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옛날 얘기를 하게 되네요. 하지만 <정민철 플레잉코치>라는 낯선 문구를 보면서 옛날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야구에 빠지기 시작했던 팬으로서 말입니다.
제가 야구를 처음 본 건 초등학교 5학년때지만, 본격적으로 열광하기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그때가 아마 1992년이엇을 거예요. 응원팀이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내가 좋아하는 타자가 홈런을 41개나 날렸고 중계를 보면 지는 날 보다 이기는 날이 훨씬 더 많았던 신나는 시즌이죠. 철없는 중학생 눈에 우리 선수들은 무조건 최고였고, 상대팀 선수는 무조건 나쁜놈이던 시절. 그때 제가 유독 응원팀 경기에 집중했던 이유 중 하나는 솜털 보숭하고 호리호리한 꽃미남 투수 때문이었어요.
그 시즌에 입단한 55번 투수. 그를 보면서 예전에는 몰랐던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사실 투수를 좋아해 본 적은 없었어요. 그냥 선동렬이 무섭고 송진우가 잘던진다는 것만 아는 수준이었죠. 중학생 야구팬 눈에는 맨날 홈런치는 장종훈, 안타 잘 치는 이강돈 이정훈만 최고였지, 투수들은 관심의 우선 순위에서 밀려 있었거든요. 하지만 55번은 멋모르는 꼬맹이 눈에도 진짜 시원시원하게 잘 던졌고, 투수가 얼마나 매력적인 포지션인지 알게 해줬죠. 그를 보는 게 너무 즐거웠습니다. 그냥 막연히 빙그레가 이기면 좋아하던 초등학생 팬이 어떤 특정 선수를 좋아하는 중학생 야구팬으로 성장한거죠. 그때부터 55번 투수는 제 favorite player였습니다.
그 투수와 함께 맞는 1993년은 정말 기대가 컸어요. 전년도에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그 시즌에 당연히 우승 할 거라고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요. 평생 막강할 줄 알았던 응원팀이 조금씩 무너졌고, 홈런 41개를 친 아저씨도 부진하기 시작했죠. 그러다 제가 고등학생이 됐을 그 팀이 완전히 약팀이 되어 버렸어요. 어느 정도였나하면 55번 투수가 매년 잘 던졌고, 심지어 방어율에 탈삼진 2관왕을 먹었는데도 두자리수 패배를 당했어요. 이 때는 자꾸 지니까 짜증도 나고 그래서 팀 순위는 관심 밖이고 그냥 55번 투수만 봤어요. 작년에 '현진이글스'라는 말이 유행이었는데 이 시절에 저는 정말 5일에 한번씩 야구를 봤지요.
수학은 중학교 2학년 때 포기한 주제에 방어율 구하는 공식은 어디서 주워 듣고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55번 투수의 방어율부터 계산했어요. 그 경기에서 무실점이거나 1실점이면 기분이 좋았고, 2실점이면 대략 만족, 3실점이면 좀 부진했구나 싶었고 4실점 이상이면 다음 등판때까지 한없이 우울했던 기억이 나네요. 55번 투수가 투스트라이크를 잡았는데 상대 타자가 땅볼을 치거나 플라이를 날리면 TV화면에 대고 고래고래 욕을 해댔어요. 왜냐구요? 삼진을 잡을 수 있었는데 못 잡았으니까. 정민철은 제 기억에 딱 그런 투수였네요. 중학교 2년, 고등학교 3년,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학창시절 야구에 대한 기억은 온통 55번 정민철 뿐이죠.
사실 이 선수에게는 <에이스>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점점 더 강해질 줄 알았던 응원팀이 2년만에 망가지고 팀 명칭도 생소한 '한화'로 바뀌었을 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올드 이글스 팬의 무너진 자존심을 홀로 지켜준 시대의 아이콘이었거든요. 늘푸른 소나무 회장님을 보며 존경과 경외감을, 늘 '마이웨이'하는 구대성을 보면서 통쾌함과 시원함을 느꼈지만, 정민철에게서 받는 느낌은 또 달랐어요. 빙그레가 망했다는 걸, 완전히 약팀이 됐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던 팬들이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게 해준 투수였으니까요.
그래서 팬들은 그시절 정민철에게 더욱 매달렸고 그가 등판 하는 날이면 목 놓아 "삼진!" "삼진!"을 외쳐댔죠. 그의 방망이에 속절없이 당하는 상대팀 강타자를 보면서 빙그레 시절의 영광을 곱씹고 이글스의 부활을 꿈꿨어요. 그건 지금 류현진에게도 없는 느낌이에요. 괴물, 잘던지는 에이스, 팀의 미래....이런 감정이야 류현진에게도 이입되지만, 정민철에게 그 시절 팬들이 느꼈던 감정과는 좀 다른 느낌이니까요. 탈삼진과 방어율 부문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이는데도 14승 10패, 13승 11패 같은 엽기적인 기록을 찍어야 했던 비운의 에이스, 그러면서도 빙그레의 자존심을 홀로 지켜주며 고군분투 했고, 결국 우여곡절끝에 팀을 우승시킨 고마운 에이스.
그 선수가 야구를 그만둔다는 데 어떻게 슬프지 않겠습니까. 뭐, 세월 앞에 장사 없으니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지금 10대 후반이나 20대 초중반을 지나시는 분들도, 나중에 류현진이 은퇴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아마 이런 느낌을 받으실겁니다. 내 소중했던 학창시절의 기억, 그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날아가는 상실감이니까요. 거기다가 '빙그레'라는 팀에 대한 아련함까지 가진 올드팬이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장종훈의 은퇴가 '빙그레 거물'에 대한 상실감이라면 정민철의 은퇴는 '빙그레의 몰락을 막아내던 암흑기 에이스'에 대한 상실감이어서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네요.
저는 김태균과 류현진을 좋아하지만, 그들이 정민철과 장종훈의 '그것'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건 야구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추억'의 문제니까요. 야구에 미친 이후로, 내 놀이터에 '정민철'이 없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제는 없어진다니 참 적응이 안 되네요.
적어도 며칠간, 신나게 야구를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기간이 얼마나 길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첫댓글 아쉽네요......저도 정민철 선수 많이 좋아했는데... 어쩔수 없으니......
은퇴라뇨?????정말입니까 ? 뒷북인가 ㅜㅜ 플레잉코치도 은퇴인가요? 아님 완전 은퇴했나요?
분위기나 언론의 뉘앙스를 보면..구단에서 함부로(?) 하기 어려운 프렌타이즈 스타라 방출과 생존사이의 중재안 정도라네요.....아마도 1군에서 보긴 어렵지 않을까 생각이 되네요....
말도안되....정민철 선수 다시 부활할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의지가 약해질 것 같은데 ㅜㅜ
다시 한번 와 닿습니다.. 류현진,김태균의 은퇴라.. 15년,20년뒤에 저의 거의 일부분과도 같았던 그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떠난다.. '그 때'의 정민철,송진우,구대성과 함께하셨던 분들의 마음과 저의 '그것'과는 조금 달랐었네요..
너무너무 아쉬워요.. 갑작스런 기사에 마음이 아려오네요ㅠㅠㅠㅠㅠ.......
민철오라버니.....ㅠㅠ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당신때문에 행복했습니다
민철행님은 정말 제맘속의 영원한 에이스~~ㅠ.ㅠ 그가없는 야구는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데..ㅠ.ㅠ.ㅠ
비도 오고 소주한잔 하면서 어린시절 추억속의 영웅들의 얘기를 늘어놓기엔 참 좋은 날이내요...야구가 보고싶내요 ..그때 그시절의 야구가..
저는 지금 고1 학생입니다..... 초등학교때부터 혼자(친구도 없었는지 에휴,~~..가족 중에서 야구가 몇명이 하는 스포츠인지 아는 사람도 없었는데..어디서 야구재미를 알았는지.) 유니폼 다 차려입고 버스타고 야구장가서 목 터지게 응원하고.... 저는 비록 "빙그레 이글스" 팀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정민철 선수 한분 만큼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네요....
어쩜 이렇게 글을 잘쓰시나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정민철선수 일본갔을때 야구 안봤습니다. 한화에 없다는 자체가 야구에대한 흥미를 잃게 만들었는데... 당분간 야구가 정말 재미없을것같네요 ㅜㅜ
일본만안갔어도.... 아직까지... 148은 뿌리질 안았을까~ㅋㅋ 아쉽넹... 대놓고 직구로 쑤셔넣던 화끈했던 정민철..ㅋㅋ 그당시 정민철나오면 아주 경기시간도 빨리가곤했는데..~~
전 제 아이디로 모든걸 설명될듯합니다... 저랑 너무나 똑같은 추억을 가지고계시네요... 지금의 선수들에게 없는 무언가.. 그 추억들.... 영원할겁니다
정민철.. 빙그레시절부터 야구를 보아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담아놨을 .. 그저 팀의 에이스 그 이상인 의미로.
정말 좋은글입니다 1번선발님 저번에도 정민철선수 글을 읽어봤는데 참으로 아쉽네요,, 저역시 빙그레시절부터 쭉.. 팬이였는데 너무너무 아쉽습니다
잘가요 나의 에이스.
잘가요 나의 에이스...ㅠㅠ (2)
잘가요 나의 에이스...(3)
휴....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