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식은 현역에서 은퇴한 뒤 제일은행 명동지점장(77년)을 거쳐 81년 부평지점장으로 부임한 직후였다. 정년을 2년 8개월 앞두고 있어 프로야구는 안중에도 없었다. “김진영이 인하대에 남는 것으로 뜻을 굳힌 뒤였던 것 같다. 하루는 박현식을 만나 삼미 감독에 대한 의사를 타진한 적이 있다. 대뜸 “싫다”고 했다. MBC라면 몰라도 삼미엔 안간다는 거 였다. 이유인 즉 전력이 약해 보나마나 꼴찌할 게 뻔한데 망신당하러 가라는 거냐며 은행에 붙어 있다가 정년을 맞겠다고 했다.”(이호헌) 이런 박현식의 뜻이 곧 김현철 회장의 귀에 들어갔다. 큰 일이었다. 김진영에 이어 박현식 마저 감독 제의를 거부하면 삼미는 감독 없이 야구를 치러야 하는 최악의 상태를 맞게 되는 셈이었다. 이들에 버금가는 인물은 눈을 비비고 찾아 봐도 안중에 들어오지 않았다. 김현철 회장은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무릎을 쳤다. 방법은 있었다. 감독 안 하겠다는 박현식을 만나 직접 설득해 봐야 거절 당할 것이 뻔한 이상 간접 공략을 구사해볼 생각이었다. 김 회장은 삼미특수강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의 이필선 행장을 찾아가 담판을 짓기로 했다. 천만다행인 것은 이필선 행장의 고향이 인천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이 행장은 박현식과 인천 창영국민학교 동기 동창이기도 했다. 잘 하면 일이 수월하게 풀릴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참으로 용기있는 결단을 내리셨더군요. 신문지상을 통해 삼미가 인천을 연고지로 프로야구 팀을 창단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내 고향에도 프로야구 팀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합니다.” 이필선 행장은 인사가 끝나자 야구 얘기를 먼저 끄집어 냈다. 김 회장은 절호의 기회다 싶어 이 행장을 물고 늘어졌다.
김현철 회장, 제일은행장 만나 “박현식을 감독으로 달라” 요청 “그러잖아도 행장님께서 고향을 위해 꼭 도와주셔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김 회장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내 힘 닿는 데까지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다. 더욱이 고향을 위한 일이라는 데야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렇다면 폐 일언 하고 말하겠습니다. 부평지점장으로 계신 박현식씨를 주십시오. 그 분을 우리 팀 감독으로 모셔가야 하겠습니다.” “옛?” 김 회장의 말에 이 행장이 깜짝 놀란 것은 당연했다. 이 행장은 김 회장이 도와 달라고 할 때만 해도 가벼운 일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자금 지원이나 팀의 후원자가 되어 달라는 것이려니 했다. 그런데 아닌 밤 중에 홍두깨 식으로 일선 지점장을 내놓으라는 데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지점장이 된지 겨우 1년이 된 국민학교 친구인 박현식을 달라는 데는 기가 찰 수 밖에 없었다. 제일은행 부평지점은 박현식이 지점장으로 부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예금고가 신통치 않았다. 그런데 박현식이 부임한 뒤부터 눈에 띠게 예금고가 늘어 이 행장은 한시름 놓고 있었다. 모두가 야구로 이름을 날린 지점장의 능력으로 믿고 있었다. 이 행장은 이런 지점장을 떠나 보내는 것이 옳을지 아니면 붙잡아 두는 게 옳을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박현식과는 행장과 지점장이란 사이를 넘어 친구이기도 했다. 그의 앞 일도 걱정스럽기도 했다. “자네, 삼미에서 야구 감독으로 오라고 하는 데 생각해 본 일 있는가?” 생각다 못한 이 행장은 박현식을 불러 올려 그의 의향을 물어봤다. 예상한 대로 박현식은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리요. 난 은행에서 정년을 맞을 생각인데 행장이 날 쫓아내려고 그러는 게요? 감독은 정년으로 퇴직한 뒤에나 생각할 거요.” “쫓아내다니 무슨 그런 말을…. 좌우지간 잘 생각했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할 수 없다고 하지 않나. 은행에 남아 있게.” 말은 그랬다. 하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젊은 사람이 열의를 갖고 뛰는 마당에 재를 뿌릴 수는 없었다. 박현식을 내주지 않으면 두고두고 원망을 살 것도 같았다. “혹시 나 때문에 입장이 거북해 지는 게 아니오?” 이런 이 행장의 속을 꿰뚫어 보듯 박현식이 입을 열었다. “거북해질 일이 뭐 있겠소. 김 회장이 모처럼 큰 기대를 걸고 부탁한 일인데 의기를 꺾는 것 같아 미안할 뿐일세.” “그렇다면 이렇게 합시다. 김 회장을 내가 한번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시오. 내가 설득해 보지요.” “그게 좋을 것 같소. 싫든 좋든 어차피 한번은 만나야 할 사람이니 내 이리 오도록 불러 보리다.”
박현식, 7년만에 야구계 복귀 “2년간 삼미 감독 맡겠다” 박현식이 이 행장의 주선으로 은행장실에서 김현철 회장을 만난 것은 12월 초순께 였다. 말로만 듣던 김 회장을 본 박현식은 깜짝 놀랐다. 한 그룹의 회장쯤 됐으니 나이 지긋한 영감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은행장이 소개한 김 회장은 동안의 소년 같았다. 그럴 만도 했다. 김 회장은 31세의 청년이었다. ▶삼미 김현철 회장의 간청으로 슈퍼스타즈 유니폼을 입은 박현식은 82년 2월5일 인천상공회의소 강단에서 가진 창단식에 참석, 7년만의 야구 복귀를 세상에 알렸다. ◀
“여러 가지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저는 오래 전부터 홈런왕이신 박 선생님을 흠모해 왔습니다.” 김현철 회장의 겸손함에 박현식은 또 한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젊은 나이에 회장쯤 됐으니 아주 거만할 것으로 믿었던 탓이다. “진작 찾아 뵙고 상의를 드리는 게 도리인데 바쁘다 보니 여러 가지로 결례를 범했습니다. 서운한 감정이 있으셨다면 이 자리에서 풀어 주십시오. 행장님으로부터 대강 말씀은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어떠십니까? 저와 인천 야구 팬들을 도와주십시오.” 간절한 청이었다. 박현식은 할 말을 앓은 채 머뭇거리기만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 행장이 거들었다. “저렇게 간청하시니 감독을 맡아보게. 인천 야구를 위한 마지막 봉사라 생각하고 받아 들이세요.” “인천 야구를 빛내고 싶은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전력이 너무 약해요. 보십시오.삼미로 올 선수들 가운데 국가대표 출신이 한명도 없어요. 이런 오합지졸들을 이끌고 어떻게 빛을 낼 수 있습니까?” “그 점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전력이 약하다는 것이 매력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항상 약하겠습니까? 박 선생님이 어셔서 오합지졸들을 강한 야구선수로 만들어 주십시오. 승패엔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박 선생님만 와 주신다면 저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박 선생님을 모시고 창단하는데 큰 뜻을 두고 있으니 제 청을 받아 주십시오.” 박현식은 점점 김현철 회장에게 이끌려 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운명 같은 것이었다. 김 회장의 간청에 박현식은 거절할 말을 잃었다. “좋습니다. 내가 젊은 회장님의 끈기에 졌습니다. 2년간 팀을 맡아 기초를 다져 보겠습니다.” 감독 제의를 정중하게 거절하기 위해 김현철 회장을 만났던 박현식은 김 회장에게 설복 당해 무릎을 꿇은 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