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박 2일 외출할 짐을 베낭에 넣고 10시 20분 집나와 아점으로 고등어백반구이 먹고 은행가서 현금
인출한후 오랜만에 감자탕집에서 11시부터 첫 출시되는 '감자탕' 5팩을 현금주고 구입했다.
현금으로 감자탕 1팩사면 쿠폰을 1개 주는데 13개를 주면 감자탕 1팩을 무료주는데 쿠폰 17개 모았다.
아차산역에서 버스탑승하여잠실에 가니, 11시 40분이었고 친구의 차가 정오에 오기로 했다.
20분을 땡볕에서 기다릴수가 없어서 잠실역 3번출구에 있는 롯데 잠실지하 만남의 광장 트레비 분수에서
배회하다가 친구가 연락이 와서 너구리상에서 12시 4분에 만나, '중부고속도로'로 진입했다.
친구가 볼 일이 있어, 졸음쉼터에 잠시 들렸는데 휴게소와 같이 컸고 양평휴게소에서 주유하고 진부IC로
간다는 친구에게 정선장례 식장가는 길은 새말IC가 빠르다는 내 얘기대로 '안흥'을 경유했다.
횡성 동부인 안흥면은 찐빵으로 익숙한 동네다. 예나 지금이나 조용한 동네가 찐빵으로 유명해지게 된 것은
1960년대 초에는 안흥은 사방에서 모여드는 인파로 북적이는 교통과 물류의 요충지였다.
강릉가는 길목으로 오일장이 열릴 때마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로 붐볐다. 한국전쟁의 참화가 가시기 전,
배를 굶주리는 사람이 많아, 막걸리파는 판잣집은 술을 넣어 반죽하여 찐빵을 만들어 팔았다.
5원짜리 찐빵하나에 시래깃국을 함께 주었고, 1971년 서울, 강릉을 오가는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
강원도 고랭지 채소를 운반하는 사람들과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중간에 안흥을 들린다.
이때 찐빵이 즐겨 먹는 간식으로 자리 잡았지만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990년대 중반으로 면사무소앞에
파는 조그마한 찐빵집의 맛을 본 기자의 언론보도를 시작으로 방송출연이 잦아지면다.
어느덧 전국적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룬 이후 기성세대가 예전 추억의 맛을
되새기는데 안흥찐빵이 딱 알맞았기 때문이다. '면사무소앞 안흥찐빵'이 원조인 셈이다.
이제 안흥일대는 찐빵을 파는 가게들이 하나, 둘 늘어나게 되었고, 오늘날 안흥찐빵 마을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근래와서 안흥찐빵을 테마로 하는 안흥찐빵모락모락이라는 테마파크가 들어서 있다.
찐빵의 맛이 다른 찐빵처럼 달진 않지만 팥자체에서 풍기는 담백한 맛과 반죽의 쫄깃함이 다루 지역의 찐빵과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한결같은 맛을 자랑하는 것이 안흥찐빵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산골에 위치한 안흥을 찐빵만 먹고 가기에는 조금 아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산골로 더 깊숙이 들어간다면
강원도를 대표하는 명산, 치악산 자락으로 이어지고 조선 태종 이방원의 유적이 더러 있다.
정선갈때 영동고속도로 빠져 나오면 새말에 있는 네덜란드 꿩만두국을 23년째 지금도 먹고 있지만 그 전에는
안흥면사소옆에 있는 음식점에서 된장지개 백반을 먹었는데 그 집은 아직도 영업중이다.
안흥을 지나면서 터널의 연속이다. 전재터널, 멧둔재터널, 솔치재터널, 비행기재터널, 정선터널, 그외 터널을
경유하면서 느낀 것은 산속이라서 그런 것 같으며 정선장례식장에 오후 3시에 도착했다.
정선장례식장 측은 정선병원의 장례식장을 임차해 운영하지 않고 덕송리소재 정선장례식장만 운영하다 보니
정선읍내 외부 빈소는 이 곳 뿐이며 2명의 고향지기 친구에게 문상간다고 내가 알렸다.
졸드루사는 친구는 공사로 인해 도로가 막혀 오후 5시즈음 되어야 차량을 운행할 수 있어 만날수 없었고 나와
생일이 같으나 1살 많은 친구는 군청 과장출신 친구 2명과 같이 왔고 문상을 같이 했다.
더 많은 친구들을 빈소에 보기위해 연락을 할 수 있었으니 하지 않은 이유는 한창때인 농사짓는 친구,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친구, 금주중인 친구, 전날 과음한 친구 등에게 부담주지 않고 싶어서 였다.
망인은 모친으로 97세에 타계하셨는데 자녀가 5남 2녀인데 친구는 3남이고 카톡릭 집안답게 막내는 신부
였다. 상주인 친구에게 하남 절친이 이틀 전에 만났는데 일로 말 한마디도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문상 단골인 절친이 올 수 없다고 이해시켰고 운전한 친구와 나만 식사했다. 친구가 염때문에 자리를
비우자 5명이 얘기 중, 내가 문상 온 친구들의 사진을 올려서 예전의 일이 화두가 되었다.
군청 세무과장을 한 친구가 친한 친구를 동기모임 카페에 별명인찌꾸(포마도의 강원도 사투리로 일본의 머릿
기름)라고 해서 한동안 냉냉했다고 하는데 별명에는 찌꾸를 자주 발라서 생긴 닉이다.
중2때 권투를 시작한 내가 찌꾸를 때리자 찌꾸어머니가 때린 나를 찾아 와서 내가 도망다닌 적이 있는데 그의
초교때 별명은 '지키리' 다. 재경모임 친구들은 몇년 전부터 '호'를 모두 있어 '호'로 부른다.
친구 3명에게 모두 감자탕을 준후 헤어지고 운전하는 친구의 모친이 사는 북평1리에 가서 감자탕을 드렸다.
10년 전에 집을 지을 때부터 왔는데 잔디관리가 잘되었고 사과외 각종 나무들이 무성했다
친구가 꾸지뽕(뽕나무과에 속하며 신선이 먹었다는 항암약초)이 올해 수확을 기대하는데 새떼의 피해를 걱정
했다. 친구 모친은 우리 큰누님과 동갑(만 85세)인데 400평 밭에 아들 줄 것을 따셨다.
나는 양배추 2개를 주셨고 도라지꽃이 이쁘게 피었고 고추와 사과 등 각종 농작물이 잘 크고 있었다. 친구가
틈나면 홀 어머니의 농사를 돕는 '효자'인데 다음주에도 부부동반해 돕기 위해 낙향한다.
중국 동북 3성이 주 서식지인 '민물 가마우지'가 정선의 강에 사는 물고기를 잡아 먹어 물고기의 씨를 말릴
정도라고 한다.겨울 철새인데 한국에 눌러앉았는데 정부는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해야 한다.
어머니와 헤어지고 가리왕산 샘물터에서 물 마시고 생수병에 물을 담아 마시면서 진부IC로 해서 성남지나
난곡(蘭谷)이 나왔는데 신림동으로 친구는 좀 떨어진 쌍룡에 이어 프로지오 아파트에 산다.
난곡은 조선 명장 강홍립 장군이 유배되어 은거할 때 난초를 많이 길렀다는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이있으며
공동묘지가 많았다 해서 난골 · 낙골이라고도 하였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공존한다.
1박 2일 계획은 운전하는 친구의 말동무때문에 포기했고 6시간이상 차안에서 둘이 주고 받은 수 많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좀 더 알게 됬고 친구는 삼립유지 임원한후 우리나라 '유지 유통 1호' 됬다.
오후 8시 집에 주차하였고 신림동 대로변 중식당에서 내가 선택한 유산슬과 소주와 8시 20분까지 주문되는
짜장면 시켜서 소주 4병을 마셨고 친구가 '나와바리'라고 계산했고 버스로 신림역에 갔다.
전철에서 친구와 카톡했다. 내가 보낸 '빵' 택배관련 친구가 "(아내가) 맛있다고 하네. 저녁 대신으로 빵 3개를
먹었는데 고맙다고 전해 달라고 하네.ㅎㅎ"고 와, "감자탕으로 낼 해장 해"라고 답장했다
친구가 "수고하셨네"라고 하자, "운전한 '한달썽'(나보다 생일 한달 빠름)이 고생하셨지."라고 답장했고
구의역에서 버스타고 귀가하니 밤 11시였고 내 마지막 카톡은 "7676보밖에 못 걸었다."였다.
전철타고 오면서 가까운 분들에게 어제 마지막 사진을 카톡으로 보냈더니 하남사는 절친이 방금전 "수고
했구먼"이라고 하길레 "경표(상주)에게 자네 바쁜 사정을 자세히 설명했네."라고 답장했다.
오늘은 어제의 일상을 쓰다보니 길어져서 뉴스는 생략하며 1박 2일 정선에서 보내고자한 시간보다 친구와
단둘이 보낸 시간이 오히려 유익했고 감자탕 5팩을 친구들에게 줄수가 있어서 행복했다.
※https://youtu.be/U3gQCUgkzN0
최저임금은 2017년 6030원에서 7년 만에 3830원(63.5 %)이 올라 9860원이 됐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최저
임금 인상률(41.6%)이 물가상승률(9.7%)을 크게 웃돈 것은 '소득 주도 성장'때문이다.
노동계는 올해 최저임금이 1만원에 못 미친 것에 대해 “실질 임금 삭감”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사업주들은 ‘더는 못 버틴다’는 아우성을 쏟아내고 있다.
전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서울은 올해 첫 폭염 경보가 발효됐고(낮 기온 33도) 수도권과 강원 영서
일부 지역에도 폭염 경보 내려 졌으며 습도가 높은 목요일은 더위와 승리하는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