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인 컨디션을 다잡으려고 다운타운 트래킹을 했습니다. 우중충한 날씨가
홑겹 바람막이를 덧입게 했고 도올의 강의가 친근한 동행인이 돼주었어요.
어제 동대문 상가를 다녀오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은 서두르지 말고 하나씩 준비할 생각입니다. 제게 있어 첫 끼가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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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 같아요. 메뉴 선택의 기로에서 돌솥 김치찌개가 선택되었다는 건 제가
돌솥 밥과 김치찌개를 좋아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2k정도밖에 걷지 않았는데
무기력 증 같은 것이 오면서 길바닥에 벌러덩 들어 누워버렸어요. 군대에서는
제식 훈련이나 구보가 가장 힘이 들고, 운동 중에는 마라톤이나 러닝머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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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든 것 같아요. 1시간 만에 트래킹을 마치고 들어와 자빠져버렸습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한결 낫습니다. TV를 켰는데 고 고 민정 등반가의 다큐를
방영하고 있었어요. 누른 밥 얹어 놓고 한30분 꼼짝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요.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를 등정하고 내려오다 추락사(2009)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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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과 그녀의 못 다 이룬 꿈을 위해 다시 히말라야로 향한 김 재수의 삶을
담았는데 와, 인간승리의 환희와 죽음이 공존하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내
풀어진 맨탈과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만들었습니다. 코오롱 스포츠와
블랙야크는 이때가 절정이었고 지금은 아, 옛날이여! 가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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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미영(코오롱,1967)은 전국 스포츠클라이밍대회 9연패와 아시아 스포츠
클라이밍대회 6연패 기록을 세우고 최단기간 히말라야 8천m 산 11개를 정복
한 산악인입니다. 얼굴까지 예쁘게 생겼던데 왜 그녀는 죽음과 환희가 공존
하는 그 길을 선택했을까요? 나의 양띠 첫사랑은 잘 살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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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녀의 곁에는 언제나 김 재수(1961, 블랙야크)가 있었다고 합니다.
스스로를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는 고된 등반 과정에서 그들은 사랑의 감정을
싹 틔우고도 쉽사리 입 밖에 내지 못했다고 해요.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한
뒤 여생을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을 조용히 품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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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운명의 장난일까요?
두 사람은 ‘낭가파르바트’에서 영원한 이별을 합니니다. 아! 안돼!
8000미터 낭가파르바트 등방을 마치고 하산길에 1000m아래로 떨어져 동사
하고 말았습니다. 누가 클라이밍 선수 아니랄까봐 줄에 매달린 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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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재수는 고미영의 영정 앞에서 히말라야 14좌 중 남은 3개산을 대신
오르기로 약속했고, 드디어 안나푸르나만 남겨둔 상황입니다. 그는 고미영의
목걸이(M)를 걸고 등반에 나서는 그는 "나를 위해 산에 오른다며“ "다만 이번
등반은 고인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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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김 재수는 자신의 일기를 통해 "이것이 사랑인 줄 알았더라면"이라며
떠나간 고 미영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습니다. "영원한 것이 없는데, 결혼이나
사랑으로 미래를 약속하려는 시도란 얼마나 우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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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답장처럼 고인이 된 그녀의 일기장에 이런 내용이 실려 있었답니다.
“당신을 가까이서 지켜봤습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마음은 당신을
향해만 열려 있습니다. 이제 당신을 100일 동안 잊으려 합니다.
곰이 사람이 되는 데 걸린 100일이 지나서도 잊혀지지 않는다면 당신을
사랑하는 나를 용서 하십시오"(산악인 故 고미영의 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