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을 잘합시다.
(고린도전서 9:24-27)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의 이야기입니다. 23대 해리슨 대통령이 그에게 체신부 장관직을 제의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인즉슨 주일성수를 할 수 없는 것과 주일학교 교사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조건을 보장받고 장관직을 수락하게 됩니다. 나중에 기자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장관은 부업입니다. 고작 몇 년입니다. 하지만 신앙은 평생 하는 본업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다 중간에 끝납니다. 더 중요한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세상 끝까지 지속될 일은 신앙 생활입니다. 여기서 인생의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 목표는 과연 무엇입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시고 바른 목표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상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24절)
사도바울은 일생 희생과 핍박 속에 헌신하다보니 노년에는 병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희망에 벅차서 외치기를 "내가 선한 싸움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므로 주 곧 의로운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신앙경주에 승리한 자들에게 반드시 면류관과 상급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기에 자기를 위해 많은 손해와 희생을 보면서 충성 봉사한 자들에게 반드시 면류관과 상급을 주십니다.
우리가 상을 받기 위해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했습니다.
“고난을 감내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적은 좋은데 그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이 좋지 못한 경우를 많이 봅니다.
기독교는 삶의 과정을 절대로 무시하지 않습니다. 목적이 좋으면 방법도 좋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딛후 4:7)라 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고 복음전파를 위한 선한 싸움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다하기까지 믿음의 법을 잘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고 했습니다.
“신령한 안목이 열려야 한다”
둘째로 법대로 경기하여야 합니다(25절)
디모데후서 2장 5절에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모든 경기에는 경기의 법인 규칙이 있습니다. 아무리 우수한 선수라도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탈락되는 것입니다.
운동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절제의 훈련이입니다.
자기 통제를 못하는 사람은 타인을 지배하는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특별히 운동선수가 지켜야 할 절제훈련은?
1)“식욕을 절제하는 훈련입니다”
운동선수가 먹는 식욕을 절제하지 못하면 적정 체중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스피드를 중요시하는 선수들에게 체중조절은 선수의 생명과도 같습니다.
불필요한 체중은 좋은 기록 내는데 장애물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으면 몸을 가볍게 해야 합니다.
또한 체중에 따라서 체급이 달라지는 경기에는 체중이 생명입니다.
복싱선수가 자신의 체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어서는 안 됩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이 무엇에 넘어졌는가?
먹는 식욕에 넘어지게 되었습니다.
창 3:4-5.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주님은 복음사역을 위해서 금식할 때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오는 식욕을 물리쳤습니다.
2)“육신의 정욕을 제어해야 합니다”
육신적인 쾌락을 좇는 자는 좋은 선수가 될수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 5:24)고 했습니다.
3) “세속적 향락을 절제해야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나 복음의 사명을 감당할 영적인 선수인 제자가 되는 것은 훈련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나라”했습니다.
훈련? 자기를 부인하고 스승의 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훈련은 사명감이 없으면 인내할 수 없습니다. 사명감으로 훈련에 임하면 부르신 자가 그의 생명을 책임집니다.
사도바울은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딛후 2:5)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복음을 위하여 부름 받은 영적인 선수들입니다.
요즘 우리교회 새벽에는 사사기입니다. 사사 기드온의 활동을 보았습니다. 두려움이 많았던 기드온을 큰용사여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심으로 이스라엘 300명이 미디안 사람 135,000명을 물리쳤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일을 했던 기드온이 금에봇을 만들었고 아내가 많음으로 아들이 70명이나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면서도 육체적인 전쟁에서 패한 것입니다.
이시대에 믿음을 끝까지 지내가는 사람이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끝까지 법대로 경기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월드컵을 가고 있지요. 마지막까지 잘해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잘할수 있도록 힘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성령의 코치를 받아야 합니다.
모든 운동 선수에게는 코치가 있어서 지도를 해 줍니다.
신앙의 승리를 위해서는 성령님의 계속된 지도와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돕긴 돕는데 어떻게 돕느냐 어떤 방법으로 돕느냐 할 때에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심으로 즉 기도로 도우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빌 바를 알지 못하나' 기도하기는 하는데 내가 제대로 기도하지 못하거나, 나의 간구하는 바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났을 때는 성령께서 그렇게 기도하는 게 아니야 하고 우리를 대신해서 기도를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도와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기도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확실히 체험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본래 예수 믿는 사람 핍박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교회를 잔해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잡아 옥에 가두고, 그들의 재산 다 몰수해가고, 게다가 스데반 집사 죽이는 그 자리에 책임자로 버티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하나님께 저들의 죄를 용서하는 모습,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용서하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 죽을 때까지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받은 감동을 잊지 않고 있었는데, 얼마 후에 다메섹으로 또 예수 믿는 사람 잡아 죽이러 가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회개하여 돌아서지 않습니까? 스데반 집사의 마지막 기도하던 모습, 용서와 사랑의 그 모습. 그 사람의 한 마디. 그 진실한 기도가 바울의 돌 같은 마음을 녹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만삭되지 못해 난 팔삭동이 같습니다.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 고 고백을 합니다.
한 마디의 진지하고 간절한 그 기도가 이렇게 엄청난 힘이 되었습니다.
하물며 성령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는 것은 도움 중에 최고의 도움입니다. 도움의 은혜, 기도로 돕는 은혜입니다.
바울의 이 자기 고백이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는데 충분했습니다. 이런 신앙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해야 합니다
27절 보면 “ ...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 ” 그랬습니다. 여기서 ‘친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휘포피아조’인데 분석해 보면 ‘눈 아래를 세게 가격한다’는 뜻입니다. 권투 선수가 상대방의 급소인 눈 아래를 멍이 들도록 인정 사정 없이 가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종하게 한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둘라고게오’인데 ‘종으로 인도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의지를 굴복시켜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킨다는 거입니다. 말하자면 자기 뜻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딤후2:5 보면 이런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 ” 우동 경기를 할 때 규칙(rule)대로 해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인생 경주도 규칙대로 해야 됩니다. 인생의 규칙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승리합니다.
전도가 될려면 3고를 잘해야 한다고합니다.
1. 맛있고입니다.
맛이 있어야 합니다. 입이 열려야 마음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맛있는 것을 사주면서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2. 재밌고입니다.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즐겁게 놀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지난 주일 오후에 우리교회 학생들이 많이 찾아와서 얼마나 잘 노는지 모릅니다.
재미있고 놀아야 합니다. 유아실에서 얼마나 재미있게 노는지 신나게 노는 소리가 들립니다.
3. 은혜롭고입니다.
예배드리고 은혜받는 일을 잘해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예배드리는 시간에 은혜받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오후예배시간에도 어린이랑 학생들이 예배당에 들어와서 예배드리게 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감동을 받고 내게 주신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맛있고, 재밌고, 은혜롭고를 잘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