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효자비(三孝子碑)에 대하여
구전으로 전해지는 삼효자비는 묵은 배계년(1845-1928), 만정 배계석(1847-1917), 매당 배계종(1856-1928) 3형제의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효자비이다.
효자비의 찬자와 소재를 알 수 없어 관련자료를 찾던 중 90년대 말에 간행한 '경주배씨종사보감'을 살펴보았는데 여기에 화비산 문중의 선산 전경과, '분성배공삼효자기적비((記蹟碑)''의 사진이 실려있었다.(이하 효자비) 소재지를 보니 두 곳 모두 상동면 묵방리 장척으로 나타난다.
화비산 문중의 실질적인 파조라 할 수 있는 송은공(悳星)의 묘소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뒷쪽 우측에 난간석을 두른 비석이 보인다.(붉은 표시) 사진의 배경과 난간석, 이수의 형태를 보면 기적비와 동일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효자비는 묵은, 만정, 매당 3형제의 효자비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의문점은 당시(90년 중 후반) 선산의 묘소 및 비석, 석물을 보아 건립 시기가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삼계동에서 이장하여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효자비는 이때 처음으로 건립한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효자비를 옮겨오지 못하여 새로이 중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효자비는 만정공의 아드님이신 과헌공(秉徊)이 誠庵 盧根容1884-1965에게 청하여 1939년 지은 것이다. 성암 노근용이 지은 효자비의 기적비명 원문이 삼효록에 수록되어 있다.
-삼효록 중 기적비명-
-기묘년(1939년) 광주 노근용 찬-
성암 노근용은 과헌공과 친분이 두터웠던것으로 보인다. 기적비를 짓기 한 해전인 1938년 만정공의 행장을 지었으며 만정유고를 교정하기도 하였다.
이상 삼효자비(三孝子碑)에 대하여 살펴보았는데, 김해 삼계동 공병학교 인근에 있던 화비산 문중의 선산과 재실은 개발로 인해 현 상동면 묵방리 장척에 새로운 선산을 마련하여 이장하였으며, 이때 재실인 화산재(花山齋)는 옮겨오지 못하였으며 새로운 재실을 건립하지도 않았다.
매년 음력 10월 1일 시제를 모시고 있다.
송은공 묘소 전경
뒷쪽 우측편에 기적비가 보인다.(붉은 표시)
난간석에 비신의 이수 부분.
분성배공삼효자기적비(盆城裵公三孝子記跡碑)
소재지: 김해시 상동면 묵방리 장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