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겨자씨 한 알(마 13:31-32)
마태복음 13장은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천국 비유장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일반적으로 나라라고 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땅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내 마음에 이루어지면 내 마음이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통치가 우리 가정에 이루어지면 우리 가정이 바로 하나님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종합해 보면 세 가지로 우리에게 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천국은 앞으로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 예수께서 내 심령에 들어오신 그 순간부터 이미 천국은 시작되었습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만이 아니라 먼저 내 안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모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지배하셔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다면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둘째, 천국은 이미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현재 내 안에서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천국의 현재성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죄악과 불법이 가득 차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내가 고통을 당한다 해도, 내 안에서 시작된 천국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천국이 자라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내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점점 자라가고 있습니다. 내 안에 이루어진 천국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갈 것입니다. 그래서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것입니다.
셋째, 천국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 완성됩니다(천국의 미래성). 예수님께서 요14:2,3절을 보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그날 우리 모두는 홀연히 변화되어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그렇게 소망했던 예수님을 뵙고 경배와 찬양을 돌릴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천국은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 내 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확장되어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천국을 이해하는 사람은 현재의 천국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현재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이루어질 때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의 실재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 나라를 누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듣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위해서 비유를 사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비유란 듣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생활주변의 이야기를 들어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첫 번째는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는 마음밭이 어떠느냐에 따라 열매가 맺지 않을수 도 있고, 백배, 육신배, 삼십배의 결실을 맺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길가밭, 돌밭, 가시밭, 다 문제가 있는 밭입니다.
이 밭을 다 기경하여 옥토로 만들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옥토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고 해석하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에 말씀드린 두 번째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가라지의 비유였습니다. 주인이 밭에 좋은 씨를 뿌려 놓았지만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동안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뿌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이 밭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실재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불완전합니다. 먼저는 예수를 믿는 내가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실수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죄를 범하기도 합니다. 뿐 만 아니라 영적인 원수가 있습니다. 사탄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잠들어 있을 때에 와서 가라지를 심고 갑니다. 하인들은 가라지를 발견하고 뽑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을 찾아가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묻습니다. 그 때 주인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만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가라지를 곧바로 뽑을 수 있지만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되서 주인은 추수할 때까지 그대로 두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의 공동체인 교회를 형성하고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과정이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박해가 있습니다. 위기가 찾아올 수가 있습니다.
괴로움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런 어려움과 역경을 짊어지고 하나님 나라를 세상 속에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 이 비유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가라지를 심는 마귀로부터 우리의 공동체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제 세 번째 비유인 오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지극히 작은 겨자씨 한 알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이 씨가 자란 후에는 놀랍게도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 나무에 많은 새들이 와서 깃들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겨자씨는 가장 작은 것을 상징하는 씨앗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이 작은 것을 비유할 때는 겨자씨와 같다는 표현을 하였습니다.
1. 하나님의 나라는 밭에 심겨진 겨자씨 한 알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작은 겨자씨 한 알이 땅에 떨어져서 자라면 큰 나무가 된다고 했습니다. 겨자나무의 높이는 사람이 말에 탔을 때의 높이보다 조금 더 높을 정도라고 합니다. 겨자씨는 보통 약 3.7미터 내지 4미터 높이의 숲을 이루는데 거기에는 많은 새들이 깃들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겨자씨는 아주 작고 미미하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겨자씨 한알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아주 작은 겨자씨와 같은 존재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누구도 나사렛에 태어난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사렛의 가난한 청년으로 30년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 청년으로 3년동안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하시다가 유대교 지도자들에 의해 붙잡혀 재판을 받으시고 가장 혹독한 저주의 사형틀인 십자가를 몸소 지시고 골고다를 올라가셨습니다.
누가 그분이 하나님 나라의 왕이라고 생각했겠습니다. 누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돌아가신 다음에 생명의 역사는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3일만에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죽음 다음에 부활의 영광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40일만에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우편으로 승귀하셨습니다. 그리고 120명이 예루살렘의 마가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 다음 3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 5천명,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을 정도로 점점 기아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실재입니다. 천국은 지극히 작은 것에서 시작되지만 그 끝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31:6에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지극히 작게 시작되었지만 결국 땅끝까지 전파되며 모든 열방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이룬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동시에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상징인 지상의 교회가 지극히 작게 시작되었지만 나중에는 전 세계에 충만하게 퍼지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겨자씨 비유의 전부입니다. "지극히 작은 데서 시작되어 상상할 수 없이 큰 것을 이룬다. 그리고 큰 것을 이룬 그 속에 많은 새들이 깃들인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겨자씨 한 알이 보석상자에 보관되어 있으면 무슨 소용있겠습니까? 아무리 포장을 잘하고 아무리 멋있게 꾸며 놓아도 한 알 그대로입니다. 겨자씨가 심겨지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심겨져야 합니다. 심겨진다는 이야기는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좀 더 살펴보면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안에 심겨져야 합니다. 십자가에 심겨져야 합니다. 죄의 몸이 십자가와 함께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세례의 신비를 몸으로 체험하고 삶으로 증거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한번 함께 고백하겠습니다. "날마다 예수님과 함께 죽자"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
2. 하나님의 나라는 작게 시작해서 크게 거둔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씨앗인데 심겨져서 죽자 거기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점점 자라더니 큰 나무가 되어 새들이 와서 깃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큰 일도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해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아도 당장 열매가 보이지 않아도 개의치 않고 묵묵히 그 일을 해 나갑니다. 하나님앞에서 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식하고 행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는 자를 소중히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부자의 큰 돈보다 가난한 과부의 엽전 두 푼을 더 소중히 여기시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지위가 높고 세상적으로 훌륭한 사람, 외적으로 화려하고 좋은 것을 높게 평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제자들이 메시야왕국을 꿈꾸며 예수님께 묻습니다. 천국에서 누가 크니이까? 그 때 예수님은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말씀하십니다. 마18:3,4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거꾸로입니다.
어린아이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자기를 낮추고 섬기는 자가 되었을 때 천국에서 큰 사람으로 쓰임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출발은 지극히 작은 고을 유대 땅 베들레헴이었습니다. 화려하고 권세있는 궁궐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에서 소외되었던 땅 나사렛에서 자랐습니다. 아주 작고 미미한 겨자씨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보면 학벌도 지위도 없는 어부출신, 그리고 세리출신이었고, 숫자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공생애 전부를 이들에게 쏟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버림받은 죄인들, 세리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처음 시작한 초대 교회는 얼마나 미미하였습니까? 120여명으로 시작된 초대교회 교인들은 핍박 속에서 이리저리 도망다녔고 감옥에 갇혔고 사자에게 먹혔습니다.
그러나 모진 학대와 고난을 받으면서 그야말로 잡초처럼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얼마 후 삼천 명으로 불어 났습니다. 그리고 남자만 오천 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허다한 무리의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방법입니다. 예수님과 아무 상관없는 이 땅에도 157년 전 영국의 28세의 젊은 토마스선교사가 찾아왔습니다.
이 땅에 오기 전에 중국에서 막 결혼한 아내와 함께 24살에 선교를 시작했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임신한 아내가 풍토병에 걸려 죽음을 당했습니다. 참담한 고통을 겪은 다음, 조선사람들을 만나 조선에서 일어나는 천주교의 학살소식을 들으면서 조선 선교에 대한 불같은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결국 제너럴 셔먼호라는 상선을 타고 중국을 떠나 대동강 입구에 왔다가 조선군사들이 쏘는 불화살을 피해 바다로 뛰어내려 구사일생으로 살았지만 해변가에서 붙잡혀 순교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는 보자기에 싼 성경책을 주머니에서 꺼내 "잠깐만 이걸 받아 주십시오. 제가 드리는 마지막 물건입니다." 이 말에 멈칫하고 놀란 박춘권이라는 사람은 토마스목사가 내미는 작은 보따리를 얼떨결에 받아들었습니다. 그러자 토마스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 이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일로 조선땅에 뿌린 복음이 열매로 맺게 하여 주옵소서."
1866년 9월 3일 27세의 젊은 나이로 영국인 선교사 토마스목사는 대동강의 해변가에서 순교의 피를 뿌렸습니다. 토마스가 죽고 난 다음 33년이 지난 1899년의 일입니다. 마펫선교사를 찾아와 "목사님! 저는 이제 더 이상 이대로는 못살겠습니다. 제가 토마스 목사를 죽인 박춘권입니다. 그 때 그가 죽어가면서 제게 주었던 작은 보따리가 있었는데, 그속에 성경책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읽고 제 마음이 찔려서 이렇게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있던 마펫선교사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영감님, 영감님이 토마스목사를 직접 보셨단 말입니까?" "보다마다요. 제가 토마스목사를 죽였다니까요?" "하나님께서는 토마스목사의 죽음을 통하여 영감님과 같은 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를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으로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이제부터 영감님도 예수를 믿고 전하면 됩니다."
"목사님, 정말 그럴까요? 그때 셔어먼호가 불타는 가운데 사람들을 향하여 성경을 던지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그중에는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어느 여관에 갔을 때 방안이 온통 성경으로 도배가 되어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여관주인을 불러서 연유를 알아보니 토마스목사가 배포한 성경을 사람들이 버렸고 그 때 그 성경책을 주어다가 도배를 했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관에 묵어가는 사람들 가운데 이 글을 읽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제게 들려주면서 자신도 예수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알기로도 토마스목사에게 성경을 받고 예수를 믿은 사람이 많습니다. 홍신길은 후에 대동문에 교회를 세웠으며, 그의 동생도 예수를 믿고 장로가 되었고, 김영섭은 원래 천도교였으나 동생 종권과 함께 교인이 되어 장로가 되고, 황명대는 셔먼호가 불탈 때 "야소, 야소"하는 소리를 듣고 평양 초대교회의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많습니다." 이렇게 토마스목사가 죽음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뿌렸던 성경은 살아서 조선의 교회가 세워지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알의 밀이 되었던 대동강변에 뿌렸던 토마스 선교사의 피가 오늘 한국교회의 겨자씨와 같은 생명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던 사람이 교회에 들어와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이 생각을 바꾸어 놓고 삶을 바꾸었습니다. 그가 변하더니 그가 속한 가정과 가문을 변화시키고 하나님 나라가 점점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성장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은 미미하지만 우리 속에 생명되신 예수님이 살아 계십니다.
그 생명이 역사하기 시작하면 어떠한 놀라운 기적과 역사가 나타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나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서 하나님의 역사의 통로가 된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천국은 바로 이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는 일이 아주 작고 미미한 일 같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한알의 밀알처럼 내가 죽으면 나로 인해 30배, 60배,100배의 결실을 맺으며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질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일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해도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면 이 작은 일에 충성하는 순간에 우리는 천국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나라가 확장되는 역사가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3. 천국은 조용히 그러나 쉬임없이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천국은 갑자기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오늘 갑자기 말씀을 듣고 기가 막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면서 천사같은 존재가 될 줄 생각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믿음은 그렇게 쉽게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보이지 않게 계속적으로 내 안에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키가 자라고 지혜가 자라셨듯이 우리가 신령한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기만 하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결코 우리는 어제의 사람이 아니며, 과거의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의 사람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가운데서 역사하시고 오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벗어야 할 옛사람, 육신의 사람을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 복음의 역사가 나로부터 시작하여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내 가정을 구원하고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 생명의 복음이 증거되면서 큰 나무로 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작은 겨자씨의 역사입니다.
비록 과거에 우리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무슨 허물이 있었고 무슨 상처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전 것은 다 지나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새것이 된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전의 더러운 옷을 벗듯이 우리가 지금까지 입었던 세상의 옷, 육신의 정욕의 옷을 다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새옷을 입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아들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기까지 우리는 변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함과 같이 우리는 온전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우리도 거룩해질 것입니다. 성장과 변화, 이것이 바로 우리가 겨자씨 비유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 그러나 하루도 쉬지 않는 변화,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면 성장과 변화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생명입니다. 겨자씨 안에 있는 것은 생명입니다. 천국은 성장과 변화를 일으키는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어떤 절망과 어두움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생명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안에는 예수님의 생명이 뿌려졌고 지금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때는 느껴지지 않지만, 끊임없이 꾸준히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숲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천국은 한 알의 겨자씨와 같습니다. 겨자씨가 비록 작고 미미하지만 거기에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낳고 생명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성장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자라야 합니다. 만약 내 안에서 생명이 자라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가시밭과 같은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돌밭이나 길가와 같은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생명이 자라고 있다면 그것은 옥토일 것입니다. 천국은 쑥쑥 자라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게 화려하게 자라지 않습니다. 천국은 언제나 조용히 자랍니다. 내가 지금 교회에 나와 있다고 하는 것도 큰 변화입니다. 말씀을 듣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입니다. 겨자씨가 자라기 위해 많은 풍파를 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거기서 견디면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을 지키면 자랄 것입니다. 예수님의 역사는 오늘도 저와 여러분속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한 알의 겨자씨의 역사가 오늘 저와 여러분속에서 일어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