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과 거북 신앙
1. 금호강의 내력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태백준령의 능선을 따라서 아이의 태반인 양 용트림하는 기상으로 골골 사이로 천삼백 리의 장강이 흐른다. 여기 낙동강의 지류 가운데는 가장 길게 팔공산을 감돌아 흐르는 금호강이 있다. 그럼 금호강의 ‘금호’는 어떤 문화적 속내를 품고 있을까. 거북신의 영성을 품었다면 어떨까.
《경북지명유래총람》을 따르면, 금호는 영천의 서쪽 6킬로 지점에 있는데 금호읍의 남과 북이 구릉지로서 호수와 비슷하여 늪에 갈대가 깃들여 살아간다. 바람이 불면 갈대밭에서 비파 소리가 나기 때문에 금호라고 하였다. 해서 비파 소리에 맞춰 영천 아리랑이 생겨난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잠시 금호강과 인접한 고장으로 금호(琴湖)에 주목하고자 한다. 금호읍 지명 변천을 보면 1914년 무렵, 구계(龜溪)와 호암(湖岩)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 굳어져 오늘날에도 그렇게 쓴다. 마침내 구호(龜湖)-금호(琴湖)라는 등식이 이루어진다. 이제 거북 구를 금이라고 부를 가능성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이두식 읽기로 보아 금(琴)은 구(龜)와 대응되는 이름이다.
김수로가 세운 가락국은 거북 신화에서 말미암는다. 결정적인 노래가 구지가(龜旨歌)다. 방언으로 보면 양산 지방의 모심기 농요에서도 왕거미 곧 거미-거북이라 한다. 김정호 선생의 『대동지지』를 보면 구포(龜浦)의 본디 이름은 감동포(甘同浦)였다. 금호읍의 본디 이름도 구호(龜湖)였다. 뒤로 오면서 금호(琴湖)가 되었음을 생각하면, 금호의 금(琴)이 거북이 곧 ‘거미(가미)-그무-그모-금호’였을 가능성이 있다. 한반도의 모든 강 가운데 거북과 관련한 지명이 가장 많은 강이 낙동강이요, 그 가운데에서도 금호강이다. 거북신은 물신이며 가락국의 신화를 품어 신라 천년의 디딤돌을 놓았다. 철기문화와 불교문화가 거북신 곧 용신과 만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금호강은 용신이요, 거북신의 화신이다. 인도에서는 거북 곧 가베를 일러 임금을 그렇게 일컫는다.
압독국만 해도 그렇다. 압(押)이란, 금호강의 금(琴)-구(龜)의 거북-검-금과 무관하지 않다. 압(押)의 한자 구성에서 알맹이가 갑(甲)인데 이는 동물상징으로 볼 때 거북(검-감)이 된다. 압독을 압량(押梁)이라고도 이른다. 지금도 압량면이 있기에 그 발자취가 되기에 충분하다. 압량이 소리로는 암냥이 되니 압독(押梁)-갑량-감냥의 맞걸림으로 보아 감(갑)-금-암(검)의 대응이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지금도 압량에 가면 금구동의 금구(金龜) 곧 금자라-금거북 마을이 있다. 이는 다시 대구의 진산이며 앞산의 땅 밑을 흐르는 불기운을 누르기 위하여 연구산(連龜山)으로 그 맥을 잇는다. 다시 신천과 금호강이 만나는 어름하여 검단동이 있다. 여기 검단(黔丹)은 바로 거북(玄武-검-금)을 이른다.
2. 구지가와 하도낙서
지명이란 복합적인 문화 기호다. 그 유래를 살펴보면, 정치와 종교, 군사와 경제, 교육과 인물 및 전설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다양한 정보가 알알이 들어박혀 있다. 이를 장소의 혼이라고도 한다. 눈에 보이는 경관을 관(觀), 특정 지역의 문화와 풍속을 풍(風) - 아울러 관풍안(觀風案)이라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문화적인 디딤돌로서 금호강의 문화적인 속살을 들여다보려는 것이다.
금호강은 곧 거북이 강이다. 《삼국유사》가락국기를 보면, 김수로 임금의 건국설화는 거북의 머리를 내놓으라고 하면서 시작되는 구지가(龜旨歌)임을 알 수 있다. 이 노래의 정수리는 구하구하(龜何龜何) 수기현야(首其現也)다. 나머지는 신라 성덕왕 시절 수로부인을 소재로 한 헌화가 부분에서 그 배경 가요라 할 해가사의 부분들을 옮겨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구하의 하(何)는 존경하는 대상을 부를 때 쓰는 호격 조사이므로 거북 곧 검-금-김은 김수로(首露)로 볼 수 있다. 수로의 수(首)는 같은 글자이고 로(露)는 현(現)이나 그 뜻에서 다를 바가 없다. 마침내 ‘구하구하수기현야’는 김수로 임금을 가리킨다는 말이 된다. 김수로의 김(金)의 옛 소리가 금(金)이니 그 뜻은 철기문화를 드러낸 문화기호다. 상징 동물이라면 거북 곧 거무-거미-가미-그무이며 이는 곧 금호의 소리와 다르지 않다. 금호의 히읗소리가 떨어지면 금호-금오-그모-그무-거무-거매와 같은 이형들로 소리가 드러난다. 경상도 방언에서 어와 으, 그리고 아가 넘나들어 소리가 남을 고려하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구지가의 3-4구는 신라 30대 문무왕보다 약 50년 뒤인 33대 성덕왕 때 나온 해가사의 뒷부분이 붙어있다. 그러므로 가야의 건국신화의 내용과 구지가의 가사는 신라 성덕왕 이후에 윤색된 것이고, 신라 문무왕 때 더 개변되어 구전으로 내려온 것이 고려 문종 때 와서 문자로 온전히 정착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중국의 하도낙서(河圖洛書) 신앙이 들어오면서 일찍부터 금호강 유역에도 그러한 방사형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하도낙서의 뿌리 깊은 물신앙의 상징이 거북-검(금)이다. 경산 남천면에는 하도리(河圖里)가 있다. 용각산과 선의산 사이에서 용마가 나온다는 전설이 있다. 이로 하여 용마하도낙서(龍馬河圖洛書)에서 하도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하도의 대가 되는 낙서의 낙수는 현실적으로 대응되는 것이 금호강의 서남쪽으로 흐르는 낙동강〔洛水〕이며 가까이는 금호강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하도낙서 신앙은 단적으로 홍수를 잘 다스려 극복함으로써 태평성대를 이루고 번영하기를 기원하는 고유 신앙에서 비롯한 것이다.
여기 하도낙서에 나오는 하늘의 별자리라 함은 주로 물을 다스리던 별신인 28수 가운데 10번째 별인 여수(女宿)로 북방의 현무(玄武) 곧 거북이를 드러낸다. 세종 때의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에 따르면, 대구-경산은 김해, 양산, 기장, 울산 경주, 영양과 함께 여수의 별자리에 해당한다. 여수에 이웃한 이주 위에 5개의 별은 패고(敗苽)라 하여 과일 등의 먹을거리와 나무를 주관하는 별이다. 홍수와 관련하여 범람하는 강물을 다스린다는 이른바 홍범구주(洪範九疇)의 지혜였다. 하도낙서는 태평성대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낙동강의 유속은 느리고 강의 길이가 길어 토사가 쌓이어 홍수가 나면 가장 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입혔던 두려움의 강이기도 했다(증보문헌비고). 동시에 기회의 강물이기도 했다. 강과 내와 바다에 제사를 지내 물신을 달래고 백성들을 심리적으로 안정을 기하도록 함에 있어 거북 신앙의 그 뿌리가 벋었을 것이다.
금호강 유역에 발달한 고장으로 하양이 있다. 옛 이름이 화성현(花城縣)이었다. 화성은 조선 영조 18년(1742) 임술년에 관아를 한사리에서 금락리로 옮기면서 현호를 그리 불렀다. 우리말로는 꽃재다. 꽃봉오리처럼 흙과 모래가 쌓여서 꽃봉오리처럼 툭 튀어나온 곳을 이르는 말인데 뒤로 오면서 미화 되어 한자로 화성이 되기에 이른다. 여기 꽃은 아마도 능금꽃이었을 것이다. 능금꽃 피고 지는 금호평야 곧 대구평야는 낙동강의 물신이요 용이요, 거북신의 영성이 어린 축복의 땅이요, 낙토인 것이다. 그 영험한 신모의 자애로움에 힘입어 이 땅의 봄을 심고 가꾸어야 할 것이다(정호완 글).
첫댓글 강에는 거북신의 말씀이 흘러,
새와 바람으로, 손짓해 부르는... 아름다운 봄날이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