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이 출판되었을 때 이 책을 들고 남도 답사를 떠난 지가 어언 30년이 되었다.
당시 도갑사, 무위사, 미황사를 거치며 해남, 강진 일대를 돌았었는데 다시 도갑사, 무위사를 거치며 동백꽃 기행을 하게 되었다.
그때 그 책을 들고 다산초당을 올랐었는데 거기서 만난 다른 일행도 그 책을 들고 있었고 나중에 그 책에서 언급한 식당을 들렀을 때 그 일행을 다시 만난 기억이 새롭다.
그렇게 하여 한반도에 답사 열풍이 시작된 지 30년이 흘렀다.
남도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인상이 있다.
남도 민요, 남도 인심, 남도 밥상, 왠지 그 정형을 그려보기 쉽지 않지만 어딘가 모르게 깔려있는 편안함, 아늑함, 어디엔가 스며있는 한 같은 것이 느껴지면서도 그것이 체화되어 가볍지 않은 미소 속에 버무려져 있어서 거북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묘한 매력이 숨어있는 남도라는 단어.
또한 변방, 유배, 풍류라는 단어도 남도와 얽혀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매화와 벚꽃 사이 동백이 제철이련만 이번 답사길에 동백은 어쩐 일인지 그 붉은 아름다움을 연출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2주 전 거제도에서는 동백이 만발하여 동백나무 가지에도 땅위에도 넘쳐나는 동백으로 가슴속까지 붉게 물들었었는데 같은 한반도에서 이렇게까지 꽃터짐이 차이가 날 수 있을까.
거제도가 쿠로시오 난류의 영향을 받고 전남지방이 대륙성 한기의 영향을 받는다 손 치더라도 비슷한 위도라면 약간의 시차를 두고 응당 꽃봉오리를 터뜨려야 할진대 해걸이라고 이해하기에는 아쉬운 면이 있었고 도갑사, 무위사, 백운동 원림, 백련사, 장흥 묵촌마을, 보성 강골마을의 동백은 그 붉은 빛이 내 조급한 눈매를 채우지 못하여 동백꽃 사진은 장흥 묵촌마을의 동백으로 축소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제 아련한 그리움 같은 감성이 숨어있는 답사 일번지 남도로 떠나보자.
입력할 내용을 많이 생략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장이 길어지고 말았다.
1) 영암 도갑사
도갑사 일주문으로 향하는 길에는 수령을 다한 팽나무가 보호기둥에 기대어 노구를 누이고 있다.
도갑사는 가람 배치가 서향으로 되어있다.
신라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고 조선 세조 때 수미선사에 의해 966칸의 대가람으로 중창되었다.
사찰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해탈문은 조선 성종조에 건립하여 전란에 훼손되지 않아 국보 50호로 지정되어 있다. 해탈문은 단순한 구조이지만 계단과 원형을 유지하고 있고 주심포 구조가 조선 전기의 양식임을 말해주고 있다.해탈문(解脫門) 편액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라 한다.
대웅보전은 1977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2009년에 중창하였는데 소실 전에는단층, 중창 후에는 중층(2층)으로 바뀌었다. 중층으로 바뀐 데는 어떤 고증과정을 거쳤는지 알 수 없다.
대웅보전 남쪽에는 이 절을 중창한 세조조 수미왕사비각이 있는데 수미왕사의 활동과 내력을 기록한 탑비이다.
이와 별도로 대웅보전 뒤편 부도전 옆에는 이 절을 창건한 신라 도선국사와 중창한 조선 수미선사의 공적을 하나의 비에 새긴 517cm 높이의 비가 있다. 비각에는 도선국사비각이라 되어 있으며 도선국사의 비가 훼손되어 수미왕사비보다 20년 뒤인 효종 때인 1653년 18년에 걸쳐 건립되었으며 비에는 월출산도갑사도선국사수미대선사비명이라고 새겨져 있고 주로 도선국사에 대한 내용이 많으며 수미선사는 도갑사를 중창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도선국사와 수미선사의 내력이 하나의 비로 조성되는 드문 예가 되었다고 한다.
비각에는 도선국사비각이라 되어 있고 길안내 표지판에는 도선수미비각이라고 되어있어 명칭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
도선국사 비각 옆에는 부도전이 있는데 10여 개의 부도가 모셔져 있어 절의 연륜을 말해준다.
미륵전에는 고려시대 불상인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는데 커다란 광배가 몸체와 하나의 돌로 조각되어 있어서 마애불같은 느낌이 든다.
얼굴 표정의 섬세함이나 어깨에 걸친 가사의 조각에서 받는 느낌은 그리 크지 않다.
도갑사 입구에 있는 추상적인 형태의 팽나무 고사목
도갑사 입구 해탈문. 국보 50호
1977년 화재로 소실 전 도갑사 대웅보전
도갑사 수미왕사비각
도갑사 도선국사비각(도선국사수미대선사비명)
도갑사 부도전
도갑사 대형 돌식수통
2) 욍인박사 유적
고등학교 국사시간에 일본에 문물을 전해준 사람은 백제의 왕인박사와 아직기라고 배운 기억이 있다.
근년의 사료에 의하면 왕인박사는 마한사람으로 알려지는데 그는 영암 구림 마을 사람으로 이곳은 마한지역이라는 것이다.
한편 아직기는 백제사람으로 기록되는데 일본에서 시차를 두고 모셔간 두 사람이 별개의 나라 백성이었는지 명확하지 않은 것 같고 문물을 전해준 기록이 일본서기에 나와 있지만 우리 사료에는 없는 것 같아 진위여부는 의문으로 남는다.
왕인박사가 공부했다는 자연석굴인 책굴 옆에는 후대인에 의해 바위에 왕인석상이 새겨져 있다.
왕인박사가 일본에 전해주었다는 논어와 천자문은 아마도 닥종이를 썼을 터인데 왕인책굴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노란 닥나무꽃이 피어있다.
책굴 아래쪽에는 왕인박사가 공부하던 기운을 이어받아 공부하는 강학공간인 누각이 세위져 있다( 文山齋, 養士齋)
왕인석상
왕인 책굴
왕인석상 올라가는 길의 노란 닥나무꽃
3)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
고려시대에 건립된 백제 양식의 탑으로 모전탑의 모양새를 띠고 있는 조적식 석탑으로 부여의 정림사지 5층석탑과 비교된다.
2017. 4~2019. 12 해체 조립작업을 실시하였다.
월남사지는 금당지가 발견되고 부속 건물터가 확인되어 넓은 부지가 정비되어 있고 추후 주불전 등 복원이 예정되어 있다.
신라의 탑은 안정적인 균형미가 있는 반면 이 탑은 세장형(細長型)으로 하늘로 향하는 첨탑같은 분위기를 띠고 있다.
월출산 구정봉을 배경으로 들판에 홀로 서 있는 외로운 듯 편안한 듯 말이 없다.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처럼 월남사지 삼층석탑도 폐사지에 홀로 유적으로 남아 못 다한 이야기를 잉태하고 있는 것 같다.
한 쪽에는 진각국사비가 있다.
월출산 구정봉을 배경으로 한 월남사지 삼층석탑
월남사지 삼층석탑
월남사지 복원 예정 부지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4) 강진 백운동 원림
조선 중기 처사 이담로가 조성한 별서정원. 별서(別墅)의 서(墅)는 흙 위의 들이라는 제자를 보더라도 농막이라는 뜻인데 본가가 아닌 별도의 거처를 소박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자연과 인공이 잘 조화된 전통원림의 원형이 보존된 곳으로 담양 소쇄원, 보길도 세연정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으로 불린다.
취미선방의 마루에는 탁자에 찻잔이 놓여있고 유상곡수가 내려다 보인다.
정선대 누각 옆 이시헌의 묏등에는 산자고가 피어 있다.
원림을조성한 이담로의 묘는 별서 뒤편 언덕에 비석 없이 있는데 1년 전에 비하여 무덤에 둘레석이 설치되어 있다. 사람들이 찾아옴을 의식해서일까.
다산 정약용이 제자들과 함께 월출산을 산행하고 제자 이시헌의 조부가 살고 있던 백운동 원림에서 하루 거하면서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 12곳을 시로 쓰고 제자 초의선사로 하여금 앞뒷면에 백운동도와 다산초당도를 그리게 하여 20쪽의 백운첩을 만들어 백운동 동주 이덕휘에게 선물했다.
다산이 전서, 예서, 초서 등 다양한 필체로 8수, 초의선사가 3수, 제자 윤동이 1수, 서시와 발문을 합쳐 14수의 시가 포함된 화첩은 2001년에 존재가 확인되어 초의선사가 그린 백운동도는 별서의 복원에 큰 역할을 했다.
백운첩에 다산이 쓴 시 옥판봉에는 예전 월출산 정복에 실패했던 경험을 서술하고 있다.
(이제야 알겠네 예전 오를 때
거칠게 기운만 부려낸 줄을
산인은 산위로 오르지 않고
가만 앉아 마음이 고요하다네)
다산은 유배 중 찾아온 아들도 만나고 초당을지어 제자들도 가르치고 하는 등 비교적 자유로운 수준의 행동을 한 것으로 봐서 절도안치 에도 미치지 못하는 유배가 아니었을까.
역설적으로 유배생활이 아니었더라면 다산이 18년 동안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500권의 저술이 가능했겠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백운동 원림 입구 백운동 12경 안내판
이담로가 백운동 계곡에 새긴 백운동 글씨
백운동 원림에서 보이는 월출산 구정봉
백운동 별서 취미선방의 다탁과 유상곡수
정선대에서 바라본 백운동 별서
다산이 백운동 동주 이덕휘에게 선물한 백운첩
초의선사가 그린 백운동 12경 상세도
백운첩의 앞쪽에 붙였다.
초의선사가 그린 다산초당도. 백운첩의 뒤쪽에 붙였다.
백운동 원림 정선대 옆에 있는 다산의 제자였던 이시헌의 묏등에 핀 산자고
5) 강진 무위사(無爲寺)
우선 절 이름 무위사가 마음에 든다.
무위(無爲)라 함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이 아니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모든 행동에 걸림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그것이 깨달음의 세계이며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이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의 자유의 상태, 무애의 경지가 아닌가 한다.
신라 원효대사가 관음사로 창건해서 조선 명종 때 무위사로 바뀌었다.
극락보전은 세종대에 효령대군의 지원으로 건립되었는데 화마를 겪지 않고 살아남아 국보 13호로 지정되었다.
소박하고 단아한 자태로 45° 각도에서 바라보면 맞배지붕의 균형미가 안정감과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하며 단청이 없는 상태로 배흘림 기둥과 주심포로 구성되어 있다.
극락보전 안의 아미타여래삼존벽화도 국보 313호로 지정되어 있고 본존 아미타불과 관음보살, 지장보살이 자리하고 있으며 얼굴과 의상의 채색이 50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국보 13호.
45° 각도에서 보는 맞배지붕이 조화롭고 아름답다.
강진 무위사 단청 없는 처마, 배흘림기둥, 주심포
무위사 극락보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
국보 313호
무위사 경내에 핀 자목련 한 송이
6) 강진 금당마을 백련지와 강진만 갈대밭
조선 중기 원주 이씨 이남이 금당마을에 터를 잡을 때 풍수에 밝은 제종손 이의신이 집터 앞에 연못을 파면 집안과 가문이 번성할 거라는 말을 듣고 연못을 파고 홍련을 심었는데 과연 집안이 번성했다고 한다.19세기 말에 홍련은 백련으로 변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이 백련지에 해마다 백련이 핀다고 한다.
마을에 있는 원주 이씨의 종가는 지금은 비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저녁 나절에는 강진만 갈대밭의 데크길을 산책하다. 생태공원에는 철새와 갯벌 생태를 관찰할 수도 있는데 일몰을 볼 수 있는 수평선은 산에 막혀 있다.
갈대밭 건너 숙소 케이스테이관광호텔은 2021년 7월에 오픈하여 깔끔하고 깨끗하다.
강진 금당마을 백련지
강진 금당마을 빈 고택의 쓸쓸한 담장
강진만 갈대밭의저녁
7) 백련사
하룻밤을 푹 자고 아침에 백련사를 오른다. 접근로에 있는 천연기념물 동백림은 울창한데 역시 동백꽃은 피는 둥 마는 둥 하다. 떨어진 동백 열매 씨앗을 까보니 기름기가 느껴진다.
경내에는 크게 자란 배롱나무가 꽃이. 필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대웅보전의 문살은 연보라색이 가미되어 화려한 자태를 풍기고 있다.
대웅전에는 외벽면에 벽화가 그려져 있는 곳이 많은데 백련사 대웅전 오른쪽 벽화 중 한 곳에 눈길이 머문다.
달마대사에서 시작된 선불교가 당나라 시대 혜능선사에 의해 크게 발전하고 그는 남종선의 시조가 되었는데 그가 스승인 홍인선사를 찾아가서 부처가 되고 싶다고 하자 남방 출신은 부처가 될 수 없다는 말에 사람은 남북이 있을 수 있으나 불성에는 남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여 홍인선사에게 인정을 받은 이후로도 방아 찧는 일이나 시켰는데 하루는 홍인선사가 방아를 잘 찧나 가 보았더니 체구가 작아 몸무게가 가벼워 디딜방아질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혜능이 등에 돌을 메고 일하고 있음을 보고 홍인선사는 혜능을 키우고 후에 전법을 하게 되는 그림이다.
혜능선사는 조계산에서 선종을 키웠으며 한국불교도 이 선종을 받아들여조계종의 모태가 된다.
혜능은 문자를 몰랐었다고 하는데 문자도 모르면서 어떻게 불교를 공부할 수 있느냐는 핀잔에 달을 가리키는데 문자인 손가락보다 달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실천한다.
경허대선사의 제자인 수월선사도 문자를 모르는 머슴 출신이 아니던가.
진정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임을 밝히는 금언이다.
동백열매와 껍질을 벗기니 기름기가 느껴진다. 속에는 씨앗이 들어 있다
백련사 대웅보전의 화려한 색감의 문창살
중국 남종선의 시조 혜능선사가 돌을 등에 지고 디딜방아를 찧으며 수행하는 그림
8) 다산초당
백련사에서 오솔길을 따라 1km 남짓 걸으면 다산초당이 나온다.
다산은 유배생활 후반부 10년을 여기에서 생활하면서 목민심서 등의 저술을 하였다.
다산초당에서 내려오는 산길은 자연석 92 돌계단이 투박하게 놓여져 있고 소나무 뿌리가 길위로 튀어나와 거친 발걸음이지만 30년 전에 비하면 소나무 뿌리가 좀 줄어든 것도 같다.
초의선사가 그린 다산초당도에는 다산초당이 초가로 묘사되어 있으나 1958년 강진 다산유적보존회에서 다산 초당을 복원하면서 관리를 위해 기와지붕을 얹었다.
다산이 기거하던 다산동암과 후학들이 기거하던 다산서암 사이에 있는 다산초당에 전시되어 있는 다산의 초상화는 왠지 다산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 것 같다.
강진군에서 제작한 안경 쓴 다산과 닮은 모습을 그렸는데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다산은 유배 18년 동안 500권의 저술을 하고 후학을 가르치면서 유배라는 심리적으로 힘든 생활을 하였는데 그로 인한 그의 초상화는 최소한 살진 얼굴은 아닐진대 다산초당에 있는 그의 초상화는 다산의 다른 초상화와는 달리 다분히 살진 얼굴을 하고 있어 그의 이미지와 조화가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다산초당
다산초당에 있는 다산 초상화
왠지 부자연스럽다
9) 강진 순심이 할매 보리밥
먹거리를 별도의 장으로 쓰게 되는 이번 답사길.
주말에는 영업을 하지 않고 평일도 점심 식사 1시간 여만 하는 보리밥집.
월남전 파병 남편을 고엽제 후유증으로 일찍 사별하고 어린 아이 삼남매를 데리고 고향 강진으로 돌아와 시작한 보리밥집.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찾게 되고 30여년을 강진읍 시장통에서 사람들의 미각을 기쁘게 해주고 있다. 나물 위주의 27가지 정도의 반찬을 점심시간 영업만을 위해 매일 준비하려면 힘든 일임에 분명한데 주인 오가님 할머니는 목청이 살아있다.
정성이 깃든 부드럽고 깊은 맛은 어느호텔에서 찾을 수 있으랴.
쑥시락국은 보약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이가 들어도 예민한 미각을 유지할수 있음에 감사함을 니낄 수 있는 밥상에 하룻밤 더 자고 갈까?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할머니, 건강하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천사가 되어 주세요.
순심이 할매보리밥의 27가지 나물반찬
순심이 할매 오가님 할머니
10) 강진읍 영랑생가
영랑생가에 모란은 아직 피지 않았고 동백은 몇 송이만 붉은데 마당에는 복사꽃이 피었다.
작년 4윌중순에 왔을 때는 커다란 모란꽃이 비를 맞고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영랑 생가 마당에 핀 복사꽃
11) 장흥 묵촌마을 동백숲
동백꽃이 그나마 좀 피어 있고 땅위에 낙화도 흐드러져 몇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동백은 목질이 단단하여 절구공이, 다듬이, 회초리 등으로 쓰여 마을주변에 많이 심었던 품종이라 한다.
장흥 묵촌마을 동백숲의 동백꽃 낙화
12) 보성 강골마을 이진래 고택과 열화정(悅話亭)
이진래고택은 1835년 광주 이씨 이진만이 초가로 지었다가 후손이 기와로 개축하였으며 사랑채, 안채, 대문채, 중문채, 곳간채, 솟을대문, 사당, 연못 등 사대부 가옥구조를 잘 유지하고 있다.
좌우의 고택도 이진래 형제들이 분가하여 후손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 고택은 게스트 숙박도 한다고 하는데 평가가 좋은 것 같다.
여기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열화정에 이른다.
"ㄱ자형의 누마루 구조로 되어 있고 연못, 정윈에 심어진 벚, 목련, 석류, 대나무 등이 조화를 이루는 전통 조경을 보여주고 있다.
열화정은 위 이진래고택을 지었던 이진만이 1845년 후진 양성을 위해 지었는데 근년에는 영화 "천문", 드라마 "녹두꽃"의 촬영지가 됐다.
최근에는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정조가 덕임과의 과거를 회상하며 찾아온 장면으로 남아있다.
보성 강골마을 이진래고택 시랑채
보성 강골마을 이진래고택
보성 강골마을 이진래고택의 분가한 옆 고택
이진래고택의 장독대
이진래고택의 문간에 있는 부서진 여물통
이진래고택 마당의 명자나무꽃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열화정 장면
열화정 누마루를 받치는 나무기둥
세월 따라 틈이 생겼다.
기대했던 반큼의 동백꽃 만개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삶이 그렇듯 아쉬움은 남겨두는 양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다른 한 편 풍성한 문화재 답사로 보상 받고도 남은 여정이라며 자족하며 답사기를 접는다.
첫댓글
올려주신 글 덕분에
도갑사를 제 마음에 들여놓는 아침입니다.
도갑사의 해탈문이 국보 50호! 였군요.
해탈문에 관한 자료를 더 찾아보고,
석불과 광배(光背)가 하나의 돌로 된
미륵전의 석조여래좌상을
처음 뵙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한지를 유난히 좋아하는 저로서는
노랗게 피어난 닥나무꽃이
다른 여느 꽃보다 더 반갑게 느껴지네요.
조목조목 세세하게 올려주신 글과 사진!
감사히 보았습니다.🙏
답사했던 현장의 느낌을 기록하는 것도 새로운 공부가 되는 것 같습니다.
보물 같은 한반도 구석구석이 호기심 많은 사람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청했다가 취소한 여행길이라
문항님 글 읽고
사진 보고
혼자 느끼고~~~
장흥 묵촌마을 동백꽃 낙화가 웬지 우리들 인생사를 보여 주는것 같어
눈시울이 촉촉해집니다
문항님 덕분에 열공하고 갑니다
건강해야 여행다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답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여행길에서 뵙길 바랍니다
한반도 구석구석 숨어있는 문화의 보물을 느끼고 즐기려면 건강이라는 보물도 또한 소중한 것 같습니다.
순심이 할매 보리밥의 이름도 예쁜 오가님할머니가 선사해 주신 맛의 여행에 볼거리의 여행이 합쳐지는 여정에서 만나요.
여행 간것 보다 더 세밀하고 해박한 답사기에 감동입니다 ~~ㅎ
사진 찍는다고 매번 놓치는 답사에서 이렇게 무식함을 보충하며 수고하셨습니다 ♡
답사 중 보고 듣고 느끼고 찍고, 일행을 따라가고, 일인다역을 수행하기가 여의치 않지만 매니지해가는 재미도 들여보려고 합니다.
언제나 멋진 사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세하고 오밀조밀하게 관찰하신 답사기 실감나게 잘보았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
한가지 ~ 노랑꽃이 핀 나무는 원산지는 중국으로 낙엽관목이며 가지가 3개로 갈라지는 특성이 있어 '삼지닥나무'라 하며 원예품종으로 '붉은꽃삼지닥나무'도 있습니다
그렇군요.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정식 명칭이 아니고 그냥 편하게 닥나무라 부르곤 했던 것 같습니다.
강진 백운도 계곡도
무위사..그리고
장흥 묵촌마을도
봄이 되면 그리운 곳입니다
이렇게 자세히 올려 주신글과 풍경을 보며
다시 제가 그곳에 서보았습니다
감사 합니다
4월 건행함께 하시길..
생명이 넘치는 동백꽃이 부족하여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짙은 동백숲 그늘은 평화로웠습니다.
강진, 장흥, 보성 여행을
미쳐 못가보았지만,
`문항님`의 자세한 설명과 사진으로
함께간 여행보다, 더 많은것을
보고 배웁니다.
그러니,
다음번 이곳으로 여행간다는
소문이 들리면,
반드시 따라가서
`문항님`으로부터 이야기들었던것을
기억해보겠습니다.
한반도는 어디를 가나 숨어있는 스토리를 캐내는 기대와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남도를 가시게 되면 기억에 남는 여정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