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착각과 몸에 피는 달꽃

[늘 평화]

중학교 2학년 겨울 어느 날 앞이 캄캄해진 듯 길을 잃었다.
소설에서나 읽었던 시한부 여주인공이 될 줄 몰랐다.
아직 행운 한 조각도 맛보지 못하고
첫사랑다운 첫사랑도 해보지 못한 꿈 많은
사춘기에 엄청난 불운이 닥쳐왔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중학생이 되어 시간마다 바뀌는
선생님들은 무엇을 물어도 대답 없고
숙제도 잘 해오지 않았던 
월남소녀같은 얼굴이 작고 동그랗고 까무잡잡한 
 
검은 뿔테안경을 낀 내가 사춘기라 반항하는 줄 알고
초록의 긴 출석부로 머리나 등짝을 내리치기 일쑤였다.
그 시절의 출석부는 엄청 견고하고 두꺼웠던 기억인데
맞으면 좀 아팠다. 

잘 듣지 못하여 그렇다고
내가 나를 변호하기는 죽기보다 싫었던
자존심 강하였던 사춘기라 10과목의 선생님들은
침묵의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짐작조차
못하였을 터이니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답답하다 못해 복장이 많이 터졌을 거다.

그래도 살아있으니 견딜만했다.
카투사 월급을 모아 주고 가면서 문학전집을 사라고
한 둘째 오빠가 준 용돈으로
차털리 부인의 사랑을 비롯하여 야한 소설을 잔뜩 사서
엄마 몰래 이불 안에서 숨 막히는 스릴을 가지고 읽었던 시절이었다.
 
그날도 밤늦게 새벽이 되도록 책장 잘 넘어가는
소설을 보느라 밤 잠을 설치고 일어났는데 
어느 날 아침 붉은 진달래 꽃물 보다 더 진하게
속옷이 물들어가지고 너무 놀랐다.

안 그래도 만원 버스 타고 학교 갔다 오면
시간마다 바뀌는 선생님들 한태는 얻어 터지고
급우들한테는 따돌림 받는 스트레스가 심해
쌍코피 터지는 일이 많았는데
아래에서도 피가 흘러내리니
무척 당황했고 내가 죽을 병에 걸린 줄만 알았다
 
유일하게 나의 손을 잡아 준 선생님이 계셨는데
나의 짧은 글 하나를 가지고
급우들 앞에서 칭찬을 해주던
국어 선생님이 너무나도 좋아서 나도 그런
따스한 선생님이 되고야 말겠다고 꿈을 꾸었다
그 꿈을 채 이루지 못한다는 것도 원통했다.

속옷이 빨갛게 된 그것은 사전에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
그게 몸꽃이라 부르는 달거리인 줄 몰랐다.
엄마는 치매 시모님과 7남매 학비 대느라
무지 힘겨워 보이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래서 중학교에서 왕따 당해도
집에 들어오면 말괄량이 삐삐의 만화 주인공처럼
명랑소녀 모드로 지내며 엄마의 삶에
절대 내 걱정이 손톱만큼의 무게만큼이라도
더하지 않도록 애썼기에 
 
쌍코피가 터지든 아랫도리에서 철철 붉은 강이 흐르던
내가 아프다는 것을 엄마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내 인생은 종 쳤다는 생각에 잡혀서
 
소설과 영화의 비련 한 여주인공 마냥 슬픈 폼을 잡고
매일 학교 가는 척하고 시내와 바닷가를 돌아다녔다.
부산에는 갈만한 바다가 얼마나 많은지 
매일 다녀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앞날이 캄캄해져
나의 생이 이걸로 끝인가 싶었던 그 고민은
둘째 언니가 뭔가 퀴퀴한 내음새를 맡으면서 채 빨지 못한
내 체육복과 교복을 발견함으로써 해프닝으로 끝났다.
 
나는 죽을병에 걸렸는 줄 알았다고 하니
언니는 배꼽을 잡고
울 막내는 바보야! 하면서 마구 놀리며 박장대소했다.

엄마는 화안 하게 웃으시며 
찹쌀을 불리고 갈아서 달디단 통팥을 넣어
맛난 시루떡을 해서 정지간의 조방신과
삼신할머니에게 감사 먼저 하자고 하셨다. 
 
통팥이 그리 맛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내 머리를 쓰담쓰담해주며

"막내야! 몸에 꽃이 피는 건 아주 좋은 일이야!
그런데 네가 이렇게 빨리 할 줄 몰랐어. "
언니도 거들었다
"그래 나도 고1 때 했거든. 울 막내 보기보다 조숙하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통팥이라고 하면 반색을 한다.
비련의 여주인공이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축하를 받으니
기운 백배가 나서 안 죽고 살았으니
못할 일이 무엇이랴 하는 당돌함으로
용감하게 교장선생님을 면담하여
 
나는 수업내용을 전혀 못 들으니 필기를 제일 잘하는
학생 옆에 앉게 해달라고 하고
수업시간마다 들어오는 선생님들에게도 잘 말해
출석부로 고만 맞고 싶다고 하였다.
 
꼴찌에서 맴돌던 나는 중간 상위권으로 성적이 올라
무사히 인문 여고에 진학했다.
국어 선생님은 못 되었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
매일 오전과 오후 사람들을 잘 가리키는
따스하기로 소문난 선생이 되었다.
 
엄마가 되어서 두 딸을 키우다 보니
어느 날 화장실에 나만 사용하는 그것이 반으로 줄어있다.
누가 쓰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큰 아이가 침대에 엎어지는데
뒷부분이 볼록하여 눈치를 채었지만
내심 놀랐다. 그때 그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으니깐...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하니깐 큰 아이는
 "이건 개인 사생활이잖아.." 하고 대답했다.
 
내가 첫 번째 몸꽃인 월경은 케이크나 떡을 해서 축하받는 거라고
기쁜 일이 리고 설명을 해주었다. 작은 딸은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었다.
 
이년 후 작은 딸이 학교 갔다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왔다.
좋은 소식이 있다고 해서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가 상을 받았나..
아니면 시험을 잘 보았거나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았나 싶었다.
 
작은 아이는 내 손을 잡아 이끌고 거두절미하고 
 
"엄마! 엄마! 나 케이크 사줘! 집에 올 때 큰길의 가게에서 초콜릿 케이크
내가 눈도장 찍고 왔어! 어서 케이크 사러 가자!"
 
알고 보니 초등학교 6학년 졸업을 앞둔 작은딸도 몸꽃이 피기 시작한 것이다.
 
우러 엄마와 언니는 고등학교 나이 때 꽃을 피운 것을 나는 중학교 때 했고
우리 딸들은 초등학교 6학년 즈음에 했다.
그것도 나는 빠르다고 느꼈다.
 
호주에 있는 조카딸이 지난달 귀국하여
2주간 한국에 머무르고 갔다.
나와 친한 둘째 언니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서
밥도 사주고 용돈도 주었다.
 
조카딸이 호주에서 2남 2녀 키우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 4학년인 막내딸이
벌써 몸꽃을 시작했는데 그것을 시작하면서
 
사춘기도 동시에 하는지 예민해지기도 하다가
어른처럼 굴고 엄마 말은 콧방귀를 뀌고
온 식구들 머리 꼭대기에 앉아서 가관이 아니라고
혀를 끌끌 차서 너무 웃겼다.
그런데 4학년 나이에 벌써 몸꽃이 피다니....
 
보은의 후배집에 가보니 
아직도 재래식 면포를 딸들에게 사용하고
마당에서 장작불로 삶고 있어 깜짝 놀랐다.
 
순면이 들어갔다고 감촉좋은 것 한 봉다리
1만5천원하는 것을 우리 아이들은 쓰는데
후배는 딸만 4명이라 본인 것 까지 합하면
 
한달 쌀값보다 더 많이 나가 감당이 안되니 
아이들에게는 비싼 황톳염색한 것이라고 하여
사용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내게도 10장을 주었는데
딸에게 넌지시 건네려고 하다가 된통 잔소리만 들었다.
 
한국인이 서양사람들처럼 키도 커지고
식단의 서구화 탓일까..
몸꽃의 개화시기가 우리들의 딸과 손녀들 세대에서 
점점 빨리 피고 있다. 
 
빨리 피면 빨리 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니 
빠른 몸꽃의 현상은 그다지 반길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어저께 계룡산 갔더니 초입에 단풍 한 잎 빨갛게 먼저 물들었다. 빨리 물들어서 주목받아 좋은가...나는 가장 늦게 물들어 가을단풍 구경 놓쳤다고 하는 외로운 마음에 즐거움을 주고 싶다  

[지 인]

달걸이 이야기 몸꽃이라고~ 축하받는 이야기

6학년도 빠른데 4학년이라구요
정말 대단히 빠르군요..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늘 평화]

요즘 아이들 10대 신체가
어른들보다 빨리 성장하고
조숙한거 같아요 ㅎ
평온한 밤되세요

[석촌]

잘 읽고 갑니다.
점점 빨라지면 어디까지 가려는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늘 평화]

몸은 빨리성숙하는데
멘탈이 못 따라가는게
요즘 시대 특성의 하나인듯해요
평온한 밤되세요

[운선]

요즘 2차 성징이 빨라요 3학년부터 반항기 그리고 성징이 나타나고 말괄량이가 수긋해지기도 하고 얌전이가 괜히
뾰족해지기도 하면서 여자가 되는

[늘 평화]

2차 성징이 빠른거 맞아요
먹는음식이 서구화 된 영향도 있곘지요
문학방이기에 이런 글도 쓸 수 있어 참 좋아요 ㅎ
누군가는 요즘 제가
삶방에 쓰는 글도 문학적이라고 해요
여기 덕분에 신변잡담
글쓰는것이 좀 달팽이꼬리만큼이라도
늘었나 보아요 ㅎㅎ
고마운 일이지요
평온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