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한류열풍 사랑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ㆍ자유게시판(한류) 영화 나랏말싸미 일본승려는 무슨 의미로 들어간 설정일까요
arandel 추천 1 조회 820 19.08.19 23:03 댓글 27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9.08.19 23:11

    첫댓글 그영화 역사왜곡 논란이 있어서 안봤어요 그 주인공 스님의 활약상을 보여주기 위해 불필요한 에피를 넣었겠죠

  • 19.08.19 23:18

    일본은 떼쓰는게 예전부터 대단 합니다.

  • 19.08.19 23:19

    실제로 조선시대에 대장경을 일본에 줬다더군요. 수시로.. 조선은 불교를 억압하는 상황이라 일본에 여러 차례 주었다고 합니다. 마치 중동국들이 이슬람 이전의 유물을 유럽에 넘기는 것과 유사..

  • 19.08.19 23:40

    감독이 이 글을 본다면 정말 아차 싶겠네요.
    해석이 너무나 좋네요.
    정말 쉽게 생각지 못한 발견을 한 것이고 감독을 한 방 먹이는 해석이네요.
    감독이 이글 보면 열등감에 내상이 심할 듯.
    저도 영화는 안봤지만 이 해석이 충분히 할 수 있는 해석이라고 생각 합니다.
    남이 못보는 것을 보는 사람... 정말 훌륭하신 겁니다.

  • 작성자 19.08.20 08:44

    감사합니다. 거참 일본쪽 논리를 펴는 승려들이 등장해서 엥? 했답니다. 영화가 불교탄압한 조선을 미워하고 세종의 업적을 깎아내리거나 섞어서 승려쪽 업적으로 만들고 싶어하고 한글의 독자성꼴도 못보는지 산스크리트어를 끌어들여서 마치 다른 나라에 영향받은것처럼 비하하려 한다는 듯한 설정에도 설마 했는데 그 일본승려들은 조선을 더 비하하려고 집어넣었나 그리고 스님을 영웅화시키려 집어넣었나 싶었어요

  • 19.08.20 12:16

    @arandel 님의 편견도 있을 거예요. 같은 걸 봐도 각자 입장과 눈높이로 해석은 가능하니깐요.

    세종과 신미대사 모두를 제대로 알면 두분다 존경하게 될 걸요. (종교라는 장벽에 걸리지 않는다면요... )

    무엇보다 세종과 그 아들들께서 존경한 분이시니.. (우리가 감히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신미대사를 함부로 폄훼하는 것도.. 세종을 욕먹이는 하나가 되지 않을까요.

  • 19.08.20 12:00

    @arandel 그 당시, 조정관료와 유학자들이 평소에도 요망한 간승이라고 내리깔던 신미대사를.. 세종과 세자와 수양과 안평은 극진히 좋아하고 따르고 존경하는 것도 모자라 "우국이세"란 조선 역사 전무후무한 법호까지 내려 주십니다.

    이걸 그대로 보여줘도... 누군가는 스님 영웅화라 생각할 거라 봅니다.

  • 19.08.20 12:06

    @arandel 한글이.. 주역의 음양오행이치와 범어와 다른 언어를 끌어들여.. 독창적으로 창안해 전세계 유일한 한글문자를 발명해냈다 해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위대한 업적.. 맞습니다.

    따지고 보면.. 태양아래 새로운 게 없고.. 인간의 영감과 창조는 모방 아닌 게 없거든요. 그렇다고 우리가 모방했다고 폄훼할 수 없듯이요.

  • 19.08.20 12:14

    @arandel 세종실록,
    세종 25년 12월 30일
    1443년 명 정통(正統) 8년

    훈민정음을 창제하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ㅡㅡㅡ

    학계에선 정설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고.. 그래서 필히 열린 자세가 필요한 부문이고요.

    여기서 별표는 범자를 의미한다고 보는 사료나 연구논문들도 상당히 존재합니다.

  • 19.08.20 12:43

    @arandel 또 한 예로,

    우리말과 산스크리트어 연구하시는 분은.. 그 방향성을 "교차적으로" 보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부문도 열린 자세로 연구가 계속돼야.. 할 것이고요.

    ㅡㅡㅡ

    그는 우리말이 기원전 인도아리안 어족으로 분류되는 산스크리트어, 특히 그 원형인 ‘실담어’와 비슷하다는 학설을 내놓았다.

    우리말이 드넓은 유라시아 일대에서 원시 인류가 쓰던 고어(古語)라는 것이다.

    반면 지금 세계 학계는 우리말을 ‘알타이 어족이긴 한데 뿌리를 알 수 없는 언어’로 분류하고 있다.

    [출처: 서울신문]

    즉 우리말 위에 산스크리트어가 있다고 (?) 우열로 서열화해서 (?) 단정해선 안된다 봅니다. 그건 수직적 우열의 문제가 아니니요.

  • 작성자 19.08.20 15:24

    @해푼 미소 왜 저한테 편견이 있을 거라고 단정하시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네요? 그렇게 생각하는 님의 편견에 대해서 왜 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 글구 신미를 폄훼하는게 아니라 왜 세종의 업적을 굳이 신미나 다른 요소를 끌어들여야하는 건지 이해를 못하겠거든요 글구 산스크리트어나 다른 언어와 훈민정음창제사이에서 굳이 유사점을 찾으려고 애쓰시는 분이신가요 전 꼭 훈민정음을 뭔가 다른거에 영향받은걸로 만들고 싶어하는데서 일본애들 편견이나 이 영화의 편견을 봤고 뭔가 훈민정음위에 덮어씌우고 싶어하는거 같앴거든요

  • 19.08.20 15:51

    @arandel 세종과 신미와 훈민정음에 대해선.. 정답은 누구도 알 수 없고.. 각자의 입장과 눈높이만 있으니깐요.

    편견이라 꼭 짚은 건... 만에하나 한글이 산스크리트어 영향을 받았다한들.. 그걸로 "비하"를 대입해선 안된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였어요.

    또 님은 신미대사를 전혀 모르시잖아요.

  • 작성자 19.08.20 17:33

    @해푼 미소 정답이 없다니요 어안이 벙벙 훈민정음 해례본이 있고 실록에 친제라고 되어 있잖아요 그리고 제가 신미대사를 잘 모른다 해도 역사좋아하다보면 세종시대 그런 인물이 있었다 알게 되고 자료들 찾아보고 아 흥미로운 인물이구먼 할수도 있지만 훈민정음 발명자라고는 할 수 없는데 왜 슬며시 신미를 몰라서 그런것인양 슬며시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글을 보여주신건지 모르겠네요

  • 19.08.20 20:23

    @arandel 실록기록은 첨부터 버젓이 있는데.. 왜 전에는 집현전 "공동" 창제라고 학교에서 당연한 듯 가르쳤습니까?

    그러다 세종 "단독" 창제가 된 것도 집현전 반대상소같은 "간접적" 사료가 발견되어서이지, 그조차 단독으로 창제한 과정을 기록한 직접적 사료가 발견돼 굳어진 정설은 아니란 걸..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한글 창제과정이 사료로 남아있었다면 후세에 또다른 논란은 없었겠죠.

    하지만 그 시대적 배경속에서 한글 창제과정이 "극비사항"이였고 그 과정이 역사의 블랙박스에 갇혀 있기에..

    그 역사적 진실에 호기심을 느끼는 자들이 있다면.. 직행보다, 각종 문헌과 고증과 개연성을 통한 우회로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 19.08.20 20:43

    @arandel 즉 관련 문헌들과 각종 고증과 개연성을 더 마니 공부한 분들일수록 "다른 판단"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게.. 제 소견입니다.

    님이 모르고 있었을 뿐.. 훈민정음에 극비 조력자가 있었을 거란 가설과 우회적 진실탐구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었어요.

    거기에 훈민정음 자체 연구가 다각도로 진행되면서.. 불법과 스님의 존재성이 더 대두되기도.. 해왔고요.

    님, 아니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모르고 있어서, 현실적 괴리감(?)이 더 컸던 것 뿐이지요. (즉.. 대중 영화론 흥행실패 리스크가 매우 컸던 것이죠. )

    헉교에서 배우는 게 다가 아닌 거고요.

  • 19.08.20 20:57

    @arandel 왕이란 자리, 더구나 즉위후 재임기간 오랫동안 안질을 비롯 여러 질병을 달고 사셨고 한글창제 선포 직전 몇년동안은 특히 아프셔서 경연도 못 열 정도였다는데... 항상 경호와 기득권 감시와 기록이 따라다니고... 신경써야할 외교와 국정사들이 한둘이 아닌... 창살없는 구속의 자리가, 왕입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수년간을 모든 눈초리를 완벽히 따돌리며 습자지 흔적하나 떨구지 않고.. 그 궁내에서 문자를 탄생시킨다는 게... 일명 초천재라도 물리적으로 힘들다 보구요.

    대신 왕이, 지극한 지혜와 발원이 있다면, 초천재 아니라도, 한글 탄생을 가능케 합니다...

    그또한 역사에 길이 남는 "왕의 위엄이요 위업"입니다.

  • 작성자 19.08.20 21:00

    @해푼 미소 해례본 발견되기 전엔 별의별 설이 다 있었죠. 그리고 왜 슬며시 다른 사람이나 다른 설정을 끼어넣으시려고 하시는지 그리고 왜 세종 자체가 아니라 딴데서 딴 나라에서 딴 문자에서를 찾으시려고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있는그대로는 믿기 힘들고 뭔가 딴거 개입이나 딴데 개입이 더 믿을만하다고 보시는 분인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일반인들이 모르고 있었다니 영화에 대해서 반대성명낸 곳이나 반대하는 여론 낸 사람들은 다 뭔가요. 뭔가 불교가 개입해있거나 딴 나라 문자가 관련되있을 가능성을 희망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 19.08.20 21:00

    @arandel 한글은 그 어떤 역사적 개연성을 추론하더라도... 세종의 가없는 위업이요.. "우리 민족"의 위대한 유산인 건... 틀림없습니다.

    이곳에 왜곡과 폄훼는 결코 아니되겠지요.

  • 19.08.20 21:03

    @arandel 해례본 운운은... 신미대사 논란에 별 영향이 없어요.

  • 19.08.20 21:06

    @arandel 세종 자체가 아니라 딴 데서 딴 나라에서 ???

    핀트가 어긋나는 듯요.

    한글창제 과정이 극비였다고요. (지금도 과정을 다룬 직접적 사료나 기록이 없어요) 해례본은 그 결과물만 드러난 거고요.

    이해가 잘 안되시는지... 요.

  • 19.08.20 21:15

    @arandel 님이 저 실록 한줄만 의지해.. 훈민정음과 신미대사를 엮어 이해하기는 무리라 보네요.

    하지만 관련사항을 알면 알수록 충분히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게 제 심정이고... 그 다른 판단이 님 우려처럼, 왜곡과 폄훼로 이어지지는 않겠으나... 혹 그런 저의가 있다면... 그건 필히 경계해야겠죠.

    즉 관점과 역사관은 하나를 두고도 여러 개가 가능하니... 바른 역사관 정립은 따로 필요하다 생각해요.

    마치 조선 500년사가 그 자체로 누군 긍정적이나 누군 부정적일 수 있듯이요.

  • 19.08.20 01:07

    우리가 학교에서 가르쳐준 토막지식외, 역사를 모르는 부분도 참 많은 거 같아요.

    검색하니... 얼추 나오네요.

  • 19.08.20 01:08

    [숨은 역사 2cm] 세종대왕, 팔만대장경 일본에 공짜로 넘길 뻔했다

    2017-04-27 

    https://www.yna.co.kr/view/AKR20170424149500797

  • 19.08.20 01:09

    불교를 숭상하던 일본은 조선 건국 직후부터 팔만대장경판에 집착했다.

    조선 포로를 돌려보냈다가 대장경 인쇄본 2질을 받은 게 계기가 됐다.

    태조는 1395년 조선인 포로 570명이 돌아오자 답례로 인쇄본을 하사한다.

    이때부터 일본은 포로 송환 때마다 대장경을 달라고 애걸한다.

    대장경이 갖는 불교 가치를 알아봤기 때문이다.

    (링크)

  • 19.08.20 01:12

    태종은 한때 대장경판을 건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인쇄본을 일일이 찍어서 보내는 부담을 덜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조선은 1556년까지 약 50차례 인쇄본을 준비하느라 큰 불편을 겪었다.

    그런데도 태종은 머잖아 결심을 바꿔 원판을 계속 보유하기로 한다.

    신하들이 일본 기증을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다만 경기도 여주 신륵사 인쇄본은 일본에 건넨다.

    1381년 간행된 것으로 총 587상자에 4천995첩이나 된다.

    (팔만대장경판으로 찍은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현재 일본 교토 오타니 대학 도서관에 있다.)

    이런 일이 150년 넘게 반복된 탓에 조선에는 대장경 책이 사라진다.

    (링크)

  • 19.08.20 01:14

    세종 6년 대규모 사신단이 토산물을 바치며 대장경판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돌발 행동을 벌였다.

    사신 2명이 갑자기 식사를 거부한 것이다.

    이들은 "빈손으로 귀국해서 처벌받느니 차라리 여기서 먹지 않고 죽을 수밖에 없다"고 위협했다.

    세종은 더는 버티기 힘든 듯 "우리에게 무용지물이니 그냥 내어주자"고 제안한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국보급 문화재가 일본 앙탈에 공짜로 넘어갈 뻔한 순간이었다.

    (링크)

  • 19.08.20 05:25

    癲癎.이 말은 일본어로 간질병 지랄병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발음으로는 전간
    일본 발음으로는 뗑깡이죠.
    참고하세요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