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에 초연함
바실리우스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희생으로 부자가 되는 것이 자신들의 사업이고 의도적인 수법입니다. [1]
☕ 남을 희생하여 자신의 빗속을 채우는 이들이야말로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생명의 길을 안전하게 건너고, 수치스러운 상처가 없는 상태로 우리의 육체와 영혼을 똑같이 그리스도께 봉헌하고 이 승리의 왕관을 받으려면, 기쁨이 주는 모든 것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항상 어디서나 우리 영혼의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앞에 금이 무더기로 쌓여 있고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가져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것을 주저 없이 지나쳐 버려야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재산이 는다 하여 거기에 마음 두지 말라”(시편 62,11). [1]
☕ 세상에 공짜는 없다. 땀 없는 행운은 죽음을 숨기고 있다.
비록 땅이 모든 종류의 진미를 돋아나게 하고 우리의 시선에 호화로운 거처를 제공해 준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합니다”(필리 3,20). [1]
☕ 그리스도인의 거처는 결코 이 세상이 아니다. 하느님 나라다.
그토록 즐거운 이 모든 쾌락의 이면에는 우리의 공통된 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눈에 보이는 유혹에 사로잡혀 곧은 길에서 벗어나 그의 은신처로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쾌락을 무모하게 실행하고 그 쾌락에서 파생된 즐거움을 전혀 해롭지 않은 것처럼 생각했다가는, 우리가 첫 번째 맛에 감춰진 배신의 바늘을 삼킬 수 있다는 사실을 크게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이 첫 번째 경험에 이끌려 마지못해 반쯤이라도 걸려들면, 우리는 이러한 쾌락에 애착을 갖게 되고,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산적의 끔찍한 굴, 곧 죽음으로 끌려갑니다. [1]
☕ 쾌락이라는 미끼에는 죽음이라는 바늘이 숨겨져 있다.
우리의 삶은 저마다 어머니의 산고에서 시작하여 무덤이라는 피난처에서 끝이 납니다. 모든 사람의 삶이 다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빠르게, 어떤 사람은 천천히 갑니다. 천천히 가는 사람은 시간의 모든 간격을 다 통과하고, 빠르게 가는 사람은 인생의 첫 단계가 끝날 때까지도 기다리지 않습니다. [2]
☕ 인생의 여정은 다 같다. 출생에서 시작하여 죽음으로 끝난다.
어떤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엄청난 금을 모은다 해도, 그것이 영원히 그들의 소유로 남아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그것을 안전하게 보관한다고 해도,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들의 손을 빠져나가 그들보다 강한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그들이 죽자마자 금방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물건은 본성상, 주인이 이 세상을 떠날 때 주인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것에 애착하지 말자. 억만금의 재산도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 땅과 웅장한 집과 온갖 동물 떼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절대적인 주권을 부여받았다가 하더라도, 사람은 이런 것들을 영원히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것들이 가져다주는 짧은 명성을 누리고 나면, 그는 그의 차례가 왔을 때 자신의 많은 재산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주게 될 것이며, 정작 그 자신은 쪼그마한 땅 속에 묻히게 될 것입니다. [3]
☕ 인간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존재에 불과하다.
인간은 하느님의 소환을 받으면 이 세상을 떠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보내신 하느님의 법정 앞에 서게 될 것이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셈을 해 바쳐야 합니다. 인간은 현세에서 행한 일에 대한 응보를 받게 될 것입니다. [5]
☕ 얼마나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했느냐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모든사람에게 있어서, 옛 의인이 했던 이 말은 변함없이 그리고 참으로 진실입니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욥 1,21). [5]
주님 앞에 인도되어 자신에게 부여된 지상 여행의 결실올 요구받을 때, 우리는 선물할 것이 없어서 오랫동안 탄식하며, 사치와 그 속임수에 대해 크게 비난하면서 영원한 어둠 속에 살 것입니다. 그 속임수에 의해 우리는 구원의 시간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탄식해도 이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승에서 누가 당신께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시편 6,6 참조). [6]
☕ 살아있는 동안 잘 살아야 한다. 죽고 난 다음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돈을 좋은 목적으로 버리면, 돈을 버린 사람들은 돈을 잃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안전한 배에 신는 것입니다. 곧, 그 돈은 가난한 사람들의 위장에 보관됩니다. 말하자면, 항구에 미리 도착하여, 위험 때문이 아니라 영광 때문에 돈을 버린 사람들을 위해 보관되는 것입니다. [7]
☕ 자선을 베풀면 그것은 하늘 나라의 창고에 쌓인다.
만일 우리가 실제로 우리의 재물을 소유하고자 한다면, 우리 자신을 위해 훨씬 더 자비로운 길을 선택해서 우리의 많은 재물을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도록 합시다. 궁핍한 이들은 그것을 기쁘게 짊어지고, 우리의 재물을 안전한 금고처럼 주님의 품에 넣어 둘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홈쳐 가지도 못한다”(마태 6,20). 이런 목적을 위해서 우리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줍시다. [8]
☕ 자선은 하느님 나라로 이끄는 든든한 길잡이다.
우리 눈앞에 누워 있는 라자로들을 지나치지 맙시다. 그들의 굶주림을 충분히 달래 줄 수 있는, 우리의 식탁에서 나온 부스러기를 아까워하지 맙시다. 그 잔인한 부자를 본받지 맙시다. 그 부자와 함께 지옥의 불에 들어가지 않도록 합시다(루카 16,19-31 참조).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아브라함에게뿐만 아니라 의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아무리 간절하게 외치며 간청해도, 우리의 부르짖음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형제가 구원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구원한다는 말입니까?”(시편 49,8 참조). 그들이 하나같이 우리에게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그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지 않은 자비를 바라지 마십시오. 그대가 작은 사람들에게 베푸는 데 너무 인색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큰 은혜를 받기를 바란다는 말입니까? 그대가 평생 모은 재물을 즐기십시오. 그리고 이제 우십시오. 그대는 형제들의 눈물을 보면서도 단 한 번도 자비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고, 이는 맞는 말입니다. [8]
☕ 자비는 베푼 사람만이 청할 수 있다.
이미 일어난 재앙 때문에 지나치게 낙심하거나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슬픔의 안개를 걷어 내고 즐거운 마음으로 더 용감한 생각을 하며 영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십시오. 이것을 화관을 얻을 기회로 만드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평온을 유지하고, 불을 거치고 더욱 반짝이는 순금처럼(참조·; 1베드 1,7; 잠언 17,3), 믿음에서 더욱 굳건해진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음모로 여러분한테서 눈물 한 방울도 끌어내지 못한 사탄을 더욱 부끄럽게 만들 것입니다. [10]
☕ 불행은 달리 생각하면 승리의 월계관을 얻을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은 파도로 뒤덮여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입니다. 일부는 이미 흘러갔고, 일부는 여전히 흐르고 있습니다. 일부는 방금 샘에서 쏟아져 나왔고, 일부는 막 쏟아져 나오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 죽음이라는 공통의 바다를 향해 서둘러 가고 있습니다. [11]
☕ 우리의 삶은 오늘도 죽음이라는 바다로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다.
첫댓글 세상에 공짜는 없다. 땀 없는 행운은 죽음을 숨기고 있다.
우리의 삶은 오늘도 죽음이라는 바다로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다.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것에 애착하지 말자.
"우리의 삶은 저마다 어머니의 산고에서 시작하여 무덤이라는 피난처에서 끝이 납니다. 모든 사람의 삶이 다 그렇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