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서울 동아 마라톤대회를 마치고.
벌써 한 주가 지나가 버렸다. 어떻게 그 먼거리를 뛰었는지..... 미쳤지 미쳤어......
함께 하기로 약조하고 사실 좀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15년 만에 풀코스를 뛴다는 일. 무릎과 족저근막염이 완쾌되지 않은 시점에서 덜컥 약속을 했으니. 하지만, 이런 타인과 자신과의 다짐없이 그냥 도전할 수 없는 것이 풀코스이기에 게으른 나를 견인하려고 약속했고 곧바로 6개월 헬스장에 등록했다. 주 1회 ~ 2회 연습에서 주 2~3회 연습을 꾸준히 했으며, 평일에는 헬스장에서 적어도 10키로. 토요일에는 2시간 뛰기를 격주로 했다. 또, 곽선생과 온천천에서 한번, 사직에서 한번 30키로 정도 뛰었고, 가야지 동계훈련으로 장안사 훈련도 무사히 마쳤다. 나는 풀코스 완주가 목표였기에 기록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4시간 안에 들어오면 좋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4시간 30분 정도. 아니, 풀코스를 완주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뛰다가 무릎이 아프거나 족저가 아프면 멈출 각오까지 하였다.
대회 전날 3시 부산역에서 KTX를 타고 서울 도착. 바로 영등포 하이서울유스호스텍에서 여장을 풀었다. 지난 1월 중학생들과 대학탐방할 때 미리 예약해 둔 곳. 저녁에 근처에서 동태탕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긴장을 풀 겸 소주를 딱 두 잔 마셨다.
대회 당일 5시 반 기상. 어제 산 짜파구리와 떡과 음료 등으로 간단히 먹고 숙소를 나서 대회장인 광화문까지 지하철로 손쉽게 이동했다. 7시 전 대회장 도착. 약간 땅이 젖어 있었고 구름이 낀 흐른 날씨라 그렇게 좋지는 않았으나, 꽃샘 강추위를 피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안삼을 수 있었다. 가방을 맡기고 지하도에서 몸을 좀 녹이고 다시 올라와 20분 정도 줄을 서서 화장실에 갔다오니 딱 8시 10분 전. 곽선생은 B그룹으로 나는 F 그룹에서 25분 늦게 출발하였다. 신발도 레이싱화보다는 부상방지를 위한 써코니 쿠션화로 택했다. 절대 무리하지 않으리라는 각오로. 주머니에는 교통카드도 챙기고.
초반 몸이 가벼웠다. 시계를 보니 페이스가 5분 40초 정도여서 일단은 이 페이스로 계속 가보기로 했다. 5키로를 지나도 별 무리가 없었다. 10키로를 가까워 오니 미세한 족저 통증이 있었고 무릎도 조금 불편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조금 페이스를 늦추어 달리기로 한다. (연습 때도 늘 그랬으므로) 청계천을 뛰는데 건너편으로 B그룹 출발자들이 거친 호흡을 하면서 돌진하는 군인들처럼 씩씩하게 앞서 나간다. 나도 예전에는 저랬으리라. 어떤 여성 주자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20키로를 향해 달린다. 그때까지 비치된 모든 물과 음료를 마신다. 속으로 너무 많이 마시는 것은 아닌가? 화장실에 가야하나 하고 약간 걱정이 된다. 19키로 지점, 종로 대로를 들어서서. 조금 힘을 내 볼까, 아니면, 그대로 페이스를 유지할까 하다가 일단 30키로까지는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다. 대신 멀리 보이는 직선 도로인 종로를 고개 숙이지 않고 앞만 보면서 뛰기로 한다. 종로...... 교보, 종로서적,....종삼....낙원상가, 탑골공원, 세운상가.종묘...... 종5. 약국들, 광장시장 입구 그리고 그 끝인 동대문. 나의 20대 초반의 추억이 오롯이 투영된 곳. 데모했던 곳. 연애했던 곳. 탐방했던 곳........ 그때의 벗들과 그때의 청춘은 생생한데 아..... 여기 이 대로를 56살 나이에 뛰고 있을 줄은 그때는 진짜 알지 못했다. 알수도 없었겠지만. 동대문과 동대문 운동장이 있었던 곳 딱 거기까지가 나의 대학시절 나와바리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길은 낯선 길. 29키로까지는 그래도 대로라 고개를 들고 멀리 신호등 만을 보며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노렸했다. 그리고 그렇게 페이스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시험의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하프 지점에서 준다던 젤이 없었다. (아, 하나 챙길 걸) 그리고 바나나도 먹지 않고 그냥 스친 것이 후회가 되었다. 아무 것도 마시지도 먹지도 못하고 30키로를 달렸으니 자연, 힘이 떨어졌다. 페이스를 6분대로 달렸고 그냥 땅을 보고 달렸다. 거리를 신경쓰지 않으려고.. 작고 짧은 언덕들도 있었고, 특히, 맞바람이 불어 페이스를 더 낮추어야만 했다. 아, 남은 10키로 기어서라도 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보폭을 좁히면서 계속 달렸다. 35키로 지점 완전히 체력이 고갈된 듯하여 멈출 수 밖에 없었다. 50m 정도를 걸으면서 포카리 두잔, 물 한 잔, 그리고 초쿄파이 한조각과 바나나 한 조각을 폭풍 흡입했다. 걷고 뛰고 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뛸 수 있을 것인가...... 일단 계속 뛰어 본다. 1키로 정도를 뛰니,,,,,, 웬걸 몸이 서서히 회복되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 스퍼트는 아니지만 주위의 달리미들을 한사람 두사람 제치면서 계속, 계속 뛰었다. 힘이 났고, 걸음은 가벼웠고, 호흡은 규칙적이어서 '러너스 하이'를 느끼며 잠실대교를 건넜고 마지막 2키로는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기록을 보니,, 이때 기록이 초반보다 20초 정도 늦었음에도 심리적으로는 5분에 뛰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이것이 바로 러너스 하이, 마약과 같은 쾌감의 순간!) 달리고 달려 드디어 골인! 워치를 보니 4시간 18분. 완주! 그리고 밀려오는 성취감!
먼저 도착한 곽선생과 만나 미리 알아봐둔 사우나로 지하철로 이동.... 사우나 후, 수서역으로 이동..... 수서역에서 늦은 점심을 불로기 뚝배기로 먹으며, 소맥. (어찌 소맥을 하지 않을 수 있으랴!) 3시 29분 수서역 출발..... 2시간 정도 비몽사몽..... 6시 부산역 도착. 27시간의 짧은 여정과 긴 여운! 가을에도 달릴 수 있을 것같은 자신감. 혼자라면 섣불리 도전하지 못했을 풀코스 도전을 곽선생 덕분으로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2024년 시작부터 너무 큰 일을 한 듯하다. 시작이 이렇게 좋으면 끝은개끝발이 아닐지.....ㅋㅋ.
관심가져 주시고, 거마비도 주시고, 훈련도 마련해 주시고..... 모든 가야지 선생님들께 감사, 감사 하는 마음 다시 전합니다. 이상 서울동아마라톤 후기 끄읕~~~
첫댓글 풀코스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과 몇 개월을 싸워야만 얻을 수 있는 완주 메달... 가야지 세 분의 서울동아 도전과 완주에 격한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고무신이 15년만에 풀코스를 뛴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대단한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자신이 얼마나 자랑스럽게 느껴졌을지 짐작이 됩니다. 오랜만에 읽어보는 풀코스 완주 후기입니다. 축하합니다^^
동호회에서 풀코스 완주기를 오랜만에 접하네요. 고귀한, 풀코스 완주를 축하합니다^^
아무나 할 것 같지만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풀코스 완주. 고통을 이겨낸 샘들 축하드립니다.
고무신샘 풀코스 완주를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함께한 동아마라톤 즐겁고 좋았습니다. 멋진 레이스를 펼친 친구의 모습이 대견하고 보기 좋았습니다. 코로나로 5년 만에 풀코스를 완주했습니다. 완주에 도움을 주신 가야지 회원님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