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상황'에서 가져온 80년대 복음주의 운동의 흐름에 대한 글입니다.
길지만 복음주의의 흐름이 어떠하며 대표적인 저작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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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형 복음주의운동의 신학을 찾아서
70~90년대 소비된 도서를 중심으로
87년형 복음주의운동의 신학을 밝히는 일은 쉽지 않다. 복음주의 자체가 단일한 사상이 아니라 몇 개의 층위로 구성되어 있고 지역적 편차도 있어 개념화하기 어려운 데다가 개혁주의, 아르미니안주의, 경건주의 같이 특정한 신학 체계를 갖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결국 87년형 복음주의운동은 어떤 공동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태도와 성향, 운동을 의미하는 것인데 거기에서 신학을 도출한다는 게 가능한 것인가?
그러나 운동의 핵심에는 그것을 형성케 한 사상이나 인식 체계가 작동하기 마련이다. 하여 87년형 복음주의운동을 조금 더 면밀히 성찰하기 위한 당장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일반화 또는 도식화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 운동을 가능케 했던 신학 또는 사상을 엄밀한 학문적 체계가 아닌 일종의 신학적이고 사상적인 에토스 개념으로 상정하고 이 문제를 풀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복음주의에 대한 복잡하고 난해한 작업을 우회하여 얻은 ‘87년형 복음주의’라는 우리의 논의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87년형 복음주의를 구성한 당시의 주요 단체들과 그곳에서 생산하거나 소비한 도서들을 60년대부터 시대별로 확인하려고 한다. 이는 그동안 막연했던 87년형 복음주의운동의 신학적 또는 사상적 메커니즘을 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87년형 복음주의신학의 준비기(60~70년대)
50년대 중후반 대체로 영미 복음주의 선교단체의 이식이나 영향 아래 시작한 초교파적 복음주의 학생단체들은 체계적인 성경 공부와 제자 훈련, 밀도 높은 친교, 유기적인 모임 등으로 교단 신학 중심의 경직된 한국교회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나 이 시기 캠퍼스 복음화를 목표로 하던 복음주의 학생단체들은 정통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주요 교단과 교회로부터 신복음주의 아니냐는 의심스러운 견제를 받으며 혹독한 준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경건주의라는 바탕에서 탄생한 복음주의운동은 존 로빈슨의 <신에게 솔직히>, 하비 콕스의 <세속 도시>, <바보제>(이상 대한기독교서회) 등으로 대표되는 세속화신학과 구스타포 구띠에레즈의 <해방신학>으로 대표되고 마르크스주의를 변혁 이론의 바탕으로 취한 해방신학, 70년대의 암울한 정치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 함석헌의 씨 사상과 김재준의 역사참여신학, 안병무, 문익환의 민중신학 사이에서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을 서서히 시작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70년대 중반 ‘지성 사회 복음화’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문서 사역에 공을 들이던 IVF와 전통적으로 지성을 강조해 온 개혁주의 학생 모임인 SFC 같은 복음주의 학생단체는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을 더욱 진지하게 하는데, 그 중심에는 손봉호로 대표되는 개혁주의신학이 자리하고 있었다. 예장 고신 출신의 손봉호는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적인 장로교신학의 최후 보루라 여기는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와 네덜란드 자유대학교에서 각각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1973년 귀국했다. <신학지남>, <빛과소금> 등에 기고한 글과 설교, 강연 등을 통해 젊은 기독 지성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지성적이면서도 감화력 있는 그의 강연과 글은 1979년 <현대정신과 기독교적 지성>(성광)으로 엮여 출간됐는데, 이 책은 한국교회가 교리 중심의 기존 칼빈주의와는 다른 사회 변혁적인 사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물론 여기에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칼빈주의>(세종문화사, 1971)와 카이퍼의 신학을 대중적으로 해설한 헨리 반틸의 <칼빈주의 문화관>(성암, 1973), 헨리 미터의 <칼빈주의 기본사상>(개혁주의실행협회, 1975)이 국내에 일찍 소개된 것도 한몫했다. 7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소개된 프랜시스 쉐퍼의 책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중세 이원론을 비판하면서 서양의 지성사를 기독교의 관점에서 분석한 쉐퍼의 <이성에서의 도피>(생명의말씀사, 1970)는 이원론에 함몰되어 있던 한국교회의 기독 지성인들에게 많이 읽혔는데, 쉐퍼의 변증학이나 문화 신학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개혁주의에 근거해 있었다.
이렇듯 70년대는 칼빈과 네덜란드 개혁주의 전통에 영향을 받은 복음주의자들이 문화와 사회에 대한 의식을 조금씩 갖추는 준비기였다. 반면 진보와 보수 신학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에서는 철저히 금기시하며 진보 측에서 독점하다시피 하던 칼 바르트, 디트리히 본회퍼, 라인홀드와 리처드 니버 형제 같은 이들의 사상을 복음주의권 학생들이 강연과 책을 통해 조심스레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대목이다. 이는 이후 복음주의 학생들이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참여 의식, 저항 의식에 대해 고민하며 진취적 의식을 갖게 만든 무시하지 못할 지적인 자극이었다. 이것은 복음주의운동이 교단 신학에 비해 훨씬 자유로운 초교파적 운동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87년형 복음주의운동의 전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87년형 복음주의신학의 발전기(80~90년대 초반)
60년대 캠퍼스 복음화, 70년대 민족 복음화에 집중되어 있던 복음주의 학생운동은 제자 훈련, 성경 공부, 특히 지속적인 문서운동을 통해 기독 지성인으로서의 책임을 더욱 인식하고 시대 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힘, 곧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통해 깨우친 현실 인식과 기독교적 양심은 사회적 실천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는 결코 성경적이거나 복음적이지도 않다고 확신하게 했다.
그러나 70년대 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념적으로 더욱 과격해진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을 갖고 있는 학생운동권에 동참할 수도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 복음주의 학생들의 정체성과 운동 방향에 대한 고민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80년대 초반 몇몇 작은 연구 모임에서 시작해 중후반 폭발적으로 전개된 ‘기독교세계관운동’은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곧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복음주의운동을 이끌어 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으려는 몸부림의 결과였다. 이런 노력은 그들로 하여금 1974년에 열린 로잔언약을 발견하게 만들었다. 로잔언약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의 고민이 정당할 뿐 아니라 신학적이고 성경적이라는 근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
80년대 학생운동의 격랑 속에서 많은 복음주의자들, 심지어 이현주 목사 같은 비복음주의자들도 쉐퍼의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었고(신망애판 에디스 쉐퍼의 <작은 공동체 라브리> 역자 후기 참조), 이제 막 번역된 제임스 사이어의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 브라이언 왈쉬와 리처드 미들턴의 <그리스도인의 비전>, 알버트 월터즈의 <창조, 타락, 구속>(이상 IVP) 같은 기독교 세계관 책들을 읽었다. 당시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 참여 의식을 대변하는 기독교 세계관이 얼마나 관심이 높았는가는 순복음교회 계열의 서울서적에서 ‘크리스찬 윤리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크리스토퍼 라이트, 알란 스토키, 올리버 오도노반, 그레그 포스터 등이 인권, 구약 윤리, 결혼과 가족, 낙태, 사회 구조와 책임 등을 다룬 문고판을 냈다는 사실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80년대 한국 복음주의운동의 지적 토대가 복음주의 신학의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인 로잔언약임은 주지하는 바다. 로잔언약은 1974년 열린 로잔대회에서 전 세계 복음주의자들이 참여해 작성됐다. 우리나라 신학자들도 적지 않은 수가 이 대회에 참여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다가 8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겨우 알려지기 시작한다. (로잔언약의 대표적 입안자인 존 스토트의 주요 책들이 이미 70년대 많이 소개되었음을 생각하면 바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더욱 이상하다.) 로잔언약은 개인 전도에 치우쳐 사회 문제를 등한시했던 태도를 반성하고 사회 참여의 중요성을 동일하게 강조하면서도 에큐메니칼의 선교관과는 차별을 두던 보수주의와 진취적인 복음주의자 모두에게 환영을 받았다.
로잔언약은 1세대 복음주의자들에게 복음이 매우 정치적인 사건이고 개인과 구조적인 문제를 모두 포괄하는 것이므로 통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7,80년대를 지나면서 가졌던 자신들의 고민이 올바른 것이었음을 확증해 주었다. 2세대 복음주의자들에게 로잔언약은 그것 이상이었다. 한마디로 한국 복음주의자들이 가야 할 길이었다. 로잔언약을 설파하고, 그와 관련한 문서를 소비하고, 그와 직간접적으로 관련한 인물들의 생각을 우리식으로 재생산하는 것이 그들의 지상목표로 보일 만큼 그들과 그들이 속한 단체는 이 언약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
존 스토트의 <현대사회문제와 기독교적 답변>(기독교문서선교회), 찰스 말릭의 <대학의 위기>, 프레드 캐서우드의 <산업 사회와 그리스도인>(이상 성경읽기사), 하비 칸의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엠마오), 리처드 마우의 <정치 전도>(나비, 사실 이 책은 <기독교와 정치>라는 제목으로 1975년 기독교서회에서 출간된 적이 있다.), 로버트 웨버의 <기독교 문화관>, 아더 홈즈의 <기독교 세계관>(이상 엠마오), 하워드 스나이더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그리스도 공동체>, 칼 헨리의 <신, 계시, 권위>(이상 생명의말씀사), 톰 사인의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제자도>, 월드런 스코트의 <사회정의와 세계선교를 향한 제자도>(이상 두란노), 로날드 사이더의 <기아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보이스), 폴 마샬의 <기독교 세계관과 정치>(IVP), 르네 빠디야의 <통전적 선교>(나눔사), 올란도 코스타스의 <성문 밖의 그리스도>(한국신학연구소) 등이 당시 출간됐고, 이 책들의 저자들은 당시 여러 문서 속에 자주 인용되던 복음주의자들이었다.
그러면 오늘날 87년형 복음주의운동을 태동케 한 주요 단체들과 사람들은 어떤 책들을 생산했고 소비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자.
1986년 김세진, 이재호, 이동수 등의 분신자살, 서울대 기독인 모임의 집회와 총학생회 집회 간의 충돌 등을 계기로 기독교학문연구회(기문연)가 탄생했다. 기문연 초기 구성원들은 SFC 출신으로 개혁주의 문화관과 기독교 세계관 등을 공부한 최은석과 이덕준, 대학촌교회 박문재 전도사의 주도로 밥 하웃즈바르트의 <자본주의와 진보사상>, <현대 우상 이데올로기>(이상 IVP), 대천덕 신부의 <토지와 자유>(무실) 등을 읽으면서 한국 사회를 기독교적으로 분석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는 우리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판단을 한 후 모임 성격을 사회과학 세미나로 확장했으며 우리 현실을 분석하는 데는 마르크스주의가 유용하다고 판단해 방법론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차용하기까지 이르렀다. 또한 봉천5동의 빈민촌에 세운 기초 공동체 등을 미뤄볼 때 당시 마르크스주의적 사회과학서의 일환으로 해방신학 관련 책을 냈던 일월서적 책까지 섭렵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청교도 개혁주의의 정통을 지킨다는 일부 보수 복음주의에서는 바르트와 본회퍼의 고백교회 신학을 신전통주의라는 명분으로 배척하고, 해방신학, 민중신학 등을 사회복음이라는 이름으로 배격하며 지속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경계하는 영미 복음주의자들의 책들(이종윤 목사가 번역한 클라우스 보크뮤엘의 <마르크스주의의 도전>, 전호진 교수가 번역한 엔드류 커크의 <해방신학>, 김재영 목사가 번역한 미국 재건주의자 게리 노스의 <성경이 주장하는 사회변혁론> 등이 대표적이다)을 출간했는데, 이는 한국전쟁 이후 반공 정신과 레드컴플렉스 DNA를 갖게 된 한국교회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이는 로버트 웨버와 니콜라스 월터스토프가 자신들의 책에서 이미 해방신학을 기독교의 변혁적 모델로 삼은 것과 비교해 볼 때 그리고, 일제강점기 이후 잃어버린 한국교회의 사회주의적 전통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매우 안타까운 대목이다. (이점에서 쉐퍼는 기독교 문화관에 있어 개혁주의자인 반틸에 의해 철저히 비판을 받으면서도 칼 바르트를 신정통주의라 평가함으로써 분별력 있는 개혁주의 인물로 존재감을 확보한 반면, 쉐퍼의 문화신학에 결코 만족하지 못한 급진적인 복음주의자들은 칼빈과 마르크스주의, 바르트를 온전히 통합하면서 네덜란드 개혁주의와는 다른 변혁적 신학을 제시하고 그러한 삶을 몸소 보여 준 프랑스 사회학자 자끄 엘륄을 새로운 대안적 인물로 주목했다.)
기독교 세계관이란 말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단체는 IVF다. 70년대 중후반 지성 사역을 목표로 삼은 IVF는 지성 사역을 위해서는 문서운동이 필수적임을 인식하고 80년대 초반부터 출판 사역(IVP)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새로운 삶의 길>, <행복에의 초대>로 성경 공부에 대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송인규는 1983년 기독교의 이원론적 세계관의 문제를 다룬 <죄 많은 이 세상으로 충분한가>와 경건의 시간을 다룬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출간하며 다시 한번 지적인 자극을 한국교회에 주었다.
1981년 카이스트교회와 대학원생 양승훈, 조성표, 원동연 등은 세속화된 현대사회에 기독교를 효과적으로 변증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적 학문을 강의하는 기독교 대학의 설립이 필수라고 생각하고 연구 모임인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기대설)를 조직했다. 1987년 김헌수, 양성만, 황영철, 홍병룡, 류해신, 김기찬 등이 주도하고 강영안, 윤완철, 조무성, 김승옥 등이 합류해 캐나다의 개혁주의 학문 연구소인 기독교학문연구소(Institute for Christian Studies)를 모델로 삼아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규범을 비전으로 하고, 기독교적 지성의 체계적 계발과 확장을 위해 기독교학문연구소(기학연)를 설립했다. 기대설과 기학연은 지향하는 바가 유사하고 읽는 책도 비슷했다. 여기에는 개혁주의적인 신학을 추구하는 한 문서 선교사의 역할이 지대했는데, 웨슬리 웬트워스라는 인물이다. 웬트워스는 IVP 초창기에 자문이라는 이름으로 위의 두 단체에서 연구하고 검토한 책들을 유통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초기의 기독교 세계관 번역자들이 이 단체 관계자들이었다.)
칼빈주의 전통에 있으면서도 부흥사 R. A. 토레이의 영향을 받아 은사주의에 친화적인 대천덕 신부가 다른 이들과 함께 헨리조지협회 증경 회장인 고왕인(IVF 출신이자 옥한흠, 방선기, 박영선 등 중요한 복음주의자들을 배출한 성도교회 출신)이 세운 도서출판 무실, 도서출판 예수원, 부정기 간행물 <요벨>을 통해 토지 단일세나 토지신탁조합 등 토지운동을 설파하고 성서한국민회를 조직해 전국적으로 318 기도 모임을 갖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친 것도 1984년 즈음이다. 그들은 은사주의자들이 자칫 빠질 수 있는 탈역사적인 시각을 극복하고 현실 문제에 적극적인 답을 제시하면서 기독교적 정치, 복음주의 공동체, 제3의 물결운동 같은 새로운 시각을 한국교회에 불어넣었다.
런던신학교를 통해 영국 복음주의를 경험하고 두란노서원을 설립한 하용조 목사는 1989년 방선기 목사를 두란노 강좌 책임자로 세웠다. 방 목사는 기독교 세계관 및 학문, 직업, 과학 기술, 경제, 매스미디어, 이데올로기 등을, 이후 90년에는 성 윤리, 경제 윤리, 농촌 경제 등의 기독교 윤리와 성경과 세상을 주제로 심리, 결혼, 역사, 정치 등을 전공자들의 토론 방식으로 다루게 하고는 여기서 다루어진 주제들을 책으로 다시 펴냈다. 존 스토트가 책임편집한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 리차드 마우의 <미래의 천국과 현재의 문화>를 위시해 해리 블레마이어의 <그리스도인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가>, 자끄 엘륄의 <하나님의 정치 사람의 정치> 등이 모두 그 당시 흐름 가운데 출간된 것들이다.
도서출판 라브리는 프랜시스 쉐퍼의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총신대 출신이 1988년에 시작한 출판사다. 리처드 팔머의 <해석학이란 무엇인가>를 첫 책으로 출간한 후, 코넬리우스 반틸의 변증학 후임인 로버트 눋슨의 <기독교 세계관>, 그의 딸과 사위 로버트 맥컬리가 공저한 <가정과 학교교육의 기초>, 기독청년학생협의회와 경제실천시민연합에서 활동한 박승룡이 번역한 로버트 웨버의 <기독교 사회운동> 등의 출간을 통해 복음주의의 사회 참여와 변혁 이론을 국내에 적극 소개했으나, 단명했다. 이후 스위스 라브리에서 훈련을 받은 성인경을 중심으로 시작한 한국 라브리에서는 호도애라는 출판사를 설립해 영미 라브리 대표들의 국내 강연을 엮어 책으로 내기도 했다.
기독교세계관운동으로 포괄할 수 있는 80년대 한국 복음주의운동의 배후에 개혁주의신학이 주장하는 일반은총론이 자리 잡고 있음을 우리는 간파해야 한다. 김헌수의 지적대로 카이퍼가 자유주의적 개혁과 사회주의운동의 틈바구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게토를 이루어 사는 것을 비판하면서 영역주권론을 강조한 것처럼, 당시 사적 유물론의 틈바구니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책임을 확보하기 위해 기독교 세계관을 읽은 어떤 사람에게는 기독교 세계관이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으로 입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 불신자와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일반은총론으로 정당화했기 때문에 운동권으로 가는 사람도 생겼던 것이다. (<성경적 세계관 자료집> 참조)
요는 80년대 한국 복음주의운동 또한 70년대 본격적으로 발아한 개혁주의 문화신학에 크게 기대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영미 복음주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국 복음주의뿐 아니라 기독교가 영미, 특히 미국 기독교의 지대한 영향 아래 있었다는 것을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한국 복음주의운동은 많은 이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개혁주의신학의 그늘 아래서 성장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축복이자 저주이기도 하다.
70년대 말 초교파 단체라는 태생적인 특성상 신학적 교류가 비교적 자유로웠던 복음주의 안에서 진보 측의 전유물이던 바르트, 본회퍼, 니버가 조심스레 통용되더니, 80년대에는 민족주의에 대한 관심과 함께 김교신, 함석헌, 김재준, 문익환, 심지어 안병무 같은 이들의 책과 사상의 공유가 본격화되었다. 80년대 후반에는 유르겐 몰트만, 에른스트 트렐취, 돔 헬더 까메라, 게르트 타이센, 한스 큉, 레오나르드 보프, 호세 미구엘 보니노, 알란 뵈삭 등 교단, 교파를 아우르는 진보적인 책들이 적극 소개되고 소비됐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개혁주의적 사회 및 문화 변혁운동이 나쁘게는 현상 유지(state quo)나 좋게는 건강한 시민운동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고 인식한 이들이 근본적으로 아래로부터의 영성 또는 아래를 지향하는 민중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80년대 한국 복음주의운동의 신학적 배경을 살필 때는 하나님나라신학을 빼놓을 수 없다. 게할더스 보스, 헤르만 리덜보스, 조리 래드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교회와 개인 구원론 중심의 복음을 하나님과 복음을 중심으로 통전적으로 이해하는 신학적 근거가 된 하나님나라신학은, 구속사라는 이름으로 S. D. 그라프의 <약속과 구원>(백합출판사), 윌리엄 반 게메렌의 <구원 계시의 발전사>(ESP), 잭 스코트의 <구원 사역>(나침반) 등으로 대중화되었고, 김홍전, 최낙재, 윤종하라는 토종 신학자들을 통해 널리 설파돼, 복음주의권의 필독서가 됐다. (위의 저자 대부분이 웨스트민스터신학교와 직간접적인 관계에 있으며, 특히<약속과 구원>의 영어번역자 에반스 러너가 카이퍼의 영역주권을 북미에 소개한 대표적 인물이다.)
한편, 하나님나라신학과 성경신학이라는 같은 범주에 속해 있지만 전혀 다른 맥락에 있는 것이 비평주의적 성경신학 또는 성서신학이다. 복음주의자들이 기존의 철학 체계를 따른 조직신학의 답답함을 탈피하고, 귀납적 성경공부를 통해 본문 중심적인 신학에 대한 관심을 확대해 가던 차에 게할더스 보스를 중심으로 소개된 개혁주의적 성경신학은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성경을 새롭게 보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요아힘 예레미아스, 게르트 타이센, 월터 부르그만 같은 비평주의에 입각한 성경신학자들의 저서 <예수 시대의 예루살렘>,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이상 한국신학연구소), <예언자적 상상력>(대한기독교서회) 등은 개혁주의 성경신학과는 또 다른 성경의 풍성함을 깨닫게 해줌으로써 복음주의자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성경신학의 지평을 열어 주었다. (김세윤은 기본적으로 개혁주의 지향적이었으면서도 비평적 도구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2~3세대 복음주의자들에게 성경신학의 깊이와 넓이를 깨우쳐 준 성경신학자로 인식되고 있다.)
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복음주의 지성운동을 견인하고 이로부터 탄력을 받으며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던 출판은 90년대 두란노서원의 변신으로 전환기를 맞는다. 존 스토트의 영향을 받아 현대 문화에 의욕적으로 관심을 보이던 두란노서원은 헨리 나우웬 같은 가톨릭 영성가의 책을 번역 보급하며 복음주의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지만, 당시 미국 보수주의 교회에 유행하던 상담과 치유 등의 가정 사역을 적극 수입, 강연을 통해 효과적으로 보급함으로써 복음주의의 내면화 내지는 연성화를 주도했다는 평을 받는다.
이런 흐름에서 기존의 사변적이고 사회학적인 세계관 책들은 절판의 수순을 밟았다. 물론 여전히 기독교 출판 전반에서는 쉐퍼 계열의 오스 기니스나 딕 카이즈, 찰스 콜슨, 낸시 피어시 같은 이들과 존 스토트 계열의 크리스토퍼 라이트, 리처드 뷰즈, 데이비드 웰즈, 그리고 자끄 엘륄, 짐 월리스, 로날드 사이더 같은 급진적 복음주의자들을 위시해 존 하워드 요더, 스탠리 하우워즈의 책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소비는 전과 같이 활발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기독교 출판계에도 ‘87년형 복음주의 출판사’라고 할 만한 곳들이 존재했던 시기가 있다. 십자가 중심과 회심을 강조하면서도 한결같지는 않지만 사회변혁의 메시지들을 함께 말하던 출판사들이 말이다. 어떤 출판사는 적자에 허덕이다가 없어진 지 오래고, 어떤 출판사는 영세함을 벗어나지 못해 대중적인 책을 내는 것으로 출판 방향을 바꾼 곳도 있다. 87년형 복음주의운동이 그들과 다르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정지영 편집위원, 출판기획자 theblessedj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