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토요일에 어느 분의 상 소식을 받았어요.
원인은 담도암.
담도암의 경우는 대부분 손을 쓰기 어려운 4기 정도에
발견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데
역시도 그러한 케이스였다고 들었어요.
개인적으로 안타깝다~ 합니다.
불신자분들의 마지막 소식을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불신자였는지 어캐 아나?"
제단을 보면 대략 나오지 않는지요?
과일 등이 제기에 올라가 있는 등
목사님의 마태복음 강해를 찾아 들으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5장 43절~44절이 궁금해서였는데
주님의 사랑, 주님의 공의가
하나님의 공의를 벗어날 수 없는지라
산상수훈을 제대로 이해하여 안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결국은 강해 내용에서처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것이
늘 옳음이고, 정답인 것이겠죠.
주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간다는 것일테고요.
하지만 저 같은 연약함이 가득한 사람은
주님을 앞서나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저의 의를 앞세워 달려가려 들곤 합니다.
설교를 듣고는 "유레카~~~'라도 외치듯 "알았다~~" 하지만
막상 상황에 처하면 어쩔 줄 몰라하기도 하고요.
전에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잘 이해하지 못하던 부분이 있습니다.
권위의 구조 부분이었어요.
"지금도 이해가 안되고 그랴?"
여전히 다 이해를 했는가는 모르겠으나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라는 것은 압니다.
예전에 할랄식 도축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고발영상으로,
잔혹해서 흑백 처리된 것이었어요.
그때 양들을 보니
무리 중 어느 양인가가 바로 도축을 당하는데도
도망을 가지도 못한 채
그저 다른 양을 엉덩이에 머리를 쳐박고는
"메에~~~~~~" 거리고 있더만요.
몽골 등에선 다른 양이 도축을 당하는데도
풀을 뜯고 있다고 하니
왜 양에 비유를 하셨는가에 대해 알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그럽니다.
만일 양이 자신의 목자를 따라가지 않고
자기 멋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닌다면
늑대에게 물려가기가 쉽겠죠.
잠깐이라도
잘못된 영의 흐름에 들어간다는 것이 어던 것인가
경험해본 바가 있습니다.
'생각이 날뛰면서 나를 공격한다~~' 할 정도로
갑자기 많은 생각이 쏟아졌었죠.
몇 초전까지 했던 생각이
대체 뭐였는지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맥락없는 생각들이 마구잡이 식으로 투하되었기에
제 생각이 아님을 알았어요.
그런 일을 그때 처음 경험한 것이 아닐 겁니다.
다만 이전에는 제대로 분별하지 못했던....그렇겠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라
종종 하나님은 질서 정연한 분이심을 깨닫곤 합니다.
낮과 밤같은 시간의 흐름
게절의 반복, 천체를 도는 별들
무엇~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음을 보곤 합니다.
이를 통해 질서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고
귄위나 질서를 알지 못하여 순응해가지 않는다면
미혹이 틈을 타기 쉽다는 것 또한 알 것 같습니다.
미혹이 틈을 타면 권위나 질서에 대해
더욱 알지 못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고요.
사람은 육신의 존재이기에
이리저리 연약함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간혹 다른 권위 내지는 힘이 서로 충돌할 수도 있겠죠.
그런 경우일수록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겠죠.
마찬가지시겠으나
다른 누군가의 죄를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나는 그러한 죄에서 자유로운가?'
주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점점 더 알게 되어지니
주님의 대속하여 주심에 대해 감사해하곤 합니다.
그렇지 않고 여전히 교만이
빙산의 일각이란 말처럼 조금 수준에서 깍여나가고
여전히 어마무시할 것인데요.
나만 정의롭고 선한척 위선을 떨면서리
판단, 정죄 등을 지니게 된다면
여전히 산을 옳길만한 수준이 되지 못하는
거미줄 수준에 불과한 믿음이 이내 사라지겠죠.
종종 미혹에 대해 생각해보곤 합니다.
고약한 존재인 미혹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은데요.
교만 역시도 미혹을 불러들인다고 압니다.
미혹이 틈을 타버리면
여러 부분에서 뒤죽박죽 해지기가 쉽겠죠.
미혹, 교만, 권위 등은 동떨어진 것이 아닐 것이고요.
권위 구조라는 것은
제가 그렇다고 믿든, 그렇지 않든
역시도 하나님의 공의의 한 부분에 속할 것이니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마귀라면 아마도 여러 권위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할 것 같습니다.
영적 질서를 흐트러트리면
주님과의 사이를 빠르게 이간할 수 있으니까요.
성령님은 온화하신 분이시죠.
그러나 역동성이 있는 분으로 압니다.
이 부분이 간혹 목사님의 설교에서도 다루지던데요.
구약에서의 성령님과 신약의 성령님이 다른 분이 아니신데도
마치 다른 분이신양~~그리 여기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벗어나
영적질서와 귄위를 무너뜨리려 든다면
성령님과 맞서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겠죠.
소심과여서리
단지 생각만 해도
식은 땀이 나고 다리가 후달리는 듯 ㅜㅜ
모를 때는 모르고도 잘 살았는데요 말이죠~~~
하나님의 질서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겸손함과도 이어지는 것이겠다 합니다.
다만 처음부터 다 아는 사람이 어디있겠나 합니다.
또한 생각하는 것과
실제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수시로 경험하는지라
저 또한 부분의 부분이나마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 시점에서는 이해하고 알았다고 여겨도
지나가보면
아주 작은 부분을 안 것에 불과한 경우 또는
지식적으로 이해를 했던 수준인 경우가 많았더라고요.
"그라믄 당신은 대체 아는 게 뭐여?"
헤헤~~
모름에 대해서 알았는디요~~~
모름에 대해 아는 것은
아는 것의 시작이라고 누가 그랬다고 하든디
그와 같은 선문답식의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님다.
저란 인간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음이 가득한가에 대해 알았고
그것이 제게 주신 은혜라고 여깁니다.
"그게 워치케 은혜여~~자학일 수도 있는디"
만일 그러하다면
자기정죄, 자기 비난 등의 고통이 따를 것이나
그렇지 않던디욧~~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 것이요' 하는
찬양곡의 가사처럼 주님을 따라야 하며
글치 않으면 어리석은 자의 모습을 벗을 수 없다란
마음이 생기는지라 은혜입니다~~
"그란디 왜 글 제목이 침노하는 자여?"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란 말씀이 생각나서욥.
여전히 '침노'란 표현을 사용하신 것에 대해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만,
가마니멘치로 수동적으로 가만이 ~만 있으면
은혜를 얻을 수 없음에 대해서는 압니다.
알게 해주셔야 아는 것이긴 합니다만
알고자 할 때 알려주시는 것이라
'침노'란 표현이
어디까지를 포용하는 개념인가 궁금하네요.
그렇다고 하여 매달려서리 알고자 하지는 않습니당.
모르는 것은 모름의 영역에 두어야지
단어 하나, 표현 하나에 매이기 시작하면
제 수준에서는 어려운 부분들이 곳곳에 있는지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니까요.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궁금증을 풀었어?"
넵. 일단은 그런 것 가티요.
제가 혼자 생각해봤을 때와
설교를 바탕으로 다시 생각해보니 차이가 있습디요.
목사님의 설교를 재미있게 들었는데요
저처럼 마태복음의 해당 부분의 말씀이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찾아서 들어보세요.
"그 부분이 왜 궁금했던거여?"
누가 그랍디요~~
성경에 '원수를 미워하라~'는 내용이 있다면서
혹 성경에도 오타가 있는가에 대해 물어와서리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