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에 티비를 보다가 오래 된 말이 떠올랐습니다.
‘삼시세끼 고창 편’이라는 프로인데 논에 모심기한 내용을 보다가 생각이 난 말입니다. 다른 집들보다 늦게 심었지만 빽빽하게 밀식을 했다는 말들을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에 다닐 때에 가슴에 달고 다닌 리본의 내용이 '소주밀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패찰을 달고 다녔고 선생님들도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 않았던 걸로 기억이 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소주밀식(小株密植)'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소주', 즉 작은 그루를, '밀식',촘촘히 심으라는 얘기였습니다. 1960년대 말에 농촌자도소가 발족하면서 처음 시작한 모내기 방법이라고 하는데 그때는 이 말뜻을 정말 몰랐습니다. 아마 이 패찰을 달았던 사람들은 지금 적어도 57세는 넘었을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소주밀식(小株密植) 모내기방법은 모한포기의 모수를 적게 하고 촘촘히 심어 포기수를 많이 심는것으로서 박정희 대통령께서 70년대 새마을 운동을 시작하며 농촌에서 실시한 첫 사업으로 소출은 많은데 미질이 좀 떨어지는 통일벼를 심기를 권장하여 10%의 증산 효과를 보게 되었으며 통한의 보리고개를 극복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라는 글이 있던데 제가 기억하기로는 이 소주밀식은 새마을운동보다 먼저 시작한 것으로 새마을운동과는 조금 거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농촌지도소가 처음 생기면서 이 ‘소주밀식’을 강조했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옛 문헌에 모내기 방식이 나옵니다.
한국전통지식포탈에서 찾아보니 <벼 이앙법이 보편화함에 따라서 벼농사에서 강조되는 이앙기술은 「한정록(閑情錄)」에 서술되어 있듯이 “여섯 그루를 한 줄로 하여 그루로 낸 줄은 곧게 서야 기음매기가 편하며, 얕게 심어야 쉽게 분얼이 발생한다.”
즉 줄맞추어 얕게 심는 방법에 있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특히 더욱 중요한 기술의 하나는 일정 면적당 몇 그루의 묘를 심고, 한 그루당 몇 묘를 잡아 심느냐 하는 데 있었다.
「농사직설(農事直說)」3)에서는 4~5묘(苗根), 「한정록(閑情錄)」에서는 6묘[六莖], 「농가집성(農家集成)」에서는 3~4묘 이내,4)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는 3~4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5)에서도 3~4묘, 「해동농서(海東農書)」6)에는 3~4묘(苗),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7)에서는 4~5묘(根) 등으로 되어 있다.
또 그루 사이의 재식거리(栽植距離)로 밀식되는 정도를 서술한 기록은 「색경(穡經)」8)에서 처음 나타난다. 「색경(穡經)」에서는 5~6치[寸; 15~18cm],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는 6치[寸; 18cm],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해동농서(海東農書)」․「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는 5~6치로 거의 통일되어 있다. >벼 소주 밀식 이양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