의 소리를 보니 태백과 유사하네요.
    히말리야도 흰뫼야, 흰산이야로 한국어와 닮있습니다.

    타골은 역사의 진실을 알고 계셨나봅니다.

  • 12.08.26 21:28

    호두님 항상 좋은 자료 올려주어서 감사합니다
    우리나라도 피라밋이 있지요 무긍한 산들이 많아 정상에다 제천을 만드니
    굳이 피라밋을 만들 이유가 없지요

  • 작성자 12.08.26 22:34

    그 대표적인 유적이 첨성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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