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전달자 시력장애인 이삭
이계윤 목사(도원동 교회, 혜림어린이집 원장)
성경에 최초로 나온 장애인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씨로 태어난 아브라함의 유일한 아들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세우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인간적 고민과 갈등을 통해서 이삭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임을 하나님은 알려 주셨습니다.
이삭이 이 땅에 태어날 때까지 많은 인고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노년의 아브라함, 사라는 아들을 낳는 일에 대하여 오래 기다렸고, 절망하고, 그리고 포기의 단계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을 낳는 일,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는 평범한 일이었겠지만, 적어도 아브라함 부부에게 만큼은 신비한 일이었고, 불가능한 일로 이미 인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아들을 낳는 일로 인하여 혹 과거에는 기도를 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기도도 하지 않았고, 기도제목에서도 아들 낳는 일을 빼버렸습니다. 아마 그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또한 아내 사라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일이라고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포기되어진 이 일을 하나님은 실천에 옮기기 시작하셨습니다. "네 몸을 통해서 아들을 낳으리라" 하나님의 이 약속은 사라를 웃게 만들었고, 아브라함 자신을 황당하게 만들었습니다. 참으로 믿을 수 없는 일이요, 아니 포기되었던 일이었기에, 이 일로 다시금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는 일을 하기 싫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결국 이러한 과정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하여 이스마엘을 하갈을 통해서 낳기도 하였습니다.
신실한 아브라함,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하면 실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기도하는 아브라함!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을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실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서야 하나님은 이삭을 허락하셨습니다. 그것도 이미 태의 문이 닫혀진 사라에게 해산이 고통을 겪게하면서까지 아들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주신 매우 귀한 아들이었고, 동시에 아브라함 자신보다 더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이지만, 태어남에 있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의지와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이삭은 내어났읍니다.
출생방법이 신비하다고 하여, 태어난 아들이 자연히 아무런 수고와 땀도 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들을 주신 방법과 긴 세월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믿음의 정도를 결정적으로 확인할 뿐 아니라 아들 이삭의 믿음까지도 아버지의 믿음을 따라 본받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모리안 산상에서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세우실 때, 모리아 산상에서 제물로 바치라는 믿음의 결단을 하게 하셨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실존적 결단의 글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모리아 산상에서 아버지의 칼에 죽을 뻔했던 이삭, 절대절명의 순간을 경험했던 이삭, 그는 하나님의 독점적인 사랑에 의하여 살게 된 사람입니다. 이같이 이삭은 본의아니게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나면서 믿음의 본질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삭, 그의 결혼도 이삭의 뜻대로 되지 아니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노종 엘리에셀을 보내어 이삭의 아내를 선택하도록 하였습니다. 노종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마음이 기쁨을 주는 여인 리브가를 선택하여 이삭의 아내로 삼도록 하였습니다. 이삭은 자신의 뜻에 의하여 아내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전적으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이삭은 자신의 출생과 모리아사건, 그리고 결혼을 통해서 이삭자신의 의지는 완전히 묻어버렸습니다.
이삭, 그는 아들에게 아버지로부터 받은 축복을 베풀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아버지에게 받았듯이 장자인 에서에게 축복을 하기 위하여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삭의 시력이 약화된 것입니다. 시력장애, 노인성 장애가 이삭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누가 에서인지, 누가 야곱인지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눈으로 보고 자신의 판단을 따라 축복할 수 있는 기회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축복할 수 있는 권한만 허용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삭이 일생에 할 수 있는 가장 복된 순간이 지금입니다. 다른 것은 못했어도, 인생의 마지막 때인 지금, 이삭이 하나님으로 받은 축복을 기원하는 이 시간, 이삭은 자신의 경험과 전통을 따라 축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들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만져보아야만 알 수있고, 음성을 들어보아야만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귀와 손으로는 알 수 없었습니다. 이삭은 어림짐작에 의지해야만 했습니다. 하여튼 이삭은 축복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결국 이삭은 아버지를 속인 야곱에게 축복을 하고 말았습니다. 실제로는 에서에게 했지만, 그는 야곱이었습니다. 뒤늦게 그가 에서가 아닌 줄을 알았습니다. 창27:33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가로되 그런즉 사양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 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창27:37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공급하였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이삭은 하나님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태어남도, 헌신도, 결혼도, 마지막에 축복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뜻을 전혀 펴지 못했던 이삭,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순전한 도구였습니다. 하나님은 시력장애인, 노인성 장애를 겪고 있는 이삭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최초의 장애인, 시력장애인인 이삭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축복을 전달하는 귀한 도구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장애인 여러분! 그리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성취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은 오늘의 장애를, 고통을 사용하십니다.
첫댓글 좋은글로 창골산 봉서방 카페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