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과 오토바이

[박순덕]

생일 과 오토바이


박순덕

나의 어린 시절 생일 잔치는 명절 다음으로 성대했고 그래서 늘 기다려지는 행사였다. 식구들이 모두 모여 정성껏 차려 놓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담소도 나누었다. 식사가 마무리 될 즈음 어김없이 케이크에 초를 꽂고 생일 축하 노래도 불렀다. 기념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도 빠지지 않았다. 마지막엔 선물 증정이 있었고 박수와 함께 그날의 행사가 마무리된다.
그 전통이 결혼 후에도 이어져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그 범위가 좀 더 커졌다. 유치원 친구들, 학교 친구들, 동네 친구들, 학원 친구들, 일주일 전부터 초대장 만드느라 집안이 떠들썩했다. 초대할 아이와 초대하고 싶지 않은 아이들이 구분되는 아주 중요한 시간이다. 그제서야 엄마인 나는 몇 명 상을 차려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음식의 종류도 아이들이 좋아 할 만한 것들로 준비했다. 치킨, 떡볶이, 돈가스, 피자 등이다. 바뀌지 않은 것은 사진 촬영, 선물 교환과 생일 케이크와 축하 노래다. 그리고는 우르르 놀이터로 몰려나가 내가 부를 때까지 놀다 들어온다.
문화가 전혀 다른 시댁은 그저 서로 안부 전화만하고 지났다. 특히 기억 나는 이벤트가 없다. 생일을 그냥 지나는게 왠지 어색했다. 다른 사람들 생일 풍경이 새삼 궁금하다.

나의 육순 생일 때의 일이 떠오른다. 여느 때와 같이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나니 애들이 나를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내려가 보니 아파트 입구에 빨갛고 커다란 리본을 달고 있는 스쿠터 한 대가 떡 하니 서 있었다. “엄마, 생일 선물이야. 생일 축하해”. 내가 꿈꾸던,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 아니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지? 생각해 보니 얼마 전 젊은 여성 오토바이 라이더들의 일상에 대한 TV 프로그램을 딸과 같이 시청한 적이 있다. 그때 처음 예기했던 것 같다. ‘너무 멋지다. 나도 어려서 오토바이도 타고 다녔고 지금도 타고 싶다’. 그랬더니 딸이 “지금도?” 하고 눈이 동그래진다. ‘응, 지금도 타고 싶어.’ 했다. ‘엄마 나랑 같이 오토바이로 유라시아대륙횡단투어 함 할래?” 의외의 제안에 ‘이 나이에? 했더니 “ 왜 못해?” 그때 나의 예기를 귀담아 들었었구나. 고맙게도 바이크에 대한 나의 꿈을 이루어 주다니. 날아갈 듯 기뻤다.
얼른 시운전을 해보라는 재촉에 작동법을 간단히 배우고 한가한 동네 쪽으로 한 바퀴를 돌았다. 이게 얼마만 인가. 결혼 전에 타고 안탔으니 족히 40년이 넘는 셈이다. 헬멧을 썼는데도 온몸에 와 닿는 바람이 참 상쾌하고 좋았다. 스쿠터가 좀 높고 무거웠지만 곧 익숙해 질 것 같았다. 유연하고 부드럽게 타기 위해 며칠을 더 연습했다. 자, 이제 좀 더 먼 곳으로 나가 보기로 마음 먹었다. 이동 차량이 적은 일요일에 뻥 뚫린 도로로 나갔다. 걱정이 됐는지 아들이 차를 앞에서 몰고 뒤를 따라 오라고 했다. 긴장도 덜 되고 에스코트 받는 느낌도 좋았다. 라이딩은 해 볼만 했다. 다음날 바로 혼자 스쿠터를 타고 명동까지 나갔다. 역사적인 날이다. 왕복 40~50km 정도 될 듯 하다. 살짝 긴장되긴 했어도 잘 해냈다.
다른 지역을 여기저기 돌아 다녔다. 혼자서. 헬멧을 착용했으니 60노인이라 생각 못했을 것이다. 스쿠터를 주차하고 헬멧을 벗으니 어떤 남자 어르신이 엄지 척을 해 보이셨다. 더군다나 여자라서 더 놀라 셨단다. 자신은 용기도 안 나고 식구들이 반대해서 이루지 못한 꿈이라고. 부러운 표정과 함께 격려의 말씀도 해 주셨다. 나도 사실은 남편이 불안해 할 것 같아 비밀로 했다. 위험하다고 자전거도 못 타게 하는 사람이다. 지구상의 모든 불안을 다 안고 사는 사람 같다. 까무라칠까 그의 안위를 위해 말을 안 했다. 아이들도 그런 아빠를 너무 잘 아니까 같이 비밀로 해주었다.
몇 년 후면 칠순인 이번 생일에 또 하나의 이벤트가 있었다. 아들이 나에게 물었다. ‘엄마 요번 생일에 해외 여행 갈래 아니면 새로운 바이크 사줄까?’ 얘가 또 내 마음을 읽었구나. 염치도 없이 마치 기다렸다는듯 ”‘바이크” 하고 외쳤다. 너무 빠른 대답에 둘 다 깜짝 놀랐다. ‘알았어’ 하더니 자기 여자친구와 내기를 했단다. 여친은 여행 자기는 바이크를 선택할 것이라고. 역시 내 아들.
사실 지난번 스쿠터는 나를 100% 만족시키지 못했다. 예쁘고 장점도 많았지만 높고 무거우며 스피드도 잘 나질 않았다. 몇 번 타보고 바로 느꼈으나 한두 푼하는 물건도 아니고 막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마 그래서 라이더들이 용도별로 몇 대씩 보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바이크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기어가 있어서 당기는 맛이 있다. 40여 년 전 자동차도 오토대신 스틱으로 구매한바 있다. 오토와 기어변속 라이딩은 그 느낌이 매우 다르다. 기어 변동하여 부르릉하고 앞으로 나가는 기분은 오토바이가 훨씬 더 짜릿하고 상쾌하다.
6년전 첫 스쿠터 탔을 때와 지금의 느낌은 매우 다르다. 오토바이 자체도 물론 다르지만 그 때 보다 나이도 더 들어서 모든게 그 때 같지 않다. 오토바이는 달리는 흉기가 될 수 있다. 요번에는 서두르지 말고 더 천천히 더 여유롭게 더 우아하게 타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다행히 아들이 퇴근 후 피곤 할 텐데 밤에 같이 라이딩 연수를 해준다. 동네를 벗어나 점점 멀리 돌아보기도 한다. 밤 까페에 가서 달콤한 차도 마시고 오토바이 상식, 장비, 에티켓, 유의 사항 및 안전 수칙등 매우 꼼꼼히 안내해 준다. 엄마 다치면 자기 책임이고 욕도 먹을 것 이란다. 이때 내가 애들 자동차 운전 연수했을 때가 오버랩 되면서 흐뭇해 진다. 고맙다 아들 조심해서 타고 너에게 책임 지울 일 안 만들게. 오토바이 입문에 테이프를 끊어준 딸 고맙다.
밤 카페를 나오면서 아들이 ‘엄마 다음 바이크는 더 큰거 어때?’ 내가 아이들 키울 때 이렇게 푸쉬했었나 반성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