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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산에서 길을 잃다
2011.09.18
천문산은
하늘에 오르고픈 사람과
대지로 내려오고픈 신들이 만나는 곳
신은 하늘 정원
가장 깊은 속살을 베어
운무로 곱게 감싸 가져왔고
인간은
허공에 제 뼈를 박고
절벽에 핏줄을 풀어
다리를 놓았다
천문산에서는
시간도 길을 잃는다
우주의 시간이 내려와
지상의 시간을 부질없게 한다
안개꽃 화관 쓴 노인도
수백년 굵어 온 소나무도
수수만년 깎인 바위도
천문산에서는 그저 한 순간
천문산에서는
공간도 길을 잃는다
콧대 높은 봉우리도
봉우리에 앉은 부처도
부처를 굽어보는고고한 하늘도
그저 미아가 될 뿐
천문산에서는
기억도 길을 잃는다
목에 걸린 가시같은 슬픔도
소화불량에 걸린 욕망도
뭉개구름같은 설레임도
안개에 묻힌다
천문산에서는
하늘도 땅도 나무도 사람도
언어도 기억도
모두 천문산이 되고
마침내 천문산도
천문산에서 길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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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도단(言語道斷)!
너무도 엄청나고 기가 막혀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를 가리키는 사자성어입니다.
얼마나 놀라우면 언어의 길이 끊어질까요. 말문이 막힐까요.
일반적으로는 어떤 이가 보통 사람의 상식과 이성으로 납득할 수 없는 억지 주장을 펴거나 그런
현상이 일어났을 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인간의 반이성적 광기가 어디까지 치달을 수 있는가를 보여준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이나,
군국주의 일본의 난징 대학살 등이 그런 경우일까요.
인간의 행위 뿐 아니라 대자연이 일으키는 공포, 경이, 속수무책의 폭력 앞에서도
우리의 말 길은 끊어지고 맙니다.
올 봄 일본의 동북부 지방을 덮쳤던 거대한 쓰나미나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
미국 남부 평원의 집채를 감아 올렸던 허리케인의 위력 앞에 우리는 할 말을 잊고 맙니다.
그러나 대 자연이 펼쳐 보이는 아름다운 풍광 앞에서도 우리의 말 길은 끊어집니다.
북극 하늘을 영롱하게 밝히는 오로라, 하늘도 달도 산도 온통 은백색으로 뒤덮는
설악산의 설경, 푸른 물을 순식간에 붉게 달궈놓고 박차 오르는 동해 아침의 태양.....
지극히 제한된 인간의 사유와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 없는 대자연의 파노라마 앞에서
우리는 그저 숨이 멎고 탄식합니다.
지난 주말 나는 다시 언어도단의 황홀경 속에 있었습니다.
장가계(張家界) 삼림공원에서였습니다.
중국의 남서부에 있는 곡창지대 호남성(湖南省)의 수도 장사(長沙)에 위치한 신들의 숨은 정원에서
나는 그만 길을 잃고 말을 잃고 사유의 끈을 놓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장가계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앞다퉈 찾는 천하절승의 산으로 중국에서는 1982년
최초로 국가 삼림공원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으로 등재된 곳이기도 하구요.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이 불로장생의 허망한 꿈을 꾸다 사망한 뒤, 유방의 한나라와
항우의 초나라가 패권을 놓고 격돌합니다.
호남성은 바로 산 봉우리도 뽑아버린다는 맹장 항우의 본거지였습니다.
근대에는 중국대륙을 식민의 치욕에서 벗어나게 하고 사회주의로 통일한 모택동과 유소기, 호요방,
주룽지 같은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남북한을 합친 것만한 광활한 평야지대에 6천5백만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으니
그 자체가 하나의 나라에 다름없습니다.
이 호남성의 성도(省都) 장사에 자리한 장가계는 지상의 낙원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신들이 노니는 하늘 정원의 한 귀퉁이였습니다.
계림과 구체구, 황산과 같은 천하 명승지가 중국에는 널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곳이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가장 빼어난 곳이라면, 장가계는 신이 살고 있는 천상에서
가장 빼어난 곳이라는 중국인들의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무려 3천2백개가 넘는 거대한 봉우리들이 100미터에서 400미터에 이르기까지 우뚝 솟은
이 장엄한 신들의 정원 앞에서 나는 그저 한 점 티끌이었습니다.
3억8천만년 전 바다 밑이었다는 장가계의 바위들은 지상으로 솟아 오른 후 수억년 동안
비바람에 깎이고 깎여 저마다 기기묘묘한 자태로 사바세계를 굽어보고 있었습니다.
석회암과 규암 특유의 성질 때문에, 화강암 기둥으로 돼 있는 황산(黃山)에 비해서도
더욱 섬세하고 오묘한 세월의 주름이 잡혀 있었습니다.
그 주름을 비집고 뿌리를 박은 소나무와 버드나무 느티나무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어우러져 웅장하면서도 섬세하고, 강인하면서도 싱싱한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어떤 나무는 뿌리를 바위에 박고 물구나무 선 채 거꾸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와 베르니니가 대리석으로 아무리 섬세한 조각을 해 낸다 해도
장가계에 왔더라면 조각칼을 꺾어버리지 않았을까요?
마치 붓대를 거꾸로 꼽아 놓은 것 같은 어필봉(御筆峰), 약초 바랑을 짊어진 노인의 모습을 닮은
노인봉, 다정한 세자매봉, 신들에게 꽃을 바치는 모습의 천녀헌화봉, 너무 아름다와 보는 이들이
넋을 빼앗기고 만다는 미혼대(迷昏臺).....
자웅을 가릴 수 없는 기기묘묘한 봉우리들이 펼치는 이 숨막히는 경연장에서
나는 그저 시험지를 받아들고 한 문제도 맞히지 못하는 낙제생이었습니다.
플라톤은 자연이 진리와 미의 이데아를 모사(模寫)한 것이고, 예술가들의 작품은 다시 이 자연을
모방한 것이라는 미메시스(mimesis) 이론을 폈습니다.
그러나 이런 플라톤의 주장도 장가계에서는 수정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장가계의 풍광은 미의 이데아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미의 이데아 그 자체였습니다.
신들이 꿈꾸는 절대 아름다움의 이데아가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장가계였을 것입니다.
천문산(天門山)과 천자산(天子山) 황석채(黃石寨)와 원가계(袁家界), 금편계곡과 삭계욕.....
사방 100평방 킬로미터가 넘는 무릉산맥에 끝없이 펼쳐진 이 거대한 봉우리들의 판테온 앞에
그만 나는 언어를 잃고 사유도 잃고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중국의 시성(詩聖) 이태백이 산중문답(山中問答)에서 묘사한 무릉도원은,
복숭아 꽃이 아득히 흘러가는 (桃花流水杳然去)
사람이 살지 않는 신천지 (別有天地非人間)였습니다.
내 눈에 장가계는 사람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신천지 (別有天地非思惟)인 듯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도 언어도 다 끊어져버린 황홀경을 이번 여행에서 다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겁의 세월에 걸쳐 신들이 빚어놓은 이 천상의 정원을 한번에 다 보려는 것은
욕심이었을테지요.
장가계를 여행한 사흘 내내 짙은 안개와 흩뿌리는 빗방울로 애를 태웠습니다.
안개는 모든 것을 삼켜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길다는 7.2킬로미터의 케이블 카를 타고 천문산을 오를 때도,
가파른 999계단을 올라 마침내 하늘에 이르는 입구라는 천자산 천문동(天門洞)을 오를 때도,
안개는 봉우리를 치맛자락에 감싸고 도무지 내놓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한번씩 바람이 몰려오면 천자산은 못이기는 척 그 아찔한 몸매를 슬쩍 보여주고는
이내 안개 속으로 사라지곤 했습니다.
콧대높은 봉우리도 푸른 하늘도 모두 삼켜버리는 안개,
1960년대 우리 소설의 새 지평을 열었던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霧津紀行)' 에서
안개를 묘사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안개는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3천8백개의 거대한 봉우리들을 포위했고,
마침내 천문산과 천자산, 황석채 모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유배를 간 듯' 했습니다.
'안개는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뚜렷한 실체로 존재했고 사람들로부터
봉우리들을 떼어' 놓았습니다.
안개가 유배시킨 것은 봉우리와 나무뿐이 아니었습니다.
안개는 지상의 시간들, 이를테면 어제와 10년 전 백년 전과 수만년 전과 같은
시간들의 차이를 모두 무력화시켰습니다.
수억년이라는 우주의 시간 앞에서 인간의 머릿 속에 있는 시간 개념은 그저 부질 없는
것이었습니다.
안개는 세상 아름답고 빛나는 것들, 돈과 명예와 권력과 힘과 미모..... 이런 것들도
모두 허망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내 호주머니에 있는 지갑 속의 돈과 주민등록증과 사원신분증과 한국에 있는 집문서와
써 놓은 시들과 에세이들.....
모두가 블랙홀 같은 안개에 빨려들어가고 나는 그저 안개 한 알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니, 시간과 공간, 세속의 빛나는 것들과 함께 기억마저도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나를 눈물짓게 했던 일들과 기뻤던 순간들, 분노와 연민과 안타까움, 더 가져 보겠다는
욕망과 좌절까지도 모두 사라지고 나는 그저 장가계에 뒹구는 돌맹이이거나
바람 한 점이었습니다.
장가계에서 여행에 들떠 있던 나를 숙연하게 한 것은 또 있었습니다.
깎아지른 봉우리와 봉우리를 연결하는 다리였습니다.
귀곡잔도(鬼谷棧道)라 불리는 이 다리는 사람이 일일이 천길 낭떠러지에
철심을 박고 하나 하나 놓은 다리였습니다.
내려다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나는 곳에 다리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시멘트와 철근에 버무려졌을지요?
신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인 듯 했습니다.
귀곡잔도의 나무와 난간에는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붉은 천이 온통 걸려있었습니다.
히말라야와 티벳 고원에 나부끼는 룽다의 모습이 떠 올랐습니다.
함께 가신 중리 하상호 선생님께서도 우리의 행운을 빌며 멋진 글을 써 주셨습니다.
여행을 흔히 나를 찾아 떠나는 내 안으로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번 장가계 여행은 나를 잃어버리는 여행이었습니다.
내가 누구인가 묻기도 전에 나를 잃어버렸고 추억도 잃어버렸습니다.
부모님의 손을 놓친 공원의 미아(迷兒)가 된 여행이었습니다.
안개의 집요한 훼방으로 하늘 정원을 다 보지 못했지만 안개 덕분에
너무 무거운 내 안의 짐을 다 내려놓고 바람처럼 가벼워질 수 있었습니다.
함께 동행한 어울사랑의 이원필 형, 문보상 형, 그리고 서예가 중리 하상호
선생님께서도 여행 내내 장가계가 뿜어내는 천상의 향기에 넋을 빼앗긴 듯 했습니다.
하상호 선생님은 장쾌한 봉우리를 보실 때마다 영감이 떠오르시는 듯 무언가 많이
메모를 하셨습니다.
장가계 봉우리들이 뿜어내는 천상의 기운이 선생님의 손 끝에서
화선지로 뿜어져 나올 것을 기대하니 벌써 가슴이 설렙니다.
이원필 형께서는 장가계가 품은 아름다운 호수 보봉호(寶峰湖) 선상에서
이병욱 선생님이 작곡하시고 자신이 가사를 쓴 '능소화'를 멋지게 부르기도 했습니다.
어울림의 노래가 장가계 협곡에 메아리치는 순간이었습니다.
함께 한 문보상 형도 가는 곳마다 달디 단 망고와 포도, 군밤과 땅콩, 신라면까지 바리바리
챙겨주셔서 눈과 귀와 함께 입도 호사를 누렸습니다.
우리는 내년 천상의 정원이 붉은 단풍으로 물들 때 다시 오자 다짐했습니다.
그때는 신들의 정원 구석구석을 쇳덩어리의 힘을 빌지 않고 두 발과 두 팔로 걸으면서
마음껏 기기묘묘한 기암괴석과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그 불가사의한 주름을 어루만져보고 싶습니다.
때로는 바위 품에 기대어 한 숨 단잠을 자기도 하고, 금편 계곡 시린 물에 풍덩 빠져 보기도 하고,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겨보기도 하고, 술 한잔 기울이면서 시도 쓰고 노래도 부르고 싶습니다.
생각만으로 가슴 설레오는 재회의 날에 이병욱 교수님과 보다 많은 어울가족이 함께 하기를
기대합니다.
장가계는 내년에 우리가 다시 찾는다면 안개를 물리고 눈부신 자태, 빛나는 자태를
모두 드러내 줄 것이 틀림없습니다.
올 가을은 내내 장가계 생각으로 가슴앓이를 할 것 같습니다.
- 여의도에서 goforest 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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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장가계를 저도 다녀온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멋진 기행문 , 하지만 안타깝게 안개의 훼방이 심했나봅니다, 그래도 그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갑니다, 내년에는 꼭 함께하고 싶네요, 건강히 잘 다녀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황산 가시는 줄 알았더니 장가계 갔다오셨군요. 장가계는 저도 꼭 가보고 싶은 곳인데...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산행이나 트레킹도 할 수 있나요?
물론이지요~ 내년에는 어울가족 많은 분들과 함께 트레킹 위주로 프로그램을 짜서 가려고 합니다.
그새..다녀오셨네요..
즐거운 여행을 다녀 오셨네요...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에 함께 다녀온 느낌이 듭니다.
네년에 함께할수있는 시간을 만들어 봐야 겠네요. 감사 합니다
예, 내년에 꼭 트레킹 프로그램 만들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