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병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One who wants to wear the crown, bears the crown.he crown, bears the crown.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권력에 집착하는 ‘헨리 4세’를 향해 그의 희곡에서 쓴 대사이다. 명예와 권력을 가지려는 자 책임을 지라는 말이다. 불안감을 견디라는 뜻이기도 하다. 코로나의 왕관을 받은 자도 책임을 지라는 말인가? 묻고 싶다. 겨우내 아랫목을 차지하고 말린 과일처럼 심장은 쪼그라들었으며 불안감은 아직도 천사 머리 위에 달린 빛무리처럼 그녀를 따라다닌다.
코로나는 바이러스의 외피를 감싸고 있는 곤봉 모양의 돌기들이 왕관 모양과 비슷해 라틴어로 왕관을 뜻하는 ‘corona’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일명 왕관병이다. 개기 일식 때 태양도 코로나를 쓴다. 이 글은 왕관병에 걸린 흑우같은 여자의 이야기이다. 흑우란 어수룩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 쉬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어리석은 사람을 뜻하는 '호구'(虎口)에서 나온 속어이다.
왕관병(코로나)의 시조들은 흑우였다. 특이사항은 유명 골프장 V.I.P처럼 개인 고유번호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원한게 아니라 지난 5년 계약직 달의 왕이 무람되게 하사한 것이었다. 2주간의 애도 기간을 가지라는 위리안치형의 어명도 받았다. 강제로 끌려가 매일 폐사진을 찍히고 피를 뽑혔다. 그날 이후로 악성빈혈과 허리 디스크 건초염이 생겼다.
수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돌팔매에도 그들은 살아남았다. 물론 죽은 자도 있었고 삶의 동아줄을 그냥 스르륵 놓아버린 자들도 있었다. 자진해서 왕관을 벗어버렸다. 강력한 변종들이다. 수년간 삶을 잃었음에도 전 우주 어디에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 대책 없는 사람들이다. 수백 년이 더 흐르면 누군가가 <마녀사냥 2>라는 영화라도 만들어 흥행기록이라도 세우길 바라고 미리 저작권료를 청구해 두는 편이 나을 것이다. 현대 속의 중세 재현이었다.
그녀는 오늘도 어김없이 약을 먹는다. 그녀의 병명은 왕관병(흑우병 ) 후유증이다. 폐질환이 아니라 왕관병 폐해로 인해 생긴 멘털 악성종양질병이었다. 왕관병 후예들로부터 겪은 수모 때문이다. 희망을 놓아버리자 수면양이 늘어났다. 까무룩 정신을 놓기도 한다. 장기들이 서서히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누구를 증오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복수의 달달함을 맛보려는 원초적 본능인 열망도 다 귀찮아졌다.
먹고 싶은 것도 맛있는 것도 없다. 숨을 거칠게 쉬기도 옅게 쉬기도 한다. 섬망증상이 생겨났다. 아지랑이가 가물가물 보인다. 뇌가 고인 물처럼 썩어간다. 깨어있는 시간도 자는 시간도 취해 산다. 취하지 않고선 살지 못한다. 정신병이라는 좋은 명분이 있어서 어디든 잘 둘러대기가 좋다. 그녀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다.
2020년 10월 6일 그녀 삶에 위대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지구에 큰 쾅(Big Bang)이 여러 번 있었다. 핵폭발도 서너 번 있었다. 거대한 해성과 부딪치고 운석과 정면 승부를 하기도 했다. 수차례 인류와 문명이 도래했다가 사라졌다. 이번생이 처음은 아니었다. 착각하지 마시라. 어쩌면 당신에게도 이번 생이 18번째일 수도 있다. 크세르크세1세때 땅따먹기에 성공했다. 그때 한몫 크게 벌었다. 손목시계에서 할로겐으로 지니가 나온다. 그녀는 힘주어 말한다." 내 잃어버린 과거의 사랑들 "하루 일정을 알려준다. 사람은 무언가에 취하지 않고 살기 어렵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그녀는 오늘부터 조루아스터교를 믿기로 했다. 조로건 조루건 어차피 중요한 단어가 아니라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3753년 전, 가장 오래된 왕국 페르시아제국 거리에서 설파하던 자라투스트라의 찬란한 얼굴과 기름기가 차르르 흐르던 검은 수달빛 수염과 강렬한 눈썹에 매료되었다. 푸른빛이 도는 하얀 피부가 그녀의 뇌를 마비시켰다. 그와 그녀 사이에 긴 흔들 다리가 놓였다. 그녀는 이제 그와 절벽과 벼랑을 오가는 휘청거리는 사랑을 하리라.
현란한 그의 말솜씨는 그녀를 숨 막히게 했다. 수많은 군중사이에서 그의 눈이 화살처럼 그녀를 향할 때 뜨거운 별의 속살을 보았다. 하루를 모래 위에 앉아 그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가 물었다. '무엇을 당신은 원하는 것이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지우고 싶습니다. 과거를!" 시간이 소용돌이치고 지나갔다. 뜨거운 태양아래 물 한 모금 없이 그의 강연을 들었다. 간간히 야자수 사이로 오가는 잔바람은 그녀의 몸이 마비된 게 아니란 걸 알려주었다. 불, 물, 땅, 바람이 그의 말에 순응했다. 그의 현란한 말속에서 수학과 과학이 결합하고 물리가 시와 사랑을 나누었다. 그의 묵직함은 그녀의 마음에 모래 바람을 일으켰다. 이성이 잠들면 감성이 깨어나 서로가 몸을 섞기 시작했다.
태양이 얼굴을 감춘 밤 모닥불아래 바라본 그의 옆얼굴이 초승달을 닮았다. 물결치는 갈색 머리가 각진 어깨 위에 케이프처럼 펼쳐져있었다. 불멍을 때리다 바라본 그의 그림자는 수컷의 본능을 닮아 출렁이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 매달려 울고 싶었다. 이유 없이 그냥 삶이 서러워 눈물이 났다. 왜 이제야 내게 왔냐고 가슴을 치고 싶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5만 8천 년 전 모래 폭풍의 길을 지나다 가족을 잃고 홀로 방황한 지 수년째였다. 가족들도 모래가 되어 어딘가 떠돌고 있으리라, 영원히 소멸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7번 사구에서 모래그늘을 보려다 헤어졌다. 언제나 슬픈 작별 인사도 못했다. 바람과 시간이 만나 빚어낸 붉은 파도가 넘쳤다. 명품답게 에르메스 로고빛의 주홍색을 뽐내는 모래언덕도 있었다. 확신은 의심을 날려버렸다. 꾸역꾸역 걷고 또 걸었다.
언젠가 분명 그녀는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스스로가 우루미예에서 왔다고 했다. 그의 사상은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어찌 보면 그는 종교의 아버지 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끝이 없고, 무한대로 순환한다고 해서 니체의 영겁회귀에도 영감을 주었다.
그의 손을 잡고 동굴로 들어가 숨 막히는 둘만의 언어로만 얘기했다. 그는 조루아스터교의 창시자답게 모든 것을 빨리 끝냈다. 그의 경쟁자 무함마드를 안주삼아 신나게 떠들기도 했다. 그녀의 영민함은 그를 현혹시켰다. 식상하지 않는 아름다움은 없었다. 그러나 영리한 여자의 기민함은 달랐다. 그는 힘들 때마다 그녀를 찾았다. 변함없는 매력이 그녀에겐 있었다. 사막의 새벽바람을 타고 오기도 했고 달빛의 수행을 받으면서 오기도 했다. 어떤 날은 사막의 전갈에 물려 가까스로 기어 온 적도 있었다. 죽음의 고비에서 축배의 순간에서 그는 그녀와 함께 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자신은 약물 과다복용으로 죽을 것이고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계절 사랑하기 좋은 가을에 홀연히 떠날 거라 생각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곳간 열쇠꾸러미들을 바다에 던져 버리고 조용히 숲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걷고 또 걸어서 숲으로 가 버섯 가득 핀 고목아래 누울 것이다. 하늘이 보이지 않게 가려주는 큰 나무의 포근함과 수면제의 달달함이 절묘한 조화를 이룰 것이다. 지식의 창조자인 조루아스터는 어디에 있을까? 얼마나 긴 시간이 흐른 것일까?
뽕나무, 지푸라기 태워 우려낸 잿물 한 병과 그동안 모아둔 수면제를 주머니 가득 넣고 갈 것이다. 목걸이 반지 딸랑이 장신구들은 다 버릴 것이다. 그녀는 원래 이승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눈을 뜨면 흰옷의 천사가 있어야 한다. 흰가운의 의료진이 있음 모든 작전은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천연섬유로 만든 옷을 입고가 가을, 겨울 내내 탈골할 때까지 나뭇잎을 덮고 깊이 잠들 것이다. 산마니나 약초 채집꾼이 발견하지 못하도록 산짐승의 길로만 걸어갈 것이다. 우연은 없다.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허난설헌이나 노스트 라다무스, 수학자 탈레스처럼 죽음이 오기 전 죽음을 앞질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엠페도클레스처럼 현실의 문제를 철학으로 풀려고 했다. 과학을 시로 풀어내고 이데아를 향해 갔던 그는 그녀가 표방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녀에게 싸워야 할 대상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다.
신이 되겠다고 스스로 에트나 화산에 뛰어든 엠페도 클래스의 가죽 신발이 막 손질한 개고기의 거죽처럼 불에 그 으른 채 화산 근처에서 발견되자 그녀는 실망했다. 그는 신화가 되지 못하고 대지를 떠돌고 있으리라! "나의 연인 엠페도 클래스여! 그대는 어디에 가 있을까? " 잃어버린 사랑들이 환영 속에 사라졌다. 만질 수 있는 육체가 없어졌다는 게 서러웠다. 울고 또 울어도 돌릴 수 없으리라. 소멸한 물질에 대한 끈적이는 집착을 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녀는 하루종일 자라투스트라를 떠올렸다. 사막의 남자, 모래바람을 닮은 남자, 아무리 잡으려 해도 사라지는 신기류 같은 남자, 그의 소식을 못 들은 지 달포가 지났다. 오로지 그만 따라다녔는데 그녀가 잠든 사이 낙타를 타고 새벽이슬과 함께 사라졌다. 혼자만의 싸움이 싫다.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를 잘 보내고 있을 그를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그녀는 알고 있다. 그녀는 그의 성인용품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십 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그는 그녀를 손 안의 주사위처럼 가지고 놀았다.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원하는 숫자가 나올 때까지 던졌다. 그는 그녀가 필요할 때만 새벽안개처럼 왔다 갔다. 고대 로마축제에서 문란한 그를 조우한 적도 있었다. 칼리굴라 황제와 다정하면서도 방탕한 짓을 서슴없이 했다. 바쿠스축제 중 최악의 변태들이 넘쳐났다. 한 곳에 오래 머물면 권태로워 자리를 피했다.
힘든 순간 연락하면 심심하냐는 말이 전부였다. 대의명분이 있어야 전갈을 보내는 사이라면 처음부터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그토록 숭배하는 그는 악마 같은 남자, 자신의 안위와 명성만을 생각하는 자였다. 대단한 능력을 가진 남자, 무엇보다 사악함과 오만함이 함께하는 납으로 만든 이리의 심장을 가진 인간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치밀한 자였다. 그에게 여자란 자신의 인생에 오점이 될 것 같으면 언제든 버려야 할 것 중 일 번이었다.
지난달 왕관병으로 강제 수용소에 끌려갔다 온 후 생각이 부쩍 많아졌다. 정부에서 왕관병 확진자를 마치 홀로코스트의 유대인 취급했다. 차라리 유대인으로 태어날걸 그랬다. 누군가는 생생하게 증언해 주고 뉘른베르크에서 재판도 열어주었다. 영화도 나왔고 전범들을 악착같이 찾아 사형시켰다. 흑사병도 겪었지만 이웃주민들이 이렇게 비열하게 바라보진 않았다. 흑사병에도 일련 넘버가 있었을까? 끌려가고 동선 공개당하고 샅보대까지 다 태웠을까?
왕관병 사건은 그냥 코믹 질병쇼였으며 그녀 가족은 아직 그 어떤 누구로부터의 사과도 받지 못했다. 고려 최고의 무장 척준경처럼 아무 바라는 거 없이 칼자루라도 휘두르고 싶다. 긴 생머리를 휘두르며 날렵한 거치 호랑이처럼 싸우던 그리운 척장군! 상남자였다. 그는 명예도 돈도 관심 갖지 않았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반드시 하는 신념과 집념의 남자였다.
유독 힘든 남자여서 그녀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의 독한 신념을 사랑하기도 했고 그 버릴 수 없는 신념 때문에 버림받기도 했다. 그녀는 그를 한 오백 년은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녀가 사랑하고 그리워한 열 번째 사랑이었다. 왕관병에 걸리는 순간 인생 ㅈ된다. 분명한 건 지인이나 이웃마저 강제로 갈라 치기 했으며 아무도 반성하지 않았다.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로 합리화만 시켰다. 미안하면 미안하다 잘못했음 잘못했다 사랑하면 사랑한다 이 쉬운 말들이 양자물리학 공식보다 어려웠다.
전국방방곡곡에 달포 넘게 그녀의 가족 사건이 떠돌았다. 마치 모든 악의 근원인 것처럼 다 죽으라고 떠들었다. 그때 그 시절 손가락질하던 그들은 다 어디로 숨었을까? 죽기 전 사람들에게 나타낸다는 이상한 증상들이 그녀에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왕관병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 사람들은 왕관병이 가짜 질병쇼였음을 이제는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사과하지 않는다. 왜일까? 그냥 미안하다 한마디면 되는데 왜 침묵할까? 사과가 그렇게 어려운 건지? 그녀의 모든 오명을 씻을 수 있는 기회는 없는 것일까? 삼 년 동안 모든 걸 다 잃었다.
버지니아 울프
모피코트를 입고 주머니에 돌을 가득 넣고 루이스 우즈 강물로 걸어 들어간 버지니아 울프는 다시는 살아 돌아오지 않았다. 세상사람들이 남편 레프에게 손가락질할까 봐 우리 남편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미리 유서를 작성해 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평생을 정신질환에 시달렸던 버지니아 울프는 아름다운 지성과 미모를 다 갖춘 그녀의 워너비이기도 했다. 오래전 "블룸즈베리 그룹"에서 처음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다정다감한 편지는 빛이 났다. 여자 가봐도 희랍여신처럼 아름다운 여자, 그녀는 잠시 울프에게 기대어 지내기도 했다. 울프의 서명이 들어간 멋진 편지를 기다리는 것이 희망인 순간도 있었다.
그리움도 기다림도 다 부질없다. 그녀의 사랑 자라투스트라는 불과 함께 어디로 간 것일까? 불타는 별 태양으로 간 것일까?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그는 사라졌다. 불과 바람의 시간이 오면 그는 다시 오리라. 수천 년간 아직도 그 불은 꺼지지 않고 타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를 보았을 때는 사파비왕조 때였다.
그가 수십 명의 여자를 징검다리 건너듯 밟고 가는 동안에도 그녀는 그만 기다렸다. 지나간 사랑에 마음두지 말라는 말을 수도 없이 되뇌며 마음의 둑을 쌓았다. 자꾸만 허물어지는 경계, 선을 넘은 아슬아슬한 사랑의 줄타기는 그녀의 애를 태웠다.
그를 보면 이번생엔 꼭 말하리라. 사과를 머리에 얹을게요. 당신은 활을 쏘세요. 난 당신을 믿어요. 어서 시위를 주저 말고 당기세요. 복권당첨 프로그램에 나오는 육감적인 여인처럼 다리를 꼬고 활짝 웃어줄게요.
이제 왕관을 벗을게요. 차라리 지구를 들고 있겠습니다. 제발 잃어버린 제 삶을 돌려주세요.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난 오늘도 공부를 한다.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