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너 자신을 알라!” 노래 <테스 형>으로 새삼 더 유명해진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 두 가지 죄목으로 법정에 섰다.
첫째, 아테네가 전통적으로 섬기는 신을 무시한 불경죄, 그리고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신을 설파한다는 종교적 이단 시비에 걸렸다. 둘째, 그렇게 떠들고 다니면서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풍기문란의 죄가 덧붙었다.
소크라테스는 두 번의 변론을 했지만, 판결의 책임을 진 청중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유무죄를 따지는 판에서는 아슬아슬했지만, 어쨌든 유죄를 받고 형량을 정하는 판에서 소크라테스는 엉뚱하게도 벌 대신 상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청중의 노여움을 샀다. 압도적인 표 차이로 사형 선고가 떨어졌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81963.html
2. 오늘 본문에서도 청중은 화가 잔뜩 납니다. 예수의 말이 화를 돋웁니다!
1) 광야에서 시험을 받은 후, 14절)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을 입고 갈릴리로 돌아오셨다.
예수의 소문이 사방의 온 지역에 두루 퍼졌다.
그는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으며, 모든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셨다.
16절)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나신 나사렛에 오셔서,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는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서서,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 받아서, 그것을 펴시어, 이런 말씀이 있는 데를 찾으셨다.
2) 이리 시작한 나사렛 사건, 이야기 끝에 고향 사람들은 화가 나서 예수를 죽이려 합니다.
28절)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서, 모두 화가 잔뜩 났다.
29절)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를 동네 밖으로 내쫓았다.
그들의 동네가 산 위에 있으므로, 그들은 예수를 산 벼랑까지 끌고 가서, 거기에서 밀쳐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절)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떠나가셨다.
3. 살벌한 분위기, 그들은 왜 그랬을까요?
1) 일반적으로 알려진 까닭은, 24절) 아무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병행구절인 막 6:2-4)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모든 것을 얻었을까? 이 사람에게 있는 지혜는 어떤 것일까? 그가 어떻게 그 손으로 이런 기적들을 일으킬까?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닌가? 그는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이 아닌가? 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언자는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밖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는 법이 없다."
따라서 본문 22절)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 은혜로운 말씀에 놀라서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위 구절을 <쉬운 성경>처럼 번역해야, 23절 이하 적대감 풀풀 나는예수의 말씀이 어색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한 마디씩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은혜의 말씀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하고 말했습니다.“
23절)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내게다 끌어대면서, '우리가 들은 대로 당신이 가버나움에서 했다는 모든 일을, 여기 당신의 고향에서도 해보시오' 하고 말하려고 한다."
시쳇말로 ‘너나 잘 하세요!’
예수를 시험하여, ‘표적을 보이라, 귀신을 쫓고 병을 고쳐보시오!’
24절)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무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 그리고 매를 버는 말을 이어갑니다.
25절) 엘리야 시대에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서 온 땅에 기근이 심했을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들이 많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엘리야를 그 많은 과부 가운데서 다른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으시고, 오직 시돈에 있는 사렙다 마을의 한 과부에게만 보내셨다.
27절) 또 예언자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나병환자가 많이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서 아무도 고침을 받지 못하고, 오직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이 고침을 받았다."
기원전 9세기, 엘리야가 시돈 과부를 돌보고(왕상 17:7-16), 그 제자 엘리사가 나병환자 시리아 장군 나아만을 고쳐준 이야기(왕하 5:1-14)에서 둘 다 비유대인, 이방인!
“하나님은 지옥 불의 연료로 삼기 위하여 이방인을 창조했다”고까지 여기던 유대인의 혐오에 불을 지릅니다.
3) 거기에 잘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까닭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예수께서 읽은 이사야서 61장 1-2절
18절)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주님의 은혜의 해, 희년입니다. 이스라엘에는 50년마다 모든 노예를 풀어 주고, 부채를 탕감해주고, 모든 토지를 원래 소유자에게 되돌려주는 사회제도가 있었습니다.
“너희는 오십 년이 시작되는 이 해를 거룩한 해로 정하고, 전국의 모든 거민에게 자유를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가 희년으로 누릴 해이다. 이 해는 너희가 유산 곧 분배받은 땅으로 돌아가는 해이며, 저마다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해이다.“(레 25:10)
21절) "이 성경 말씀이 너희(귀 안에서)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이사야의 메시아 예언이 지금 여기 이루어집니다. 이제 메시아 시대가 동텄다.
50년에 한 번이 아니라, 언제나 희년이다. 날마다 희년, 한마디로 하나님 나라가 왔다!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는 나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 하나님의 힘이 세상을 눌러왔던 악의 세력을 누르고, 가난한 사람, 포로 된 사람, 눈먼 사람, 억눌린 사람들이 주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하나님의 값없는 사랑을 받습니다.
이 말씀이 청중의 화를 불러일으킵니다!
먼저 “내가 메시아다”로 들렸을 수도 있겠고,
무엇보다 예수께서 선포한 메시아 시대가 유대인의 기대와 다릅니다.
4. 눅 4:18-19)와 사 61:1-2)를 직접 비교합니다. 어디가 다른가요?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 다른 번역(공동번역)에는 ‘우리 하느님께서 원수갚으실 날’
이 구절이 없다. 빼놓고 읽다, 일부러 빠트렸을까요?
유대인 청중들은 메시아가 자기들 빼고 모든 사람, 이방인들에게 복수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수 문장을 건너뜀으로써, 징벌의 전통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 당시에 통용했던 성경의 문자적 해석(관습)을 어겼다.” - 로버트 쥬이트, <우리의 하나님 이미지 치유하기> 78쪽
복수심 가득한 징벌의 시대를 끝내고, 모두에게 은총을 베푸는 메시아 통치를 선포하다!
5. <우리의 하나님 이미지 치유하기> 저자들은 예수 사명의 핵심을 “하나님 이미지를 자녀 학대자에서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분으로 변화시키는 것”(28쪽)으로 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지닌 보복하는 하나님 이미지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셨다.
1) 누가는 의도적으로 나사렛 사건을 예수 활동 맨 앞에 놓아, 복음의 표제(주제) 진술로 삼습니다. 막 6:1-6, 마 13:54-58과 달리, 소설로 치자면, 시작부터 복선이 너무 진하게 깔립니다.
고향 나사렛에서 배척을 당하다, 심지어 시작부터 죽임을 당할 뻔하다니, 무시무시합니다. 그들이 왜 살기등등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바로 이 살기가 십자가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묻습니다. ‘하나님의 분노인가, 사람의 분노인가?’
2) ‘하나님이 정말 벌을 주실까?’
”우리는 각자 숭배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닮는다, 그 하나님처럼 되어간다.“
”나의 하나님 이미지가 바뀌었을 때, 나는 변할 수 있었습니다.“ 데니스 린(<우리의 하나님 이미지 치유하기> 19쪽)의 고백입니다. 루이 에블리도 같은 말을 했지요.
”주의하라! 그대는 자신이 상상하고 있는 그런 하느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느님은 화를 내고 질투하실 뿐 잘못을 징벌해 우리를 멸망시키는 무서운 분이 아니시다. 하느님은 자비롭고 사랑이 많은 분이시다” 곽승룡 신부의 고백…
예수를 따르는 이들, 제자들은 예수에게서 남다름을 보았습니다.
은혜의 하나님을 보았고, 희년,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복음, 기쁜 소식
3)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성찰 질문) 내가 고백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나는 어떤 하나님을 고백하는가?
* 2021년 2월 7일 도심속 살림교회 주일 말씀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