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괘석리 바회마을(두촌면 괘석리 녹색농촌 체험마을) 전경 |
‘범의터’는 ‘소뿔산’을 주봉으로 삼태기처럼 넓게 펼쳐진 마을이다. 능선의 한자락은 ‘가마봉’에 닿아있고 한 능선은 ‘달음재’를 이루며 ‘대명산’, ‘갈미봉’, ‘고석산’으로 이어진다. ‘국수당’ 고개마루까지 이어지는 산양목장과 소뿔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 또 구릉을 이루는 넓은 뜰은 하늘을 아늑히 품는다. 이곳에서 터를 잡고 목장을 하던 마을사람들도, 돌밭을 일구어 밭을 개간했던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여기저기 묻어있다. 그 터전위에 골프장이 들어온다고 한다. ‘열두괘세기(괘석리)’라고 하는 산골마을에 누가 감히 골프장이 들어설 것이란 상상을 했을까? 그러나 상상을 뛰어넘어 이곳에도 골프장이 들어선단다. 매입도 다 끝났고 군의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청정 자연과 잘 어울릴 수 있는 괘석리의 골프장 건설은 동서고속도로와 함께 새로운 명물로 등장할 것이겠지만 강물이 흘러가는 아래지역에서는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농약오염과 식수오염, 환경파괴 등이다. 홍천팔경의 한 곳인 ‘괘석리 용소계곡’은 산과 자연이 어우러진 명경지수다. 물은 일급 청정수고 두촌면 주민들의 상수원 보호구역이다. 이곳에 골프장이 들어선다면 식수오염과 식수부족현상은 불을 보듯 뻔하다. 농약으로 인한 토양 오염이다. 괘석리는 광암리와 더불어 홍천의 청정고랭지 재배지역이다. 잔디 조성에 살포 되는 농약의 토양 오염으로 지금까지 확고한 기반을 다진 청정 농산물에 대한 이미지 손상이 클 것이다. 소뿔산에 대한 환경 파괴이다. ‘소뿔산’(1191.5m)은 강원 홍천군과 인제군의 경계를 이루며 ‘가마봉’(1191.5m)에서 ‘건니고개’ 사이에 우뚝 솟은 산이다. 특히 가마봉에서 소뿔산과 ‘작은가마봉’(924.7m)을 지나 44번도로인 건니고개에 이르는 약 15㎞거리의 능선은 그야말로 알려지지 않은 오지의 숨은 산행코스라 할 수 있다. 수 십 종의 약품식물이 자생하고 있는 이곳에 골프장이 들어선다면 환경파괴는 피할 수 없다는 게 주민들의 반대 이유다. 분명 골프장이 들어서는 조건에도 홍천군은 세수 증대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반대 이유를 충족시킬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범의터를 둘러보고 다시 국수당고개를 넘어 달음재로 들어섰다. 갈미봉과 소뿔산 사이의 달음재를 바라보며 오른편 비탈진 둔덕에 이어진 골짜기를 만난다. ‘갈미봉’은 ‘큰골’과 ‘작은골’, ‘갈미봉골’과 ‘지당골’을 이루며 ‘안덕’ 쪽으로 발을 뻗는다. 갈미봉은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작은 산이지만 마을에서는 소뿔산과 함께 주봉을 이룬다. 달음재 고개마루에서부터 가파른 내리막길은 탑골 골짜기를 건너며 조금 순탄해진다. 논은 보이지 않는다. 버덩이다 싶은 곳에는 집들이 들어서있고 산발치에는 이곳 사람이 되려고 들어온 사람들의 이국적인 집들이 자리하고 있다. 모난 돌이 물살에 쓸리고 깎이어 다듬어지듯이 괘석리 깊은 산골에 살자면 바위의 부대낌 또한 감내해야 할 것이다. 처음부터 토박이일수는 없지 않은가? 손바닥에 굳은살이 지고 못이 박히도록 삶과 부대끼다 보면 외로움도 덜어내고 산과 정이 들지 않겠는가? 토박이란 바로 자신을 이겨내고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경지를 이룬 사람이라 말하고 싶다. 아직도 가난과 삶의 질곡이 주름으로 가득하다 해도 그 삶만큼은 얼마나 따뜻한가? 그게 자연이 물려준 진실한 삶이 아니겠는가? 개울을 보면 그 모습이 보인다. 골골 마을을 찾아다니며 자연에 대하여 조금 알게 된 삶이다. 그마져 거역할 수 없다는 것, 그게 우리 삶의 순리다. 괘석리 큰골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은 정말 낮은 곳을 따라 흘러가는 물길이다. 높낮이가 커 ‘보’조차 없다. 마을 공동 재활용쓰레기수집장을 지나 마을 공동 창고와 마을회관을 지나면 ‘녹색농촌 체험마을’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이곳이 ‘바회마을’이다. 바회마을의 관리실을 지나 개울을 건너면 ‘바회마을 팜스테이’가 있다. 우선 바회란 뭘까? ‘바회’란 ‘바위’의 옛말이다. 바회라는 말을 들으니 고려속요 ‘정석가’가 생각난다. 학교 다닐 때 그토록 외우던 노래였는데 기억나는 것은 마지막 6연이다.
구스리 바회예 디신달 / 구스리 바회예 디신달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긴힛단 그츠리잇가 / 즈믄 해랄 외오곰 녀신달 (끈이야 끊어지리이까 / 천 년을 외로이 사신들) 즈믄 해랄 외오곰 녀신달 / 信잇단 그츠리잇가 (천 년을 외로이 사신들 / 믿음이야 끊어지겠습니까)
‘정석가’ 중 6연 : 고려 속요 작자미상
그때는 왜 그리 안 외워지던지. 그러나 지금은 사람의 정이 더 그리워지는 시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어느 때 보다 쉬운 시대에 절대로 임과 헤어질 수 없다는 간절한 기원의 표현이 가슴을 친다. 아마도 괘석리에서 산다는 것은 이 보다 더 깊은 믿음이 있어야 했으리라 생각한다. 오죽하면 열두괘세기라 하였겠는가? ‘괘석리(掛石里)’란 ‘많은 바위들로 층을 이루고 괴어 있는 것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괘석리’를 ‘괘시기’라고 부른다. 나는 이 말의 어감이 좋다. 괘시기가 촌스럽고 순박함과 청순함이 묻어나는 이름이라면 바회마을은 산촌만이 갖고 있는 자연의 푸르름과 신비로움과 편안함과 옛스러움을 간직한 이름으로 다가온다. 바회마을이란 이름은 녹색농촌 체험마을로 선정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에서는 바회마을 팜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산양을 이용한 체험관광과 유제품이 도시민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는 마을이다. 녹색농촌 체험 참가자는 감자 캐기와 산양 젖 짜기, 표고버섯 따기, 메밀국수 내리기, 감자밥, 손두부 만들기 체험으로 하루해가 짧다. 밤이면 팜스테이 마을의 개나리동, 진달래동, 황토찜질방 등 최신식 펜션에서 깜깜한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며 잠자리를 청한다. 산촌에서 펼쳐지는 계절별 체험 프로그램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자연과 친해질 수 있고, 바회마을의 청정 농산물을 통해 잃어버린 입맛이 되살아난다. 산양목장을 배경으로 양지바른 산 아래 자리 잡은 바회마을 팜스테이의 풍경은 이국적이다. 산과 물과 계곡을 찾는 나그네에게, 자연 속에 살고 싶은 도시민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한번쯤 머물게 하고 싶은 곳이다. 바회마을을 지나 침술원 건너편 둔덕에는 바위 하나가 있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워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기생바위’라고 한다. 바위가 기생처럼 생긴 것도 아닌데 왜 기생바위일까? 아마도 ‘탑거리’와 관련지어 유추해볼 수밖에 없을 듯하다. 속세를 버리고 중이 되겠다는 임을 따라와 임의 소매를 잡고 만류하였지만 섬섬옥수 같은 기생의 손을 놓고 고향산(관향산) 아래 절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나 저제나 임의 그림자라도 만날 수 있을까 날마다 바위에 올라 임을 기다리다가 그만 죽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그 바위를 기생바위라 불렀다 한다. 바위는 절터를 향하여 머리를 들고 있다. 기생바위를 지나 내려가면 ‘탑골’의 물줄기를 건너 ‘탑거리’로 들어선다. 탑거리는 우리 문화의 뿌리를 만날 수 있는 마을이다. 마을은 길을 따라 한쪽으로는 개울이 흐르고 개울건너 산비탈엔 경로당과 마을회관이 자리한다. 다른 한편도 산비탈을 이루고 그 중심에 ‘고향산(관향산)’이 터를 잡는다. 고향산(관향산) 아래에는 일명 ‘괘석리 폐사지’가 있다. 폐사지에서 발굴한 유물 가운데 ‘홍천 괘석리 사사자탑(洪川 掛石里 四獅子塔)’이 있다. 이 탑은 현재 홍천군의회 옆 공원에 ‘홍천 희망리 삼층석탑’과 함께 서있다. 홍천 괘석리 사사자탑은 괘석리 고향산(관향산) 아래 절터에서 1969년 이곳으로 옮겨왔고 1971년 7월7일에 보물540호로 지정됐다. 화강암으로 조성된 홍천 괘석리 사사자탑은 3.5m의 높이로 아담하다.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있다. ‘원래 두촌면 괘석리에 있던 탑으로, 현재의 자리인 홍천군청 안으로 옮겨 세웠다. 탑이 서있던 원래의 위치는 일대가 절터였을 것이나, 지금은 밭으로 변하고 주변에는 기와조각들만이 흩어져 있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4마리의 돌사자가 있어 4사자탑(四獅子塔)이라 부르고 있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이 조각되어 있는데, 그 안에 꽃무늬조각이 장식되어 있어, 고려시대의 특징이 잘 담겨져 있다. 위층 기단에는 각 모서리에 돌사자 1마리씩을 두어 넓적한 윗돌을 받치게 하였는데, 이 탑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 사자들이 둘러싸고 있는 중앙의 바닥과 천장에는 연꽃받침대가 놓여 있어, 원래는 이곳에 불상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새겼고, 가파른 경사면 탓인지 얇고 밋밋하다. 네 귀퉁이는 살짝 젖혀져 뾰족하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네모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만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곳곳에 파손된 부분이 있고, 닳은 흔적이 보이나 대체로 본 모습을 잘 갖추고 있다. 기단에서 보이는 안상 조각수법과 돌사자, 연꽃받침 및 지붕돌의 3단 받침 등에서 고려시대의 양식을 물씬 풍기고 있다. 각 재료의 구성이 통일신라의 방법을 많이 따르고 있지만 고려시대 중기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고향산 자락의 절터는 쑥대와 버드나무와 억새가 무성하다. 한마디로 쑥대밭이다. 어디에도 이곳에 괘석리 사지였다는 안내문도 없다. 발굴단과 답사팀이 다녀갔다면 그곳에서 발굴한 유물과 기록은 관리주체인 지자체에는 알려 주어야하는 것이 도리 아닐까? 도굴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고향산 자락에 절이 있던 자리는 ‘탑동’이다. 탑동을 중심으로 하여 ‘탑거리’를 이룬다. 탑거리에서 나오는 돌 바위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고향산의 능선이 웃괘석 용소계곡으로 이어진다. 능선 마루에는 우뚝 선 ‘독바위’가 있고 고개가 있다. 달음재와 범우터 탑거리에서 협성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이 개척한 길이다. 고개를 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노루목 산굽이를 돌아 광암리를 거쳐 학교에 다녀야 했다. 협성초등학교는 1956년 12월19일 개교하여 1998년 2월19일 제41회 졸업식을 끝으로 1,169명을 배출하고 교문을 닫게 된다. 지금은 무성 방초가 우거져있고 교실에는 언제 다녀갔는지 칠판엔 낙서가 가득하다. 학교와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물씬 묻어난다. 고향산(관향산)과 마주하는 산은 갈미봉 줄기의 능선이다. 소뿔산 범의터에서 흘러내린 물과 갈미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기생바위 아래에서 만나 마을을 휘돌아 ‘목우너미’로 흐른다. 큰길에서 오른쪽으로 둑방길을 따라 들어가다가 개울을 건너 고개를 넘어야 한다. 아직 포장이 안 된 길이다. ‘목우너미’는 ‘목은너미’, ‘오류동(梧楡洞)’으로도 부른다. 오류동이란 지명으로 풀이해본다면 벽오동 나무와 느릅나무가 있는 마을이라고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그런 생각만 가지고 길을 들어섰다. 땅이 풀리어 질척하다. 얼음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가 새로운 울림이다. 고개를 넘어 들어서니 갈미봉 기슭에 맞닿은 비탈마을이다. 밖에서는 마을이 잘 보이지 않지만 마을에서는 환히 내려다보인다. 목은너미란 아마도 나무숲에 숨은 마을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다. 마을에는 펜션이 들어서 있고 두어채의 집이 골짜기를 차지하고 있다. 비탈은 용소계곡(광암리 윗괘석 황병재에서 발원하여 천현리로 흐르는 계곡-용소계곡과 경수계곡은 봄 특집으로 묶을 예정이다)에 닿아있다. 목우너미 입구에서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길에는 ‘노루목재’가 있었다. 지금은 산자락을 깎아내 내리받이지만 예전에는 노루목처럼 목을 길게 늘어뜨린 고갯길이다. 노루목을 지나 다리를 건너 ‘광암리 장가터’로 넘나들었다. 그 옛다리는 ‘연애바위’ 아래에 아직도 남아있다. 연애다리를 건너면 ‘너벙바위’다. 지금은 괘석리와 광암리를 잇는 큰 다리가 유일한 길이다. 탑동(절터)에서 고향산을 넘어 ‘벌아우’로 가는 고개도 있었다. 고향산의 능선은 윗괘석 용소계곡을 곁에 두고 이어진다. 다시 큰길로 나와 굽이를 돌아 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면 내촌면 광암리다. 다리 위에 서서 윗괘석리 계곡을 바라본다. 옛 다리가 보이고 잘 다듬어진 너럭바위 위로 푸른 물줄기가 흘러든다. 저곳이 내촌 괘석리이다. 괘석리는 골만큼 정이 깊은 곳이다. 삶이 고달픈만큼 정이 마음에 배인 것이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깊은 곳이다. 지금은 군사 보호구역으로 아무도 살지 않는 골짜기가 되었다. 신라의 마의태자가 국권회복을 위하여 심신을 단련했던 이곳이 지금은 국토 수호를 위한 국군 과학화 훈련장으로 쓰이고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윗괘석리로 들어서는 마음이 왜 이리 설레는 걸까?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삶의 흔적들과, 피고 지는 이름 없는 야생초만이 하늘을 향하여 머리를 흔든다. 저 속에서 풀물처럼 물들고 싶다.
|
▲ 탑거리에서 목우너미로 넘어가는 계곡 |
|
▲ 독바위 |
|
▲ 괘석리 산양목장 |
|
첫댓글 홍천을 고향으로 두신 김삿갓님이 부러워요. 제 자리도 한 잘히 주세요.. 이렇게 좋은 곳에서 살면 아프던 몸도 다 나을 것 같아요 ㅎㅎㅎㅎ
이런 농촌에 살면 몸도 마음 도 건강 해진답니다 홍천 으로 오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