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
박정숙
두 해전 남편의 정년퇴직에 맞추어 명예퇴직을 할 때 축하 꽃바구니 몇 개를 받았다. 리본마다 “꽃길만 걸으세요.”란 문구의 인사말을 보고 요즘 유행하는 인사말인가 보다 생각하며, “네~!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입니다. 무거운 짐 내려놓고 가볍게 날아다니며 좋은 길 꽃길만 걷겠습니다.”했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고, 인터넷으로 여행지를 검색하니 우리나라 명소가 거의 꽃밭이었다.
삼월 초, 첫 꽃길은 구례 산수유꽃밭과 광양 매화꽃밭으로 떠났다.
구례 산수유꽃밭은 첫눈에 멀리서 보면 노오란 안개가 펼쳐진 것처럼 보인다. 이런 노란 구례산수유 꽃밭은 아련한 꿈결 같은 옛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여 향수에 젖게 한다.
산수유 꽃은 가까이에서 보면 왕관 같기도 하고, 폭죽 같기도 하여 생일 축하 노래라도 부르고 싶어진다. 마을과 들판과 그리고 개울에도 산수유 꽃만 온통 피어 있다. 지리산 자락의 풍경과 산수유 꽃의 노란빛 색체가 조화롭다.
그 외에도 돌담에 낀 이끼가 초록 융단 같이 신비로웠으며, 겨우내 열매를 까서 씨앗을 쌓아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구례산수유꽃밭에서 1시간 정도 이동하면 광양매화마을 만날 수 있다.
광양 매화꽃밭은 이 언덕너머에서 저 언덕너머로 펼쳐지는 하얀 꽃들의 향연에 마치 구름위의 천상에 온 기분이 든다. 천상의 향기 같은 꽃 향을 맡으며 그곳을 거닐고 있는 나는 천사?
어느 순간 꽃밭 속 정자와 수많은 장독대가 여기가 천상이 아닌 현실임을 일깨워 준다.
봄꽃은 하나가 피면 너도나도 경쟁하여 앞 다투어 피니, 모든 꽃을 보고 싶은 나는 덩달아 바빠진다.
삼월 말, 우리 동네 송해공원 두류공원 벚꽃도 좋지만, 하동 쌍계사 십리벚꽃은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명소다. 쌍계사 십리벚꽃 길은 테크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아름드리 복스러운 벚꽃을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감격을 누릴 수 있어 좋았다.
사월 초, 해마다 경산에서 청도로 복사꽃이 좋아 드라이브를 했었는데, 올해는 충북 음성 감곡에 있는 딸이 그 곳 복사꽃이 아름답다고 보러오라는 초청에 두 번이나 눈 호강을 즐겼다.
나는 매일 유천에서 화원 사문진 나루터까지 걷기 운동을 나간다.
사월 중순, 유천과 낙동 강변에는 자연적으로 자란 유채꽃이 노란 꽃길을 만들어 준다.
노란 유채꽃이 물에 투영되어 물결과 함께 일렁이면 마치 오로라를 보는 듯하다.
여동생이 대구시지에 살아서 안심습지가 놀이터라 부러워했는데, 우리 동네에는 그 보다 더 좋은 곳이 있는 줄 퇴직하고서야 알았다. 이곳은 유천과 대천천, 금호강, 세 지류가 낙동강에 합류되어 하나 되는 곳이다. 개나리, 벚꽃, 유채꽃, 찔레꽃, 아카시아꽃, 모감주나무꽃, 코스모스꽃, 갈대와 억새꽃 등 각 종 꽃들이 계절마다 아름다운 낙원을 만들어 준다. 해질녘에는 서쪽 하늘에 붉게 물드는 노을이 너무 아름다운 곳이다.
지인들과 함께 현풍 비슬산 참꽃 꽃구경을 왔다.
축제 기간에는 복잡하여 조금 덜 피어도 조용할 때 여유롭게 즐기자고 조금 이르게 날 잡아 올라왔다. 지금은 산 정상인 대견사 절 까지 버스가 운행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올 수 있다. 30만평에 달하는 정상분지에 펼쳐진 참꽃 군락지, 분홍색 꽃밭을 만나는 순간 감탄과 탄성이 절로 터진다. “봄 처녀 제 오시 네~” 노래 가사처럼 봄 처녀가 꽃밭을 막 걸어 다니는 것 같다. 천상화원이 따로 없다. 활짝 피어 만개한 모습도 좋지만 봉오리 꽃은 처녀 같고 갓 핀 꽃은 새색시 같이 예쁘다. 때를 잘 맞추어왔다 자찬하며, 보고 또 보아도 내려가기 싫다.
사월 말, 서산에 한우 목장 초록 길 따라 달리다보면 드문드문 울타리 벚꽃나무가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개심사, 문수사 겹 벚꽃은 화사한 분홍 나무 장미 같고, 유기방가옥 수선화는 가옥을 둘러싸고 황금물결을 이룬다. “나를 잊지 마세요.”란 꽃말로 해마다 잊지 말고 찾아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사랑의 모금활동으로 가수의 “봄,봄,봄 봄이왔어요.” 라이브 음악이 한껏 흥을 돋우워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경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안면도 튤립축제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인공 꽃밭이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여러 가지 색깔의 튤립 꽃으로, 문양을 넣어 만든 화려한 대형 튤립 꽃 카펫이 경이롭다. 사람의 손이 위대함을 새삼 느껴진다. 우리나라 3대 낙조 장소 1위로 유명한, 꽃지 해변의 붉은 노을과 함께하니 정말 로맨틱하다.
오월 초, 합천 황매산 철쭉은 정상까지 자차로 갈 수 있어 좋다. 차에서 내리면 바로 꽃밭이 펼쳐진다. 넓은 주차장과 캠핑장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 밤하늘을 수놓는 새벽별 투어와, 아침 일찍 합천호에서 올라오는 물안개와 산안개가 섞이는 장관과, 아침 햇살에 안개가 걷히면서 열리는 선명한 색조의 세상이 경이로워 캠핑 족들에게 인기 짱이다. 능선이 온통 붉은오름으로 옷을 갈아입으면 하늘과 꽃이 만나 환상적인 하늘 정원이 된다. 연례행사로 해마다 가지만 일 년을 기다려 보는 꽃밭이라 늘 설레 인다. 욕심 많은 나는 이 모든 것을 다 보려고, 실시간 개화현황을 검색하여 절정 시기를 맞추어 남편을 졸라 새벽에 길을 나섰다. 주차난과 교통채증 없이, 새벽별과 안개와 안개가 걷히며 세상이 열리는 광경과 주인공인 철쭉꽃 정원을 다 볼 수 있어 좋았다.
의성은 내가 나고 자란 곳이다.
우리 집은 사과 농사를 지었다. 내 고향 꽃밭은 “동구 밖 과수원길” 하얀 사과 꽃밭이다. 의성에서 청송방향 국도는 하얀 사과 꽃밭이 끝없이 펼쳐져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언덕에 올라 가지런히 정렬된 하얀 꽃밭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워 진다. 의성 금성 조문국 사적지와 탑리 쪽으로는 작약 농사를 많이 짓는다. 국도로 차를 타고 달리다보면, 크고 마음씨 좋은 언니 같은, 오월의 여왕다운 화려한 선물 작약꽃밭들을 만날 수 있다. 옆집 아저씨께 작약 꽃 한 다발을 얻어 교실에 꽂아두고, 수업 들어오는 선생님들께 칭찬 세례를 받던 소녀가 기억나 함박꽃 같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 때 그 분향이 코끝에 스친다. 화려한 함박꽃밭에 있으면 꽃을 닮아 함박웃음이나 마음이 환해진다.
유월 초, 고성에 있는 만화방초는 개인이 운영하는 수국꽃밭이다.
작은 꽃들이 모여 큰 꽃송이를 이루는 복스러운 큰 꽃들이 한 가득이다, 봄꽃과는 다르게 크고 화려하고 색깔도 다양하다. 그 중에서 하늘색과 파랑색 꽃은 흔히 볼 수 없는 꽃 색이라 더 눈길을 끈다.
칠월, 함안 아라연꽃은 무덤에서 발견된 700년 된 씨앗이 발화하여 현재의 꽃밭을 이루었다고 한다. 아라홍련은 다른 연꽃보다 날렵하고 가녀린, 한국 불교 화에서 보이는 모습이다. 하단은 흰색, 중간은 선홍색, 끝은 홍색, 삼단 색으로 우리가 흔히 보는 연꽃과는 다른 고운자태와 은은한 향기를 자랑한다, 700년 전 과거를 상상하며 시간 여행을 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팔월, 성주 성문 밖 숲 왕 버들 아래 보라보라 빛 맥문동 꽃이 그 신비를 자랑한다하여 왔다.
그늘에서도 어쩜 그리 신비롭게 피어 아름다움을 자랑하는지 사진작가들의 바쁜 손길이 멋있다.
구월 꽃무릇이 한창일 때, 우리나라 대표적인 꽃무릇 군락지로 영광 불갑사, 함평 용천사, 고창 선운사 중, 우리는 도깨비 촬영장소인 학원농장이 있는 고창 선운사를 택하여 갔다. 꽃무릇은 뿌리에 있는 독성 성분이 사찰을 장식하는 단청이나 탱화에 사용하면 좀이나 벌레가 꼬이지 않는다 하여, 산사 주변에 심으면서 군락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수선화과의 다년생 꽃으로 돌틈에서 나오는 마늘종과 닮았다고 해서 석산화라고도 하며, 꽃이 먼저 피어, 지고 나면 잎이 올라와 상사화라고도 하는, 불타오르는 듯한, 정열적인 붉은색의 꽃무릇을 보면 탱고 춤이 생각난다. 슬픈 꽃말과 다르게 붉은색은 유혹하며 흥분시킨다. 시간이 지나도 붉은 강열함은 오래 남았다.
구월 중순, 퇴직교사 모임에서 함양 상림공원 내에 산삼 항노화 엑스포에 갔다. 그 속에 울긋불긋 대단지 꽃밭이 조성되어 있어 축제관람 뿐만 아니라 가을꽃 나들이하기에 좋았다. 사진동호회에 활동 중인 선생님의 동행으로 멋진 사진도 남겼다. 엑스포 입장권으로 대봉산 모노레일이 30% 할인되어 우리나라 최장 길이의 모노레일도 타보는 보너스가 좋았다.
시월 초, 하동 북천 코스모스 축제는 아이들과 함께 현장학습으로 자주 왔던 곳인데, 시기가 되니 와 보고 싶어서 구경 갔다. 코로나로 축제가 취소되었는데도 실망 시키지 않고, 메밀과 백일홍 핑크 뮬리와 함께 바람에 한들거리며 반겨주어 고맙고 감사했다.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들도 많은 수가 무리를 지어 군락을 이루니 그 힘이 몇 배의 효과를 주었다.
얼마 후, 합천 소리길 입구에서 만난 코스모스 들판은 함안 아라 연꽃처럼 한꽃이 삼단 색으로 피어 지금까지 만난 코스모스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11월 초 우리 동네 대구수목원에서 개최되는 국화축제는 형형색색 꽃도 아름답지만 각 종 조형물 보는 재미도 있고, 향기가 좋아 축제 기간 동안은 매일 가서 머문다. 특히 분재 꽃들은 눈을 뗄 수가 없다. 사람의 기술력도 신기하고 오밀 조밀 조화롭게 꽃을 피운 식물이 기특해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정말 계절마다 꽃 따라 일 년 내내 꽃길만 걷게 되었고, 한해를 마무리 하며 회상해 보니 모든 날이 꽃길이었다. 아프고 힘든 일 겪지 말고, 기쁘고 좋은 일만 있으라고 앞날을 축복해 주신 그 인사말이 요즘 유행하는 유행어가 아닌, 뜻 깊은 인사임을 가슴으로 실감나게 느껴질 줄이야! 꽃을 만날 때마다, 꽃길을 걸을 때마다 모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이 샘솟는다.
어제는 대구수목원을 돌며 복수꽃, 산수유, 매화, 생강꽃, 목련꽃도 보고, 개나리와 구분이 안되는 만리화를 보며 숙제를 품기도 했다.
오늘은 유천 뚝으로 나갔다가 노오란 개나리 꽃길을 걸으며 어제 품은 만리화와 개나리 구분 숙제가 풀어졌다.
내일은 송해공원으로 가서 벚꽃을 볼 것이고,
모래는 함박산으로 가 진달래 꽃길을 걸을 것이다
이렇게 날마다 꽃길로 계획되어 있고, 앞으로 계속 만나게 될 꽃들에 가슴 설레인다.
우리나라 사계가 너무 감사하고, 각 지자체에서 자기 고장 자랑에 전국 방방곡곡 아름답게 가꾼 정성이 고맙다.
우리나라는 정말 금수강산이다.
나이 들며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내 삶의 순간순간을 꽃처럼 아름답게 가꾸고 싶은 욕망이 앞선다. 자연의 아름다운 꽃밭만 아닌, 마음에 꽃밭, 삶의 꽃밭을 잘 가꾸어, 퇴직 때 모두가 염원해 주신 뜻대로 인생을 꽃길로 만들어 "꽃길만 걸었어요." 하고 답해야겠다.
첫댓글 우리나라는 꽃이 아름답게 피는 삼천리 금수강산이 맞군요. 곳곳에 꽃구경 꽃소개 감사합니다. 계속 글을 쓰기 바랍니다.
구례 산수유 꽃 길에서 시작하여 광양 매화마을, 두류공원 벚꽃 길, 청도 복사꽃 길, 낙동강 변 유채 꽃 길 등. 여러 꽃길을 다녀 오셨군요. 대단 하십니다. 가는 곳 마다 아름다운 풍경과 경험 그리고 느낌 등을 소상히 그려내낸다면 더 실감나게 읽을 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처음 읽는글 인것 같습니다. 봄철 남도의 꽃들의 향연을 잘 표현하시어 읽기가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더욱 정진하시어 수필 작가로 등단하여 여러 작가 모임에도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