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시[楊州市]
"자연환경, 유물유적' 교육문화, 민속, 설화민요, 산업교통"
경기도의 중앙, 서울특별시 북쪽에 위치한 시.개관
동쪽은 포천시, 서쪽은 파주시·고양시, 남쪽은 고양시·서울특별시, 북쪽은 연천군·동두천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7°06′∼127°54′, 북위 37°39′∼37°56′에 위치한다. 면적은 310.36㎢이고, 인구는 20만 5184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4개 면, 6개 행정동(17개 법정동), 100개 행정리(37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경기도 양주시 남방동에 있다.
자연환경
광주산맥 말단에 속하고 서울과 원산을 잇는 추가령지구대가 시의 중심부를 남북으로 지나고 있어 동쪽과 서쪽에는 400∼500m의 높은 산이 솟아 있고 중앙에는 넓은 곡저평야가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다. 동쪽에는 천보산맥(天寶山脈)이 동북∼서남 방향으로 지나고 왕방산(旺方山, 737m)·천보산(天寶山, 337m)이 각각 동두천시와 포천시·의정부시, 앵무봉(鸚武峰, 622m)이 파주시, 남쪽에는 노고산(456m)·상장봉(534m)·만장봉(740m)이 각각 고양시와 서울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북쪽에는 감악산(紺嶽山, 675m)이 연천군과 접하고 있다. 그리고 중앙에는 도락산(441m)·불곡산(佛谷山, 460m)·한강봉(436m)·일영봉(444m)이 있다. 동서 산지에서 흐르는 청담천(淸潭川)·신천(莘川)·곡룡천·홍죽천 등이 북쪽으로 흘러 한탄강에 합류한다. 이들 하천 주변에는 넓은 곡저평야가 곳곳에 발달하고 있다. 내륙분지에 있어 기후는 한서의 차가 심하고 강수량은 많은 편이다. 연평균 기온은 10.8°C, 1월 평균기온 -6°C, 8월 평균기온 26°C이며, 연 강수량은 1,300㎜이다.
유물·유적
선사 유적으로는 옥정동에 양주 옥정리 선돌(경기도 문화재자료 제89호)이 있다. 산성으로는 어둔동에서 백석읍 방성리에 걸쳐 있는 양주 대모산성(楊州 大母山城, 사적 제526호)이 있고, 장흥면 삼하리의 노고산 독재동 추사필적 암각문(老姑山 篤才洞 秋史筆跡 岩刻文, 경기도 기념물 제97호)이 조사, 연구되었다. 불교문화재로는 회암동의 양주 회암사지(楊州 檜巖寺址, 사적 제128호)에는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楊州 檜巖寺址 禪覺王師碑, 보물 제387호)·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보물 제388호)·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 석등(보물 제389호)·회암사지 맷돌(경기도 민속문화재 제1호)·지공선사 부도 및 석등(指空禪師 浮屠 및 石燈,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9호)이 있다. 또한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懶翁禪師 浮屠 및 石燈,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0호)·무학대사비(無學大師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1호)·회암사지 부도탑(檜巖寺址 浮屠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2호) 등이 있다. 그 밖에 고찰로는 장흥면 교현리의 석굴암(石窟庵)과 유양동의 백화암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유양동에 양주향교(楊州鄕校,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호)와 양주관아지(경기도 기념물 제167호), 은현면 선암리의 송질사당(宋軼祠堂), 그리고 조선시대 서예가 안맹담(安孟聃)을 모신 양효공 사우(良孝公 嗣宇)와 죽산안씨 연창위 종가(竹山安氏 延昌尉 宗家,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03호)가 만송동에 있다. 이 밖에도 남면 매곡리의 양주 백수현 가옥(楊州 白壽鉉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128호)과 유양동의 어사대비(御射臺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2호) 등이 있다. 능묘로는 장흥면 일영리에 조선 중종의 비 단경왕후 신씨(端敬王后 愼氏)의 묘인 양주 온릉(楊州 溫陵, 사적 제210호)을 비롯하여 석현리의 권율장군 묘(權慄將軍 墓, 경기도 기념물 제2호), 삼하리의 이수광선생 묘(李睟光先生 墓, 경기도 기념물 제49호), 광적면 효촌리의 백인걸선생 묘(白仁傑先生 墓, 경기도 기념물 제58호), 남면 신산리의 이준선생 묘(李準先生 墓, 경기도 기념물 제120호)와 전성부원군 이준선생 영정(경기도 문화재자료 제81호), 덕계동의 송석 최명창 묘역(경기도 기념물 제178호) 등이 있다. 백석읍 연곡리에는 임진왜란 때 부원수 신각(申恪)이 승첩을 거둔 해유령 전첩지(蟹踰嶺 戰捷地, 경기도 기념물 제39호)가 있으며, 장흥면 부곡리에는 조선시대 도요지인 부곡(釜谷)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남면 황방리에 양주 남면의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278호)가 있다. 무형문화재로는 유양동에는 양주 별산대놀이(楊州 別山臺─, 국가무형문화재 제2호), 백석읍 방성리에는 양주 소놀이굿(국가무형문화재 제70호)·양주 상여·회다지소리(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7호), 광적면에는 양주 농악(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6호), 나전칠기장(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4호) 등이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유양동에 양주향교가 있다. 이 향교는 1401년(태종 1)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1610년(광해군 2)에 재건되었고 6·25전쟁 때 일부 건물이 파괴된 것을 1959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일제강점기인 1929년 농촌 청소년에게 새로운 학문을 교육시켜 독립정신 고취와 경제자립을 목표로 개설한 농벗야학당이 지금의 봉양동 내촌마을에 있었다. 이 학당은 내촌동 정귀현(鄭貴鉉)의 집을 빌려 야학당으로 출발하여, 1931년 24평 크기의 교실을 세워 경기도지사의 승인을 얻어 당시 교육에 굶주린 인근 마을의 성인 남녀를 수용하는 등 농촌계몽에 힘쓴 양주시 최초의 사설교육기관이었다. 이 학당의 후원자는 서울기독교청년회 총무로 있던 미국인 바나트와 홍병선(洪秉善) 등이고, 교사진은 윤익선(尹益善)·이형자(李亨子)와 이화여자전문학교 출신의 이귀남, 숭실전문학교 출신의 주휘순(朱輝順) 등이다. 근대에 설립된 학교는 1920년대에 설립된 유양보통학교(1921)·가납보통학교(1927)·송추보통학교(1928)와 1930년대에 설립된 덕정보통학교(1932)·백석보통학교(1932)·삼상보통학교(1935) 등이 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2개교, 중학교 10개교, 고등학교 7개교와 서정대학이 있다. 1961년 동두천읍 생연리에 양주문화원이 설립되었으나, 동두천읍이 시로 승격되어 양주시에서 분리되어 나감에 따라 양주시에는 문화원이 없다가 1987년 광적면 가납리에 양주문화원이 설립되었다. 양주문화원은 1987년 10월에 양주시 관내의 유물·유품전시회, 1989년에는 향토문화강좌·유적지순례 등의 행사를 개최하였을 뿐만 아니라 2001년부터 역사문화대학을 개설 운영하여 고장의 문화향상과 민족정신함양에 힘쓰고 있다. 남면 입암리에는 무호정(武虎亭)이 건립되어 궁술연마와 국궁(國弓) 보급에 기여하고 있다. 문화제행사로는 양주 별산대놀이와 양주 소놀이굿의 정기공연이 유양동 양주별산대놀이 전수회관에서 해마다 내·외국의 민속관계학자·학생·일반인 등의 관심 속에 공연되고 있다. 그리고 양주문화원의 주관으로 매년 10월 초순에는 양주문화제가 개최되고 있다.
민속
이 고장의 중요한 민속놀이로는 「양주 별산대놀이」·「양주 소놀이굿」·「줄불놀이」 등을 들 수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양주 별산대놀이」는 유양동에서 전승되어온 가면극 중의 하나로, 경기도 지방에서 널리 연희되던 대표적인 서민오락의 하나였다. 사월 초파일·오월 단오·유월 유두·칠월 백중과 같은 대소 명절 때 마을의 노천에서 연희되었는데, 8·9마당으로 구성되어 보통 밤 10시에 시작하면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애오개산대·노량진산대·퇴계원산대·송파산대 등 원래의 산대놀이와는 다른 것이라 하여 별산대로 불려왔다는 「양주 별산대놀이」는 거드름춤과 깨끼춤의 몸짓으로 연극적 요소를 가미하고, 덕담과 재담으로 서민의 애환을 풍자해왔다. 국가무형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된 양주 소놀이굿은 일명 「소놀음굿」·「소굿」·「쇠굿」·「마부타령굿」 등으로도 불리는데, 우마숭배와 농경의례인 소멕이놀이에 기원을 두고 무속의 제석거리와 마마배송굿에서 일부 자극을 받아 형성된 굿의 일종이다. 양주시 일원에서 신곡맞이경사굿으로 제석거리에 이어 행해지며, 단순한 농경의례의 무속에서 벗어나 무당과 원마부·곁마부의 대화와 타령으로 진행된다. 줄불놀이는 유양동에서 매년 사월 초파일 밤에 「양주 별산대놀이」와 함께 행해지던 민속놀이이다. 마을 앞 개천가에 줄을 매고 그 줄에 참나무껍질로 만든 숯가루 봉지와 등불을 매단 다음, 숯봉지에 일제히 불을 당겨 불꽃을 내며 타게 했던 것으로 오늘날의 불꽃놀이와 비슷하다.
동제로는 광적면 가납리 능안말[陵內洞] 도락산과 효촌리 회내미[檜村洞] 회곶고개에서 지내는 산신제가 유명하다. 도락산산신제는 능내동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동네 뒷산인 도락산에서 매년 음력 9월 9일을 기해 거행되며, 제례방법은 회곶고개의 산신제와 동일하다. 회곶고개산신제는 약 200여 년 전 지사를 지낸 이지사(李知事)라는 부자가 마을의 재앙을 막고 복을 비는 뜻에서 지낸 데에서 기원한다. 젯날은 매년 음력 9월 3일인데, 이때가 되면 마을 전체가 정성을 들이고 생기복덕(生氣福德)을 가려 제관 5명을 뽑는다. 선정된 제관은 다른 마을의 출입을 삼가야 하고, 제관의 집에는 금줄을 매어 부정한 사람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한다. 제는 자정을 기해 지내는데, 제물과 의례절차는 보통 가례에 준한다.
설화·민요
이 군이 한양과 가까웠다는 지리적 조건 때문인지 왕들이 등장하는 설화가 많고, 이 고장 출신이라는 정렴(鄭磏)·정작(鄭碏) 형제에 관한 이인전설이 여러 편 전승되고 있다. ‘벼락소(沼)’와 ‘갓바위’의 유래와 관련된 「장자못전설」, ‘용소(龍沼)’의 「아기장수전설」, 원각사의 「사찰연기설화」등 많은 설화가 전하고 있다. 정렴·정작 형제의 신통술에 대한 설화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하루는 형제가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보니 한 집에 액운이 낀 것을 알고, 정작이 그 집을 찾아가 “이 집에 화가 닥칠 것이니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화를 피할 수 있을 것이오.”라고 하였다. 주인의 다짐을 받은 정작은 우선 마당에 백탄 열 섬을 쌓아놓고 불을 붙인 다음, 6·7세 된 주인아들을 궤짝에 넣어서 불 속에 던져버렸다. 잠시 뒤 불 속에서는 궤짝이 터지며 구렁이가 타고 있었다. 몇 년 전 이 집 주인의 낫에 찔려 죽은 구렁이가 원한을 갚기 위해 주인의 아들로 태어났던 것이다. 이 밖에 친구에게 수명을 10년 떼어주고 44세에 요절한 정렴의 신통력과 인간성에 대한 설화도 알려져 있다. 또한, 장흥면의 일영봉(日迎峯)에 얽힌 애틋한 전설이 있다. 중종반정의 결과 연산군이 폐위되고 진성대군이 중종이 되었으며, 그의 부인 신씨(愼氏)가 왕후가 되었다. 그러나 신씨의 친정아버지인 신수근(愼守勤)이 참살당하고, 반정공신들은 죄인의 딸을 국모로 모실 수 없다고 하여 결국 신씨는 친가인 장흥면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그 뒤 신씨는 이곳 일영산에 올라가서 임금이 있는 대궐을 향해 매일 배례했다는 전설이 있다.
또, 걸인이 찾아오는 것이 싫으면 ‘갓바위’의 갓을 벗겨버리면 될 것이라는 노승의 말을 들은 어느 부자가 그대로 시행했더니, 마을이 폐허가 되어버렸다는 「갓바위전설」은 중이 시주오는 것을 박대했다가 마을이 연못으로 변해버렸다는 「장자못전설」의 변이형으로 흥미로운 전설이다. 그 밖에 산신령이 마을의 소를 빌려 감악산 제일봉으로 옮겨놓았다는 「설인귀비전설(薛仁貴碑傳說)」 등 많은 설화가 전한다. 이 고장에는 「시집살이노래」·「바느질노래」·「늴리리야」·「쌍가락지노래」 등 부녀요(婦女謠)가 많이 있고, 「모내기소리」·「논매기소리」·「밭갈이소리」 등의 농업노동요와 「상여소리」·「달구질소리」 등의 의식요, 그리고 「통타령」·「산타령」 등 타령이 있다. 그 가운데 「시집살이노래」는 매우 특색 있고 질이 우수한 부녀요로 문학적 가치가 높은 노래인데,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아버님생전 내에모래/어머님생전 내에모래/뭐나뭐나 해여가나/뒷동산에 앞동산에/송기뜯어 송기절편해여가지/뭣에뭣에 담아가나/표주박에 담아가지……/뭐나뭐나 타구가나/앞동산에 뒷동산에/비루먹은 당나귀나타고가지…….”알뜰하고 정성스러운 효심이 진솔하게 나타난 개인창의 노래이다. 역시 부녀요인 「늴리리야」는 “늴늴늴늬리 늴늬리야”라는 후렴이 사용되고 가사는 임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그 일부를 소개하면 “청사초롱 불밝혀라 잊었던 낭군을 찾아보자/늴늴늴늬리 늴늬리야/믿지 말아 믿지 말아 남자의 마음을 믿지 말아요…….”와 같다. 다음의 「바느질노래」는 부녀자들이 바느질할 때 부르는 기능요이다. 그 내용의 일부는 “양주땅 상품쇠로 바늘 한쌈 달려내여/낮으로면 간수하고 밤으로면 벗을 삼고…….”와 같다. 노동요 중에는 「모내기소리」와 「논매기소리」가 주종을 이루고, 「밭갈이소리」가 약간 전하고 있다. 「모내기소리」의 일부를 보면 “……하나 소리 하는뜻은 일 잘하자는 뜻일세/하나하나 한알기로구나/이논자리 물채좋아 조앙내기를 하는구나/하나하나 한알기로구나/어화우리농부들아 한일자로 늘어서서는 증조식으로 만모를 내세……”와 같이 풍년기원과 부지런히 일할 것을 권하는 내용이다. 가창방식은 선창중답식이다. 가락은 모를 내는 행동에 맞추므로 단조롭고 느리나 작업의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 특이한 「통타령」을 보면 “이통 저통/신통 방통/노방통 금부통……/웃집오줌통 아랫집똥통/우리집 절구통 술집 뜨물통…/큰애기젖통 주정꾼술통/못된놈 심통 설은사랑애통/…….”과 같다.
산업·교통
전 토지의 57.6%가 임야로 산지가 많은 지역이다. 경지는 20.0%, 대지는 4.4%, 도로는 2.9%, 하천은 2.1%, 공장은 3.4%이다. 경지 중 논은 3,197㏊, 밭은 3,034㏊이다. 주요 농작물은 쌀 이외에 채소류로 배추·무·상추·시금치·오이·참외·고추·수박·마늘·파, 특용작물로는 들깨·참깨, 과실류로 배 등이 생산된다. 토지의 2/3가 산지인 이곳에서는 밤이 많이 생산되고 있는데 양주밤은 예로부터 맛이 있기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 대추·도토리·은행·잣·포도·버섯도 많이 생산되고 있다. 농가 인구는 전체 인구의 9.6%이고, 제조업 인구는 전체 인구의 18.5%이다. 주요 제조업은 섬유공업·조립공업·비금속공업·식료품공업이다. 장흥면에는 조선시대부터 도자기 제조가 알려져 있는데 현재에도 도자기 공장이 있다. 수도권에 인접해 있고 서울과 교통로가 잘 발달하여 상업 시설의 발달이 미약하였으나 최근 덕정신도시의 개발로 인한 인구의 유입과 옥정신도시 개발·광석신도시 개발사업 등의 추진으로 인하여 많은 인구의 유입이 기대되는 관계로 할인점과 상가들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 이 지역의 재래 정기 시장은 도농복합시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회천읍의 덕정장과 남면의 신산장이 2·7일, 광적면 가납장이 4·9일에 열리는데, 주요 거래품목은 나물의 취나물종류로 고사리와 채소류의 열무·시금치, 곡물의 콩·참깨 등이 거래되고 있다. 도로는 국도 3호선이 중심부를 남북으로 지나고 있는데 이 도로는 1970년대 4차선으로 확장되어 평화로로 명명되었다. 국도 32호선이 장흥면을 동서로 지나 의정부시에서 국도 3호선과 합류한다. 철도는 경원선 철도가 국도 3호선과 나란히 남북으로 지나고 서울 교외선이 국도 33호선과 나란히 서남∼동북진하여 의정부시에서 경원선과 합류한다. 2006년 12월 의정부∼동두천 간 경원선 복선 전철이 개통되어 교통난 완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도락산(道樂山)의 가을
▼도락산 입구의 겨울 "메타세콰이아[Metasequoia]"
2022-05-13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