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사 본찰인 대한불교조계종 제 14교구본사 금정총림 범어사에 대해서
1회에 이어 두번째로 글을 올리오니 우리 같이 공부하면서 수행정진 합시다.
범 어 사梵魚寺
16. 지 장 전 地 藏 殿
지장전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육도중생 모두를 해탈케 할 때 까지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대원을 세우고 지옥에서 중생들을 구제하고 계시는 지장보살을 모신 곳으로, 법당에는 지장보살을 주불로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협시로 봉안하고 그 좌우에 명부 시왕상을 안치하고 시왕상 앞에 시봉을 드는 동자상을 배치하였다.
옛날에는 현 독성전 앞에 명부전으로 대웅전을 마주보고 있었으나 1988년에 소일되고, 1990년에 7층 석탑이 있던 지금의 자리에 새롭게 지었다.
♡ 지옥세계의 심판관인 시왕 중 일곱 왕들에게는 7일째 되는 날마다 붙 잡혀가서 혹독한 심문을 당하고(그래서 이때 잘 봐달라고 비는 후 손들이 기원한다. 7×7이면 49일이니 49재라 한다), 여덟 번째 왕에 게는 100일 만에 가고, 아홉 번째 왕에게는 일 년이 지나면 가고, 마지막 열 번째 오도전륜왕에게는 3년이 지나야 잡혀가서 죄를 심판 받고 죄질에 따라서 윤도 윤회를 하게 된다.
지장보살은 비구의 모습이거나 머리에 두건을 쓰고 육환장이나 보주를 들고 있다.
> 육환장六環丈은 보살이 두타행을 닦을 때, 독사나 독충 따위를 쫓거나, 민가를 돌며 탁발을 할 때 소리를 내어 그 뜻을 전하거나, 산길을 가다가 노인을 만났을 때 부촉하는데 등에 사용 하였다. 여섯개의 고리가 달려 있는데 육도를 나타내며 육도중 생을 모두 제도하려는 보살의 서원이 담겨 있다.
지장전의 주련은
지장대성위신력地藏大聖威神力
지장보살님의 위신력을 보니
항하사겁설난진恒何沙겁設難盡
항하사 겁 설하여도 다 말할 수 없네
견문침례일념간見聞寢禮一念間
보고 듣고 우러러 예배하기 일념 중에
이익인천무량사利益人天無量事
인간 천상에서 그 이익 한량 없어라
라고 쓰여 있다.(지장보살 본원경 중에서)
범어사 가람 배치도
17. 산령각山靈閣
산령각은 불교가 전래의 토속신왕과 습합褶合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당우이다. 가람터와 산악을 수호하는 산신과 호랑이를 그린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18.나한전羅漢殿
응진전 이라고도 하는 나한전은 1613년 묘전화상이 창건하였으며 석가여래를 주불로 모시고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협시불로 모셨으며 삼존불 모두가 향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1905년에 후불탱화가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좌상을 한 석가모니부처님의 직제자 가운데 정범을 지키기로 명서한 16나한을 안치하였다.
나한은 아라한의 약칭으로 그 뜻은 성자이다. 아라한은 공양을 받을 자격을 갖추고 진리로 사람들을 충분히 이끌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들로 부처님에게는 16명의 뛰어난 제자들이 있어 이들을 16나한이라 한다.경우에 따라서는 5백 나한을 모신 곳도 있는데, 이것은 부처님께서 열반한 후 가섭존자가 부처님 생존 시의 설법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을 때(1차 결집) 모인 비구가 5백명인 데서 비롯된 것이다.
팔상 독성 나한전은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3호로 지정되어 있다.
19. 독 성 전(獨聖殿)
독성전은 1905년 학암스님이 나한전과 팔상전이 별도의 건물이던 것을 중앙에 독성전을 중창하여 팔상 독성 나한전이 한 건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아 불멸 후에 미륵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 실 때 까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남인도 천태산에서 선정을 닦고 있는 나반존를 모신 전각이다.
나반존자는 16나한중의 빈두로발라로 여겨지며 빈두로 존자라고 불리워 지기도 한다.
독성이란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깨달았다고 하여 독성이라 하며, 나반존자님은 남인도 천축산에서 해가 뜨고 지는 것, 잎이 지는 것, 봄에 꽃이 피는 것, 가을에 열매가 맺는것 등 변함없이 운행하는 우주의 법칙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며, 삼명三明의 능력을 지녔다.
삼명은 전생을 꿰뚫어 보는 숙명명宿明明, 미래를 보는 천안명天眼明, 현재의 번뇌를 끊을 수 있는 누진명漏盡明이다.
건물의 중앙문을 아치형으로 꾸며 양기둥과 아치형의 통나무 사이를 화려한 꽃모양으로 장식하였으며 아랫목 좌우에 나무로 조각한 청신사, 청신녀가 꽃이 있는 화반을 두 팔로 받쳐 공양하는 모습이 있으며 입가에는 엷은 미소까지 표현되어 있다.(경판을 머리에 이고 있는 동자,동녀상이라고 표현된 기록도 있음)
동녀상
동남상
독성전 모란꽃문살
성보박물관소장 독성도
20. 팔 상 전(捌相殿)
석가여래를 주불로 모시고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협시불로 모셨으며, 삼존불 모두가 향마촉지인을 하고 있으며, 석가여래 후불탱화는 영산회상도와 비슷하며 광무9년(1905)에 조성한 것이다.
팔상전에 봉안하는 후불탱화는 석가모니불의 생애를 주요 사건에 따라 8단계로 압축하여 묘사한 일대기인 팔상도를 모시는데, 이는 부파불교(部派佛敎) 시대부터 유행하였다고 함.
좌우에 각기 4폭씩 부처님 일대기를 그린 팔상성도를 배치 하였다. 팔상도는 1978년에 제작 되었다.
팔앙성도의 명칭과 뜻
1.도솔래의상
석가모니 부처님이 도솔천에서 내려옴
2.비람강생상
석가모니 부처님이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남
3.사문유관상
4문을 나가 노, 병, 사, 수행자를 만남
4.유성출가상
성벽을 넘어 고행의 길로 떠남
5.설산수도상
설산에서 수도후 보리수 나무아래서 깨우침
6.수하항마상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악마들을 항복받음
7.녹원전법상
녹야원에서 최초 법문을 하심
8.쌍리열반상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심
후불탱화 : 영산회상도
화면 하단 하기에 의하면, 대한광무 5년(1905)에 제작된 작품으로, 선명한 적색과 밝은 군청이 눈에 뛴다. 화면 중앙에는 파상형의 화려한 광배를 구비한 항마촉지인의 석가상이 앉아있고, 그 왼쪽(좌 협시)에는 두 손을 모아 정병을 쥔 백의관음상이 시립하고, 반대편에는 금강저를 든 보살이 있으며, 그 약간 위쪽으로 문수 보현보살을 비롯하여 보살 6분이 좌우에 배치되어 있어, 팔대보살 도상을 나타내고 있다.
팔대보살상은 고려 13-14세기 아미타팔대보살도에 보이는 도상으로, 조선전기에도 지속적으로 보이다가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석가설법도 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단 좌우에는 사천왕상이 각각 2명씩 배치되어 있고, 화단 상단으로 갈수록 아난과 가섭을 포함한 10대 제자와 8대금강상을 비롯한 공양상 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팔상도八相圖
1)도솔래의상
♤도상적으로는 조선후기 1631년 전두경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가져온 책을 바탕으로 1673년 승려 자습이 남양주 불암사에서 목판본으로 발간한 《석씨원류응화사적釋氏源流應化事蹟》참조함
♤구담(瞿曇,고타마)이 귀성貴姓이라는 내용과 호명보살護明菩薩이 도솔천에서 육아六牙의 코끼리를 타고 내려와 꿈을 꾸는 마야부인에게 탁태托胎하는 장면
♤마야부인이 꿈 꾼 내용을 정반왕과 함께 바라문에게 물어보는 장면등이 묘사됨
2)비람강생상
◇ 마야 부인이 궁전을 떠나서 친정으로 가던 도 중 룸비니 동산에서 무우수 나뭇가지를 잡고 서 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아기를 낳는 장면.
◇ 태어난 아기가 한 쪽 손을 하늘을, 한 쪽 손은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라고 외치는 장면.
◇ 제천諸天이 기뻐하면서 갖가지 보물을 공양하는 모습.
◇아홉 마리의 용이 오색의 감로수로 태자의 몸을 씻겨주고 천신들 이 내려와 차례로 예배 드리며 이 세상 가장 존귀한 분의 탄생을 축복하는 장면.
◇ 왕궁으로 돌아오는 장면(정반왕은 태자의 이름을 "고타마 싯다르타"라고 지었다)
◇아지타 성인의 예언 장면.
왕자님은 훗날 성장하셔서 전 인도를 통일하여 덕으로써 다스리는 이상적인 제왕인 전륜성왕이 될 것이며, 만약 출가하여 수행자의 길을 걸어 시면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이 될 것 입니다 라고 예언하였다.
3) 사문유관상
◇ 태자가 동문으로 나가 노인의 늙은 모습을 보고 명상하는 장면.
◇ 남문으로 나가 병자를 보고 노고老苦를 느끼는 장면.
◇ 서문으로 나가 장례 행렬을 보고 죽음의 무상을 절감하는 장면.
◇ 북문으로 나가 수행하는 사람(출가한 중=수도자) 출가 사문沙門으로 부터 무상법문無常法門을 듣는 장면.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본 태자가 마침내 출가를 결심하는 장면.
4)유성출가상
◇ 태자궁太子宮에서 부인 야소다라와 갓난 아들 라훌라 및 시녀들이 취하여 잠자고 있는장면
◇ 사천왕과 여러 천신들의 영접을 받느라 합장한 장면
◇ 성 넘기 직전 마부 찬타카가 항명抗命에 사천왕이 놀라는 장면
◇ 29세 때인 2월 초 8일에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가 칸타카라는 말을 타고 궁성을 뛰어넘는 때 사천왕이 말급을 바치는 장면
◇ 찬타카가 돌아와 왕과 왕비에게 옷을 바치면서 보고하는 장면
5) 설산수도상
◇ 태자가 금도로 삭발하고 제석천이 옷을 바치는 것과 찬타카가 슬피 울면서 환궁하는 장면
◇ 니련하泥蓮河에서 몸을 씻은 후 사문 옷으로 갈아 입는 것과 천지가 감동하는 장면
◇ 정반왕이 교진여僑陳如 등 5명을 보내 돌아가기를 간청하는 장면과 궁에서 식량을 보내나 받지 아니하고 돌려보내는 장면
◇ 설산雪山에 들어가 까치가 머리에 집을 틀 정도로 6년간 수행한 후 네란자 강에 내려가 지치고 때묻은 몸을 씻고 목녀 수자타가 바치는 우유를 마시고 건강을 회복하여 보리의 정각을 이루는 장면, 이때 같이 수행하던 다섯 수행자는 태자의 곁을 떠남.
6)수하항마상
◇ 마왕이 세 딸을 시켜 여래에게 갖은 유혹을 다하는 장면과 여래가 미간의 백호에서 빛을 비추어 파순궁을 밝히는 장면
◇ 마왕 파순이 코끼리를 타고 병사들을 인솔하면서 여래에게 오고 있는 장면과 마왕이 80억 무리를 모아 보리수 아래의 부처님을 몰아내려는 장면. 이때 앞에 있는 병을 넘어뜨려 보라 하였으나 부처님의 도력 때문에 병을 넘어 뜨릴 수 없었다.
◇ 마왕의 항복을 받고 성도하는 장면.
◇ 항마촉지인 : 마왕 파순의 군대를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어을 때 마왕 파순이 그것을 누가 증명할 수 있는지 말해보라 하였을 때 수행자 고타마는 오른손을 내밀어 땅을 가리키며 "이땅은 능히 일체의 물건을 내어 차별이 없이 평등한 행을 하도다 원컨대 지금 진실을 말하라"하니 "가장 큰 대장부시여 내 당신을 증명하리다 제가 아나이다" 라고 지신이 크게 외치며 이를 증명 하였다. 이때의 손 모습이 바로 항마촉지인이다.
7)녹원전법상
◇ 교진여 등 다섯 비구에게 최초로 설법하는 모습(중도와 사성제 등을 설하여 연기의 이치를 가르치셨다 - 3보의 구성.
◇코살라국의 수잣타 장자가 땅에 금을 깔아 주고 산 땅에 기원정사를 지었다.
◇ 흙장난을 하던 아이들이 흙 쌀을 공양 올리는 장면. 부처님 입멸 후 공양 올리는 아이가 8만4천 사리탑을 건립한 아쇼카왕 임.
◇ 석가께서 설법하시시는 모습(영산회상)
◇ 야사가 친구들과 같이 법문을 듣고 제자가 됨 - 60명의 아라한 탄생. 야사를 찿으러 온 야사의 부모님이 제자가 됨 - 최초의 재가 불자.
◇ 가섭3형제가 1,000명의 제자들과 함께 귀의하여 제자가 됨.
◇ 마가다국 빔비사라왕이 기증한 벨구바나 동산의 죽림정사 - 최초의 절
8) 쌍리열반상
◇ 쿠시나가라의 두 그루의 사라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신 석가모니불과 비통해하는 제자들과 대중들의 장면.
◇ 금관金棺 속의 부처님이 입관에 뒤늦게 도착한 가섭이 비통해 하자 두발을 밖으로 내어 보내는 장면.
◇ 다비茶毘하여 사리가 나오자 사리를 차지하려는 8대왕들의 다툼과 이를 중재하는 도로나 바라문의 장면 등이 묘사됨.
◇ 출가 수행승은 여래의 장례 일에 상관하지 말아라, 재가 신도들이 맡아서 진행해 줄 것이다.
◇ 장례는 쿠시나가라의 말라족에 의하여 치러어 졌다. 점화만은 마하 가섭이 했다.
◇ 근본 10탑 : 사리를 분배받은 8개국이 새운 사리탑, 분배를 중재한 드르오나(바라문)이 받아간 사리가 들었던 병(병탑), 늦게 도착한 핍팔리바나의 모랴족이 남은 재를 가지고 감(회탑).
◇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왕이 근본 팔탑의 사리를 꺼내어 인도 전역에 팔만 사천 개의 사리탑을 건립.
팔상전 외벽벽화
팔상전 외벽의 의미
석가여래응화사적釋迦如來應和事蹟은 사찰 벽화의 원류가 되고 있는 석씨원류釋氏源流라 불리 우는 이 화보집은 누구에 의하여 처음 개간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1631년 명나라 사신으로 갔던 정두원이가 명나라 승려 대겸에게 이 책을 구하여 귀국한 후에 1673년 양주 불암사에서 처음 개간한 것이 바로 이 화보집이며, 전체 4권으로 편찬된 이 화보집은 1~2권은 부처니의 행적과 일대기에 대하여 3~4권은 부처님의 제자 가섭을 비롯하여 고승 244인의 행적에 대한 것을 판각하여 놓았습니다.
본 팔상전 벽화도 부처님 일대기 중에서 가져온 것이다.
21. 휴 휴 정 사休休精舍
휴휴정사는 최근에 건립된 건물로써 마음에 조그만 한 그 어떤 것도 두지 말고 편안하게 쉬고 쉬어라는 뜻에서 지어진 말이다.
이곳은 1982년 종신 수도원을 개원하여 9명의 스님이 수행 정진했다. 1983년 이 종신수도원을 휴휴정사라 이름하고 공부하는 스님들이 최근까지 사용하여 오다가 지금은 사찰문화체험(templestay)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22. 약 사 전藥師殿
약사전은 동방의 유리광琉璃光세계에 주불主佛이신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으로, 12가지 서원을 세우시고 수행정진하여 성불하고 동방 만월세계의 약사유리광 부처님이 되신 분으로, 왼쪽에는 일광변조日光邊照보살, 오른쪽에는 월광변조月光邊照보살이 협시하고 있으며, 약사여래의 수인은 오른손은 설법인을 하고 왼손에는 약병을 받쳐들고 있다. 후불 탱화는 약사여래불화이다.
23. 부 도 전浮屠田
부도전은 스님들이 돌아가신 후 스님들의 사리나 유물을 안치하는 곳으로, 전면 3기(관조당, 명진당, 덕산 대 선사, 무진장 대 종사), 둘째 면 11기, 셋째 면 11기 후면에 9기 총 34기의 석종형 부도가 있다.
♧ 동산스님의 부도탑
부산 동래 범어사 하동산河東山 큰 스님은 현대 한국불교 중흥조 가운데 한 분이셨다. 동산 스님은 1890년 충북 단양에서 출생, 서울에 있던 경성의전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나 고모부였던 오세창吳世昌선생의 분부로 백용성白龍城스님을 찿아 이 자리에서 백용성스님으로부터 ""육신의 병을 고치는 사람이 의사인데, 중생의 병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배가 아프고 종기가 나고, 상처가 나는 것은 육신의 병이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마음의 병이니, 육신의 병만 고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라는 법문을 듣고 홀연히 발심, 양의사가 되는 길을 내던지고 용성 스님을 은사로 삭발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그 후 스님은 석왕사, 해인사를 거쳐 부산 동래 범어사 조실로 계시면서 기라성 같은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성철 스님을 비롯해서 광덕, 지유, 능가, 정관, 무진장 스님 등 걸출한 범어사 문중의 인물을 배출했다.
청담, 효봉, 금오 스님 등과 더불어 불교정화운동을 펼치셨고 1965년 4월 24일 세수 75세, 법랍 53세로 범어사에서 열반에 드셨다.
※참고
본 글은 본인 寶雲이 속해 있는 범어사 신행팀에서 부산.경남 불교에 관심있는 분을 위하여 사찰해설용으로 제작한 내용을 본인(寶雲)이 편집 기록한 글 이오니 혹시 오타나 의문 내용은 보운에게 연락주시면 정정하고 아는데 까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우리 운수사의 본찰인 범어사에 관한 내용이오니 참고하시어 수행정진과 홍포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시간 나는 대로 부산 근교 사찰에
대해서도 기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명절! 행복한 시간되시길 바라봅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도반님! 고맙습니다🙏
♧보운(寶雲)
-운수사 불교대 40기 졸업
-운수사 신행팀 활동중(현)
-범어사 불교대 15기 졸업
-범어사 동문회 운영위원&집행부위원(현)
-부산지역 군포교 청파팀원(현)
첫댓글 공부 잘 했습니다ㅋ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