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르신 예수님 (막 3:13-15)
산에 오르신 예수님입니다.
13 또 산에 오르사
주 예수님은 산에만 가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 때론 강에도 들판에도
- 때론 도성과 촌락에도
- 때론 회당과 성전에도
- 때론 우물가와 환자의 집에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는 어디든지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곳에 오신 주님이신데
어딘들 못 가시겠습니까?
지금도 우리 주님의 복음은 세상 어디든지 갑니다.
영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시는 주님입니다.
주님은 나 한 사람을 위해 오시고 또 오시는 주님입니다.
구유와 십자가와 무덤에까지 오신 주님입니다.
나의 전 인격과 전방향의 삶과 전 일생에 오신 주님입니다.
우리의 예배와 기도와 사역과 섬김에 오시는 주님입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 말씀과 성령으로 오신 주님을 환영하고 의지합니다.
산에 오르신 주님은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들을 부르셨고 나아왔습니다..
13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사람이 예수님께 나옴’은 주님의 원하심입니다.
주님의 원하시지 않으면 그 누구도 주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원하심으로 인생이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우리는 내 힘이 아닌 주님이 원하셔서 주님 앞에 나갑니다.
어떤 이들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주님께로 나옵니다.
어떤 이들은 유년 시절에, 청소년 시기에 나옵니다.
어떤 심령은 청장년, 노년에 주님께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원하심으로 주님께 나왔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열심히 풍미하다가 주님께 나아왔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원하셔서 내가 주님께 나간 것입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세상을 풍미할 수 있는데..
그 누구보다도 세상을 누리며 살 수 있는데..
그 누구보다도 육으로 살 수 있었는데..
주님이 원하셔서 주님 앞에 나온 우리입니다.
?? 이 부분이 억울하세요?
주님이 나를 원하셨고 부르셨다는 것이 큰 축복입니다.
세상 말로 말하자면 천만 다행입니다.
주님이 나를 원하지도, 부르시지도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끔찍합니다.
주님이 나를 원하셔서 부르셨기에 주님께로 갑니다.
원하시고 나를 부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산에 오르신 주님은
주님은 열둘을 세우셨습니다.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열하나가 아니고 열둘입니다.
열 셋이 아니고 열둘입니다.
왜 열둘일까요?
1) ‘구약 성경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구약 열두 지파, 열두 두령
성전에 열두 덩이 떡
제사장의 흉배와 견장에 열두 보석
열두 정탐꾼
솔로몬 성전 봉헌식에 열두 마리 소를 드림
요셉도 열두 살에 애굽으로, 다윗도 열두 살에 골리앗을..
2) ‘열둘로 일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열두 해 혈루증의 여인을 고치심
열두 살 아이를 살리심
열두 바구니
예수님도 열두 살에 성전에서, 성경으로 토론
천국의 열두 진주문, 열두 보석, 열두가지 열매
3) 우리로 ‘모든 시간에 온전하게 하기 위해’입니다.
- 하루 낮 열두 시간을 주님과 함께
- 하루 밤 열두 시간을 주님과 함께
- 일 년 열두 달을 주님의 뜻 이루며
그 열둘의 명단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름들입니다.
16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이름을 기록한 이유는?
하나님은 왜 그 열두 이름들을 기록하게 하셨을까?
- 2천 년 전의 사람들 이름인데
- 발음하기도 어려운데..
열들의 이름을 성경에 기록하신 이유는?
= ‘생명의 사람들이기에’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사 나온 사람들은 다 생명책에 기록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에 세워졌다는 것은 내 이름을 기록하심입니다.
명단에 없으면 낭패입니다.
“주님 저예요. 저 아시죠”
“가만.. 어디보자.. 명단에 없는데?”
“왜 제 이름이 없을까요?”
“자세히 살펴 보세요”
“저 가끔 주님께 나갔는데요?”
“저는 선지자 노릇했는데요?”
“아무리 봐도 이름이 없어” 하면 큰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매여 산다는 것은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
우리가 주님 뜻대로 살기로 다짐하고 나아감은 “
우리가 어떤 부분을 포기하고 주님을 선택? “
내 이름을 아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 이름 아시죠
주님은 왜 사람들을 부르실까요?
- 사람들이 세상 살기 얼마나 바쁩니까?
- 각자 할 일이 있고, 각자 길이 다 있는데
- 이루고 싶은 꿈도 있는데
- 주님은 왜 사람들을 부르실까요?
주님은 왜 나를 부르셨을까요?
- 나 그냥 세상 잘 사는데
- 나에게도 하고 싶은 일도 있는데
- 나 세상을 마음껏 누리고 즐기고 살려 했는데..
주님은 왜 나를 부르실까요?
주님은 왜 우리를 부르실까요?
1. 자기와 함께 있게 하려고
14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주님은 이 땅에서 함께할 이들을 부르셨습니다.
- 함께 먹고, 자고, 시간을 보내고, 함께 사역할 이들을 부르셨습니다.
주님이 나를 부르신 이유는 주님께 함께하기 원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하셔야합니다.
주님의 사람 3종류
주님이 짝 사랑하는 사람, 주님만 애닳은
주님과 별거, 멀어진
주님과 함께, 동고동락
우리가 늘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왜 우리를 부르실까요?
2. 복음의 일로 보내시려고
14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주님이 열두 제자를 부르신 이유는? 복음 전파입니다.
세상 어떤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기관은 없습니다.
세상 어떤 곳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정확하게 말한 곳은 없습니다.
- 학교에서도
- 회사에서도
- 병원에서도
- 정부에서도
-TV나 라디오 평성 프로그램에서도
오직 주님이 부르신 사람들만이 복음을 압니다.
오직 주님이 보내신 사람들만이 복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만이 복음을 알고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주님~ 우리로 복음으로 특화되게 하소서~~
주님은 왜 우리를 부르실까요?
3. 하나님 나라의 권능을 가지게 하시려고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주님은 열둘을 부르셨던 이유는
- 주님의 권능을 가지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 어둠의 세력도 내쫓는 권능을 가지게 하려 하심입니다.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어둠의 세력에 눌려 살기 쉬운 인생이
어둠의 세력을 내쫓는 권능을 가지게 하려 하심입니다.
제자들은 부르시는 주님께로 갈 때 그런 권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실재 제자들은 이후 가는 곳마다 어둠의 세력을 내 쫓았습니다.
만나지는 사람을 어둠에서 건져 내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 우리로 주님의 권능을 가지게 하여 하심입니다.
- 우리도 주님처럼 어둠의 세역을 내쫓는 권능을 가지게 하려~~
이 일은 우리를 신나게 합니다.
평생 어둠의 영에 끌려다니고 휘들렸던 인생인데
주님처럼 어둠의 영을 내쫓는 권능을 주신다니요~~
우리가 부르신 주 예수님께 갈 때 그런 권능을 받아 가지게 됩니다.
나를 부르신 주 예수님께로 갈 때
- 우리가 기도할 때 이루어지고
- 우리가 가르칠 때 열매 맺고
우리가 말씀을 선포할 때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어둠의 영과 악한 것이 떠나고 자유함과 풍성한 복임 임합니다.
예수 믿음이 오기 전에는 특별한 사람에게 주어졌었습니다.
예수 믿음이 오기 전에는 특별한 사람만 권능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예수 믿음은 ‘믿는 모두에게’입니다.
여기 여러분에게도입니다.
우리가 부르신 주 예수님의 사람일 때 주님의 권능을 주십니다.
우리 각자가 어둠을 물리치고 생명과 풍성의 복으로 갈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권능을 행하여 가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어둠을 주님 영광으로 밝힙시다.
이 땅의 모든 악을 주의 이름으로 내쫓고 십자가의 깃발을 꽂읍시다.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내 주의 보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