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묵상
대림절이란 어떤 절기인가? (4)
질문.
1. 주님은 왜 다시 오시는 걸까요?
2. 정말 주님이 다시 오시면 좋겠습니까?
3. 당신은 왜 주님을 기다리십니까?
대림절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주님은 왜 다시 오시는 걸까요? 먼저 이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들려주는 구절들이 나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어떤 이들은 생전에 인자가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다’(마 16:2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재판을 받으실 때에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마 26:6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구절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의 생전에 다시 오실 것이며, 산헤드린 공의회원들도 주님이 영광을 얻으신 후에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라고 예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이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다시 오시며 자신에게 불의한 재판을 벌이는 악인들에게 다시 오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왜 다시 오시는지는 명확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뜻을 따르고 순종하는 제자들에게 오셔서 그들이 옳았음을 온 세상에 알리시고 그들에게 상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뜻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다시 오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주님이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셨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일을 제자들에게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제자들에게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시는 까닭은 주님이 그들에게 맡기신 일을 끝까지 잘 감당하라고 격려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진심으로 이루기 원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원하셨는지 알아보려면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람의 말과 행동은 곧 그 사람의 의도와 목적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신 새로운 세상입니다. 그 세상에서는 눈 먼 자가 보게 되며 눌린 자가 자유를 누리며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상생과 번영의 세상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그 나라의 정신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정신은 이미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담겨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 속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마땅히 따라야 할 정신을 다시 드러내서 가르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받고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그 말씀을 순종한다면 그들은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것처럼 시온에 비치는 빛이 열방을 비출 것이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 일생을 통하여 간절히 이루고자 하신 인생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이 땅에 하나님의 백성을 다시 일으키시고 그들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세우심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하시던 일을 이어갈 것입니다. 그 일은 사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통하여 이루기 위하여 전에 계획하신 선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비밀을 이해하고 나서 교회에 들어온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그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복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그 이후로 계속 예언자들을 통하여 계시하신 하나님의 계획 곧 하나님의 경륜이 성취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지금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맡은 소임을 감당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악한 세력도 있어서 그 일이 쉽지 않습니다. 어떤 제자들은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합니다. 어떤 제자들은 힘겨운 사명 앞에서 부르짖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고난을 당하고 수고하는 까닭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가 그들 가운데 임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위하여 다시 오실 것입니다. 교회에게 맡기신 그 소임을 완성하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예수님이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가 땅에 완성될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그런 세상을 가리켜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예수님이 하늘로서 오시는 것은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오시는 것과 같습니다. 예로부터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바랐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실 때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그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 위해서 낡은 세상은 청산되고 바로잡혀야 합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시는 날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됩니다. 그들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 그 날은 ‘신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신원(伸寃)이라는 말은 원통함이 풀린다는 뜻입니다. 의인들이 고난을 당하고 버림을 받았지만 주님이 오셔서 그들이 옳았음을 만천하에 알리실 때 그들의 원통함은 풀릴 것입니다. 그것이 여호와의 날이며, 주의 권능의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실 때 ‘인자가 왕권을 가지고 하늘 구름을 타고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옛 언약의 백성들이 기대하던 바로 그 소망,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돌아오시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권능으로 임하실 때 노아의 가족에게 신세계가 열렸습니다. 하나님이 권능으로 임하실 때 소돔과 고모라의 돌이킬 수 없는 불의가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권능의 지팡이를 모세에게 들려주셔서 애굽에 임하시고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때 그 백성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어 약속의 땅을 물려받아 하나님의 율법과 성전을 가진 택하신 나라와 거룩한 백성, 그리고 열방을 위한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권능으로 임하실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예언자 이사야는 말했습니다. 그것은 포로생활의 고단함이 끝나고 그 백성이 다시 회복되어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살게 되는 영광을 얻을 세상입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65:17
하나님은 예언자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자기 백성에게 오셔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더불어 살면서 그 예언이 바로 자신들의 시대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예수님을 임마누엘로 소개했으며, 사도들도 자신들이 말세를 살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들은 낡은 세상은 심판을 받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새로운 세상이란 새로운 피조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노아 홍수 이전과 이후의 삶은 전혀 달랐을 것입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삶과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서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은 전혀 다른 종류의 삶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요 새로운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깨달았을 때 그 이전에 살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이제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그들은 새롭게 깨달은 눈으로 이 세상의 권력자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시대가 곧 끝장 날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국과 만민을 통치하신다는 것을 기쁨으로 믿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 새로운 세상은 이미 오래 전에 성경에 계시되고 예수님이 보여주신 바로 그 세상입니다. 그 세상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아니라 상부상조와 상생번영의 세상입니다. 마치 광야가 변하여 장미꽃 만발한 생태평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오시면 이 세상은 불타 없어지고 자신들은 공중으로 들림 받아 저 높은 우주 어딘가에 있을 천국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이 오시는 날은 이 세상의 끝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그들은 주님이 속히 오시는 것을 바라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단번에 이 모든 세상 사람들을 갈라 내신다면 구원을 받지 못할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다시 오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실 때 심판이 먼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은 어그러진 세상을 바로잡으시는 하나님의 활동이며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다시 오시면 이 세상이 새롭게 될 것이므로 온 세상에 가장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대림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림절에는 메시아를 기다리던 사가랴와 엘리사벳, 시므온과 안나 같은 사람들이 소개됩니다. 그들이 기다린 것은 메시아였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아가 오셔서 그들에게 무엇을 주실 것이라고 그들은 바랐을까요? 그것은 예언자들을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누가는 마리아의 찬가를 통해서 메시아가 오시는 것의 의미를 노래에 담았습니다. 그것은 어그러진 세상을 바로잡으시는 하나님의 활동입니다. 메시아께서 오심으로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은 흩어질 것이며, 권세 있는 자들은 그 자리에서 쫓겨나며 비천한 자들은 높임을 받을 것입니다’(눅 1:51~52).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오심으로 열리는 새로운 세상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새로운 세상이 저 하늘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대림절의 의미를 제대로 기념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습니다. 정말로 주님이 다시 오시면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것인지, 그때 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하여 분명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대림절에 대한 우리의 묵상은 단지 ‘기다림의 미학’에 머무르거나 ‘기름 준비’를 한다는 이름으로 기도나 금식과 같은 종교적인 활동을 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아예 대림절은 성탄절 행사를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아예 대림절이 있음도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주님은 밧모섬의 요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이렇게 화답했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님이 오셔야만 할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주님이 만드신 세상은 병들어 있습니다. 거짓말과 편법으로 악인들이 의인들을 괴롭게 하는 일이 백주 대낮에 버젓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난민들의 고단한 생활은 기약없이 이어집니다. 억울한 사람들의 한숨과 쓰라린 가슴을 달랠 길이 없습니다. 가뭄과 기근으로 굶주리는 사람들의 수는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삶의 목적과 가치를 바르게 깨닫지 못하고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삶을 사는 이들도 허다합니다. 이 모든 현상을 사도 바울은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이 모든 것을 바로잡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그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본연의 삶을 회복할 것이고 그에 따라 만물도 하나님이 처음에 계획하신 충만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새로운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밧모섬의 요한처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단지 그런 세상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기원이 아니라, 이미 그런 세상이 우리 가운데서 시작되었음을 확신하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고 동참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들려주신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입니다.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가 그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겨자씨처럼 적은 힘을 가지고 주님의 경륜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미물과 만물의 찌꺼기와 같은 존재로 여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천한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드라마틱한 역전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재림에 대한 기대와 대림신앙은 언제나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합니다.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을 새 시대를 위하여 하나님이 남겨 놓으신 그루터기로 이해합니다.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이사야 6:13
이 글의 서두에서 드린 질문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대림절에 생각해 볼 질문:
1. 주님은 왜 다시 오시는 걸까요?
2. 정말 주님이 다시 오시면 좋겠습니까?
3. 당신은 왜 주님을 기다리십니까?
당신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끝>.
이전 글들:
대림절이란 어떤 절기인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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