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같은 교도소
2003년 체포돼 재판을 기다리던 사담 후세인이 "스웨덴 감옥에 가고 싶다"고 했다. 왜 하필 스웨덴이었는지 그곳 감옥 사정을 알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재소자마다 독립된 방에 TV·컴퓨터를 주고 사우나실도 편히 쓸 수 있다. 교도관 없이 면회하고 골프 연습을 하는 교도소도 있다. 그런데도 가끔 재소자들이 작업 거부 파업까지 한다니 재소자라면 부러워할 '감옥 복지' 일등 국가인 셈이다.
교도소 말 가운데 유명한 게 '범털'과 '개털'이다. 사회에서 힘 있고 '빽' 있던 범털이든 아니면 개털이든 교도소 작업반에 들어간다. 그중에 서울 근교 어느 교도소 원예반이 '범털 집합소'였다. 30년 넘게 교도관 하다 퇴직한 이가 원예반 풍경을 글로 적어놓았다. '10여명 모두 전직 관료·국회의원·군인·기업가였는데 서로 반장을 맡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담당 교도관이 난관에 봉착했다.' 무슨 대단한 특별 대우 받는 것도 아닌데.
죄지은 사람 가두는 교정 행정 목적은 징벌에도 있고 새사람 만들자는 교화(敎化)에도 있다. 스웨덴·노르웨이가 호텔 같은 교도소를 꾸리는 것은 바깥세상과 격차를 줄여 출소 후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서다. 이런 나라 재범률은 미국·영국의 절반 아래다. 반면 툭하면 재소자 폭동이 일어나는 중남미 나라들은 교도소에서 배워 저지르는 강력 범죄로 몸살을 앓는다.
10년 전쯤 재소자 인권·처우가 부각되면서 우리 재소자들 삶의 질도 훨씬 나아졌다. 교도소·구치소 쉰한 곳 중 온돌 난방하는 데가 스무 곳쯤 된다. 모범수들이 1박 2일 가족과 지낼 숙소를 따로 짓거나 영화 감상 같은 동아리를 교도관 감시 없이 재소자들끼리 운영하기도 한다. 4년 전 경기도 여주에 문을 연 민영 교도소는 재소자가 감방 아닌 식당에서 편한 자리 골라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입소(入所) 경쟁이 치열하다. 법무부는 낡은 교도소 시설 개선이 범죄율을 낮춘다고 본다.
법무부가 새로 지으려는 교도소가 번번이 주민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그래서인지 엊그제 법무부가 교도소 두 곳 내부를 언론에 공개했다. 지은 지 51년 된 안양교도소는 재난 위험 시설로 분류될 만큼 구닥다리다. 반면 3년 전 문을 연 서울남부교도소는 재소자들이 '기숙학교'로 부르는 최신식이다. 법무부 설명으론 교도소 배치는 '복불복'이다. 그러다 보니 좋은 곳에 보내달라며 로비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러다 '교도소 배치도 범털, 개털 있다'는 소리 나오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 - 조선일보 만물상 -
'멍 때리기'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리는 것 같아서 꺼내 보면 전화도 메시지도 없는 때가 있다. 일종의 진동 착각증이다. 스마트폰 사용자의 60%가 하루 평균 30번 이상 액정 화면을 무심코 들여다본다는 통계가 있다. 자는 시간 빼고 6분에 한 번씩 습관적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본다는 얘기다. 그만큼 뇌는 항상 촉각을 세우고 '온'(on) 상태가 된다. 정보 검색과 소통의 홍수 속에서 뇌는 냉각수가 바닥나 열이 오른 상태다.
뇌에는 휴식할 때 거꾸로 활성화되는 부위가 있다. 전두엽과 측두엽 안쪽 DMN(Default Mode Network)이라고 하는 곳이다. 이 부위는 멍하니 가만히 있을 때 켜지고, 뭔가 일을 시작하면 꺼진다. 그런데 현대인은 1분도 머리를 쉴 시간이 없어 DMN이 항상 꺼져 있단다.
27일 서울광장에서 '멍 때리기 대회'란 이색 행사가 처음 열렸다. '멍 때리기'는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는다'는 뜻의 은어다. 참가자들은 정오부터 3시간 동안 서로 누가 멍하니 있나 겨뤘다. 평가를 위해 심박수 측정기가 동원됐다. 멍을 잘 때려서 심리적 안정이 취해지면 심박수가 내려갈 것이란 논리다. 우승은 아홉 살 초등학생에게 돌아갔다. 참가 경쟁률 3대1을 뚫고 들어온 어른들은 아이에게 밀렸다. 나이 들면 생각이 많아 멍 때리기가 쉽지 않다는 게 드러난 것이다.
때론 멍 때리는 게 병일 수 있다. '결여 간질'이 그렇다. 20~30초 간질 뇌파가 나와 정신을 잃고 멍하니 있는 병이다. 누가 툭 치면 그때에야 정신을 차린다. 수면 무호흡증에 걸려도 낮 시간 집중을 못 하고 멍하니 있게 된다. 만사가 귀찮은 우울증일 때도 아무 생각 없이 있기 쉽다. 뇌졸중 초기 잠시 멍 때리듯 의식을 1~2분 잃곤 한다.
'뇌 세탁(washing)' 이론이 있다. 잠자는 동안 뇌가 그날 들어온 정보를 분석해 요긴한 것은 기억 창고에 저장하고, 쓸데없는 것은 씻어 버린다. 실제로 잠잘 때는 뇌 속 신경 독성 물질이 뇌척수액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입증됐다. '멍 때려라!'는 책을 쓴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신동원 교수는 낮에는 '멍'이 그 역할을 한다고 했다. 참선(參禪)과 명상과 같은 의식적 침잠(沈潛)도 괜찮지만,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좋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놔두는 멍 때림이 효과적이란다.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서 멍 때리던 순간 만유인력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때로 멍한 상태는 뇌가 휴면하고 새로운 창조를 준비하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 조선일보 만물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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