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27. 서른다섯 번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3장)
신앙고백
찬송 23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기도 조용림 권사(549)
성경말씀 로마서 1:8~15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그리움
찬송 901 내 평생 살아온 길
광고 9月 대표 기도(수요예배 포함)- 김복순, 모옥희, 박이순, 이원예, 박명숙, 박영수 집사
박복례, 박연순 성도 가족 방문, 새가족-김응칠 성도, 9월부터 조리원 신입 출근 예정
찬송 376 내 평생소원 이것뿐
축도 아프니까 그만 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1.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빨갛게 노을이 타고 있어요
2. 허수아비 팔 벌려 웃음 짓고
초가지붕 둥근 박 꿈꿀 때
고개 숙인 논밭의 열매
노랗게 익어만 가는 / 노을
목사님이 대학 시절에 중학교 모교로 영어 교생 실습을 나갔습니다.
그때 1학년 임시 담임을 했는데 우리 반가가 노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침 조회, 종례를 할 때마다 노을 노래를 소리 높여 불렀습니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니 젊었을 때 추억이 새록새록합니다.
그리고 높아진 파랑 하늘이 눈이 부십니다.
그리고 벼 모가지가 가득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서 아름답게 살다가 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8절입니다.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절,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절,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절,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2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절,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절,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절,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그리움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교인들을 그리워하며 쓴 편지입니다.
언젠가 피종진 목사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데
피종진 목사님께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대부분 목회를 할 때에
좋은 장로님을 만나서 물질적인 지원도 많이 받곤 하는데
정 목사께서는 홀로 자수성가自手成家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목사님은 16년째 함께 살고 있는 우리 김성오 집사님이 1호 성도님입니다.
그땐 어떤 계획도 없이 그냥 가을바람처럼
주님께서 시키는 대로 아주 순수하게 목회했습니다.
목사님은 살아오면서 노숙자 homeless 노자도 몰랐습니다.
그 어떤 계획도 전혀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가을바람처럼 텅 빈 교회에 머물면서
예배당에 조립식 칸막이를 하고 서울 벼룩시장 광고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한 줄 광고를 게재했습니다.
무료 숙식합니다.
그것도 공익광고라고 꽁짜였습니다.
그리고 한두 명씩 찾아오신 분들이 노숙자 homeless들이었습니다.
많게는 100명 내외가 머물다 가곤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목회 시작이 너무나 순수해서 아름다웠습니다.
그때 그 시절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납니다.
예배당엔 통나무 보일러 시설을 했습니다.
그해는 얼마나 눈이 많이 내렸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래도 새벽 예배만은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습니다.
하얀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새벽에는 새벽 1시에 예배당으로 출발합니다.
그리고 예배당에 도착하면 새벽 3시가 넘습니다.
그러면 노숙인들이 예배당에 불을 켜고 무릎을 꿇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규석이란 친구는 인천에서 왔는데 알콜릭입니다.
돈이 어디서 나는지 새벽 1시부터 곤드레만드레입니다.
그런데도 강대상 바로 밑에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립니다.
나중에는 방언의 은사까지 받았습니다.
새벽예배를 마치면 노숙자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목사님은 산으로 갔습니다.
쓰러진 나무들을 자르고 잘라서 허름한 자동차 트렁크, 뒤 의자에 가득 싣고서
예배당에 통나무 보일러를 지펴야 했습니다.
목사님이 언제 나무를 해 봤겠습니까?
그래도 찌저지게 가난한 흥부가 커다란 박을 톱질하듯
톱질하세~ 톱질하세~
주님 사랑, 나의 사랑, 이 못 난 정 목사가 톱질하세.
그러면서 신세타령 반 눈물 기도 반
처량한 정 목사 톱질하세.
그러다 오른발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아이고~ 죽겄다.
나무를 하다 말고 오른발을 질질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운전하고 원광대 전주 한방병원 응급실에 갔습니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졌으니 오래갈 겁니다.
그리고 주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도저히 주일 예배를 드릴 수 없이 발을 딛지 못했습니다.
우리 (고) 한만욱 목사님께 부탁을 드릴거나 말 거냐 오락가락 갈등했습니다.
그러다 에잇 모르것다.
죽더라도 예배당에서 죽어야겄다.
오른발을 질질 끌고 강대상에 섰습니다.
그랬더니 예배드리는 순간 오른발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충만하여 예배를 마치니
오른발이 씻은 듯이 나아버렸습니다. 할렐루야!
그때 그날들을 추억하면서 찬양을 불러 봅니다.
901 내 평생 살아온 길 뒤를 돌아보니
걸음마다 자욱마다 다 죄뿐입니다
쓰리고 아픈 마음 가눌 길 없어서
골고다 언덕길을 지금 찾아옵니다
2. 나 같은 못난 인간 주께서 살리시려
하늘의 영광 보좌 모두 다 버리시고
천하디 천한 종의 형상을 입으셨네
아-아 주의 사랑 어디에 견주리까
3. 예수님 나의 주님 사랑의 내 하나님
이제는 예수님만 내 자랑삼겠어요
나의 남은 인생길 주와 걸어가면서
예수님 복음 위해 굳세게 살겠어요
8절입니다.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절,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절,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바울 부모님은 갈릴리 기샬라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니 바울도 갈릴리 기샬라가 고향입니다.
우리 석문분 권사께서는
일제 강점기 때에 부모님을 따라서 일본으로 강제 이주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 일본서 교육받았기 때문에 우리말을 못 했습니다.
그렇듯이 바울도 얼릴 적에 부모님을 따라서 길리기아 다소로 강제 이주되었습니다.
이때가 BC 4년경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과 동갑내기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로마서는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때
고린도에 머물면서 AD 55, 56년경 로마교인들을 그리워하며 쓴 편지입니다.
그러니 바울이 환갑이 될 무렵으로 인생이 무엇인가?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홍시처럼 깊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스스로 가난을 해결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직업은 텐트 제조업입니다.
이렇게 바울이 스스로 노동하면서 전도한 흔적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2장 9절입니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고린도전서 9장 12절입니다.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노동 현장에서 일하면서
자비량으로 목회를 하는 목사님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바울도 굶주렸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7절입니다.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것이 지금 가난한 교회 목회 현실입니다.
놀부처럼 배 터져 죽는 교회는 10%도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90% 목사님들은 사례비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일용직 일을 하면서 먹고들 삽니다.
그래서 우리 요양원에도 사모님들이 요양보호사 일을 하곤 했습니다.
당시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것이 로마서를 쓴 목적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로마교회가 전도하는데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로마교회에 부자 부부가 있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입니다.
아굴라는 유대인의 노예였지만 재주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브리스길라는 로마의 부자였습니다.
이들이 로마에서 만나 부부가 된 것입니다.
이 부부가 사도 바울이 선교하는데 아주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 로마서 16장 3절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절,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숨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이렇게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을 성도가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사도 바울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내인 브리스길라를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나는 평강공주와 바보온달과 같은 부부였습니다.
13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절,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절,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지금 목사님도 사도 바울과 같은 심정입니다.
목사님이 이렇게 성공하기까지 우리 성도님들의 기도와 헌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사도 바울처럼 우리 성도님들께 빚진 자입니다.
엊그제 김제 중앙 장로교회 퇴임을 하신 김춘식 목사께 안부 전화를 드렸습니다.
퇴임 후 6개월 내외가 힘드신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 건강 조심하세요.
그리고 언제 식사하시게요.
그렇게 풍채가 크시고 쪄렁쪄렁 하신 목사님께서
퇴직하신 지 며칠이나 되셨다고 코를 쑥 빠친 목소리가 역력히 들렸습니다.
엊그제 뉴스에 삼식이 남편들의 애환이 기사화되었습니다.
퇴직하고 세끼를 아내에게 얻어먹으려 하니
퇴직한 남편들이 죽을 지경이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님은 행복합니다.
방송국 일로 동분서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하나님 은혜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이제야 시작입니다.
앞으로 10년을 방송국 일에 매진할 것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겠습니다.
직원 모집 광고를 전국 일원에 게재했습니다.
직원모집 조건은 남녀노소 제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70세도 지원을 했습니다.
지원자 중에 한 분은 쿠팡에 9월 1일부터 출근하는데
하나님 일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브리스길라 아굴라 같은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교회가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우선 익산 사옥에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서 서울 사무실을 철수했습니다.
많게는 일만 명이 함께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정말 건실한 하나님의 기업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왜 고난이 없겠습니까?
왜 눈물이 없겠습니까?
그래서 바보 비실이 의심 많은 노랭이들은 벌어놓은 돈만 파먹다가
카프카의 <변신>의 벌레처럼 죽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장석주 시인이 이렇게 시를 썼습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이 시를 읽으니 눈물이 납니다.
목사님이나 우리 성도님들 이마에 주름이 뭐겠습니까?
머리카락이 왜 하얗겠습니까?
엊그제 우리 박영수 집사님과 함께 벌초를 했습니다.
목사님 입술이 불어 터졌습니다.
우리 박영수 집사님 아니었더라면 목사님 자존심이 구겨졌을 겁니다.
벌초하다가 포기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산소를 벌초하면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머니 둘째 아들이 목사입니다.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살아서 어머님 손을 만져봤으면 좋겠습니다.
살아생전 고기반찬, 옷 한 벌 못 사 드렸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우리 권사님 집사님들이 목사님 어머니입니다.
엊그제 속옷 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우리 석 권사님 집사님 속옷을 사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어머님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우리 어머님의 평생소원은
우리 자녀들이 예수 잘 믿고 천국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살아생전 매일 저녁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새벽 3시가 지나면 그렇게 추웠던 겨울에도 산길을 따라 교회에 가셨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낼모레 추석 다음 날이 어머님 추도 일입니다.
사도 바울의 간절한 소원도 로마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100만 명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은 100명 정도였습니다.
그중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짝퉁이 아닌 진짜 성도였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 권사님 집사님들이 브리스길라 아굴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목사님도 사도 바울처럼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