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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7-이런 사실(事實) 아십니까?
1970년대 중반 서라벌레코드발매 lp음반-김수란 신민요(新民謠)모음-side a 금방석사 김부해곡<떡방아 타령(打令)>- Sideb<비의 가야금(伽倻琴)>을 타이틀곡으로 실어서 발표(發表)하며
가요계(歌謠界)에 등장(登場)한 조금은 덜알려진 김수란 이란 신인여가수(新人女歌手)가 있었읍니다
1970년대면 쿠테타 군부(軍部)가 득세(得勢)하던 국민(國民)들이 지은죄(罪)가 없으면서도 마치 죄인(罪人)처럼 숨죽이며 신음하며 살아야했던 ---- 다시 되돌아가고싶지 않은---------
시절(時節)이었습니다
이무렵 한국(韓國) middle weight-미들급-拳鬪star-권투스타- 유재두선수가 일본(日本)의 世界champion-세계챔피언-와지마고이찌를 그것도 home ground-홈그라운드-인 일본(日本)에서
고양이가 쥐를잡듯 무차별(無差別) 난타(亂打)해서 champion-belt-챔피언벨트-를 차지했을떄 國內fan-국내팬들은 물론 재일동포(在日同抱)들이 더 환호(喚呼)했습니다
유재두 선수(選手)가 일제(日帝) 36년간의 민족(民族)의 한(恨)을 풀어주었다며 국민적(國民的)인 영웅(英雄)으로 떠받쳐졌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돈많은 日本promoter-일본 프로모터-들이 일본국민(日本國民)의 우월감(優越感)을 이용(利用)한 권투(拳鬪)장사를 하기위하여 신나게 두들겨 팰수있는 약한
한국선수(韓國選手)를 골라다가 경기(競技)를 하였기 때문에 한국선수(韓國選手)가 이기는 시합(試合)을 여간해서 볼수가 없었읍니다
일제36년간 압박(壓迫)을 받은 설움도 억울한데 권투시합(拳鬪)에 나오는 선수(選手)마다 모조리 얻어맞으니 이를보는 재일교포(在日僑胞)들의 가슴에는 또다른 한(恨)이 응어리 졌습니다
그때까지 만해도 재일교포들에게 지문날인(指紋捺印)을 강요(强要)하는등 공공연(公公然)히 민족차별(民族差別)을 자행(恣行) 했던 때인지라 우리선수(選手)가 번번히 얻어터지는
권투시합(拳鬪試合)을 보는 재일교포(在日僑胞)들은 차라리 자신(自身)들이 얻어맞는 것보다 더 가슴아파 했습니다
그러던 시절(時節) 한국(韓國)의 유재두선수(選手)가 한국(韓國)도 아닌 일본(日本)에서 일본국민(日本國民)의 우상(偶像) 와지마 고이찌 선수를 고양이가 쥐를잡듯 꼼짝못하게 두들겨패고
ko로 승리(勝利)하였으니 얼마나 통쾌(痛快)해 했을까 가히 짐작(斟酌)할만합니다
이날이후 유재두선수는 애국자(愛國者)와 같은 대접(待接)을 받는 전국민(全國民)의 우상(偶像)이 되었읍니다
승리(勝利)의 감격(感激)이 채 가시기도전 유재두와 와지마 고이찌의 재시합(再(試合)이 일본(日本)서 개최(開催)됩니다
이무렵 영친왕의 왕비(王妃)인 이방자는 각종(各種) 사회봉사활동(社會奉仕活動)하기위해 한국과일본을 왕래(往來)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심장병(心臟病)어린이 돕기
자선음악회(慈善(音樂會) 공연준비(公演準備)를 위하여 일본(日本)을 방문(訪問) 동경(東京)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때 같이간 연예인(演藝人)중에 앞서 언급(言及)한 김수란도 끼어있었습니다
다음날 낮에 있을 자선공연(慈善公演)의 연습(演習)을 마치고 잠시 휴식(休息)을 취하고 있었는데 왠남자들이 찾아와서
“한국 유재두선수와 일본 와지마 고이찌 선수간의 세계 title match-타이틀 매치-가 있는데 애국가(愛國歌)를 부를 사람이 없어요 지금당장 체육관(體育館)으로 가야겠습니다”
성화(成火)를 하는바람에 얼떨결에 차(車)에실려 체육관(體育館)으로 가야했습니다
헌데!! 이때 그들이 빠트린 것이 있음을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김수란이 애국가(愛國歌)를 부를수있는 능력(能力確認)입니다
지금도 애국가(愛國歌)를 4절까지 완창(完唱)할 수 있는 가수(歌手)는 많치못합니다
동해(東海)물과 백두산(白頭山)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保佑)하사 우리나라 만세(萬歲)
후렴--무궁화(無窮花) 삼천리(三千里) 화려강산(華麗江山)
대한(大韓)사람 대한(大韓)으로 길이 보전(保全)하세---
남산(南山)위에 저소나무 철갑(鐵甲)을 두른듯
바람서리 불변(不變)함은 우리 기상일세
가을하늘 공활(空豁)한데 맑고 구름없이
밝은달은 우리가슴 일편단심(一片丹心)일세
이기상과 이맘으로 충성(忠誠)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사랑 하세<한절끝날 때마다 후렴부분(後斂部分) 가창(歌唱)>
수많은 관중(觀衆)들이 운집(雲集)한 가운데 이미 한일양국(韓日兩國)의 tv에서 실황중계(實況中繼)를 하고있었읍니다
원래(原來) 김수란은 民謠調)trot歌手-민요조 트로트가수-로 이제막 인기(人氣)가 상승(上乘)하기 시작한 신인(新人)이었습니다
게다가 世界 title match –세계타이틀매치-와같이 수천관중(數千觀衆)이 운집(雲集)한 체육관(體育館)에서 노래를 부른 경험(經驗)이 전혀 없을뿐아니라 애국가(愛國歌)를
학창시절(學窓時節)불러본 이후 거의 안불러 가사(歌詞)조차 제대로 외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事實)은 2020년대 지금의 가수(歌手)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찌됐거나 막상 한일양국(韓日兩國)의 관심(關心)이 집중(執中)되어 있는 세계타이틀 매치 경기장(競技場)에 도착(倒着)해보니 흥분(興奮)된 현장(現場)분위기(雰圍氣)에 압도(壓倒)되어
정신(精神)을 차리지 못하고 우왕좌왕(右往左往)하기 시작 했습니다
사회자(司會者)가 김수란을 소개(紹介)하자 관현악단(管絃樂團)의 반주(伴奏)가 울려퍼지며 spotlight-스포트라이트-가 비췄습니다
수천관중(數千觀衆)의 열기(熱氣)에 압도(壓倒)되어 정신(精神)을 못차린 김양(金孃) 은 애국가(愛國歌)를 어떻게 불렀는지 정신(精神)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拍手)가 터지며 유재두, 와지마 고이찌 선수간(選手間) 의 미들급 세계타이틀매치가 시작되었습니다
개막식행사(開幕式行事) 아무런 문제없이 순조(順調)롭게 진행(進行)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문제(問題)는 경기(競技)가 끝나자말자 tv중계를 지켜보았던 fan-팬-들로부터 빗발치는 항의전화(抗議電話)가 kbs 로 걸려오기 시작한것입니다
김양이 애국가(愛國歌)를 엉급결에 부르게된 실재상황(實在狀況)을 잘모르는 fan-팬-들이 지금보면 군바리시대(時代) 정치군인(政治軍人)들의 과잉충성(過剩忠誠)하듯
쏠림현상으로 일어난 happenimg-해프닝-이었습니다
도대체 애국가가사(愛國歌歌詞) 도 재대로 알지 못하는 가수(歌手)를 세계타이트틀매치 개막식(開幕式)에 내보내어 국제적(國際的)인 망신(亡身) 을시키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경기(競技)에서 유재두선수가 무기력(無氣力)하게 져버린것에 대한 분(憤)풀이하듯 2~3분간격으로 욕설전화(辱說電話)가 걸려왔습니다
방송사(放送社)측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죄인(罪人)이라도 된양 무조건(無條件)”죄송합니다’”잘못했습니다”하는 소리를 연발(連發)하며 진땀을 흘릴수밖에 별도리가 없었습니다
이에 kbs 방송국(放送局)에서는 일본(日本)에있는 김수란에게 항의전화(抗議電話)를 하자 김양은 하도 정신(精神)이 없어서 애국가(愛國歌)를 어떻게 불렀는지 기억(記憶)조차
나지않는다고 태연(泰然)했습니다
그녀는 자신(自身)이 무슨짓을 했는지 자신(自身) 때문에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연(全然)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김수란은 정신(精神)없이 애국가(愛國歌)를 부른후 동경(東京)에있는 숙소(宿所)에 돌아와 쉬고있었읍니다
오히려 우연(偶然)히 세계타이틀매치 경기(競技)에서 한국(韓國)을 대표(代表)하여 애국가(愛國歌)를 부른데 대하여 긍지감(矜持感)저 느끼고 있었습니다
인간(人間)은 누구나 사건(事件)이 발생했을 때 자기(自己)에게 유리(有利)한 쪽으로 생각(生角)하기쉬운 존재(存在)일수 밖에없지만—
긍지감(矜持感)을 느끼려면 요구(要求)하는 수준(水準)을 능가하는 실력(實力)을 발휘(發揮)했을 때 가능(可能)한것임을 경험(經驗)이 일천(一淺) 한 그녀는 알수있는 시기(時期)가
아니였습니다
김양(金孃) 이 kbs 로부터 항의전화(抗議電話)를 받고 찜찜해하고 있는데 한국(韓國)의 중앙정보부(中央情報部)까지 나섰습니다
위압적(威壓的)인 전화(電話)를 해서
”야! Xx-아 너 정신(精神)이 있냐없냐?? 도대체 애국가(愛國歌) 하나도 재대로 못부르는 x 이 무슨 가수(歌手)야?”
욕설(辱說)을 퍼부으며 당장(當場) 귀국조치(歸國措置) 시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시기 쿠테타정권의 비호(庇護)아래 그들의 주구(走狗)가되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勸力)을 휘두르던 그들인지라 전화(電話)를 받고나니 하늘이 노랗게 보이면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연약(軟弱)한 여자가수(女子歌手)가 그 무시무시한 중앙정보부(中央情報部)에 끌려가 무지막지(無知莫知)한 고문(拷問)을 당한다고 생각(生角)하니 차라리 바닷물에 빠져 죽고싶다는
생각(生角)이 들면서 자신(自身)도 모르게 엉엉울기 시작(始作)했습니다
1438--이런 사실(事實) 아십니까?
누구에게 드릴까요
예쁜 장미(薔薇) 한송이
그누구에게 드릴까요
싱싱한 장미(薔薇)한송이
나도 이젠 사랑이란 두글자를 알아요
진실(眞實)하고 착한사람
그누군지 말해줘요
아~아~ 빨리와요 손을 흔들며 다정(多情)한 눈빛으로
아~아~ 미소(微笑)지으며 말해주세요
나를 사랑한다고
누구에게 드릴까요
예쁜장미(薔薇)한송이
그누구에게 드릴까요
싱싱한 장미(薔薇) 한송이
상기가요(上記歌謠) <누구에게 드릴까요>는 임오생 사(詞), 곡(曲)으로 가수(歌手) 김수란 양(孃)이 불렀읍니다
1980년대 초(初) 대성레코드발매 lp음반(音盤)-누구에게 드릴까요-title 曲-타이틀곡-으로 실려있읍니다
김수란이 느닷없이 울기 시작하자 가장 당황한 사람은 이방자씨 였습니다
이방자씨가 왜우느냐고 이유(理由)를 물어도 방바닥을 뒹굴며 울기만 하니 답답할수 밖에 없었읍니다
뭐 귀중품(貴重品)이라도 도난(盜難)당했거나 아니면 일본남자(日本男子)에게 봉변(逢變)이라도 당한건지 도대체 알수가 없어 이방자씨도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습니다
몇시간을 소리내어 울던 그녀는 제풀에지쳐 있을떄 이방자씨가 무슨일이냐고 다시 물었읍니다
그제서야 전후사정(前後事情)을 모두 털어놓았읍니다
“고국(故國)돌아가지도 못하고 죽게생겼어요”
“도대체 어떻게 불렀기에 중앙정보부(中央情報部)에서까지 야단을쳐?”
“애국가(愛國歌) 를 전부외우지 못해서’동해(東海)물과 백두산(白頭山)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保佑)하사 우리나라 만세(萬歲)’까지만 부르고 끝내 버렸거든요”
학교(學校)다닐 때 건성으로 몇번 불러본후 애국가(愛國歌)를 부를 기회(機會)가 거의없었고
그래서 가사(歌詞)를 분명(分明)하게 외우지 못했읍니다
이는 김수란 양(孃) 뿐만아니라 kbs 에 항의전화(抗議電話)를 한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군(軍)시절(時節) 국민교육헌장 못외운다고 휴가(休暇)를 보내주지 않은 고위층(高位層)군바리들과 다를바없는 과잉충성(過剩忠誠)입니다
전국민(全國民)의 관심(關心)이 집중(執中)된 세계타이틀 경기장(競技場)에서 애국가(愛國歌)를 부르게될줄은 몰랐다는 그녀의 야기였습니다
본의(本意)아니게 국가(國家)와 국민(國民)에게 돌이킬수없는 죄(罪)를 지었으니 어찌 가수(歌手)라고 무대(舞臺)에 설수있느냐고 중얼거리며 또다시 울기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갑자기 나타나 경기장(競技場)으로 끌고간 낯선 한국(韓國)청년(靑年)들을 원망(怨望)했습니다
“내가 노래를 하겠다고 자청(自請)한것도 아니고 갑자기 나타나 납치(拉致)하다시피 끌고가 망신(亡身)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자초지종(自初至終)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난 이방자씨가 말했읍니다
“내가 청와대(靑瓦臺) 들어가 박통(朴統)한테 상세한 이야기를 해볼 테니 너무 염려말아요”
그녀의 이야기에 다소 안심(安心)이 되기는 했지만 워낙 중앙정보부(中央情報部)는 곳이 무서운곳이라는 소문(所聞)을 들어왔기에 김수란자신도 이리저리 수소문(搜所聞)하여
잘봐달라 부탁을 할수밖에 없었읍니다
다행이 당시 중앙정보부에 근무(勤務)하던 친척(親戚)오빠를 찾아내 사정(事情)이야기를 한덕분인지, 이방자씨 덕분인지 그일은 김수란의 걱정보다 조용히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보다도 더큰 문제(問題)가 있었습니다
다시한번 와지마고이찌 선수를 신나게 두들겨 패줄줄 알았던 유재두선수가 어처구니 없이 ko패(敗)를 한것입니다
쥐약을 먹은듯 주먹한번 제대로 써보지못하고 치욕적(恥辱的)인 ko패(敗)를 당하고 말았으니 전국민(全國民)들은 물론 재일교포(在日僑胞) 들의 사기(士氣)는 땅에 떨어졌읍니다
교포(僑胞)들은 경기장(競技場)을 빠져 나오기가 창피(猖披)할 지경이었습니다
이 시합(試合)이 끝난후 수많은 뒷말이 무성(茂盛)했습니다
유재두가 엄청난 돈을 받아먹고 일부러 져 주었다느니 일본인(日本人)들이 경기(競技) 몇 달몇달전 미인계(美人計)를 써서 힘을 뻈다드니, 유재두선수가 공항(空港)에
내리자말자 중앙정보부(中央情報部)로 끌려가 죽도록 얻어 맞았다느니 별의별 소문(所聞)이 난무(亂舞)했읍니다
Pro bgoxing-프로복싱-세계(世界)는 실력(實力)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manager-매니저-들의 농간(弄奸)에 의하여 거액(巨額)의 돈이 오가는등 미리 승패(勝敗)를 정해놓고
시합(試合)을 한다는 소문(所聞)도 존재(存在)합니다
그래서 미국(美國)같은 데서는 많은돈을건 도박(賭博)꾼들이 흥분(興奮)하여 선수(選手)나 promoter-프로모터-를 살해(殺害)하는 일까지 일어나는 경우도있습니다
Manager-매니저-끼리 은밀(隱密)한 돈거래(去來)가 이루어지면서 몇회전에 져주기로 합의(合意)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proboxing-프로복싱-세계(世界)를 폭로(暴露)한 영화(映畵)가바로<상처(傷處)뿐인 영광(榮光)>,<사각(四角)의 jungle-정글->입니다
한국최초(韓國最初) (世界 champion-)세계챔피온-이된 김기수 선수(選手)의 title match-타이틀매치-때도 돈거래(去來)가 있었다는 소문(所聞)이 무성(茂盛)했습니와 여가수다
상대(相對)선수(選手) 벤베누티에게 실큰 얻어맞고도 home ground-홈그라운드-라는 텃세 때문에 title-타이틀-을 땄기때문이었습니다
Tv로 실황(實況)을 지켜본 시청자(視聽者)들은 아무리 우리선수지만 실력(實力)으로 완전(完全)히 진 game-게임-이라고 의아(疑訝)해 했습니다
한동안 김기수측에서 4만불이라는 엄청난 돈을 지불(支拂)했다드니 미인계(美人計)를 썼다는 따위의 뒷말이 나돌았습니다
벤베누티선수는 이탈리아에 돌아가 한체급올려서 世界 champion-세계 챔피언-이 다시되어 돈 거래소문(去來所聞)을 더욱 믿게했읍니다
어찌되었거나 그해는 유재두선수만큼이나 김수란도 구설수(口舌數)에 올랐던 해였읍니다
유재두 선수와 김수란 양(孃) 의 인연(因緣)은 악연(惡緣)이라 해야할것입니다
한국에서도 권투(拳鬪)선수(選手)와 여가수(女歌手)간에 연애(戀愛)를 하거나 결혼(結婚)을 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大部分) 악연(惡緣)으로 끝나 버렸습니다
그대표적(代表的)인 예가 70년대 동양(東洋) champion-챔피언-으로 아시아의 권투계(拳鬪)를 석권(席卷)했던 핵주먹 허버트강과 여(女) 가수(歌手) 임선아양의 염문설(艶聞說)입니다
世界 champion-세계챔피언- h 선수(選手)와 o양(孃)이야기도 빼놓을수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세인(世人)들의 관심(關心)을 끌었던 bgoxing選手-복싱선수-와 여가수(女歌手)간의 인연(因緣)은 공교(工巧)롭게도 대부분(大部分) 악연(惡緣)으로 끝이났습니다
왜 그럴까요??
1439-이런 사실 아십니까?
오색(五色)빛 바람개비 여자(女子)웃음에
눈뜨고 속아넘는 못난 사나이
그러나 태양(太陽)아래 숨은 비밀(秘密)도
세월(歲月)이 흘러가면 알게 되리라
세상(世上)은 넓지만은 좁기도 하지
007 살살이를 어이 모르랴
언제나 아무몰래 여자(女子)차림에
넌지시 비밀(秘密)찾어 웃는 사나이
뭐든지 꼬리길면 잡힌다는 걸
꿈에도 어리석게 몰랐었더냐
뛰는놈이 있다면 나는 놈이 있다
007 살살이를 다시 보아라
<몰랐지 살살이 007은 몰랐을거다>
상기가요(上記歌謠)<살사리 몰랐지>는 천지엽사 서영은곡으로 comedian-코메디언-서영춘씨가 불렀읍니다
Sinsegy-record 발매lp음반-서영은작곡집-title 曲)-으로 실려있습니다
이곡은”007 폭소(爆笑)판”이란 부제(副題)가 붙은 서영춘 주연(主演)의 희극영화(喜劇映畵)<살살이 몰랐지>의 주제가(主題歌)로 발표(發表)되었습니다
1966년 제작(制作)된 이 영화(映畵)는 신봉승 각본(脚本) 김화랑 감독
監督) 그리고 서영춘, 도금봉, 김희갑, 허장강 씨(氏)등이 열연(熱演)했습니다
당시(當時) 무대(舞臺)에서 절정(絶頂)을 구가(謳歌)하던 서영춘씨는 곡(曲)을 창작(創作)한 작곡가(作曲家) 서영은씨의 친동생입니다
작사가(作詞家) 천지엽은 상기곡(上記曲)외에도 최숙자씨의<개나리 처녀(處女)> 송춘희씨의<영산강(榮山江) 처녀(處女)> 을 작사(作詞)했습니다
연예(演藝)pd 제1호(號)
박창학 pd 의 별명(別名)입니다
숱한 공개방송(公開放送)을 하기위해 전국각지(全國各地)를 누비고 다녔읍니다
지역주민(地域主民)들이나 군부대(軍部隊)의 초청(招請)에 의해 공개방송(公開放送)을 하는것으로 대개 융숭(隆崇)한 대접(待接)을 받았지만 간혹 현지주민(現地主民)이나
장병(將兵)들로부터 뜻밖의 봉변(逢變)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1970년 7월말 찌는듯한 폭염(暴炎)이 계속(繼續)되고 있었습니다
대천해수욕장(大川海水浴場)에서 피서객(避暑客)을 위한 납량특집(納凉特輯) 공개방송(公開放送)을 했습니다
<Kbs 향연(饗宴)>과<아마추어 노래자랑>등 두편을 공개방송(公開放送) 중이었는데<kbs 향연(饗宴) >사회(司會)를 맡은 서영춘씨가 전날밤 마신술이 깨지않아서 사회(司會)를
볼수없는 입장(立場)이었읍니다
할 수 없이 쓰리보이 신선남씨에게 사회(司會)를 대신(代身) 보도록 부탁을 했는데 공연(公演)도중 관중(觀衆)과 싸움이 벌어지는 불상사(不祥事)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One man show-원맨쇼-를 전문(專門)으로하는 쓰리보이로 갑자기 사회(司會)가 바뀌자 성영춘이 사회를 본다는 소문(所聞)을 듣고 찾아온 술취한 관중이 수영복(水泳服)차림으로
무대(舞臺)에 뛰어올라 욕을하며 시비(是非)를 걸었습니다
“야 니가 살살이 서영춘이냐?”
순간(瞬間) 쓰리보이의 주먹이 관객의 면상(面上)으로 날아갔고 술취한 취객(醉客)의 친구(親舊)들이 무대위로 올라와 치고받는 난투극(亂鬪劇)이 벌어졌습니다
종로(鍾路)판에서 주먹깬 쓰는 어깨중의 한사람으로 쓰리보이가 그냥 있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순식간(瞬息間)에 일어난 사태에 당황한 박 pd 는 겨우 싸움을 말려 장내정리(場內整理) 를 하고 다시 공연(公演)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어느 청년(靑年)이 송해씨에게 욕을 했습니다
“야 임마”
“이런 후레아들 놈같으니 너는 부모(父母)도 없냐?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놈이 아버지뻘되는 어른에게 욕을해?”
그렇지 않아도 화가나있던 쓰리보이가 호통을 쳤다
그래서 또 한차례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공연도중 두번씩이나 싸움이 벌어지는 최악(最惡)의 상태에서 억지(抑止)로 공연을 마쳤읍니다
강원도(江原道) 최전방(最前方)에있는 00부대(部隊) 위문공연을 갔을 때 이야기 입니다
그날따라 부대장병(部隊將兵)들이 온통 술에취해 분위기(雰圍氣) 격해보였습니다
이럴때는 그간 경험상(經驗上) 무슨사곡 일어날 것 예감이 들어 정훈참모(政訓參謀)에게 물었읍니다
”어찌 된일입니까?”
“오늘이 마침 부대창설(部隊創設) 기념일(紀念日)이어서 장병들의 사기(士氣)를 북돋아주기위해 술을 마음껏 마시도록 했습니다”
듣기에 따라 매우 무책임(無責任)한 말이었으나 부대(部隊)마다 지휘관(指揮官)의 독특(獨特)한 지휘방침(指揮方針)이 있기 때문에 이해(理解)할 수 있는 일이었으나
연예인(演藝人)들을 인솔(引率)하고온 입장(立場)에서는 여자가수(女子歌手)들의 안전문제(安全問題)를 염려(念慮)하지 않을수 없었읍니다
혹시 술에취한 장병(將兵)들이 무슨 추(醜)한일이라도 저지르지 않을까 불안(不安)했습니다
어떤부대에서는 사고예방(事故豫防)을 위하여 공연도중(公演途中)에는 소변(小便)도 보러가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소변(小便)이 급한 병사(兵士)들이 오줌을 참느라 얼굴색이 노랗게 변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병장(練兵場)에 모인 장병들이 몹시취해서 쓰러져 자기까지하는 모습을본 박 pd 는 정훈참모(政訓參謀)에게 무대(舞臺)양(兩)쪽에 완전무장(完全武裝)을한 헌병(憲兵)을
한사람씩 세워달라고 요청(要請)을 했습니다
이정도로 세심(細心)하게 챙긴후 공연(公演)을 시작했는데도 경험상(經驗上) 불길(不吉)한 예견(豫見)대로 사고(事故)가 터지고 맙니다
내마음 외로울땐 눈을 감아요
자꾸만 떠오르는 그대 생각(生角)에
가슴에 느껴지는 사랑의 숨결
멀리서 아득히 전해오네요
사랑이 끝났을떄 남겨진 이야기는
시들은 꽃잎처럼 흐르는 세월(歲月)이 아쉬워 하겠지---후략---
상기가요(上記歌謠) <기다리는 여심(女心)>은 가수(歌手) 계은숙이 불렀습니다
서라벌레코드발매 lp음반-노래하며 춤추며-side b 에 실려있습니다
인기여가수(人氣女歌手) 계은숙이 등장(登場)하자(何者)우레와 같은 함성(喊聲)과 함께 박수(拍手)소리가 터졌습니다
그녀의 노래 1절이 끝나고 간주(間奏)가 진행(進行)되는동안 갑자기 20여명의 장병(將兵)들이 무대중앙(舞臺中央)을 향해 질서정연(秩序整然)하게 올라오는게 아닌가?
아마 여가수에게 악수(幄手)나 한번씩하고 내려가려나 보다 하고 무심(無心)코 지켜보았읍니다
그런데 무대위로 올라간 20여명이 장병들이 계은숙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원을 그러더니 갑자기 헹가래를를 치기 시작하는것이아닌가?
순식간(瞬息間)에 일어난 일어난 일이므로 무대뒷편의 박 pd 는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습니다
마이크에서는 노래대신에” xx새끼들아”하는 외마디소리가 비명(悲鳴)처럼 터져나왔습니다
이 때문에 공연(公演)은 잠시중단 될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장 추(醜)한 행동(行動)을 군바리들이 하고말았던 것입니다
헌병(憲兵)들이 달려가 제지(制止)함으로써 질서(秩序)를 되찾을수 있었습니다
안일(安日)하게도 멀리서 이 광경(光景)을 지켜본 부대장(部隊長)은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여(女) 가수(歌手)의 입에서”xx 새기들아”하는 욕설(辱說)이 터져나오자 상기(上氣)된 표정(表情)으로 도리어
”위문공연(慰問公演)온 여가수(女歌手)가 장병(將兵)들에게
욕설(辱說)을 할수있느냐?”고 항의(抗議)를 했습니다
이에 박 pd 는 멍청한 부대장(部隊長)에게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설명(說明)해야했고
“여자가수(女子歌手)를 행가래치고 멋대로 몸을 만질수있느냐”
고 거세게 항의(抗議)를 했습니다
그제서야 사태파악(事態把握)이 된 부대장(部隊長)으로부터 재발방지(再發防止)를 약속(約束)을 받은후에야 다시 공연(公演)을 했습니다
이부분에서 박pd의 안일(安日)한 행동(行動)을 지적(指摘)하지 않을수없습니다
숱한 군부대공연(軍部隊公演)으로 술취한 병사(兵士)들의 행동(行動)을 예견(豫見)할수있었으면서 좀더 현실적(現實的)인 여가수(女歌手) 보호대책(保護對策)을 세우지않은점은
두고두고 비난(非難)받아하고 계은숙이 여가수로서 모멸감(侮蔑感)을 느낄정도로 수난(受難)을 당했으면 당장 공연중단(公演中斷) 철수(撤收)했어야지 계은숙이
자기(自己)와 친한사이가 아니라고 공연재개(公演再開)를 한 것은 여가수에게 평생(平生)씻지못할 원망(怨望)을 준것입니다
1440—이런 사실(事實)십니까?
아빠가 떠나신지 4계절(季節)이 갔는데
낯선곳 타국(他國)에서 얼마나 땀흘리세요
오늘도 보고파서 가족사진(家族寫眞) 옆에놓고
철이 공부(工夫)시키면서 당신만을 그립니다
염려(念慮)마세요 건강(建康)하세요 당신만을 사랑하니깐
아빠가 떠나신지 4계절(季節)이 갔는데
낯선곳 타국(他國)에서 얼마나 땀흘리세요
오늘도 보고파서 가족사진(家族)寫眞) 옆에놓고
철이공부(工夫)시키면서 당신만을 그립니다
염려(念慮)마세요 건강(建康)하세요 당신만을 사랑하니깐
상기가요(上記歌謠) <타국(他國)에 계신아빠에게> 는 김상범사(詞), 곡(曲)으로 가수(歌手) 현숙이 불렀습니다
서라벌레코드발매 lp음반-현숙새노래모음 제2집-title 曲-타이틀곡-으로 실려있읍니다
헌데 이번에는 율동가수(律動歌手) 현숙이 등장(登場)하자 또다시 취(醉)한 장병(將兵)들이 말릴겨를도없이 무대(舞臺)위로 뛰어올라 왔습니다
앞서도 언급(言及)했지만 수많은 군부대공연(軍部隊公演)을 했다고 자랑하는 박pd 가 너무 안일(安日)한 생각(生角)을 한것입니다
군부대(軍部隊)장병(將兵)전부(全部)가 취(醉)한 상태(狀態)면 함께간 연예인(演藝人)들 안위(安危)를 먼저생각(生角) 했어야하는데 자기(自己)가 연예인(演藝人) 아니라고 “말릴겨를도 없었니”
”무대뒷편에 있어서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느니” 하면서 변명(辨明)만늘어놓고 있읍니다
역시(亦是) 헹가래를 치면서 소란(騷亂)을 피웠습니다
이와 같은 분위기(雰圍氣)에서는 더 이상 공연을 계속할수없ㄷ고 판단(判斷)하고 일단 공연을 중단(中斷)시켰습니다
특히 사회(司會)를 보고있던 곽규호씨가 흥분(興奮)해서 난리(亂離)였읍니다
이표현도 잘못된것입니다
평범한 사고방식(思考方式)을 가진사람이면 당연(當然)한 행동(行動)을”흥분(興奮)해서 난리(亂離)였다”고 부정적(否定的)으로 표현(表現) 한 것은 너무 자기중심(自己中心的) 사고(思考)입니다
“군부대(軍部隊)공연(公演)을 수십차례(數十次例) 다녔지만 이렇게 형편(形便)없는 부대(部隊)는 처음보았다”는 것입니다
자기(自己)들을 위문(慰問)하려온 여가수(女歌手)를 술집여자(女子) 취급(取扱)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군고위층(軍高位層)에 알려 처벌(處罰)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사 박 pd는 “어안이벙벙할뿐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기가막혔다”하고 있읍니다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을 방지(防止)하기위해서라도 이사실을 국방부(國防部)에 정식으로 통보(通報)하겠읍니다”며 으름장을 놓았다고 말하고있읍니다
이는결국 겁만주겠다는 또 안일(安日)한 생각(生角)을 하고있습니다
말이 왜필요합니까??
즉각(卽刻)행동(行動) 했어야지요??
이에 정훈장교(政訓將校)는 얼굴색이 하얗게 변하며”제발 한번만 용서(容恕)해주십시요”
허나 끝내 용서(容恕)하겠다는 대답(對答)을 안했다고 변명일색-(辨明一色)입니다
아예 이런경우는 공연(公演)을 시작하지 말야했다는걸 깨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같이간 연예인(演藝人)들이 그런취급을 받는겁니다
이렇게 물러터져서 누가 그를믿고 공연(公演)을같이 하려 하겠습니까??
이에 정훈장교(政訓將校)는 서울까지 쫓아와서 계속용서(繼續容恕)를 빌었다고 자기체면치례(自己(體面致禮)만 하고있읍니다
이는 자기책임(自己責任)만 어떠든지 모면(謀免)하려는 행동(行動)이지 군공연문화개선(軍公演文化改善)을 위한 행동(行動)이 결코아닌 비겁(卑怯)한 행동인지 박 pd는 아는지 모르는지??
얼마남지않은 군대생활(軍隊生活)을 탈없이 마치고 싶어하는 속사정을 들은후에야 모든 것을 용서(容恕)해주기로 했다
참으로 답답한 생각(生角)뿐입니다
조그만것밖에 생각(生角)못하는—
흔히 병사(兵士)들은 사기(士氣)를 먹고 산다고 말합니다
지휘관(指揮官)으로서야 부하장병(部下將兵)들의 사기를 올려주고싶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군이 위계질서(位階秩序)를 상실(喪失)하면 이미 군이 아니라 한의 폭도(暴徒)에 불과합니다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연예인(演藝人)들의 입에서는 병사(兵士)들의 무례(無禮)한 행동(行動)을 성토(聲討)하는 욕설(辱說)이 난무(亂舞)했습니다
그것이 정말 연예인(演藝人)들이 군장병(軍將兵)만을 성토(聲討)했다고 생각(生角)하면 큰오산(誤算)입니다
담당(擔當) pd 의 안일(安日)함과 무능(無能)함을 더비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밥줄이 달려있으니 대놓고 욕하지 못할뿐---
60~70대만해도 온통 군바리가 득세(得勢)하던 시절(時節)이라 도를넘는 통제(統制)로인해 전방(前方)에서는 여자(女子)구경하기가 쉽지않았읍니다
그래서 병사(兵士)들의 여동생이나 누이가 면회(面會)를오면 동물원(動物園)에서 원숭이구경하듯 뭇병사들의 시선(視線)이 집중(執中)되었습니다
그리고 졸병(卒兵)은 고참(古參)들로부터 누이를 소개(紹介)해달라는 압력(壓力)을 받기까지 했읍니다
이처럼 여자(女子)라면 치마만 둘렀어도 좋아하는 전방(前方)으로 위문(慰問)공연(公演)을 갈때면 일부러 예쁜 여자가수(女子歌手)를 데리고 가곤 했습니다
일년에 한번있을까 말까한 장병위문공연(將兵慰問公演) schedule-스케줄-이 잡힌 부대(部隊)에서는 으레 정훈참모(政訓參謀)가 방송국(放送局)으로 찾아와서 부대장(部隊長)이 각별(各別)이
좋아하는 여자가수(女子歌手)를 주문(注文)하기도했습니다
이러한 군공연문화(軍公演文化)도 지적(指摘)받아야 합니다 그위문공연(慰問公演)은 부대장(部隊長) 한사람을 위한 행사(行事)는 결코아니깐요
“우리 부대(部隊) 000장군(將軍)은 000여자가수(女子歌手)를 좋아합니다
다른가수는 안와도 좋으니 000 여자가수(女子歌手)은 꼭오게해주십시요”
아무리 pd 라도 그들의 입맛에맞는 가수(歌手)만을 어떻게 쏙쏙뽑아갈수 있나?
이런 생각(生角)도 잘못된것입니다 국민(國民)들의 세금(稅金)으로 근무하는 사람이 그들의 일방적(一方的)인 불공평(不公平)한 요구(要求)를 철저(徹底)하게 거부(拒否)해야지 마치
즐기고있는듯한 행동(行動)이지 않습니까??
정훈참모(政訓參謀)는 어떤 방법(方法)을 써서라도 그가수만 꼭데려와야 한다고 사정(事情)을 하다못해 은근히 협박(脅迫)까지 합니다
이들이 그러는 것은 군장병(軍將兵)을 위한것이아닌 윗사람에 잘보여 출세(出世)하려는 사적욕심(私的慾心)일뿐입니다
이러한 요구에 pd는 체면(體面)을 생각(生角)해야하고 해서 가수(歌手) manager-매니저-들에게 압력(壓力)을 넣게되고
다른 program-프로그램-에 선약(先約)이 된경우는 상대(相對) pd 에게 애원(哀願)조차 한다
해서 pd 는 때로는 포악(暴惡)한 왕(王)도되고 때로는 천박(淺薄)한 기생(妓生)도 된다고 엄살을 떨고있습니다
왜그럼 그긴세월 그곳에 있었소???
1441-이런 사실(事實)십니까?
이국(異國)땅 삼경(三更) 밤마다 찬서리고
어버이 한숨쉬는 새벽달일세
마음은 바람따라 고향(故鄕)으로 가는데
선영(先塋)뒷산에 잡초(雜草)는 누가 뜯으리
어야어야어야~ 어야어야어야~
어야어야어야~ 어야어야어야~
어야어야어야~어야어야어야~
피는물로 한줄 한줄 간양록을 적으니
님그린뜻 바다되어 하늘에 닿으세라
어야어야어아~어야어야어야~
어야어야어야~어야어야어야
어야어야어야~어야어야어야~
어야어야어야~어야어야어야~
상기가요(上記歌謠)<간양록>은 신봉승사 조용필곡 으로 가수(歌手) 조용필 씨(氏)가 불렀습니다
Mbc-tv 동명(同名)의 인기연속극(人氣連續劇) 주제가(主題歌)로 발표(發表)되었습니다
1979년 인기상승일로(人氣上昇一路)에있던 조용필이 미팔군무대(美八軍舞臺)의 출연대기실(出演待機室)에서 입에문 대마초(大麻草)가 문제가되 4년간 방송(放送) 출연금지(出演禁止)를
당한후 해금(解禁)이된후 동아방송(東亞放送) 안평선 pd로부터 연속극(連續劇) <창(窓)밖의여자(女子)>주제가(主題歌)를 불러달라는 연락(連絡)을 받고 drama作家-드라마작가-
배명숙이 건낸 노랫말에 곡을붙인 것이 대박(大舶)이 난후 이어서 후속타(後續打)로 발표(發表)한 절창(絶唱)의 가요(歌謠)입니다
kbs역대사장(歷代社長) 가운데 가장많은 일화(逸話)를 남긴자는 이원홍 입니다
전두환이 수괴인 쿠테타군부 가 집권하던 5공화국(共和國)초에 사장이된 그는12,12쿠테타가 일어나기전 까지는 최규하 국무총리(國務總理)의 비서관(秘書官)으로 있다가 심복(心腹)
김재규에게 박통이 살해(殺害)당한10,26 사태(事態)로 최규하가 대통령(大統領)이 되면서 졸지에 청와대(靑瓦臺)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당시 세도(勢道)가 당당(堂堂)했던 국보위 문공위원으로 있던 고등학교(高等學校) 후배(後輩)의 추천(推薦)으로 하루아침에 kbs 사장으로 발탁(拔擢)된 이원홍은 지나치게
권력층(權力層)을 의식(意識) 한 나머지 각종 웃지못할 일화(逸話)를 남겼습니다
그러라고 발탁(拔擢)했으니 그런 수준의(水準) 인사(人士)가 사장(社長)이 됐을터 국민(國民)들을 위하여 일하라고 국민들이낸 혈세(血稅)로 운영(運營)되는 kbs 방송국(放送局)의
사장(社長)이 사리사욕(私利私慾)으로 집권자(執權者)에 아부(阿附)하기위하여 그권력(勸力)을 남용(濫用)하는일은 지금까지도 계속(繼續)되고 있습니다
그는 kbs사장(社長)으로 온후 군출신(軍出身)처럼 강압적(强壓的)이어서 대부분 kbs직원(職員)들은 군출신(軍出身)인줄 착각(錯覺) 했읍니다
허나 그는 한국일보(韓國日報) 기자출신(記者出身)이었고 시대(時代)가 때로는 장난을쳐 인물(人物)을 만들곤하는데 그가 군출신(軍出身)처럼 행동한 것은 군바리들이 득세(得勢)하던
시절(時節)이다보니 군부실세(軍部實勢)들에게 잘보여 출세(出世)하기위한 gesture-제스추어- 였습니다
많은 kbs 직원(職員)들은 그의 철저한 행동을 보면 히틀러를 연상(聯想)했을정도였으니 그가얼마나 직원들에게 무서운 존재(存在)였는지 상상할수 있을것입니다
윗사람에게는 철저(徹底)하게 굽실대지만 아랫사람들은 무참(無慘)히 짓밟아 버렸습니다
이러한 야비(野卑)한 성품(性品)의 소유자(所有者) 이원홍이 사장이 되었으니 업무(業務)는 뒷전이고 문공부등 상부(上部)의 눈치보기에 급급(急急)했습니다
어떻게하면 청와대(靑瓦臺)나 보안사(保安司)등 군부실세(軍部實勢)에 줄을댈수 있을까 고심(苦心)하던차에 우리나라 방송사(放送史) 최악(最惡)의 비극적(悲劇的)인 사태(事態)
신군부(新軍部) 의 강압적(强壓的)인 민방통합(民放統合)때 kbs 로 옮긴 c부장(部長)을 만나게 됩니다
청와대(靑瓦臺)와 비서실(秘書室)등 썩어서 구린내가 진동하던 곳에 줄이있다는 c 부장을 발견(發見)했으니 각별(各別)한 관심(關心)을가지고 직원들에게 호랑이처럼 굴다가도
그를 만나면 보기도 역겨울정도로 얼굴 가득 아부를하며”c부장 내방에 자주 놀러와요”애교(愛嬌)를 떨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던차에 국민들 그누구도 축하(祝賀)하지않는 신군부(新軍部) 그들만의 잔치(殘置)인 ”제12회전두환 대통령 취임(就任) 경축(慶祝)쇼”라는 대형 program-프로그램-을 오로지
전두환을 위하여 국민(國民)들이 주인(主人)이어야할 kbs 에서 맡아야 했습니다
이점을 kbs 박창학 pd를 비롯하여 직원(職員)들은 두고두고 국민들에게 죄(罪)스러하며 살야합니다
이에 이원홍은 c부장을 앞세워 청와대(靑瓦臺) 보안(保安司實勢)들에게 점수를 따고싶어서--- 이쇼를 2개월이나 준비해온 박창학 pd 를 하루아침에 c부장으로 전격교체(電擊交替) 해버립니다
박 pd 가 갑작스런 연출(演出)책임자(責任者) 교체(交替)에 항의를 했으나 결국 무대연출(舞臺演出)은 박pd 가 tv중계연출(中繼演出)은 c 부장이 맡아 진행(進行)하기로 양해(諒解)할수에 없었습니다
Kbs 사운(社運)을건 첫공연이 춘천(春川)에서 개막(開幕)되었고 국민들을 위해서 일해야할 부처인 청와대에서 전두환 한사람을위하여 누가 좋아한다고 국민(國民)혈세(血稅)를
낭비(浪費)해가면 축하쇼를 개최하며 kbs 직원들의 회의하는모습까지 사진촬영(寫眞撮影)하여 보고하는등 요란(搖亂)을 떨기까지 합니다
국민(國民)들을위한 것이 아닌 전두환 개인(個人)을 위한 본격적(本格的)인 충성경쟁(忠誠競爭)을 하기시작한것입니다
허나 전두환은 참석(參席)하지 않았습니다
두번째는 청주(淸州)에서 열렸고 역시(亦是)---- 다음공연지는 대전(大田)이었습니다
전두환의 관심지는 대전(大田)이라는 소문(所聞)이퍼지며 이원홍, s이사, j부국장등 잘보여야할 부류(部類)들이 아침부터 설쳐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날도 전두환이 참석한다는 소문(所聞)만 무성(茂盛)했지 공연이 다 끝나도록 나타나지 않았읍니다
마치 똥개 훈련시키듯-----
이원홍의 실망(失望)하는 표정(表情)이 어찌나 역력(瀝瀝)했던지 옆에서지켜보기가 민망스러웠읍니다
대전공연(大田公演)의 주인공(主人公)은 조용필씨였는데 대전(大田)에 도착해보니
자신도 모르는 엉뚱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대전(大田)에 있는 night-club-나이트클럽-에서 조용필에게 사전(事前)아무런 협의도없이”super-star-슈퍼스타- 조용필 출연(出演)”이라는 大型placard-대형 프랜카드-를 만들어
도심(都心) 곳곳에 붙여 놓은 것입니다
조용필는 자신도 모르는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박pd 에게 호소(呼訴)했습니다
박 pd 는night-club-나이트클럽- 사장(社長)을 불러오도록 요구하자 몇시간 후에야 사장(社長)과함께 나타난사람은 Stunt-man-스턴트맨-출신(出身)으로 영화배우(映畵俳優)겸
show 興行業者-쇼흥행업자-인--- 현(現) 가수(歌手)설운도씨 manager-매니저- 안태섭였습니다
조용필이 대전에오면 night-club-나이트클럽-에 잠시 데려와 손님을 끌 욕심(慾心)에 placard-트랜카드-를 여기저기 붙였다는 것이었고 그들이 자진철거(自進撤去)하는것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다음 공연(公演)지(地)는 대구(大邱)였습니다
대구(大邱)는 전두환과 같은 경상도(慶尙道) 이니까 틀림없이 참석(參席)할것이라고 기대가 컸습니다
이날 이원홍은 kbs 간부(幹部)들은 물론 공연(公演) schedule-스케쥴-에도 없는 인기배우(人氣俳優) 정윤희를 데리고 대구로 날아왔습니다
아부(阿附)의 극치(極致) 를 보여주는 모습(貌襲)이라 아니할수없습니다!!!<다음회로 계속됩니다>
1442—이런 사실(事實)아십니까?
봄이오면 마음속에 꽃이 피어도
수줍고 부끄러워 말을 못해요
열여덟살 풋가슴에 스며드는 산들들바람
첫사랑의 문을여는 고운님 소식(消息)인가
휘늘어진 수양버들 그늘 숲에는
꾀꼬리의 노래소리 정다웁지요
봄이오면 가슴속에 새가 울어도
파랑새의 하소연을 누가 아나요
달이 뜨면 우물가에 들려오는 피리소리
정(情)을실어 보내주는 고운님 소식(消息)인가
장미(薔薇)향기(香氣) 번저나는 이한밤에는
호랑나비 내가슴에 꿈을 꾸지요
봄이오면 마음속에에 수를 놓아도
이 정성(精誠) 바칠님이 어데있나요
당사(唐絲)실로 엮어 밤을새운 사랑애(愛)자
안타까운 첫사랑을 왜 몰라주신요
갑사(甲紗)댕기 얼룩지는 이한밤에는
꽃도 새도 내가슴에 잠이들지요
상기가요(上記歌謠)<첫사랑>은 반야월사 나화랑곡으로 가수(歌手) 이미자씨(李美子氏)가 불렀읍니다
1960년 king star-record 서 발매했습니다 sp음반입니다
작곡가(作曲家) 나화랑에게 swing 리듬의 <열아홉순정(純情)>을 받아 이미자씨 가요인생(歌謠人生) 처음으로 전국적(全國的)인 힛트를 기록(紀錄)한후
또다시 swing-rhythm 의 흥겨운가요로 취입(吹入)했습니다
어떻게든 그사람이 어떤 폭력적수단(暴力的手段)을 동원(動員)을 해서 대통령(大統領)이 되었건간에 무조건(無條件) 절대권력(絶對權力)에 잘보여 출세(出世)해보려는---한사람의
출세지상주의(出世至上主義) 로인해 많은 사람이 고통(苦痛)을당하던 말던---- 어떻게든 대톨령에게 점수를 딸 기회(機會)를 얻으려고 피나게 노력(努力)하는 모습이 한사람의
인간(人間)으로서 애처러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허참씨와 함께 combi콤비-를 이뤄 사회(司會)를 보기로한 정소녀씨가 갑자기 행방불명(行方不明)이 되었습니다
허참씨에게”무슨 일입니까” 물으니
“실은 간밤에 남편(男便)이 찾아와 부부싸움을 심하게 하더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여기저기 수소문(搜所聞)을 해본결과 어제 밤늦게 남편(男便)과 하얀세단을 타고 나가는걸 보았다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서울집으로 급히 전화(電話)를 해보니 정소녀는 집에서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하도 기가막혀 호통을 쳤습니다
“당장에 비행기(飛行機)타고 내려오지 않으면 너죽고 나죽는다”
상황(狀況)이 워낙 급(急)해서 막말을 해야했습니다
후일(後日)알고보니 대구공연(大邱公演) member멤버-에 정소녀의 옛 애인(愛人)이인 가수(歌手) 최병걸이가 끼어있다는 사실(事實)을 뒤늦게안 남편(男便)이 대구(大邱)까지 내려와서 정소녀를
강제(强制)로 상경(上京)시킨 것이었습니다
그다음 공연(公演)지(地)는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光州民主化運動)의 살벌(殺伐)한 분위기(雰圍氣)가 직도 생생(生生)한 광주(光州)였습니다
바짝긴장(緊張)을 하고 공연(公演)을 하는데 왠 청년(靑年)이 갑자기 옷을벗고 streking-스트리킹 -을 하는 바람에 사회자(司會者)인 임성훈과 정혜경씨가 혼비백산(魂飛魄散)을 할만큼놀랐습니다
그 청년(靑年)은 streking-스트리킹-으로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을까요??
전두환의 무력(武力)앞에 무능(無能)하기만한 사법부(司法府)를 비난(非難)하고 싶었을까요
아님 아무 죄(罪)도없는 광주시민(光州市民)들을 무자비(無慈悲)하게 전쟁시(戰爭時) 적군사살(敵軍射殺)하듯한 쿠테타 수괴(首魁) 전두환을---??
겨우 공연(公演)을 마치고”제12대 전두환대통령취임 경축쇼”라는 placard-플랜카드-가 걸려있는 觀光bus-관광버스- 에 올랐을 때 수십명(數十名)의 군중(群衆)들이 차를 애워싸는 모습(貌襲)이 심상(心象)치 않았읍니다
눈군가가 운전사(運轉士)에게 소리쳤습니다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
버스를 에워싼 군중(群衆)들을 헤치고 실내체육관(室內體育館)을 빠져나와 숙소(宿所)인 00hotel-호텔-에 도착했을때 버스에 걸려있던 placard-플랜카드-가 면도칼로 난도(亂刀)질이 되어 있었습니다
광주시민(光州市民)들의 신군(新軍部)에 대한 저항(抵抗)처럼------
그날 비급(備急)한 전두환은 광주(光州)에 왔은 분위기(雰圍氣)가 험악(險惡)하자 기관장들과 점심만 먹고 도망치듯 가버렸읍니다
또다시 이원홍은 아부기회(阿附機會)를 놓쳤습니다
마지막 공연(公演)지(地)는 전주(全州)였습니다
이날은 유난히 기관원(機關員)들의 감시(監視)가 심했습니다
이는 광주에서 광주시(光州市民)들의 험악(險惡)한 분위기(雰圍氣)로 전두환이 도망치듯 가버린것과 무관(無關)하지 않을것입니다
비표(秘標)를 단 방송요원(放送要員)까지 몸수색(搜索)을 했습니다
이는 전두환이 이공연에 참석(參席)한다는 신호(信號)였을 것입니다
이날 top singer-톱가수-는 이미자(李美子)와 전통이 월남전쟁근무시(越南戰爭勤務時) date申請-데이트신청- 을 퇴짜를 놓았던 김세레나 였습니다
평소(平素)처럼 두가수(歌手)는 출연순번문제(出演順番問題)로 눈에 보이지않는 경쟁(競爭)을 했습니다
어느공연에선 top singer-톱가수-는 첫 tape-테이프-를 끊건 마지막을 장식(粧飾) 하는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날도 역시(亦是) kbs 이원홍사장은 대통령에게 잘보여 점수를 딸수있는 마지막기회를 안타깝게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공연(公演)의 막이오르기 3분전”전두환이 20분후에 참석한다”는 연락(連絡) 이왔습니다
이번에는 진짜로 참석하는구나하고 초긴장상태(超緊張狀態)서 최종점검(最終點檢)을 해야했습니다
대통령이 곧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먼저 박 pd 에게 나타난 가수는 김세레나 였습니다
자기가 첫 tape-테이프-를 끊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잠시후 이미자씨의 남편인 kbs pd도 나타나 역시 첫출연을 요구(要求)했습니다
두사람이 서로먼저 출연(出演)하겠다고 싸우니 중간(中間)에서 입장이 곤란해진건 당연(當然)히 박 pd 였을것입니다
허나 여기서 주체(主體)하기 힘든분노(憤怒)를 느끼는건 그간 국민(國民)들의 열화(烈火) 같은 호응(呼應)으로 그자리끼지 오른소위 top singer-톱가수- 들이 역사의식(歷史意識)도
없이 쿠테타로 무고(無故)한 광주시민(光州市民)들을 그렇게 무참(無慘)히 살해(殺害)한 전두환에게 분노를느끼지 못할망정 뭐 잘했다고—그들이야 죽었건 말건- 자기(自己)들만
잘보이겠다고 서로싸우는 모습(貌襲)은 정말로 구역(嘔逆) 질 납니다
그녀들의 사고수준(思考水準)이 이 모양 이라니 그간 좋아했던으로 마음이 배신감(背信感)으로 뚜껑이 열리려 합니다
이런모습을 보며 관직(官職)에 있는사람들이나 가수(歌手)들이나 그사람이 과거(過去)의 용서(容恕)받지 못할 범죄자(犯罪者)였건말건 현재 절대권력(絶對權力)을 가진자에게 잘보이고
싶어하는 모습은 다를게없다 싶어서 입맛이 씁쓸해짐을 어쩔수없었습니다
이미자 김세레나가 그랬던 행동(行動)을 반성(反省)은 그만두고라도 기억(記憶)이나 하는지 묻고싶어집니다
1443—이런 사실(事實)아십니까??
붉은 불 그 정열(情熱) 푸른불 그 희망(希望)
그대의 눈동자같이 빛나는 등불
꿈같이 달콤한 사랑의 노래여
언제나 명랑(明朗)한 우리들 달콤한 사랑
떨리는 그대의 숨결이 들리는 밤에
새장의 카나리아 꿈을 꾸는가
붉은불 푸른불 거리의 꽃등불
사랑의 신호(信號)같이 빛나는 등불
정다히 부르는 사랑의 노래여
언제나 행복(幸福)한 우리들 새파란 사랑
뜨거운 그대의 입술이 열리는 밤에
행복(幸福)으 가만히 품에 안기네
상기가요(上記歌謠) <사랑의 등불>은 반야월사 나화랑곡으로 가수(歌手) 이미자씨(李美子氏)가 불렀습니다
1960년 king star-record 서 sp음반으로 발매했습니다
타면(他面)에는 반야월사 나화랑곡 남일해노래 <눈물의 보신각(普信閣)>이 보입니다
아무튼 두사람으 끝까지 양보(讓步)를 하지않고 첫출연을 고집했습니다
이미자의 남편(男便)은 첫출연을 시켜주지 않으면 공연(公演)을 포기(抛棄)하고(下考)그냥 서울로 올라가고 말곘다는 으름장까지 놓았습니다
같은 pd 로서 충분히 박 pd의 곤란한 입장을 알터인데도 끝까지 고집을 피웠습니다
이에 그는 같은회사 pd 라 차마끝까지 싸울수없어서 결국 김세레나를 설득(說得)할 수밖에 없었읍니다
전두환이 공연도중 일어날 기미가 보이면 어느대고 무대에 내보낼것을 약속하고 순서를 맨뒤로 돌렸습니다
Top-singer –톱가수-는 첫 출연(出演)이 아니면 마지막을 장식하는것이 관례(冠禮)이길래—
드디어 fanfare-팡파레-가 울리고 마지막 공연이 막이 오르자 가요계여왕 칭호가 부끄럽게도 끝내 고집을부려 이미자가 등장(登場)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미자의 어거지를 알아차리기라도 한듯 전두환은 도착시간(倒着時間)이 훨씬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미자가 노래2곡을 다끝내도록 전두환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두명의 가수가 노래를 더부른 후에야 전두환의 입장(立場)을 알리는 사회자(司會者)의 ment-멘트- 있었읍니다
먼저 노래하겠다고 그렇게 고집을 부리던 이미자는 엉엉 울고싶도록 안타까워하는 추(醜)한모습을 끝까지 보였습니다
이에끄치지 않고 다시한번 무대(舞臺)에 나가게 해달라고라 박pd를 조르는 최악(最惡)의 모습을 보였읍니다
허나 프로그램 진행상(進行上) 도저히 불가능(不可能)한 일이었습니다
그간 숱한공연서 여왕대접(女王待接)을 받으며 인기(人氣)를 누렸으면 이제는 남에게 양보(讓步)를 하는 여왕다운 품위(品位)를 보여야지 늙어죽을 때까지 그자리를 놓치지않으려하면
결코 현실(現實)이 그것을 용납(容納) 하지도 않고 고집(固執)하는 자기(自己)만 추(醜)해짐을 몰랐습니다
아니 그런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계속(繼續)자기(自己)가 여왕(女王)이라 착각(錯覺)하며—
절대권력자(絶對權力者)앞에서 top-singer 톱가수-로서의 모습(貌襲)을 유감없이 보여주려던 꿈은 무참(無慘)히 깨지고 만것입니다
자기가 엎지른 물이니 누구를 원망(怨望)하리요!!
가슴속에 가슴속에 사랑은 꽃피워도
멀고 또 멀고 높고 또높아 손길이 닿지않네
닿지를 않네
자나깨나 그리운님 가슴에 병(病)을준님
기다리는 여심(女心)이여 애타는 여심(女心)이여
저 별같이 영롱(玲瓏)하게 찬란(燦爛)한 님이기에
하늘끝에서 바다 끝까지 그리움 멎지않네
멎지를 않네
오랜 세월(歲月) 한결같이 눈물에 젖은가슴
기다리는 여심(女心)이여 애타는 여심(女心)이여
상기가요<기다리는 여심(女心)>은 반야월사 이인권곡으로 가수(歌手) 이미자가 불렀습니다
1966년 grand-record 서 발매(發賣)했습니다
이어서 문주란 김세환등의 인기가수(人氣歌手)들이 등장(登場)하여 노래를 불렀습니다
쇼가 진행(進行)되는 동안 전두환이 공연도중(公演途中) 일어나면 어쩌나하고 발을 동동구른 가수는 아무래도 이미자에게 순서(順序)를 빼앗긴 김세레나 였습니다
전두환이 쇼를 관람(觀覽)하는 시간은 약 20분정도 일것으로 예상(豫想)했으나 그는 2시간이상을 꼬박앉아 쇼를 보았습니다
마치 국민들이 정상적(正常的)으로 투표(投票)를해서 압도적(壓倒的)인 표차(漂差)이로 대통령(大統領)이 된사람처럼 여유(餘裕)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뻔뻔스럽게도----악마(惡魔) 같은 모습(貌襲)으로
무력(武力)으로 집권(執權)했음을 자랑이도 하려는듯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연예인(演藝人)들이 등장(登場)할때마다 박수(拍手)를 치며 흥(興)겨워했습니다
머지막으로 연예계(演藝界)에서 인기가많은 김세레나가 등장(登場)하자 쇼는 절정(絶頂)에이르렀습니다
끝까지 고집(固執)하지않고 양보(讓步)한 보람이 있었습니다
공산명월(空山明月) 밝은달아 님의 사창(紗窓)에 비친달아
님 홀로 누웠드냐 사서삼경(四書三經) 읊으드냐
날개없는 기러기면 날아서라도 가련만은
어이 나는 긴긴밤을 님그리며 눈물짓나
야월삼경(夜月三更) 달도 지네 후유 한숨이 절로난다
들창밖 낙엽(落葉)소리 장장추야(長長秋夜) 어이할까
이별(離別) 이-離-자 왜생겨서 일천간장을 태우는가
나도 언제 님을만나 눈물없이 살아보나
상기가요(上記歌謠)<공산명월(空山明月)>은 반야월사 배상태곡으로 가수(歌手) 김세레나가 불렀읍니다
1966년 아세아레코드서 발매(發賣)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주여고 5백명의 합창단원(合唱團員) 들이 동원(動員)되어 태극기(太極旗)를 흔들며<조국찬가(祖國讚歌)>를 합창(合唱)하면서 전두환에게 인사(人事)를하자 그제사 자리에서일어나
답례(答禮)하며 공연장(公演場)을 떠났습니다
전두환이 그때까지 2시간동안 쇼를 관람(觀覽)한 예가없었다며 역사의식(歷史意識)이 한참모자란 kbs 간부(幹部)들이 감격(感激)까지 하는걸보니 공연(公演)이 별탈없이 끝났음을
알수있었다는 박 pd 의 소감(所感)이 있습니다
그날이후 전두환이 sport-스포츠-못지않게 show-쇼-도좋아한다는 소문(所聞)이 퍼졌고 이소문을 들은 이원홍은 show program-쇼프로그램-wide 化-와이드화-를 시도(試圖)하여”100분쇼” 등
국민(國民)혈세(血稅)를 낭비(浪費)해가며 大型show-대형쇼- 프로그램을 새로만듭니다
특히 “100분쇼”는 이원홍 자신(自身)이 pd가 되어 일일이 지휘(指揮)까지 해가며 camera-man-카메라맨-등 실무자(實務者)들이 시도때도 없이 밤늦은 야근(夜勤)을 해야했습니다
한사람의 출세욕(出世慾)이 여러 사람을 괴롭힘을 그는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아니 알려고도 안했습니다 아부(阿附)하기 바빴으니까-----
1444—이런 사실(事實)아십니까??
어느날 나는 낙엽(落葉)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빈 내마음을 보았죠
그냥 덧없이 흘려버린 그런 세월(歲月)을 느낀그죠
저 떨어지는 낙엽(落葉)처럼 그렇게 살아버린 내 인생(人生)을 에~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예~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바보처럼 바보처럼 우우우~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
흘러버린 세월(歲月)을 찾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 떨어지는 낙엽(落葉)처럼 그렇게 살아버린 내인생(人生)을 예~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예~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바보처럼 바보처럼
난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참 예`~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바보처럼 바보처럼----
상기(上記歌謠)<바보처럼 살았군요>는 김도향사, 곡으로 본인(本人)이 직접(直接) 불렀습니다
한국음반 발매(發賣) lp음반-밤의 찬가(讚歌)- side b에 실려있습니다
의미심장(意味深長)한 가요(歌謠) <바보처럼 살았군요>가 탄생(誕生)한 시절(時節)은 암울(暗鬱)했습니다
일제시대(日帝時代)보다도 그살기 어렵다고 국민(國民)들이 아우성(我友聲) 치던 박정희 독재(獨裁)가 1979년 10월26일 심복(心腹) 김재규 의 총탄(銃彈)의하여 비명횡사(非命橫死)로 끝나고
서울의 봄이 오는가 했는데 박정희를 똑같이 빼다박은 또한명의 정치군인(政治軍人) 전두환에의하여 또다시 12,12 쿠테타가 일으나 민간인대통령(民間人大統領)에 의한 민주화(民主化)를 열망(熱望)하는 분위기(雰圍氣)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新軍部)에의한 정권장악(政權)帳幄)--- 이에 항거(抗拒)하는 민주시민(民主市民)들이 광주(光州)를 비롯한 여러곳에서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이노래는 무능(無能)하다고 밖에 할말이 없는 최규하대통령을 두고 세중(世中)에서<바보처럼 살다가-à운운(云云)------그렇게 부르기도 하는노래이기도 합니다
신군부(新軍部)는 무력(武力)으로(魯)정권을 장악(掌握)하자마자 한국방송사(韓國放送史) 에 가장 최악(最惡)의 사건(事件)인 방송통폐합(放送統廢合)에 착수(着手)하여 mbc 를 제외(除外)한
동아(東亞), 동양(東洋), 기독교(基督敎), 서해(西海) 대구(大邱) fm 방송등 민영방송(民營放送)을 kbs 에 통합(統合)시키는 조치(措置)를 단행(斷行)합니다
당시 방창학 pd 는 kbs 예능국(藝能局)에 근무했는데 직속상관(直屬上官)인 예능국장(藝能局長)은 손영호였습니다
신군부(新軍部) 의 어용단체(御用團體) 인 국보위(國保委)로부터 모든 민영방송(民營放送)을 통폐합(統廢合)하라는 지침이 kbs 에 하달되었습니다
이러한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지시(指示)에 박창학 pd 가 역사(歷史)에 죄(罪)짓는 이런행위(行爲)에 조금이라도 역사의식(歷史意識)이나 양심(良心)이있었다면 과감히 사표(辭表)를
던지고 나왔어야 하나 그는 그러한 용기(勇氣)도 양심(良心)도 매우 부족(不足)했읍니다
이점은 두고두고 반성(反省)하며 살아야 할것입니다
너무나 엄청난 일인지라 과연 통합(統合作業)이 손조롭게 진행될지 우려하는 분위기(雰圍氣)였습니다
아무 근거(根據)도없는 통폐합(統廢合)에 최소한(最小限) 항거(抗拒)하는 자세(姿勢)여야 하는데 이를이미 받아들이고 겨우 생각(生角)한다는게 통합작업(統合作業)이 순조(順調)로울까
걱정이나 하고있습니다
12월1일까지 통합작업(統合作業)을 마치고 첫방송을 송출(送出)하라는 지시를 받고 실무준비(實務準備)에 착수(着手)했으나 무슨일부터 해야할지 걱정이 태산(泰山)같았습니다
당시cp--chief producer의 줄임말로 총괄프로듀스를 의미함--있었던 그는 오용환과 방송송출(放送送出)실무책임實務責任)을 나누어 맡았습니다
radio放送-라디오방송-은 박창학이 tv放送-티브이 방송-은 오용환이 실무(實務責任)을 지시에 순응했읍니다
두사람은 kbs 흡수통합(吸收統合)되는 tbc, dbs 등 민영방송사(民營放送社) 로 달려가 각종(各種)현황(現況)파악(把握)에 착수(着手)했읍니다
직원현황(職員現況)파악(把握)에서부터 레코드수량(數量) 전속단체(專屬團體)인 경음악단원(輕音樂團團員) 현황파악(現況把握)까지 모든 것을 세부적(細部的)으로 파악해야했고
민영방송사(民營放送社) 직원(職員)들의 분위기(雰圍氣)까지 살펴야 했습니다
같은 방송계통(放送系統)에서 일했지만 평소 서로접촉이 별로없었던 민영방송사(民營放送社)를 갑자기 찾아가 현황파악(現況把握)을 한다는 자체가 쑥스러운데다 워낙 분위기(雰圍氣)가
침통(沈痛)하여 무슨 말부터 해야할지 난감(難堪)했습니다
쿠테타정권에서 갑자기 추진하는 방송 통폐합 조치에 따라 청천(靑天)하늘에 날벼락 처럼 kbs에 흡수되는 민영방송(民營放送) 직원(職員)들은 실로 참담(慘憺)해하는 분위기(雰圍氣)였습니다
하루아침에 생활(生活)터전을 강탈(强奪)당했다는 피해의식(被害意識)을 토로(吐露)했습니다
그당시는 시민(市民)의식(意識)이 부족해 국가권력(國家權力)의 부당(不當)한 조치(措置)에 국민(國民)저항권(抵抗權)을 행사(行事)해야하는 것 조차 생각(生角)치 못했을까요??
아님 신군부(新軍部) 의 폭력적(暴力的)인 무력(武力)에 미리겁먹어서 몸부터 사린걸까요??
겨우 한다는게 송별(送別)방송(放送)을 내보내며 국민(國民)들의 동정(同情)을 유도(誘導)하는 분위기 였습니다
그리고 민방(民放)직원(職員)들은 조직적(組織的)인 저항(抵抗)보다는는 kbs 에 통합후(統合後) 자기(自己)들의장래(將來)를 걱정---자기(自己)몸보신(保身)부터하는 수준(水準)이었습니다
평소 허물없이 지내던 동아방송(東亞放送) k부장도”우선 통합(統合)시켜놓고 나중에 짤리는거 아니야??”’하고 있었읍니다
말도많던 통폐합(統廢合)이후 대구, 군산등 지방(地方)에서 근무(勤務)하던 민영방송사(民營放送社) 직원(職員) 수백명(數百名) 이 kbs 로 몰려왔읍니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내마음 가져갔나요
당신 때문에 울고 있어요
당신 때문에 웃고있어요
당신은 누구시길래 내마음 애태우나요
거울에 비친 그리움은 누구일까
다가와 눈을보면 알수있을거예요
누구시길래 믿고싶을까
누구시길레 사랑했을까
당신은 누구시길래
내마음 애태우시나요
당신은 누구시길래
내마음 가져갔나요
당신 때문에 울고있어요
당신 때문에 웃고있어요
당신은 누구시길래
내마음 애태우나요
세월(歲月)이 흐른 지금에도 다정(多情)했던
그날의 우리사랑 지울수없을거예요
믿었었기에 사랑했었고
사랑했기에 슬퍼했었지
당신은 누구시길래
내마음 가져갔나요
상기가요(上記歌謠)<당신은 누구시길래>는 유승엽사, 곡으로 가수(歌手) 심수봉이 불렀습니다
1979년 윤대성 극본(劇本), 박철 연출(演出) talent-텔런트- 이정길, 김자옥, 김보연, 박근형, 전양자, 김호성, 임정하 출연 의 mbc-tv 동명연속극(同名連續劇) 주제가(主題歌)로 불렸습니다
1979년, 9월17일 첫회로 160부작 일일(一日)연속극(連續劇)으로 방송(放送)된 애정물(愛情物)이었습니다
현대를 사는 박력(迫力)있고 저돌적(猪突的)인 노일도, 그와 강지영 그리고 주변인물(周邊人物)을 그린 드라마 입니다
이노래는 Jigu-record 발매 lp음반-golden deluxe-골든디럭스-20곡- title曲)-타이틀곡-으로 보입니다
앞서 언급한 1979년, 10월26일 박통시해사건(朴統弑害事件) 현장(現場)에 있었던 가수(歌手)심수봉이 부른노래입니다
곡을 창작(創作)한 유승엽은<슬픈노래는 싫어요>을 부른 가수출신(歌手出身) 입니다
노래가사속의”거울속에비친 심수봉의 그리움”은 누구의 얼굴일까요??
이곡은<얘야 시집가거라>의 정애리씨 버전도 있습니다
미처 인사발령(人事發令)을 하지못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민방(民放)직원(職員)들은 우선 남는 사무실(事務室)에서 대기하도록 하였으나 방이 부족하여 아우성이었습니다
여의도(汝矣島) kbs 각층복도(各層複道)는 층층마다 미처 사무실(事務室)을 배정(配定)받지못한pd , 기자(記者), ngineer-엔지니어-와 전속단체(專屬團體) 단원(團員)들로 일대(一帶) 북새통
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kBs 인사부(人事部)에서는 갑자기 너무 많은 인원을 흡수한 관계로 누가 누구인지 얼굴확인도못한채 서류만으로 인사발령을 한탓에 제작자(製作者)인 PD를 행정부서(行政部署)로
발령(發令)하거나 행정요원(行政要員)을 PD나 기자(記者)로 발령(發令)하는 웃지못할 HAPPENING-해프닝-이 속출(續出)했습니다
그런가하면 TBC-P차장등 그래도 조금은 역사의식(歷史意識)이 남아있던 사람들은”우리가 왜 KBS 로갑니까?? TBC 에 남아있을겁니다”
라고 반발(反撥) pd 를 당혹(當惑)스럽게했다 고 적고있으나 그나마 인간(人間)냄새가 납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털된다는데 너무 무기력(無氣力)한 방송인(放送人)들에게 분노(憤怒)를 느끼고 있었는데---
그러던 그들도 쿠테타정권의 서슬시퍼런 기세(氣勢)에눌려 결국은 지정된 날짜에 보따리를 싸들고 KBS 로 출근해야했습니다
민방직원(民放職員)들의 KBS 흡수(吸收) 이후에 새로운 음주문화(飮酒文化)가 생겼습니다
1445-이런 사실(事實) 아십니까?
네가 만일 괴로울때면 내가 위로(慰勞)해줄께
네가 만일 서러울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
어두운밤 험한길 걸을 때
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되이 되리
허전하고 쓸쓸할 때 내가 너의 벗이 되리라
나는 너의 영원(永遠)한 형제(兄弟)여 나는 너의 친구(親舊)여
나는 너의 영원(永遠)한 노래야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야
네가 만약 외로울때면 낵 친구(親舊)가 될게
네가 만약 힘들때면 내가 웃음이 되리
어두운밤 험한길 걸을 때
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허전하고 쓸쓸할 때 내가 너의 벗이 되리라
나는 너의 영원(永遠)한 형제(兄弟)여 나는 너의 친구(親舊)여
나는 너의 영원(永遠)한 노래여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야
상기가요(上記歌謠)<여러분>은 윤항기사, 곡으로 가수(歌手) 윤복희가 불렀읍니다
Jigu-record 발매로 2장의 lp음반(音盤)으로된 -서울국제가요제-에 실려있읍니다
그무렵 첫남편 유주용에게 차이고나서 남진(南珍) )을이용 유주용에게 질투심(嫉妬心)을 유발(誘發) 하기위해 위장(僞裝)결혼(結婚)
오빠 윤항기는 둘의 결혼을 말렸으나----그결혼이 오래가지 못하고 왠일인지 문을잠그고 일주일을 버틴 동생복희를 설득 상기곡(上記曲)으로 서울가요제에 출전 대상을차지한 곡입니다
민방(民放)사람들을 흡수(吸收)한 KBS에서는 흡수(吸收)된 민방요원(民放要員)들은 새로운 분위기(雰圍氣)에 적응(適應)하기위해 동료(同僚)과 어울려 매일(每日) 저녁마다 술을 마시는 일이 벌어졌읍니다
아니 정확(正確)히 말하면 신군(新軍)부(部) 의 강압적(强壓的)인 방송통폐합(放送統廢合)이 술을 권(勸)했다고 해야겠지요
속칭(俗稱)”통폐합주(統廢合酒)”였읍니다
술의 종류도 다양 소주맥주를 통합한 쏘맥, 소주양주를 합한 소양, 양주와맥주를 합한 양맥, 소주,양주,맥주 3가지술을 합한 짬뽕주를 주로 마시며 쿠테타정권의 무자비(無慈悲)한
방송(放送)통폐합(統廢合)에 대한 울분(鬱憤)을 달럤읍니다
1차로 술을 마실때는 방송직원(放送職員)전부(全部)가 함께 마셨지만 2차는 동아(東亞)출신(出身)은 동아(東亞)출신(出身)끼리 TBC는 TBC끼리 기독교(基督敎)는 기독교끼리 끼리끼리
나누어져 마시게 되었읍니다
어찌되었거나 이러한 술판은 1년이상 계속(繼續)되었고 민방(民放)출신(出身)들은 지금도 친목계(親睦契)를 조직 옛 나누고 있습니다
민방(民放)요원(要員)들이 쿠테타정권의 강제적(强制的)인 방송통폐합統廢合)에대한 울분을 밤마다 술로 달래고 있을무렵 쿠테타 수괴(首魁) 전두환이 대통령(大統領)에 취임(就任)을합니다
이것이 한국역사(韓國歷史)에 가장 치욕작(恥辱的)인 사건(事件)으로 기록(紀錄)될것을 뻔히알면서도 이를 중단(中斷)시킬 그어떤 세력(勢力)도 존재(存在)하지 않았습니다
나라지키라고 국민(國民)들이 낸세금(稅金)으로 운영되는 군인(軍人)들은 같은 군인출신(軍人出身) 쿠테타세력에 장악(掌握)이 되버렸고 그들이 지켜내야할 국민(國民)들의
권리(權利)가 쿠테세력에의해 유린(蹂躪)되고 있는데도 내몰라라 두눈을 감아버렸고 그동안 힘없는 서민(庶民)들에게 기세등등(氣勢騰騰)했던 사법부(司法府)는”성공(成功)한쿠테타는
처벌(處罰)할수없다”고 해 정치검사(政治檢事)의 극치(極致)를 보여주고 육사생(陸士生)들은 쿠테타 수괴(首魁) 전두환을 보고”선배님 선배님!!”했다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광주는 신군부(新軍部) 의 무자비(無慈悲)한 폭(暴)압(壓)으로인해 발생한 5,17 민주(民主)항쟁(抗爭)으로인한 돌이킬수없는 상처(傷處)가 깊어만가고 있었고 이에 뻔뻔한 신군부는 병(病)주고 약(藥)주는
----어떨게든 광주시민(光州市民)들의 상처(傷處)받은 마음을 달랠수있을까 하는 잔꾀에 부리기에 고심(苦心)했습니다
왜냐면 불법적(不法的)으로 거머쥔 권력(勸力)은 결코 영원(永遠)한적이 결코 없었으니까
이때 그들이 생각(生角)해낸 것이 쿠테타 수괴(首魁)의 취임식(就任式)을 경축(慶祝)하는 豪華)show-호화쇼를 전국시도(全國市道)를 순회(巡廻)하며 공연(公演)하는 오로지
신군(新軍部) 자기(自己)들 시각(視角)으로만--- 자기들의 입장(立場)만 반영(反映)해 기획(企劃)한 자가당착적(自家撞着的)-- 국민혈세(國民血稅) 낭비(浪費)의 극치(極致)를 보여주고 맙니다
행사주관(行事主管)은 문화공보부 예술국 공연과에서 예산(豫算)지원은 총무처에서 진행(進行)은 뻔뻔스럽게도 국민(國民)을위해 방송(放送)한다고 우기는 kbs가 담당(擔當)하기로
업무(業務)분담(分擔)을했습니다
이러한 매국행위(賣國行爲)에 대한 kbs 의 반성(反省)도 사과(謝過)도 한번없었습니다
아니 정확(正確)히 말해서 자기들이 뭘잘못했는지 알지도 못합니다
“그때는 그럴수밖에 없었다”하는 어느 친일분자(親日分子)의 변명(辨明)처럼----
나는 행복(幸福)합니다 나는 행복(幸福)합니다
나는 행복(幸福)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幸福)합니다
기다리던 그날이 왔어요 즐거운 날이예요
움츠렸던 어깨 답답ㅎ산 가슴을 활짝펴봐요
가벼운 옷차림에 다정(多情)한 벗들과
즐거운 마음으로 들과 산(山)을 뛰며
노래를 불러요 우리 모두 다 함께
나는 행복(幸福)합니다는 행복(幸福)합니다
나는 정말 행복(幸福)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幸福)합니다
진달래 꽃피는 봄이 지나면 여름이 돌아와요
쏟아지는 태양(太陽) 젊음이 있는곳 우리들의 여름이죠
강(江)에도 산(山)에도 넓은 바다에도 우리들의 꿈이있어요
그곳으로 가요 노래릅 불러요 우리모두 다함께
나는 행복(幸福)합니다 나는 행복(幸福)합니다
나는 행복(幸福)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幸福) 합니다
상기가요(上記歌謠)<나는 행복(幸福)합니다>는 윤향기작사, 곡으로 본인이 불렀습니다
1974년 sinsegy-record 발매(發賣) lp음반(音盤) 나는 행복(幸福)합니다-title 曲)—타이틀곡-으로 실려있읍니다
헌데 이곡 발표년도(發表年度)를 1980년으로 기록(紀錄)한 글도 보입니다
어찌되었던 신군(新軍部暴壓)으로 모두들 불행(不幸)한데 이 시기(時期) <나는 행복(幸福)합니다>가 불린것은 세태(世態)를풍자(諷刺)한 노래임을 짐작케합니다
한편으로는 한낱꿈으로 끝버린<서울의 봄>을 부정적(否定的)으로 풍자(諷刺)했다는 주장(主張)도 보입니다
그떄까지 대형(大型) show program-쇼프로그램- 거의 전담(專擔)해온 박pd 는 이때도 담당(擔當) pd로 지목(指目)되어 예능국장으로부터 호출(呼出) 당합니다
국장은 앞으로 2개월이내에 전국, 도시를 순회(巡廻)하며 전통 취임경축 show를 공연(公演)하기위한 세부(細部)계획(計劃)을 보고 하라는 지시를 했읍니다
그러면서 전통취임축하 show -쇼-니만큼 규모(規模),수준(水準), 내용(內容)등에서 손색이 없어야-----는 주의(主意)사항(事項)까지 덧붙였읍니다
누가 전두환의 대통령(大統領)취임(就任)을 그렇게 축하(祝賀) 한다고 국민(國民)정서(情緖)와 전혀맞지않는 show-쇼- 를 하려는지 그것도 국민(國民)혈세(血稅)를 낭비(浪費)해가면서----!!!
드디어 공연준비를 마치고 출발(出發)준비(準備)를 서두르고 있을떄 이번에는 정말로할일이 없으면 낮잠이나 잘일이지지 문화공보부장관이 느닷없이 들어닥쳐 show rehearsal-쇼 리허설-
을 직접(直接) 보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때까지만해도 kbs 사장은 그저 광주민주화(光州民主化) 투쟁이후(鬪爭以後) 흉흉(洶洶)해진 민심(民心)을 위로(慰勞)하기위해 전통이 잔꾀부린 시민위안(市民慰安)행사(行事)쯤으로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문화공보부장관이 리허설 참관까지 설치고 나설줄 몰랐읍니다
이에 kbs 사장실(社長室)에서는 담당이사, 국장을 호출 야단법석(野壇法席)이 났습니다
그이튿날 문공보부장관이 리허설 참관후”전통이 직접(直接)관람(觀覽) 할수있다”
이말한마디에 kbs사장 행동(行動)이 돌발(突發)하기 시작합니다
전통에 잘보여 출세(出世)할 기회(機會)라 판단 특유의 과잉(過剩)행동(行動)이 시작된것입니다
문공부장관 앞에서 실무(實務) pd들을 필요이상(必要以上)으로 닥달하는등 우선 문공부장관에게 잘보이려는 눈치가 역력했습니다
소인배(小人輩)들의 전형적(典型的)인 모습(貌襲)일뿐입니다
Rehearsal-이거의 끝나갈무렵 장관앞에서 박 pd를 부르더니 느닷없이 장관(長官)이 보란듯이 질책을 ------“당신 쇼몇년 했길래 慶祝show-경축쇼-가 이모양이야”
평소 만만해보여 그를 희생양(犧牲羊) 삼아 돋보여 보이려는 소인배적(小人輩的) 모습니다
졸지에 당해 찍소리 못하고 풀이죽어있는데 윤복희가 자신(自身)이 노래를 잘못해 그런줄알
고”아무리 대통령경축(大統領慶祝) show-쇼- 라도 이런 분위기(雰圍氣) 로는 노래를 부를후 없어요”라며 뛰쳐나가려는 그녀를 겨우 달랬습니다
1446—이런 사실(事實) 아십니까?
갈래면 가지 왜돌아보오
갈래면 가지 왜돌아보오
떠나가는 당신을 붙잡을줄 알고
갈래면 가지 왜돌아보오
찢어지는 아픔을 느껴야 하나요
마음속에 눈물을 보아야 하나요
사랑한다 말을마오 유행가(流行歌) 가사(歌詞)인줄아오
가래면가지 왜 돌아봅니까
지나간 일들을 잊으라니요
지나간 일들을 잊으라니요
사랑이 무슨 장난인가요
갈래면 가지 왜돌아보오
찢어지는 아픔을 느껴야 하나요
마음속에 눈물을 보아야 하나요
사랑한다 말을마오 유행가(流行歌) 가사(歌詞)인줄 아오
갈래면 가지 왜돌아 봅니까
상기가요(上記歌謠)<왜 돌아보오> 는 윤항기사, 곡으로 가수(歌手) 윤복희가 불렀읍니다
Jigu-record 발매lp음반-윤항기 복희-title 曲-으로보입니다
이곡은 동생 복희가 가수(歌手) 남진(南珍) 과의 위장결혼이 6개월만에 깨어지고 1980년이혼에 합의 slump-슬럼프-에 빠진 동생을 위로(慰勞)하기위해 만든곡 입니다
이무렵 남진(南珍)의 윤복희 暴行news-폭행뉴스-가 세간(世間)을 들썩거렸으나 윤복희는 부인(否認)했읍니다
유주용에대한 반발(反撥)과 복수(復讐)를 위해 순진(純眞)한 남진(南珍)을 이용(利用)한것은 두고두고 비난(非難)받아야 마땅할것입니다
윤복희씨를 겨우 달래놓고 있으니 사장실(社長室)에서 찾는다는 전갈(傳喝)이 왔읍니다
사장실(社長室)에는 이사, 국장등 간부들이 이미 호출(呼出)당해 와있었습니다
불행(不幸)하게도 kbs 내에는 모두 시키면 시키는대로 찍소리 못하는--- 부당(不當)한 지시(指示)에 항의(抗議)를할만한 인물(人物)등이 없었읍니다
kbs사장은 누가 좋아하는 행사(行事)라고? 慶祝 show-경축쇼-에 참가(參加)하는 인원(人員)이 너무적다는 등 이유(理由)없는 트집을 잡으며 불호령(號令)를 내렸읍니다
이에 박pd는 경축쇼의 주관(主管)이 문공부이고 kbs는 모든예산을 지원 받는 입장(立場)이기 때문에 가수(歌手)한명도 마음대로 쓰지못한다며 속 사정事情을 설명(說明)했으나
막무가내(莫無可奈)였읍니다
Kbs 가 참여(參與)한이상 경축쇼에 걸맞게 준비해야한다며 경축쇼 연출(演出)책임(責任)을 느닷없이 c부장에게 맡기라고 지시(指示)한후 나가 버렸읍니다
모든공연준비가 완료(完了)되어 지방으로 출발하기 위해 마지막 점검(點檢)을 하는 단계에서 연출자(演出者)를 일방적(一方的)으로 교체(交替)한다는 것은 상식적(常識的)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너무나 기가막혀 넋을잃고 앉아있는데 직속상관인 y국장이 그를 위로했습니다
“세상(世上)에 이런법도있나 다 지어놓은 밥을 푸려는데 주걱을 뻇다니----“
잠시후 s이사가 찾는다기에 이사실로 갔드니 c부장도 함께있었읍니다
c부장역시도 양심(良心)은 있었는지 역시 다른사람이 모든 준비(準備)를 해놓은 상태(狀態)에서 연출책임(演出(責任)을 맡는것은 있을수없다고 몹시 미안해했읍니다
화가치민 박 pd 는 c부장에게 공연준비서류(公演準備書類)를 일체를 넘겨주고 이사실(理事室)을 뛰쳐나와 버렸읍니다
갑자기 kbs 가싫어지면서 단일분도 더머무르고 싶지않다는 기분(氣分)을 느끼며 정문(正門)을 빠져나왔읍니다
그리고 박 pd 가 행방불명(行方不明)이되자 문공부(文公部)에 야단이 났읍니다
공연일자(公演日字)는 박두(迫頭)했는데 연출담당(演出擔當) pd 가 없어졌으니 난리법석(亂離法席)이 날수밖에-----
백방으로 pd 있는 시골까지 찾아내려온 문공부 s과장은 kbs 사장이 c 부장을 싸고도는 이유가 따로있다며 기분이 나쁘더라도 참고지내면 다시 좋은 세상이 올것이리 설득(說得)했읍니다
이야기인즉 c부장이 민방(民放)에있을 때 국군장병(國軍將兵) 위문공연(慰問公演)을 자주다니며 영관급(領官級) 장교 몇사람을 사귀었는데 그들이 신군부세력(新軍部勢力)의
핵심(核心)으로 부상(浮上)하자 문공부(文公部) 와 kbs에 c부장을 잘봐주라는 분위기(雰圍氣) 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선지 10,26 박통시해사건(朴統弑害事件後) 신군부(新軍部) 세력(勢力)이 득세(得勢)하며 곧 부장(部長)으로 승진(昇進)합니다
외로울땐 언제나 내손을 잡아주고
괴로울땐 언제나 내마음 달래준 사람
당신은 오로지 오직 내인생(人生)의 동반자(同伴者)
사랑의길을 함께가야할 사람
바람부는 날이면 바람을 막아주는
내 인생(人生)의 동반자(同伴者) 당신은 나의 동반자(同伴者)
당신은 오직 내 인생(人生)의 동반자(同伴者)
사랑의길을 함께가야할 사람
바람부는 날이면 바람을 막아주는
내 인생(人生)의 동반자(同伴者) 당신은 나의 동반자(同伴者)
내인생의 동반자(同伴者) 당신은 나의 동반자(同伴者)
상기가요(上記歌謠)<동반자(同伴者)> 이민우사, 곡으로 가수(歌手) 지다연이 불렀읍니다
서라벌레코드 발매(發賣) lp음반-지다연 동반자-title 曲)—타이틀곡-으로 실려있읍니다
신군부(新軍部) 의 국민들 아무도원하지 않던---명분(名分)도없는 쿠테타로 또다시 고난(苦難)의 시대(時代)를 마딱뜨린 대중(大衆)들은 그 피난처(避難處)로 go go-rhythm-고고 리듬-의
열풍(熱風)을 택(擇)했읍니다
해서 혜은이의<제3한강교(漢江橋)>, 이은하<밤차> 같은--- 율동가수(律動歌手)들이 이른바 몸으로 노래를 부르는 dance 曲-댄스곡-들이 유행(流行)할 때 지다연의 감미(甘味)롭고
호소력(呼訴力)짙은 목소리는 대중(大衆)들의 가슴에 단비처럼 스며들어 마음을 울렸읍니다
몸이아닌 머리로 생각(生角)하는 노래를 입으로 따라부르게 만들었습니다
Dancing-singer-댄싱가수-들과는 또다른 매력(魅力)으로---
1970년대 초 김양화사, 김영광곡으로 go go-rhythm-고고리듬-곡<내일(來日)이면 간다네>로 가요계(歌謠界)에 등장(登場)한 그녀는 이어서 상기곡(上記曲)으로 대중(大衆)들의 사랑을 받았읍니다
그러고는 갑자기 가요계(歌謠界)에서 잠적(潛跡)하듯 사라졌읍니다
해서 많은歌謠fan-가요팬- 들이 궁금해 했는데---??
그이유가----어머니의 갑작스런 煉炭gas中毒-연탄가스중독-으로 돌연사(突然死), 자신(自身)의 암투병(癌鬪病), 떠도는 영혼(靈魂)이 다른사람에게 옮겨붙는 빙의(憑依) 때문이었음이 밝혀져
충격(衝擊)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갑상선말기암(甲狀腺末期癌)을 치료(治療)하고 1년도 안되서 이번엔 허리디스크에 인공디스크를 시술(施術)해야 했고 어느날 느닷없이 어깨가 아프면서 원인불명(原因不明)의
어깨통증(痛症)이 절정(絶頂)에 이를때부터 귀신(鬼神)이 보이기시작했읍니다
처음에는 많이아프니까 심신(心身)이 약해져 그러나보다 했으나 화장실(化粧室)에가면 자기(自己)와 똑같은 머리를 한 여자(女子)가 서있기도하고 어느날은 머리를 꼭지은 할머니가
하얀 적삼(赤衫)을 입고 스쳐지나가기도 했다합니다
아무튼 이유(理由)도 모는체 이런병에 시달려야했던 그녀는 자살결심(自殺決心)을 정도로 큰 고통(苦痛)과 공포(恐怖)에 시달려야했고 이후 퇴마의식(退魔儀式) 같은 진료(診療)를 하고----
다행(多幸)이 호전(好轉)되었다 합니다
1447—이런 사실(事實)아십니까 ?
즐거웠던 어린시절(時節)은 흘러버린
시냇물처럼 모두다 보내고 가슴에
활짝 피어오르는 새 희망(希望)은 넘치네
대학일년생(大學一年生) 라라라 라라라
정답게 어깨를 나란히 라라라 라라라
피끊는 우리들은 대학생(大學生)
가슴에 활짝 피어오르는 새희망(希望)은
넘치네 대학(大學)일년생(一年生)
상기(上記)가요(歌謠)<대학(大學)일년생(一年生)>은 송석정사 나음파곡으로 가수(歌手) 남진(南珍)이 불렀읍니다
Jigu-record 발매 lp음반-나음파작곡집-title曲)-타이틀곡-으로 실려있습니다
대학시절(大學時節)의 낭만(浪漫)과 희망(希望)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보기 드물게 rhythm-리듬-을 가지고노는 재주가 탁월(卓越)한 작곡가(作曲家) 나음파와 남진콤비가 내놓은 가요로 bossa nova-rhythm-보사노바 리듬- 으로로 가창(歌唱)됩니다
최근(最近) 연예계(演藝界)는 소위 명문대학(名門大學)을 졸업(卒業)한 고학력(高學歷) 지망생(志望生)들이 대거 물리고 있어서 고학력시대(高學歷時代)를 실감캐 합니다
실제로 최근 kbs, mbc, sbs등 방송사에서 실시(實施)한talent 공개(公開)모집(募集)에 명문대학(名門大學)을 졸업(卒業)한 star志望生-스타들지망생-들이 줄을이어 다른
어떤시험(試驗)보다도 연예고시(演藝考試) 경쟁(競爭)이 치열(熾烈) 하다는 말이 생겨난지 오래되었습니다
지원자(志願者) 대부분(大部分)이 대학졸업이상(大學卒業以上)의 고학력자(高學歷者)였고 대학졸업자(大學卒業者)의 상당부분(相當部分)은 세칭일류대(世稱一流大)라는 서울대, 연대, 고대
출신자(出身者)라는 사실(事實)이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은 시절(時節)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고학력화(高學歷化) 현상(現象)은 talent-텔런트-뿐만 아니라 가수(歌手), comedian-코미디언- model-모델- 연예계(演藝界) 모즌 직종(職種)의 공통(共通)된 현상(現象)입니다
특히 mc 모집시험(募集試驗)의 경쟁률(競爭率)은 고등고시(高等考試) 빰칠정도로 치열(熾熱)ㅎ합니다
연예인(演藝人)들의 고학력화(高學歷化) 추세는 1990년대부터 두드러지기 시작 현재활동하고있는 연예인(演藝人)들 대부분(大部分)이 대학(大學)또는 대학원(大學院)을 졸업(卒業)한
고학력자(高學歷者)들이라는 기록(紀錄)이 존재(存在)합니다
연예계(演藝界)에 debut-데뷔-하자말자 인기(人氣)를 얻고있는 talent-텔런트- 윤동환, gag-man-개그맨- 서경석, 장호일등은 서울대학(大學)을 졸업(卒業)한 동문연예인-(同門演藝人)들로
유명(有名)합니다
서울대, 연(延), 고대(高大)와 같은 세칭(世稱) 명문대출신(名門大出身)들이 연예계(演藝界)로 대거(大擧)몰리는 까닭은 연예인(演藝人)이 되기만하면 인기(人氣) 돈을쉬게 벌수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게다 사회(社會)에서 연예인(演藝人)들을 바라보는 일반인(一般人)들의 인식(認識)이 많이 많이변했다는 점도 작용(作用)했습니다
연예인(演藝人)들의 고학력화현상(高學歷化現象)에 대하여 mbc-tv 어느부장의 설명(說明)이있습니다
“1970년대를 전후해서 태어난 세대들은 TV를보면서 자란 세대(世代)이기 때문에 연예인(演藝人)들을’딴따라’라고 멸시(蔑視)하는 의식(意識)이 적다
오히려 연예인(演藝人)들을 화려(華麗)한 상류층(上流層)으로 동경(憧憬)하기 까지한다”
이와 같은 의식변화(意識變化)에 따라 TALENT-텔렌트- GAG-MAN-개그맨- MC 등 연예계(演藝界)의(義)모든직종에 명문대학(名門大學)을 졸업(卒業)한 STAR-스타-들이 즐비하지만
지금으로부터 60여년전인 1960년대지만 해도 연예계(演藝界)에는 대학(大學)을 졸업(卒業)한 COMEDIAN-코메디언-이 가뭄에 콩나듯 드물었습니다
어쩌다가 대학(大學)을 졸업(卒業)한 고학력자(高學歷者)가 연예계(演藝界) DEBUT-데뷔-하면 학력자체(學力自體)만으로도 화젯거리가 되어 신문(新聞), 방송(放送), 잡지(雜誌)에
보도되곤 했읍니다
우선(于先) 1960년대초 가수(歌手)로 DEBUT-데뷔-한 최희준이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고 장안의 화재가 되었고 고려대(高麗大) 법대출신(法大出身)의 김상희씨가 인기(人氣)가 높았습니다
“학사(學士) 1호”니하며 화재가 되었고 특히 김상희씨는 노래솜씨에다 사회(司會)솜씨도 뛰어나”말잘하는 가수 김상희”로 통할만큼 명성(名聲)을 날렸습니다
허나!!! 여기서 밝혀둘 것은 최희준, 김상희씨 이전에도 대학출신(大學出身) 가수(歌手)들은 존재(存在)했ㄷ는 사실(事實)입니다
얼마전 세상을 떠난<비극(悲劇)은 없다><사랑이 메아리칠떄><바닷가에서><뒷골목 TANGO탱고><임자없는 나룻배><그날밤 그다방(茶房)><청실홍실>등 격조(格調)높은 곡을불러
한국(韓國)대중가요(大衆歌謠)의 수준(水準)을 끌어올린 안다성씨가 지금의 경희대학인 신흥대학을 나왔고
<이별(離別)의 인천항(仁川港)><만리포(萬里浦) 사랑><NAPORI-나포리- 연가(戀歌)><비애(悲哀)BLUES-블루스-><청춘(靑春)은 산맥(山脈)을 타고><남성(男性)NUMBER ONE-넘버원->
<바다비아의 여정(旅情)><내사랑>등을 힛트시킨 박경원씨는 동국대 경제학과를 졸업(卒業)했습니다
드물지만 육군사관학교(陸軍士官學校)를 중퇴(中退)한 연예인(演藝人)들도 보입니다
GAG-MAN-개그맨- 서경석이 그렇고<청포도(靑葡萄)사랑>, REMAKE 곡인<비의 TANGO><백제(百濟)의밤><사도세자(思悼世子)><신라(新羅)의 북소리><추억(追憶)에 우는 여인(女人)>
<사랑의 메아리><청춘(靑春) BRAVO-브라보-><소공동(小公洞)BLUES-블루스-><오부자(五父子)의 노래>등을부른 가수 도미가 있습니다
그는 한동안 방송국에서 왜 육사(陸士)를 중퇴(中退)했는지 그이유(理由)를 알려달라는 엽서(葉書)를 많이 받았읍니다
이밖에도 TALENT-텔렌트- 이낙훈, 가수(歌手) 조영남도 세칭(世稱) 일류(一流)대학(大學)을 졸업한 학사(學士) STAR-학사스타-라는 간판으로 많은 인기(人氣)를 누릴수 있었습니다
본격적(本格的)인 샹송여가수 최양숙(崔良淑)씨는 성악전공(聲樂專攻) 자가 왜 대중가수(大衆歌手)가 되었는지 화재의 중심(中心)이 되었습니다
왜정시대(倭政時代)까지만 해도 연예인(演藝人)들은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분류하던 유교문화(儒敎文化) 계급구조(階級構造)에 끼지도 못하는 천(賤)한 직업(職業)이었습니다
양반가문(兩班家門)에서 연극배우(演劇俳優) 또는 가수(歌手)가 된다는 것은 감히 상상(想像)할 수 없는 일었으며 어쩌다가 그런일이 생기면은 가문의 수치(羞恥)라고 쉬쉬하며 감추기
바빴습니다
이러한 시절(時節) 어른들의 반대(反對)를 무릎쓰고 연예계(演藝界)로 진출(進出)하기 위해서는 어른들 몰래 가출(家出)하여 성(成) 은물론 이름까지도 바꾸어야 했습니다
이때에 연예인(演藝人)의길을 걸은 선배연예인(先輩演藝人)들의 고통(苦痛)이 오죽했겠는가를 생각(生角)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지 않을수 없습니다
우리 연극계(演劇界)의 대모(大母)로 불리는 복혜숙씨도 연극(演劇)이 좋아 배우(俳優)가 되겠다고 부모(父母)님을 조르다가 실패(失敗)하고 끝내 가출(家出)하고 말았으며 여가수(女歌手)
황금심도 노래잘부르는 총각(總角) 고복수씨를 처음보고 집을 뛰쳐나왔다는 일화(逸話)가 있습니다
충청도(忠淸道) 양반가문(兩班家門) 고이 자라다가 어느날 갑자기 가수(歌手)바람이 들어 집을 뛰처나온 가수(歌手) 고운봉씨의 가출(家出)이야기는 아직도 연예계(演藝界) 에 잊혀지지 않고
회자(膾炙)되고 있습니다
1448-이런 사실(事實)아십니까?
누구나 사랑을 속삭일때는
귀를막고 그사람의 눈만보세요
이런말 저런말 어쩌구 저쩌구
뜨거운 말일수록 믿지마세요
아! 믿지 마세요
사랑이란 그런 것 뜨거워서 싫어요
누구나 사랑을 속삭일때는
꽃이되고 새가되고 양이되지요
이런말 저런말 어쩌구 저쩌구
맹서(盟誓)의 말일수록 믿지마세요
아! 믿지마세요
사랑이란 그런 것 뜨거워서 싫어요
상기가요(上記歌謠)<뜨거워서 싫어요>는 임희재사, 정민섭곡으로 가수(歌手) 김상희가 불렀읍니다
Kbs-tv 연속극주제가(連續劇主題歌)로 사용(使用)되었고 아세아레코드발매 lp음반-뜨거워서 싫어요-title 曲-타이틀곡-으로 실려있습니
지금이야 연예계(演藝界) debut-데뷔-하면 으레 좋은 이름을 짓기위해 선배(先輩) 연예인(演藝人)이나 유명(有名)한 철학관(哲學館)을 찾아가 부르기좋고 외우기 쉬우며 운(運)도따르는
다목적(多目的) 예명(藝名)을 짓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몇십년(十年前)만해도 어른들 몰래 가출(家出)하여 어렵게 연예계(演藝界) 성씨(姓氏)는물론 이름까지 숨기는 것이 보통 이었습니다
“딴따라” 활동(活動)을 하는사실이 친척(親戚)이나 친구(親舊)들한테 들키지않게 하기위한 수단(手段)이 오늘날 예명(藝名)이 된것입니다
가수(歌手)김상희씨 본명이 최순강인데 손석우씨로부터<삼오야(三五夜) 밝은달>을받아서 歌手debut-가수데뷔-했을 때 아무도 모르하기위하여 김상희란 예명(藝名)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고려대 법대(高麗大法大) 1학년 재학중(在學中) 歌謠界debut- 가요계 데뷔-를 했으나 대학졸업(大學卒業)때까지 얼굴없는 가수(歌手)로 생활(生活)해야했습니다
당시(當時)는 대학재학생(大學在學生)이 가수(歌手)로 활동(活動)할수없었고 집안에서도 반대(反對)가 심하였습니다
영화배우(映畵俳優) 최무룡씨의 장모(丈母)이며 연극배우(演劇俳優) 강효실씨의 친정(親庭) 어머니인--- 이경설에 이어서 제2대 “눈물의여왕(女王)”으로 불리는 전옥씨(全玉氏)는
영화(映畵)<두만강(豆滿江)을 건너서-사랑을 찾아서> 친일영화(親日映畵) <복지만리(福地萬里)><병정님><옥녀(玉女)><목포(木浦)의눈물><항구(港口) 의 일야(一夜)><눈나리는 밤>
<불러도 대답(對答)없는 이름이여><결혼조건(結婚條件)><망부석(望夫石)>---등 숱한 신파(新派)물(物)에 출연(出演)했읍니다
이러한 그녀의 본명(本名)이 전덕례(全德禮)였습니다
부모(父母)몰래 배우(俳優)가된 것이 들통나지 않게하기위하여 전옥(全玉)이란 예명(藝名)을 쓴것입니다
불후(不朽)의 명가요(名歌謠) <목포(木浦)의눈물>을 비롯하여<해조곡(海鳥曲) ><목포(木浦)는 항구(港口)다<봄맞이>><다방(茶房)의 푸른꿈><불사조(不死鳥)><고향(故鄕)은 부른다>등등
많은 명곡(名曲)부른 가수(歌手) 이난영(李蘭影)은 본명(本名)이 이옥례이며 남편(男便)이자 전설(傳說)의 group-그룹- KIM SISTERS, KIM BROTHERS-김씨스터즈,
김브라더즈-의 부친(父親)이요<연락선(連絡船)은 떠난다><선창(船艙)><요핑계 조핑계><화류춘몽(花柳春夢)><찻집아가씨><오빠는 풍각쟁이><코스모스 탄식(歎息)> <울어라 은방울>
<고향설(故鄕雪)> <백팔염주(百八念珠) ><선죽교(善竹橋)>등의 힛트곡을 창작(創作)한
가요(歌謠)천재(天才) 김해송 씨(金海松氏)의 본명(本名)은 김송규(金松奎)입니다
<타향(他鄕)><이원애곡(梨園哀曲)><해조곡><바다의 교향시(交響詩)><뗏목 이천리(二千里)><소주뱃사공> <짝사랑><사막(沙漠)의한(恨)><아내의 노래><shoe shine-boy-슈사인보이->
<母女guitar-모녀기타-><아빠의 청춘(靑春)><matross朴-마도로스박>< 洋公主-양공주- 아가씨>----등등 숱한 힛트곡을 창작(創作)한
작곡가(作曲家) 손목인(孫牧人) 의 본명(本名)은 손득렬(孫得烈)입니다
우연찮게<유랑극단(流浪劇團)>이란 가요(歌謠)를 취입시(吹入時) 악단(樂團) 연주자(演奏者)로부터’저것도 가수(歌手)입니까??” 라는 비야냥을 들었던 가수(歌手)로
<나그네 서름><번지(番地)없는 주막(酒幕)><고향설(故鄕雪)><눈물의 백년화(百年 花)><산팔자(山八字) 물팔자(八字)<대지(大地)의 항구(港口)><복지만리(福地萬里)>등 수많은 힛트곡을 부른
백년설(百年雪)은 본명(本名)이 이갑룡으로 1950년대 이창민으로 개명(改名)했습니다
해서 본명(本名)을 이창민으로 착각(着角)하는사람들이 많습니다
1930~40년대 소위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sp음반시절(音盤時節) 유행가(流行歌)에 가사(歌詞)를 붙이는 직업(職業)을 가진 사람들은 신문기자(新聞記者) 시인(詩人)등 다양한 부류(部類)가 참여(參與)했습니다
해서 작사가(作詞家) 란 개념(槪念)이 뚜렷이 형성(形成)되지않았습니다
이무렵 본명(本名) 승응순(昇應順) 씨는 황해도(黃海道) 금천출생으로 금천의 다른이름 금릉(金陵)을 필명(筆名)으로 차용 금릉인(金陵人)으로 활동한 작사가(作詞家), 시인(詩人)이며
극작가(劇作家)출신(出身) 이었습니다
그는 고복수의<타향(他鄕)><이원애곡(梨園哀曲)><휘파람><사막(沙漠)의 한(恨)>이난영<고적 ><불사조>오대강타령(五大江打令)>이은파<관서(關西)천리(千里)><앞강물 흘러흘러>
채규엽<울며세우네>송달협<산유화(山有花)>등을 작사(作詞)했습니다
그는 이외도 남풍월(南風月) 추엽생(秋葉生)이라는 또다른 예명(藝名)이 있습니다
불후(不朽)의 명곡(名曲)<황성(荒城)의 적(跡)>을 비롯하여 최초 duet-song-듀엣송-<님그리워 타는가슴-전수린, 이애리수노래>극반(劇盤) <항구(港口) 의 일야(一夜)><눈나리는 밤><조선8경(朝鮮八景)>
<능수버들><산간처녀><마누라타령(打令)>---등을 작사(作詞)하고 그외도 극작가(劇作家), 연극배우(演劇俳優)로도 활동(活動)한 무대만능인(舞臺萬能人) 왕평(王平)은 본명(本名)이 이응호(李應浩)이며
편월(片月) 이두희 라는 또다른 필명(筆名)이 있습니다
1940년 그가 강계에서 연극<남매(男妹)>를 공연중 사망(死亡)하자 그의 업적(業績)을 기리고 사망을 애도(哀悼)하는 가요<오호라 왕평(王平)>을 조명암사 김해송 남인수노래로
okeh-record 발매(發賣)하기도 했습니다
이공연중 사망장면(死亡場面)을<물방아도는내력><유정천리(有情千里)><울고넘는 박달재><눈물의 오리정(五里亭)>---등을 힛트시킨 박재홍씨가 가수debut-데뷔-전 지켜보았다 합니다
10대후반 김소월의 스승 김억에게 시를 배우기도한 유도순(劉道順)씨는 매일신보(每日申報)등에서 기자생활(記者生活)을 했으며<봉자의노래><처녀총각(處女總角)><서울 명물(名物)><두목숨의 저승길>
<명물남녀(名物男女)><일자일루(一字一縷)><압록강(鴨綠江)뗏목노래><똇목이천리(二千里)><청춘타령(靑春打令)><조선타령(朝鮮打令)><금강산(金剛山)이 좋을시고>
<낙화암(落花巖)의 천년몽(千年夢)><개나리 고개>, 번안곡(飜案曲) <유쾌(愉快)한 시골영감(令監)> 고운봉의<국경(國境)의 부두(埠頭)><아들의 하소>등을 창작(創作)했습니다
그는 필명(筆名)으로 범오(凡吾), 다른이름으로 서두성(徐斗成)을 사용했습니다
일제(日帝)강점(强占)기(期) 가요계대부(歌謠界代父)요 팔방미인(八方美人)인 김용환(金龍煥)은 기독교(基督敎)집안에서 태어난 관계로 교회(敎會)를통하여 서양음악(西洋音樂)을 접했으며
동생 정구, 안라가 모두 대중가요인(大衆歌謠人)이 됩니다
후에 연극공장(演劇工場)으로 개칭(改稱)하는 “동방예술단” 에 입단 바이올린 주자(奏者)로 활동하며 대중음악계(大衆音樂界)에 입문(入門)하여 1932년경 일본 레코드가 한국(韓國)에
진출(進出)할시 polydor-record 에 전속가수(專屬歌手)겸 작곡가(作曲家)로 입사(入社)하여<두만강(豆滿江)뱃사공>을 작곡(作曲)하여 직접부릅니다
이어서 제1대 비극(悲劇)의 여왕(女王)이경설과 함께 극반(劇盤)<국경(國境)의애국>을 출반합니다
그는 특히 신민요풍(新民謠風儀)의 만요(漫謠)에 능(能) 하여<落花流水hotel-낙화유수호텔-><눈깔면 노다지><장모(丈母)님전 항의(抗議)><술취한 진서방> 등을 구성지고도 희극적(喜劇的)으로
잘불렀읍니다
이외도 <낙동강(洛東江>) <춘몽(春夢)> 극(劇)”항구(港口) 의 일야(一夜)”주제가 <정원(情怨)><서울 가두풍경(街頭風景)><종로(鍾路) 사중주(四重奏)><아리랑 한숨고개><꼴망태 아리랑>
<꼬리빠진 처녀(處女)><정어리 타령(打令)><영치기 행진곡(行進曲)>을 가창(歌唱)했으며
작곡가(作曲家)로서 부평선술집에서 작부(酌婦)로생활하던 이화자를 전격적(電擊的)으로 가수로 스카우트하여 신민요여왕-(新民謠女王)으로 등극시킨 일화(逸話)는 유명합니다
그는 연기(演技)에도 능하고 작곡(作曲)에도 특출(特出)한 능력(能力)을 가졌습니다
춘사 나운규의 영화<아리랑>을 각색(脚色)하여 연극무대(演劇舞臺)올려 공연을했고 심청전(沈淸傳)에서 심봉사역으로 최고(最高)연기(演技) 라는 평(評)을듣고 악극(樂劇)무대(舞臺) 삽입곡(揷入曲)을 40여곡을 직접작곡(直接作曲)하는 초인적(超人的) 가요인(歌謠人)모습(貌襲)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뿐아니라 이화자에게<가거라 초립동><꼴망태 목동(牧童)><임전 화풀이>< 초가삼간(草家三間)><미녀도(美女圖)>를 취입시켰고 특히<꼴망태 목동(牧童)>은 1934년가을 일본 히비야
공회당(公會堂)에서 polydor-record 신곡(新曲)발표회(發表會)가 있었을 때 여기서 쇼지타로의<국경의거리 -국경(國境)0정(町)->가 발표되었는데 이때 서울에서 온 김용환이 후일(後日)
이화자에게 취입(吹入)시키는<꼴망태 목동(牧童)>을 시창(始唱)했습니다
이외도 동생김정구 초창기노래<삼번통 아가씨>, <복던장수><modern 觀相-모던관상-쟁이> 차홍련의<아주까리 선창(船艙) ><도성의 밤노래> 친일가요(親日歌謠)
<우리는 제국군인(帝國軍人)이다>
해방최초가요(解放最初歌謠)<사대문(四大門)을 열어라>등도 창작(創作)했습니다
그는 김영파(金玲波), 김탄포(金灘浦), 조자룡(趙子龍)등의 또다른 필명을 사용(使用)했습니다
원래(元來) 연예인(演藝人)은 예명(藝名)은 대개 성(姓) 은 그대로쓰고 이름만 바꾸는 것이 상례(常例) 이지만 아예 성씨(姓氏)까지 완전(完全)히 바꾼 경우는 그리 흔치않습니다
연예인(演藝人)들을 점잖은 직업(職業)으로 인정(認定)하지 않는 이유(理由)는 같은 연예인(演藝人)들끼리 쉽게 사랑에 빠졌다가도 쉽게 헤어지는 것을보며 사생활(私生活)이 문란(紊亂)한
부도덕(不道德)한 사람들로 낙인(烙印) 찍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고장 저고장 구름처럼 떠도는 유랑생활(流浪生活)을 하다보면 외로움을 느끼게되고 젊은남녀(男女)가 쉽게 정(情)이 들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리저리 떠도는 생활(生活)을 하다보면 마음이 상하게되고 그러면 또 쉽게 헤어져버리는 분방(奔放)한 생활(生活)이 반복됩니다
연예인(演藝人)들의 사생활(私生活)을 무조건(無條件) 나쁘다고 비난(非難)하기에 앞서 “연예인(演藝人)들만이 갖는 독특(獨特)한 환경(環境) 때문이라고 이해(理解)해야 할것입니다” 라고
주장(主張)하는 글도 보입니다
아득한 옛날 이야기처럼 실감(實感)이 나지 않겠지만 지금부터 60여년전 1960년대만 해도 노래를 한다건 연극(演劇)을 한다고 하면 어른들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와서는 talent-텔렌트-가수(歌手), gag-man-개그맨-, mc 등 인기(人氣) 연예인(演藝人)들의 모집(募集)시험(試驗)에 고학력자(高學歷者)들이 대거(大擧) 몰려들어 경쟁률(競爭率)이 무려 660대1을
기록(紀錄)할정도로 인기절정(人氣絶頂)의 직업(職業)으로 변해버렸읍니다
세상(世上)이 변했어도 너무많이 그리고 빨리 변해버렸다고 생각(生角)하지 않을수없습니다
그러나 연예인(演藝人) 지망생(志望生) 이여!!
그대들이 그렇게 치열(熾烈)한 경쟁(競爭)을 뚫고 비록 시험(試驗)에 합격(合格)했고해서 청운(靑雲)의꿈이 당장 이루어질것이라고 믿다가는 큰코다친다는 사실(事實)을 명심(銘心)해야합니다
진짜경쟁(競爭)은 시험(試驗)에 합격(合格)한 후(後)부터 이고 험란(驗亂)한 star-스타-의 길이 이제부터 시작되는것에 불과(不過)합니다
Talent-텔렌트-라는 영어(英語)의 뜻처럼 만능재능(萬能才能)을 가지고도 이루기가 결코 만만치 않은 직업(職業)이기에-----
1449—이런 사실(事實) 아십니까?
이거다 저거다 말씀마시고 산(山)에가야 범을잡고
물에가야 고기잡고 go to the mountain catch the tiger
Go to the water catch the 고등어---
인천(仁川)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곱뿌없이는 못 마십니다
Incun front many many cider have no 곱뿌 no drink water
산(山)에 산(山)에 산토끼야 깡충깡충 뛰어서 어디 가느냐
여름바지 헛바지 겨울바지 홑바지 니가먼저 살자고 옆구리
콕콕 찔렀나 피가되고 살이되는 찌개백반 살살이 몰랐지
요건 몰랏을거다-------------------------서영춘씨 “공연중(公演中)”에서
지난60~70년대 한국 comedy 界-코미디계-를 대표(代表)하는 gag-star-개그스타-는 뭐니뭐니해도 “살살이” 서영춘씨를 손꼽아야 할것입니다
물론 반대(反對)하는 comedy-fan-코미디팬-들도 있겠지만—
가요계(歌謠界)에 계보(系譜)가있듯이 comedy 界-코미디계-도 계보(系譜)가 있습니다
연예계(演藝界)에서는 서영춘씨 주변(周邊)에있는 comedian-코미디언-들을”서영춘 사단(社團)”이라고 불렀읍니다
마치 가요계(歌謠界)의”박춘석 사단(社團)”처럼---
백금녀, 남철, 남성남, 임희춘, 배일집, 배연정, 심철호씨등등이 모두 서영춘씨와 동고동락(同苦同樂)하던 서영춘사단 사람들이었습니다
1970년대 초(初)였습니다
kbs에서는 매년 봄철이면 연례행사(年例行事)처럼 벚꽃놀이 시민위안(市民慰安) 공개방송(公開放送)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해봄에도 공연준비(公演準備)를 하면서 처음에는 낮에 공연을 하는것으로 일정을 잡았으나 갑자기 밤 공연(公演)으로 시간(時間)이 바뀌는 바람에 mc인 서영춘씨의 schedule-스케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기절정(人氣絶頂)의 comedian-코메디언- 서영춘씨는 서울시내(市內)는 물론 지방도시(地方(都市)의 야간업소(夜間業所) 출연 스케줄이 일년전에 이미 잡혀있을 정도로 바빴습니다
아무리 방송출연(放送出演)이 우선(于先)이라고 해도 극장(劇場)이나 야간업소(夜間業所)와 맺은 출연계약(出演契約)을 자주 어기면 손해배상(損害賠償) 청구(請求)가 들어오고
신뢰도하락(信賴度下落) 때문에 천하(天下)의 재주(財主)꾼인 그도 공개방송(公開放送) 일정(日程)이 갑자기 야간(夜間)으로 바뀌었다는 말을듣고 몹시 난감(難堪)해 했습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야간업소(夜間業所)에서는 人氣 star-인기스타-서영춘씨가 출연(出演)하는 날에는 대대적(大大的)인 광고(廣告)를 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손님들이 인기스타 서영춘을 보겠다는 기대감(期待感)을 갖고 왔다가 그가 막상 출연하지 않으면 일대소동(一帶騷動)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업주측(業主側)에서 인기스타들이 출연(出演)계약(契約)을 함부로 어지지 못하도록 하기위해 계약금(契約金)이나 출연료(出演料)를 선불(先拂))로 지불(支拂)하곤 했습니다
이무렵 부산(釜山)에있던 어느극장(劇場) 는 서영춘씨가 3번씩이나 출연계약(出演契約)을 위반(違反)했다며 한번더 계약(契約)을 위반(違反)하면은 손해배상(損害賠償) 청구(請求)는 물론
고소(告訴)까지 불사(不辭)하겠다고 흥분(興奮)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극장에 출연(出演)해야하는 날밤에 벚꽃놀이 공개방송(公開放送) schedule-스케줄-이 잡혀있으니 서영춘씨 입장(立場)도 난처(難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영춘씨 입장(立場)도 난처(難處)했지만 담당(擔當) pd인 박창학씨 입장(立場)은 더난처(難處)했습니다
당시(當時) 창경원(昌慶苑) 벚꽃놀이 공개방송(公開放送)에대한 인기(人氣)가 어찌나 대단했던지 전국(全國)방방곡곡(坊坊曲曲)에서 몰려온 수만명(數萬名))의 상춘인파(賞春人波)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는 박pd 의 다소(多少)주관적(主觀的) 표현(表現)도 보입니다
이 때문에 kbs 간부(幹部)들은 물론 문공부에서까지 관심(關心)을갖는 대규모(大規模) 공개방송(公開放送)인데 이러한 행사를 punk-펑크-를냈다가는 박 pd의 입장은 서영춘씨 이상(以上)으로
어려워 질게 뻔한 것--- 벚꽃놀이 행사(行事)가 야간(夜間)으로 변경(變更)되었다는 말을듣고 끙끙앟던 서영춘씨가 얼마후 남산(南山)에있는 kbs로 달려와서 그특유(特有)의 gesture-제스처-로
애걸(哀乞)을 했습니다
“살살이 서영춘이가 이렇게 빌 테니 박형! 제발 나좀 살려줘!”
박 pd는 어차피 남의일이니 그의 급한심정을 어찌 다알리요?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간신히참고 말했습니다
“서선생의 딱한입장은 모르는바 아니지만 나로서도 어쩔수없어요 제발 서선생이 날좀봐줘요”
이렇게 옥신각신했지만 신통한 방법(方法)이 있을리 없었습니다
다음날 공개방송(公開放送)을 해야하는데 서영춘씨가 갑자기 행방불명(行方不明)이 되었습니다
박 pd는 걱정이 태산(泰山)같았으나 공개방송 예고방송(豫告放送)이 수차례 나갔기에 전국(全國)에서 몰려든 수만명(數萬名)의 인파(人波)가 창경원일대(昌慶苑一帶)를 가득 메웠습니다
급하면 서영춘씨와 콤비로 사회(司會)를 보던 백금녀씨 혼자만으로 우선(于先) 공개방송(公開放送)을 시작하고 보계다는 심산(心算)으로 창경원(昌慶苑) 정문(正門) 책임자(責任者)에게
서영춘씨가 나타나면 특별(特別)히 부탁하여 무대(舞臺)쪽으로 급히 안내(案內)해 달라고 했습니다
원래(元來) 창경원(昌慶苑)에는 차량(車輛)이 들어올수없은 지역(地域)이었지만 특별히 부탁하여 차량이 들어올수 있도록 조치를 한셈입니다
이미 시작시간(始作時間)이 30분이상 지연(遲延)되어 더 이상 공개방송(公開放送)을 지연할수 없는 처지(處地)였습니다
몇번이고 정문쪽을 바라보며 서영춘씨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데 일시(一 時)에 갈라지면서 승용차(乘用車)한대가 loght-라이트-를 켠채 무대(舞臺)쪽으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자(司會者) 서영춘씨가 차에서 내리자말자 무대(舞臺)위로 뛰어올라 왔습니다
순간(瞬間) 수만명(數萬名) 관객(觀客)들은 우레와같이 박수갈채(拍手喝采)로 서영춘을를 환영(歡迎)했고 fanfare-팡파레-가 울리며 공개방송의 막(幕)이 올랐습니다
“ 입추(立錐)의 여지(餘地)없이 이곳 창경원(昌慶苑) 야외무대(野外舞臺)앞에 모이신 방청객(傍聽客) 여러분 안녕(安寧)하십니까? 살살이 서영춘이 인사드립니다”
Opening ment-오프닝멘트-와함께 공연(公演)이 시작된 것 입니다
창경원이 생긴이래 최대(最大)의 인파(人波)로 대성황(大盛況)을 이룬 공연(公演)이었습니다
공연(公演)을 마치고 음료수(飮料水)를 마시며 질문(質問)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일입니까??”
“계약위반(契約違反)으로 고소(告訴)를 당할 수는 없고해서 비행기(飛行機)로 부산(釜山)엘 갔다왔어요”
“불과(不過) 3시간 사이에 어떻게 부산(釜山)에가서 공연(公演)을하고 올수있어요?”
밎지못하겠다는 표정(表情)을짓자 서영춘씨가 말했습니다
“부산(釜山)에있는 00극장(劇場)에 가기는갔는데 시간(時間)이 없어서 무대(舞臺)에는 올라가지 못하고 막뒤에서 얼굴만 살짝 내밀고 서울로 도망왔어요”
이날 서영춘씨는 출연계약(出演契約)을 한 부산(釜山) 00극장(劇場)에 얼굴마저 비치지 않았다면 계약위반(契約違反)으로 고소(告訴)를 당할것이 확실(確實)하였기 때문에 변칙적(變則的)인
방법(方法)을 쓴것입니다
그당시 우리나라 comedy 界-코미디계-는에는 양훈, 양석천,구봉서, 곽규석씨등 기라성(綺羅星)같은 comedian-코미디언-들이 많이 있었지만 천부적(天賦的)으로 comedian-코미디언-의 끼를
타고난 comedian-코미디언-으로는 서영춘씨를 따를사람이 없었습니다
1450—이런사실 아십니까??
낙엽(落葉)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에 간긴밤
어머님하고 둘이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來日)날에 내가 부모(父母)되어 알아 보리라
상기곡(上記曲) <부모(父母) >의 가사(歌詞)는 원래(原來) 시(詩)로서 1925년에 발표(發表)된 김소월시집<진달래꽃> 57면에 실려있읍니다
이를 하기(下記)소개(紹介) comedian-코메디언-서영춘의 친형(親兄) 서영은이 이시(詩)에곡(曲)을붙여 발표(發表)했습니다
작곡가(作曲家)로서 오기택의<고향(故鄕)무정(無情)><충청도(忠淸道)아줌마> 쟈니리<뜨거운 안녕(安寧)>송춘희<진정(眞情)이라면>최희준의<이별(離別) platform-플래트홈><노(老)신사(紳士)> 를
작곡(作曲)곡한 서영춘의 친형(親兄)인 서영은 중학(中學)시절(時節) 애독(愛讀)했던 소월시에 곡을붙여 대중가요화를 위하여 자비를 들어서 두장의 lp로 발표합니다
주위에서 무모한 기획이라 염려가 많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Sinsegy-record 발매 2lp음반-가요(歌謠)로듣는 소월(素月)시집(詩集)-이고 상기곡<부모(父母)>는 두번째lp음반 title曲-타이틀곡-으로 유주용이 취입했습니다
허나 야심(野心)찬 이기획은 실패(失敗)로 돌아가고 유주용의<부모(父母)>라는 곡만 반응(反應)있자 후일 이곡을 title 曲-타이틀곡-으로하는 유주용의 독집음반(獨集音盤)으로 재발매(再發賣) 합니다
Sinsegy-record 발매 lp음반-부모(父母) ,결혼(結婚)지각(遲刻)생(生)-에 실려있습니다
<결혼(結婚)지각생(遲刻生)>은 김상희 불렀습니다
서영은(徐永恩)은 1926년 서울태생으로 본명(本名)은 “영”자가다른 서영은(徐泳恩)으로 초등학교시절(初等學校時節)부터 바이올린에 심취(心醉)해서 독습(獨習)으로 배우고 1943년 안병소가
설립(設立)한 연악원(硏樂院)에 입학(入學)하여 본격적(本格的)으로 음악공부(音樂工夫)를 하기시작합니다
이듬해 모친(母親)의 별세(別世)로 잠시 중단(中斷)했다가 아코디언을 자습(自習)하여 이른바 황군위문대(皇軍慰問隊)에 입대(入隊)하여 연주자(演奏者)가 됩니다
이부분은 정말이지 비난(非難)받아야 마땅합니다 한마디로 친일행위(親日行爲)이니깐요
해방(解放)이되자 친일행위(親日行爲)에대한 반성(反省)도없이 언제그랬냐는듯이 무궁화(無窮花)악극단(樂劇團)에 연주자(演奏者)로 변신(變身)을 합니다 부끄러움도 없이—
1946년 제일(第一)악극단(樂劇團)의 악단장(樂團長)이 되고 이때부터 대중가요(大衆歌謠) 작곡(作曲)을 시작했습니다
악극의 노래와 춤의 배경음악(背景音樂)등을 창작(創作)했고 1947년에는 군예대(軍藝隊) 문관으로 입대(入隊)하여 양양악극소대로 들어갑니다
9,28서울수복후 정훈(政訓)공작대원(工作隊員) 이된 그는 그해 11월 평안북도 어느 산골짝까지 진군하여 국군(國軍)위문(慰問)공연(公演)을 했습니다
이때 능선에 중공군 척후병이 나타났다는 정보가있어 그날밤 야음을 틈타 탈출해 12월하순 서울로 생환합니다
이 탈출(脫出)과정에서 공작대원중 바이얼린연주자인 가수 금사향의 오빠가 전사했고 여가수 주경선 가수 이인권의 부인 이순옥씨가 행방불명(行方不明) 되었습니다
평소(平素) 사석(私席)에서도 comedian-코메디언-이 comedian-코메디언-을 웃기는 사람은 단연(斷然) 서영춘씨 였습니다
동료(同僚) 코메디언들과 대사연습(臺詞練習)을 하다가도 조금 지루허다 싶으면 엉뚱한 말을하여 한바탕 웃음바다를 만들어 놓곤했습니다
코메디언의 기질(氣質)을 타고난 天才comedian-천재 코메디언-인 그도 늘 웃고사는 사는것은 아니었읍니다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남모르게 우는 그러한 시간(時間)도 많았습니다
하루는 안색(顔色)이 몹시좋지 않은 표정(表情)으로 우두커니 앉아 있었습니다
“서선생 오늘 무슨좋지않은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때와 장소(場所)를 가리지 못하고 웃는지 모르겠어요”
그의 말인즉, 아들이 다니는 학교(學校)에서 학부형(學父兄)을 부른다기에 모처런 학교(學校)에갔드니 교무실(敎務室)에있는 선생들이 서영춘씨를 보자마자 일제(一齊)히 웃드라는
것이었습니다
담임선생(擔任先生)을 만나고 교정(校庭)을 나서는데 또 그런일이 생겼습니다
“살살이 서영춘이 우리학교왔다!”며 수십명(數十名)의 학생들이 떼를지으서 쫓아오기까지 하더라는 것이었읍니다
이는 입장바꿔 생각해보면 그도 코메디언이기전에 평범(平凡)한 감정(感情)을 가진 사람인데 면전(面前)에서 비웃음으로 느껴지는 행동(行動)을 보인 교무실(敎務室) 선생(先生)들이나
아들뻘되는 꼬마녀석들이 반말짓거리로”서영춘” 하고 외쳤으니 직업(職業)에대한 회의(懷疑)를느끼는건 당연(當然)한것입니다
직업(職業)이 코메디언이라고 그의 인격(人格)조차 코메디언이 아니길래!!!
직업(職業)은 비록 코메디언이지만 집에들어가면 어엿한 가장(家長)이고 아이들의 아버지인데 선생(先生),학생(學生)할것없이 보기만하면 웃어대니 어찌 화가치밀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1960년대에 trot-歌謠-트로트가요-가 유행(流行)하는가 싶더니 1970년대에는 twist-曲-트위스트곡-과 go go-고고-가 대유행(大流行)했습니다
그리고 rap 音樂-랩음악-이 유행(流行)하면서 서태지라는 가수(歌手)가 등장(登場)했습니다
rap音樂-랩음악-에 관심(關心)을갖고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의 고전(古典)인 판소리속에 rap-랩-적인 요소(要素)가 많이 담겨있다는 사실(事實)을 발견(發見)할수있다는 주장(主張)이 보입니다
심청가(沈淸歌), 춘향가(春香歌)등 우리들의 판소리를 들어보면 이것저것 정신없이 주워넘기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것이 rap-랩-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아예 melody-멜로디-를무시(無視)하고 걸직하게 내던지는 창법(唱法)등은 랩의 자유(自由)로움과 일맥상통(一脈相通) 하다는 것입니다
헌데 1960~70년대 서영춘씨가 이미 이러한 랩을 시도(試圖)했다는 것입니다
서영춘씨가 이런 랩을 부르면 웃지않는 사람이 없을정도로 즐거워했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랩 이상으로 선풍(旋風)적인 이기를 모았다고고 주장(主張)합니다
그것이 앞선란에 소개(紹介)한”이거다 저거다 말씀마시고—“로 시작되는 랩송입니다
이 노래가 힛트를 하자 영화계(映畵界)에서 가만히 둘리리 만무(萬無) 합니다
1969년 영화계(映畵界)에서 “흥행(興行)의 귀재(鬼才)” 라 불리는 이형표감독이 megaphone-메카폰-을 잡고 서영춘, 구봉서, 김희갑, 장욱재. 김지미, 남정임이 출연(出演)해서 완성(完成)합니다
원작(原作)은 주태익 각색(脚色)은 신봉승씨가 맡았습니다
<Nothing ventured nothing gained>로 영역(英譯)된 이영화는 과부(寡婦)인 치과의사(齒科醫師) 김지미와 그녀의 딸 남정임, 그리고 식모(食母)인 사미자 이렇게 세사림이 사는 집에
어느날 남자 3명이 하숙(下宿)을 합니다
김지미는”금연(禁煙), 금주(禁酒), 금녀(禁女)를 세가지 조건(條件)으로 내걸고 하숙(下宿)을 허락(許諾)합니다
화장품(化粧品) 영업사원(營業社員)인 구봉서, 수제화(手製靴)를 만드는 서영춘, 대학(大學)에서 축산업(畜産業)을 전공(專攻)하는 장욱재는 목숨을 나눈 삼형제(三兄弟) 같은 사이로 함께 합니다
하숙(下宿)을 하면서 세사람은 이집 여성(女性)들과 연애(戀愛)도 함께시작합니다
한사코 남자(男子)에게 관심(關心)이 없는척 하던 내숭덩어리 김지미도 구봉서의 상사(上司)인 김희갑을 소개(紹介)받아서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됩니다
그리고 김지미의 딸 남정임의 적극적(積極的)인 노력으로 어머니 김지미와 구봉서의 상사(上司)인 김희갑의 결혼(結婚)을 성사(成事)시키는데 성공(成功)합니다
이두사람의 결혼식(結婚式)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각자자신의 연인(戀人)과함께 행복(幸福)한 표정(表情)을 짓습니다
상기영화(上記映畵)는 “산(山)에가야 범을잡지” 하는 구봉서의 대사(臺詞)처럼 자신의 연인(戀人)을 만나기위해서는 적극적(積極的)인 노력(努力)이 필요(必要)하다는 의지적(意志的)인 message-메시지-를 유쾌(愉快)한 톤으로 그려낸 작품(作品)입니다
남성(男性)과의 skinship-스킨십-에도 적극적(積極的)인 남정임, “남자(男子)는 양심(良心)없는 동물(動物)”이라며 남성(男性)과의 관계(關係)를 꺼리는 구세대(舊世代) 김지미 의 긴장(緊張)은
세 남성(男性)을 거치면서 와해(瓦解)됩니다
세남성이 여성(女性)이 가장(家長)인 공간(空間)에 들어와 겪는 우여곡절(迂餘曲折)은 경제적(經濟的)으로(魯)아직 성공(成功)하지못한 젊은 청년(靑年)들의 처지(處地)를 드러내고 있고
이들은 여성(女性)에 맞서기보다는 그녀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현명(賢明)하다고 자기위로(自己慰勞)를 하는 모습은 그땐 지금이나 다를바없어서 뒷맛이 씁스레합니다
허나 그러한 모습(貌襲)을 “깨인남자”라고 하는글도 존재(存在)합니다
이러한 인기(人氣)를 배경(背景)으로 서영춘씨는 영화계(映畵界)에 이어서 음반계(音盤)계(界) 의 초청(招請)을받아 많은 음반(音盤)을 발표(發表)합니다
파라마운트레코드발매 lp음반-폭소(爆笑)와 만담(漫談)-에서 side a <기차(汽車)놀이><부산(釜山)행(行) 관기>를 백금녀씨와 side b에서도 <엉뚱한 연애(戀愛)>를 백금녀씨와 같이 공연했습니다
Universal-record 발매 lp음반-웃음따라 요절(夭折)복통(腹痛)시리즈를1~8까지 발표
1집에서-<산부인과(産婦人科) 개업(開業)>을 이순주씨와 <서울구경>서영춘씨 솔로로<오복(五福)바람>을 이순주씨와<알뜰한당신>을 솔로로<한심한 친구(親舊)>을 김희자씨와<나이타장사>를
김희자씨와<8,15해방(解放)전후(前後)>를 이순주씨와 각각(各各)공연(公演)했읍니다
4집에서-재일교포(在日僑胞) 이화가 노래를 하고 서영춘, 백금녀, 김희자가<그러긴가요><아라랑 랑랑><번지(番地) 없는 주막(酒幕)><찔레꽃><목포(木浦)는 항구(港口)다>
<삼다도(三多島) 소식(消息)>을 세사람이 같이 공연(公演)을 했습니다
6집은 서영춘,백금녀 배삼룡씨가 같이 공연(公演)을 했습니다
프린스레코드발매 lp음반-폭소(爆笑)가요만담(歌謠漫談)집(集)1~2 에서
2집-음악은 친형(親兄) 서영은, 나화랑이 담당하고 노래는 대중가수(大衆歌手)진방남,서영춘 양석천 오길래 백금녀등이 부르고<부산(釜山)행장기(行狀記)><엉뚱한 연애(戀愛)>를 백금녀씨와
공연(公演)했습니다
King star-record 발매 lp음반-웃음의 꽃다발-에서<나하나의 사랑><비빱빠룰라>를 서영춘이 공연(公演)했읍니다
Sinsegy-record 발매 lp음반-가 갈갈골골 청춘(靑春)-에서 작사(作詞)는 서영춘 작곡(作曲)은 형(兄) 서영은이 담당(擔當)했습니다
<집지지키는 내 신세(身世)>서영춘이<우리는 명랑(明朗)부부(夫婦)>는 서영춘 백금녀씨가 함께<갈깔 웃으라>도 역시---
1451—이런 사실(事實)아십니까??
오 사랑하는 친구(親舊)즐거웠던 날들
꽃피고 지는 학원(學院) 꿈같이 지냈네
세월(歲月)은 흘러가고 작별(作別)의 날이 옸네
젊은 새처럼 높이 다같이 날으네
우리들의 우정(友情)을 깊이 간직하자
행운(幸運)을 빌며 안녕(安寧) 친구(親舊)여 안녕(安寧)
바람이 몰아치고 파도(波濤)가 밀려와도>
마음을 가다듬고 가슴을 펴다오
추운겨울이 오면 봄이 가깝다오
검은 구름위에도 태양(太陽)이 빛난다오
우리들의 우정(友情)을 깊히 간직하자
행운(幸運)을 빌며 안녕(安寧) 친구(親舊)여 안녕(安寧)
상기(上記)가요(歌謠) <friendship-우정(友情)>은 길옥윤사,곡으로 가수(歌手) 이숙씨가 불렀습니다
현대레코드발매 lp음반-이숙 눈아내리네, 우정-에 실려있습니다
1967년경<못다한사랑>으로 歌手 debut-가수데뷔-를 그녀는 별주목을 받지못하다 작곡가(作曲家) 길옥윤에 pick up-픽업-되어 상기곡<우정(友情)>을 발표(發表)한후 인기(人氣)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학원(學院)을 떠나는 젊은이들에게 드리는 노래”라는 부제(副題)붙은 이곡은 해마다 졸업식(卒業式)철이 되면 젊은이들 사이에 많이 불렸습니다
이숙은 또 샹송가수 아다모가 부른<tombe la neige>일명”돈벌어 내줘” 를번안(飜案)해서<눈이내리네> 제목(題目)지어 불러서 그녀의 대표곡(代表曲)으로 만들었습니다
One man show-원맨쇼-를 잘하는 백남봉의 인상(印象)을 자세히 살펴보면 입술이 v자형으로 생겼는데 관상학적(觀相學的)으로 이런 상(象)을 타고난사람이 말을 잘한다는 주장(主張)이 보입니다
박pd와 위문공연(慰問公演)을 함께다닐 때면 차를 타는 순간(瞬間)부터 목적지(目的地)에 도착할때까지 단일분도 쉬지않고 계속(繼續) 떠들어되었습니다
어떤때는 숨도 쉬지않고 계속 웃기는 바람에 옆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웃다가 지쳐서 배가 고플지경 이었읍니다
“물에 빠지면 입술만 동동 뜰거야”
해서 이러한 농담(弄談)이 생겼습니다
그를 볼때마다 생각나는 말이 있습니다
“쥐가 이빨을 계속갈지 않으면 이빨이 자라서 자기살을 파먹기 때문에
쥐는 밤낮없이 나무토막 같은것을 갈아먹는거다”
끊임없이 이빨을가는 쥐처럼 평소(平素)에 쉬지않고 말하는 훈련(訓練)을 하기 때문에 남보다 one man show-원맨쇼-를 더잘하는 것이 아닌가 믿어집니다
어찌되었거나 그는 재미있는 사람입니다
박pd 가 백남봉씨를 처음만난 것은 1968년경이었고 그무렵 amateur-아마추어- 장기(長技)자랑 프로가 한창 인기(人氣)를얻고 있었읍니다
이프로의 사회자(司會者)가 fly boy-후라이보이- 곽규석씨였으며 아마추어 출연자(出演者)들이 자기(自己)가 갖고있는 특기(特技)를 한가지씩 발표(發表)하는 형식(型式)으로 진행(進行)되었습니다
출연자들은 대부분 인기가수(人氣歌手)의 노래를 모창(模唱)하거나 旣成comedian-기성코메디언-이나 만담가(漫談家)들의 을 흉내냈습니다
어떤때는 무당(巫堂)들의 푸닥거리를 흉내내거나 닭,개,고양이, 염소등 각종 동물들의 울음소리를 묘사(描寫)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도 햇습니다
이무렵 가장인기있던 성대모사(聲帶模寫)는 fly-boy-후라이보이-곽규석의 비행기(飛行機)소리 흉내였읍니다
곽규석씨가 사회(司會)를 맡고있는 프로그램에 출연(出演)한 amateur-아마추어-들이 fly-boy-후라이보이-의 성대모사(聲帶模寫) 를 흉내내고 있었으니 사회자(司會者) 본인(本人)은 얼마나
우스웠겠습니까?
그런 제대로하면 다행(多幸)이지만 본인(本人)앞에서 잘되지도않는 흉내를 내느라고 애를쓰다가 실수(失手)라도하면 사회(司會)를보던 곽규석씨는 아예 주저앉아 박장대소(拍掌大笑)를 했습니다
곽규석씨의 성대모사(聲帶模寫)를 연구하여 아예 직업전선(職業戰線)으로 나서서 제2의fly-boy-후라이보이-로 활약하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대표적(代表的)인물(人物)이 곽규석씨의
친동생 곽규호씨였읍니다
이외도 <사랑><금산아가씨>등을 부른 가수(歌手) 김하정을 몹씨 괴롭힌 쓰리보이 신선삼, 남보원씨등도 밤무대에서 활약(活躍)했습니다
이무렵 인기가수 남진씨(南珍氏)의 manager-메니저-로 활약(活躍) 우리나라 가요사에 singer mamager-가수 메니저- 제1호로 불리는 이한복씨가 박 pd 를 찾아와 재주있는
新人comedian-신인 코메디언- 한사람이 있는데 한번 키워보라고 추천(推薦)을 했습니다
이렇게해서 소개(紹介)받은 사람이 바로 백남봉씨 였습니다
아마추어들의 장기(長技)자랑 프로에 출연(出演)하기 위해서는 유명가수나 코미디언들 또는 연주자(演奏者)들 앞에서 자신(自身)의장기를 보이고 이정도 실력(實力)이면 방송에
출연(出演)시켜도 괜찮겠다는 사전심사(事前審査)를 받아야 했습니다
한번도 보지못한 무명(無名)one man show man-원맨쇼맨-백남봉씨를 예비심사(豫備審査)도 거치지않고 대뜸 무대(舞臺)에 세운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冒險)일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영춘씨 같으면 특유(特有)의 살살이 서영춘의 랩 같은 장기(長技)가 있으니 얼마든지 가능(可能)하지만 백남봉씨는 아직은 알려지지 않은 무명(無名) 코미디언이니 그를 장기(長技)
프로그램에 출연(出演)시키자니 여간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밤무대(舞臺)에서 수년간 이미 활햑했던 그에게 다른 아마추어같이 사전심사(事前審査)를 하자고 할수도없고해서 한동안 고민(苦悶)을 해야했습니다
결국 fly-boy-후라이보이-와 상의(相議)끝에 일단 출연(出演)시켜보기로 합니다
백남봉씨가 첫무대에서 발표한 one man show-원맨쇼-가 바로그 유명(有名)한 발동기(發動機) 시운전(試運轉)하는 성대모사(聲帶模寫) 였읍니다
굵은 고무belt-벨트-를 발동기에 감았다가 잡아당기면”튀튀튀”하는 소리가나며 시동이 걸렸다가는 꺼지고 그러면 또다시 손으로 줄을감았다가 당기는 흉내를 몇차례내면 드디어
힘차게 소리를 내고 발동기(發動機)가 돌아가는데 그모습과 성대모사(聲帶模寫)가 가히 일품(一品)이었습니다
방청석(傍聽席)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지면서 배꼽을잡고 웃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마이크에 입을대고 쉰듯한 목소리로”튀튀튀” 소리를내며 시동(始動)을걸 때 그의 행동이 어찌나 우스웠던지 사회(司會)를 보던 곽규석씨는 웃다못해 그만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닦기가 바빴읍니다
“사회를 오래보다보니 별 괴물(怪物)을 다 보겠네”
곽규석씨가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하도 신기(新奇)하고 재미있어서 한가지만 더하라고 주문(主文)했더니 이번에는 마라톤대회 중계방송(中繼放送)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전국(全國)에계신 청취자(聽取者) 여러분-----“
이렇게 시작된 마라톤대회 중계방송(中繼放送)도 가관(可觀)이었습니다
전라도(全羅道), 충청도(忠淸道), 경상도(慶尙道), 평안도(平安道), 함경도(咸鏡道)등 마라톤대회에 참가(參加)한 각도(各道)선수(選手)들이 주고받거나 하는 사투리 묘사(描寫)가
특(特)히 일품(一品)이었습니다
아나운서가 선수(選手)와 interview-인터뷰-하는 장면(場面)이나 선수가 언덕을 달리면서 숨을 몰아쉬는 소리들을 완벽(完璧)하게 묘사(描寫)했습니다
이날의 공개방송(公開放送)은 오직 백남봉씨 한사람을위한 무대(舞臺)였다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닐정도로 방청석(傍聽席)을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날이후 장기(長技)자랑 프로에는 백남봉씨의 원맨쇼를 흉내내는 출연자(出演者)들이 급격(急擊)히 늘어나기 시작했읍니다
“Star 誕生-스타탄생-이 바로 이런 것 이구나” 하는 생각(生角)이 들정도로 그의 방송(放送)debut-방송데뷔-는 화려(華麗)했습니다
그는 그이후 장기(長技)자랑 공개방송(公開放送)의 단골손님이 되었고 자주 mass com-매스컴-을 타는만큼 인기(人氣)도 올라가 곧바로 화려(華麗)한 스타의길을 걷습니다
그러나 백남봉씨가comedy star-코메디스타-가 되기까지 순탄(順坦) 하기만 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의 웃음뒤에는 피눈물나는 고생(苦生)과 고통(苦痛)이 숨어있었습니다
인기가수(人氣歌手)들의 노래라는 노래는 모두 따라부르다 못해 심지어는 육자배기 까지 불러댔습니다
Radio-라디오-에서 중계방송(中繼放送) 소리만 나오면 따라 연습(練習)했으며 발동기(發動機)소리를 흉내내기위해서 농사(農事)철에 발동기를 찾아 논둑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1452—이런 사실(事實)아십니까?
보슬비 오는 거리에 추억(追憶)이 찾아들어
상처(傷處)난 내사랑은 눈물 뿐인데
아~타버린 연기(煙氣)처럼 자취(紫翠)없이 떠나버린
그사람 마음은 돌아올길 없네
보슬비 오는 거리에서 밤마저 잠이들어
병(病)들은 내사랑은 한숨뿐인데
아~쌓이는 시름들이 못견디게 괴로워서
흐르는 눈물이 빗속에 하염없네
상기가요<보슬비오는 거리>는 전우작사 김인배 작곡으로 가수(歌手) 성재희씨가 불렀습니다
원제목은<보슬비 내리는 거리>입니다
Oasis-record 발매 lp음반-보슬비내리는거리-side b 타이틀곡으로 보입니다
곡을 부른 성재희는 1943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여고(女高)시절(時節)부터 노래부르기를 좋아했는데 명연주가 출신작곡가 김인배씨에게 pick up-픽업-되어 미모(美貌)와 husky voice-허스키보이스-를살린 신선(新鮮)한 창법(唱法)으로
가요계(歌謠界)에 청신(淸新) 한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남자목소리를 방불케하는 굵은저음을 구사(驅使)하는 가수로는 문주란씨가 있지만 그녀먼저 인기(人氣)를 끌었읍니다
그녀는<왜그런지><태양(太陽)은 싫어요><못잊어그리워><황혼(黃昏)의 tango-탱고-><가시돋힌 장미(薔薇)><보고싶어요><잊어야 한다고>을 계속 힛트시켜서 한창 인기(人氣)가 높았으나
가수시작(歌手始作)전(前) “약속(約束)한 기간동안만 활동(活動) ”을 지키고 1966년 인기(人氣)절정기(絶頂期)에 재일교포(在日僑胞)와 결혼(結婚) 가요계(歌謠界)을 과감(過感)히 떠나갔습니다
<보슬비오는거리>곧 문주란이 이어서 부르며 정상(頂上)의 가수로 부각됩니다
<1441>서 계속---실제(實際)로 발동기(發動機)를 걸었다가 시동(始動)이 꺼지는 연습(練習)을 수백(數百)번도 더는 것입니다
또 팔도(八道)사투리를 흉내내기 위하여 토박이 사투리를 쓴사람들을 찾아 시장(市場)바닥을 누비고 다니며 술과 밥을 사주어야 했습니다
그보다도 더 힘들었던 것은 이곳 저곳 떠돌아 다니면서 성대모사(聲帶模寫) 연습(練習)을 해야하는 것이었습니다
장소가 마땅치않아 어떤때는 여관방(旅館房)에서 혼자 1인(人) 8역(役)을 했습니다
혼자서 팔도사투리를 주고 받거나 연습을 하면 여관(旅館)집 주인(主人)이 분명 손님은 혼자들었는데 여러명이 그것도 각지방 사투리로 떠들썩하는 것이 이상(異常)하여 몰래
창틈으로 들여다 보았습니다
혼자서 미친놈처럼 떠들고있는 모습을보고 당장 나가라고 호통을치는 바람에 쫓겨나기기를 수십(數十)차례 했읍니다
발동기(發動機)소리 연습을 하고싶어도 마땅한 장소(場所)가없어서 낮에는 깊은산속에서 하루종일 연습(練習)하다가 밤이되면 어쩔수없이 하숙집으로 돌아와 이불속에서”튀튀튀!”소리를
흉내내야 했읍니다
그러닥 발동이 걸리는 클라이막스에 가서는 자신도 모르게 이불을 걷어차고 큰소리로”통통통!”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으니 하숙(下宿)집 주인(主人)은 물론 옆방 사람들까지 쫓아나와
시끄러워 잠못자겠다고 항의(抗議)하는 소동(騷動)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그후 10여년이 조금지난, 1980년 여름날 두사람은 다시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참더운 7월말이어서 경포대(鏡浦臺)와 낙산(洛山)해수욕장(海水浴場)에서 두차례 납량(納凉)특집(特輯) 공개방송(公開放送)을 하기로 예정(豫定)되있었습니다
백남봉씨는 이미 스타가 된후여서 고급자가용(高級自家用)을 굴리고 다녔습니다
대부분(大部分)의 스타가 다그런것처럼 貸切 bus-대절버스- 아닌 승용차(乘用車)를 타고오겠다고 햇습니다
서울에서 강릉(江陵)까지 상당히 먼거리라서, 출연료(出演料)도 많지못하니 버스로가자고 권했더니 다른데 들를데가 있고해서 자기차(自己車) 로 오겠다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강릉에서 합류(合流)하기로 하고 각각 출발(出發)했습니다
강릉 경포대에서 1차공연을 마치고 그다음날은 속초에있는 낙산해수욕장서 2차공연을 하기위하여 雪嶽 hotel-설악호텔-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저녁식사를 한후 각방을 돌아다니며 내일(來日)의 공연일정(公演日程)을 알리고 인원점검(人員點檢)까지 마치고 한참 샤워를 하는데 電話 bell-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바로 백남봉씨 였습니다
보나마나 night-club-나이트클럽-에서 한잔하자는 이야기일것같아 내일(來日)을위해 일찍자라 했더니 꼭 할말이있다며 잠깐만 자기방에 들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누구 에게도 알리지말고 혼자만 조용히 와달라”는 목소리가 진지(眞摯)했습니다
평소 하도 짖궂은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또 무슨 꿍꿍이속이있나”하는 생각에 가벼운 차림으로 그의 방문(房門)을 knock-노크-했습니다
방에는 왠부인이 앉아있었습니다
주춤하고 인사(人事)를했더니 백남봉씨가 인사(人事)를 시켰읍니다
“박선생님 께 인사(人事)드려라”
부인(夫人)이 인사를 하자 배남봉씨가 말했습니다
“사실(事實)은 집사람과 함께 오기위하여 일행(一行)과 떨어져 올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방에는 어느새 조촐한 맥주(麥酒)상이 준비(準備)되어 있었습니다
평소(平素)에 그렇게 넉살스럽던 그도 그날만은 소년(少年)처럼 어색한 얼굴로 지난날 고생(苦生)했던 이야기를 털어 놓았습니다
지금은 집도한채있고 조그마한 술집도하나 경영(經營)하고 있아 남부러울게 없지만 박선생님을 처음만날 당시(當時)만해도 無名 comedian-무명 코미디언-신세(身世)여서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했읍니다
운(運)좋게 박선생을 만나 장기(長技)자랑 program-프로그램-에 출연(出演)해서 comedy star-코메디스타-가 될수있었고 매주(每週)장기(長技) 프로에 단골출연(出演)한 덕택에 오늘과 같은 날이
있게됐다고 감사(感謝)해했습니다
이러한 백남봉의 인기(人氣)에 주목(注目)한 음반걔(音盤界)에서 그의 on man show-원맨쇼- 음반(音盤)과 그의 노래를 담은 음반(音盤)까지 발매(發賣)합니다
Daedo-record 서 lp음반-백남봉 원맨쇼-1~2를 발매한 것을 비롯 universal-record 서lp음반- 웃음따라 요절복통(夭折腹痛)1~7 를 기획(企劃)했고 노래를 담은 것으로 jigu-record 서
lp음반-백남봉의 만요(漫謠) 민요(民謠) 원맨쇼-를 발매 side a에<봉이 김선달><한오백년><신(新) 경복궁(景福宮)타령(打令)><창부타령><밀양(密陽)아리랑><매화(梅花)타령(打令)>을 싣고
side b <이혼(離婚)식(式)<훈련소(訓練所) 각도(各道)교관(敎官)><news-뉴스->< 각도(各道) 선거(選擧)개표(開票)풍경(風景)>을 실었고 아세아레코드서는lp음반-백남봉의 민요(民謠)가락-을 universal-record 서는 lp음반-스테레오 힛트앨범-을 각각 발매(發賣)했습니다
1453. 이런 사실(事實) 아십니까??
<나라님의 병정(兵丁)되길 소원(所願) 입니다>
무명지(無名指) 깨물어서 붉은피를 흘러서
일(日章旗) 그려놓고 성수만세(聖壽萬歲) 부르고
한글자 쓰는 사연(事緣) 두글자 쓰는 사연(事緣)
나라님의 병정(兵丁)되기 소원(所願)입니다
해군(海軍)의 지원병(志願兵)을 뽑는다는 이 소식(消息)
손꼽아 기다리던 이 소식(消息)은 꿈인가
감격(感激)에 못잊이기어 손끝을 깨물어서
나라님의 병정(兵丁)도기 지원(志願)합니다
나라님 허락(許諾)하신 그 은혜(恩惠)를 잊으리
반도(半島)에 태어남을 자랑하여 울면서
바다로 가는마음 물결에 뛰는마음
나라닌의 병정(兵丁)되기 소원(所願)입니다
반도(半島)의 핏줄기 빛나거라 한핏줄
한나라 지붕아래 은혜(恩惠)입고 자란몸
이때를 놓칠쏜가 목숨을 아낄손가
나라님의 병정(兵丁)되길 소원(所願)합니다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건설(建設)하는 새아침
구름을 헤치고서 솟아오른 저 햇발
기쁘고 반가워 두손을 합장(合掌)하고
나라님의 병정(兵丁)되길 소원합니다<일제(日帝)의 징병권유(徵兵勸誘)>
상기(上記歌謠) <혈서지원(血書志願)>은 조명암작사 박시춘작곡 으로 남인수, 박향림, 백년설이 부른 친일가요(親日歌謠) 입니다
1943년, 11월 okeh-record 발매 sp음반으로 발매(發賣)했습니다
타면(他面)에는 조명암사, 김해송작, 편곡(編曲)으로 남인수, 이난영이 부른<이천오백만(二千五百萬) 감격(感激)>이 실려있습니다
상기가요(上記歌謠)는 일제말기(日帝末期) 친일골수분자(親日骨髓分子)로 추락(墜落)한 작가(作家) 조명암의 민낯을 보여주는--- 소개(紹介)하고 기억(記憶)하기조차
싫은 정말로 싫은 대표적(代表的)인 친일가요(親日歌謠)임을 부인(否認)할수 없습니다
<<지금도 가요황제(歌謠皇帝) 남인수 씨(南仁樹氏) 그를 기억(記憶)하고 좋아하는 fan-팬-들이 동호회(同好會)까지 조직(組織)해 추모(追慕)하고
있지만 해서 그들에게는 미안(未安)한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진실(眞實)은 정확(正確)히 기록(紀錄)하고 후손(後孫)들에게 알려줄
의무(義務)가 있기에--- 이글을 계속(繼續)쓰겠습니다>>
“친일가수(親日歌手) 남인수 가요제(南仁樹歌謠祭), 진주(晋州)대첩(大捷) 칠만영령(七萬英靈)이 통곡(痛哭)한다”
2006년 10월9일 저녁7시 개천예술제(開天藝術祭) 행사(行事)의 하나인 남인수가요제(南仁樹歌謠祭)가 열리고있는 진주성(晋州城) 특설무대(特設舞臺)
앞에서”친일잔재청산(親日殘滓淸算) 시민운동본부(市民運動本部)등 시민단체회원(市民團體會員)들이 시위(示威)를 벌였습니다
일제말기(日帝)말기(末期) 상기가요<혈서지원(血書志願)>등 친일가요(親日歌謠)를 부른 진주출신(晋州出身) 남인수(南仁樹) 의 이름을 딴
가요제철폐(歌謠祭撤廢)를 요구(要求)한것으로 올것이 결국 온것입니다
도대체 남인수가 부른<혈서(血書志願)>은 어떤 노래 이기에 이런 사태(事態)가 발생(發生)한것일까요??
이 가요(歌謠)는 한국대중가요사(韓國大衆歌謠史) 의 흑(黑歷史) 그 자체(自體)라고 밖에 할수없습니다
타고난 미성(美聲)으로 한국가요사(韓國歌謠史)에 한획(劃)을 그은 남인수(南仁樹)이지만 역사(歷史)앞에 그의 명예(名譽)에 큰 오점(汚點)을
남긴 친일가요 취입(吹入)----- 중일전쟁당시(中日戰爭當時) 일본군(日本軍) 의 만행(蠻行)을 찬양(讚揚)한<강남의 나팔수>
징병제실시(徵兵制實施)를 축하(祝賀)하는<남(南)쪽의달밤><이천오백만 감격(感激)>---친일영화(親日映畵) 주제가(主題歌)로
장세정과 duet-듀엣-으로 부른 친일영화(親日映畵) 주제가(主題歌) <그대와 나>-----등도 불렀습니다
헌데!! 더 귀가찬 일은 친일가요(親日歌謠)<혈서지원(血書志願)>을 <혈청지원가(血淸志願歌)>로 제목(題目)을 바꾸어 대한민국(大韓民國)
군가(軍歌)로 remake 해서 불렀다는것입니다
한술더떠서 2006년에는 국가보훈처(國家報勳處)는 이노래를”추억(追憶)의군가(軍歌)”로 지정(指定) 했다는 것입니다
곡(曲)을 군가(軍歌)로 지정시(指定時) 원곡(原曲歌詞)를 조금만 꼼꼼히 읽어보았으면” 일장기(日章旗) 그려놓고 성수만세(聖壽萬歲) 부르고”
가 친일가요(親日歌謠)임을 알수있었터인데 어이없게도 “태극기(太極旗) 그려놓고 천세만세(千歲萬歲) 부르고”로 개사해 불렀습니다
“나라님의 병정(兵丁)되기 소원(所願)입니다”를”대한민국 병정(兵丁)되기 소원(所願)입니다”등으로 개사했습니다
아무리 역사의식(歷史意識)이 부족(不足)하고 옛노래에 관심(關心)이없다해도----정말로 정신(精神)이나간 사람들이라고 ----정말로 뒷맛이 씁니다
<혈서(血書志願)>하면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박정희 쿠테타 수괴(首魁)입니다
만주(滿洲)에서 발행(發行)되던 신문(新聞) 만주(滿洲新聞) 1939년, 3월31일자에 실린 “박정희 혈서지원”의 기사(記事內容)은----- 29일 치안부 군정사 징모과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림소학교 훈도(訓導)<교사> 박정희군의
군관지원 (軍官志願) 편지(便紙)가 호적등본(戶籍謄本), 이력서(履歷書), 교련(敎練檢定)합격(合格) 증명서(證明書)와 함께”한번 죽음으로써
충성(忠誠)함 박정희”라는 혈서(血書)를 넣은 서류(書類)로 송부(送付)되어 계원을 감격(感激)시켰다-------
이 신문(新聞)은 다음과 같은 내용(內容)의 편지(便紙)도 동봉(同封)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一般的)인 조건에 부적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에 넘치고 송구하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반드시 국군(國軍)<만주국(滿洲國)의 국군(國軍)>에 채용(採用)시켜 줄수 없겠습니까??
일본인(日本人)으로서 수치(羞恥)스럽지 않을만큼의 정신(精神)과 기백(氣魄)으로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決心)입니다
확실(確實)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忠誠)을 다할 각오(覺悟)입니다
한명의 만주국군(滿洲國軍)으로서 만주국(滿洲國)을 위해 나아가 조국(祖國)을 위해 어떠한 일신(一身)의 영달(榮達)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의 충성(忠誠)을 다할 결심(決心)입니다
박정희는 혈서지원(血書志願)을 포함한 세차례의 지원(志願)끝에 4월 일본의 괴뢰국(傀儡國) 만주국(滿洲國)의 만주군관학교(滿洲軍官學校)<신경군관학교 2기>
예과과정에 입학 친일(親日行爲)를 시작합니다
그는 이학교를 우등생(優等生)으로 졸업(卒業)하면서 만주국 황제 푸이가 하사하는 금장시계를 은사상으로 받습니다 본격적(本格的)으로 골수(骨髓親日分子)가 된것입니다
그런그가 조국(祖國)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 대통령(大統領)까지 되었으니 후손(後孫)들에게 뭐라고 변명(辨明)해야할까??
난감(難堪)하기만 합니다
상기가요(上記歌謠)<혈서지원(血書志願)> 에 대한 더상세한것은<종횡무진 가요사1207>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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