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하나님_정근두 목사(울산교회)
성경의 하나님
정근두 목사(울산교회)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설교 한눈에 보기
1. 창조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세계를 창조하신 분이다.
신앙의 첫 걸음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는 데 있다.
2. 복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며 복을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복은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다.
3. 스스로 하신 일을 기뻐하시는 분
성경의 하나님은 스스로 하신 일을 기뻐하시는 분이다.
우리는 능력과 지혜를 얻기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 ● ● 핵심 메시지
성경의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복 주시고 스스로 하신 일에 기뻐하시는 분이다.
● ● ● 청중의 적용 포인트
‘나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힘입어 살고 있는가?’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처음 나오신 여러분에게 성경의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드리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기독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손에 넣으면 가장 쉽게 읽을 만한 책이 창세기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읽을 만한 부분이 방금 우리가 함께 읽었던 창세기 1장일 것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읽은 성경 창세기 1장은 여러분이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우주와 만물의 시작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오늘 평소에 기독교에 대해 진지한 관심이 있어서 오셨든지 아니면 워낙 강권하는 이웃을 위한 인사치레로 오셨든지 상관없이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을 통해서 ‘성경의 하나님’을 새롭게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것은 신앙을 갖게 되는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1장만큼 분명하게 하나님이 누구신지 우리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는 성경도 잘 없기 때문입니다.
창조하신 하나님
창세기 1장이 소개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무엇보다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1절은 1장 전체의 주제 선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그것은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모든 피조물, 하늘과 땅 그 가운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천지와 우주, 자연과 인생의 시작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눈이 볼 수 있는 모든 것과 보이지 않는 세계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분이 지으신 자연은 우리가 관찰할 수 있지만 영들의 세계는 우리 눈이 미치는 영역이 아닙니다. 그러나 볼 수 있는 대상이건 볼 수 없는 대상이건 창조의 주인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창조 세계를 보고 생각하고 논하는 우리 자신 역시 그분의 피조물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니”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 고백의 대상입니다(Ⅰ-1). 우리는 아무도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옆에서 지켜보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훈수를 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이 성경의 증언에 기초해서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뿐입니다.
신앙의 첫걸음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는데 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면 모든 것이 변합니다. 지금부터 그분을 아버지로 불러보십시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자는 만사를 보는 안목이 달라집니다. 피조물인 나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온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게 합니다.
푸른 하늘과 맑은 물, 우뚝 선 나무와 연약한 풀 한 포기에 이르기까지 창조주의 솜씨를 반영합니다. 아름다운 꽃들과 탐스런 과일들이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선물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 아버지가 지으신 자연만물이기에 사랑하며 돌보는 손길로 대할 수 있습니다. 만물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삶을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새로운 삶이 여러분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좀 더 살펴봅시다. 그러기 위해서 창조사역이 완료되기 전의 세상의 모습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에 대비할 때 완성된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우리는 실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이 닿기 전의 세상의 모습을 2절은 다음과 같이 기술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혼돈, 공허, 흑암은 하나님의 손길로 마감처리를 하기 전의 세상의 특징을 설명합니다.
창조의 손길로 마감처리를 하기 전의 땅의 모습은 마치 하나님을 만나기 전 우리의 인생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인생은 혼돈 가운데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서도 바로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부르는 유행가 가사처럼 말입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를 알지를 못합니다. 삶의 시작점을 모르고 종착점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인생여정은 방황의 연속입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혼돈의 땅이 질서의 땅으로 회복되기 위해서 전능하신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카오스의 세상이 코스모스의 세상으로 변하기 위해서 창조주 하나님의 사역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을 품고 새로 태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역사해야 사람의 마음은 질서를 회복합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하나님의 진리를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진리는 사람들을 새롭게 합니다. 이미 이 진리를 믿고 계신 여러분, 이 일을 위해 여러분들이 힘을 합해서 여러분의 소중한 분들을 이 자리로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증거를 통해서 여러분의 소중한 이웃들이 창조주 하나님 앞에 서도록 계속 도와주십시오.
하늘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기에 땅 위에는 사람들이 제 위치에 서야합니다. 어지러운 집안 분위기를 하늘의 질서로 회복시키는 것도 창조주 하나님의 사역을 본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본래적 질서를 회복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남편이 남편 구실을 하고 아내는 아내 역할을 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부모는 자녀를 이해하고 자녀는 부모를 존경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혼돈에서 질서에로의 창조 그것이 우리 삶 속에서도 적용되게 합시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혼돈만이 죄 중에 태어난 인생의 특징이 아닙니다. 공허, 그 무의미의 늪 속에 인생은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까지 어떤 인생도 삶의 바른 의미를 깨닫지 못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기까지는 그 마음에 안식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이여 당신은 당신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기에 우리 영혼이 당신 품에 안식하기까지는 참 평안이 없습니다.”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us)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알기까지는 그 마음에 공허감이 언제나 자리합니다. 파스칼(Blaise Pascal)의 고백대로 “우리 안에 만드신 그 공백은 하나님 자신으로만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안과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될 때 누리는 복입니다. 의미와 보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될 때 맛볼 수 있는 특권입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로 인해서 평안과 기쁨을 누리고 계십니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는 죄 용서와 화해로 인한 평안을 맛보고 계십니까? 이제라도 여러분을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러보십시오. 그때에 혼돈과 공허 대신 평안과 기쁨을 발견할 것입니다.
현대인은 무의미와 무목적 가운데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거부하고 나면 인간은 해방감을 맛보는 대신 무의미의 늪 속에 깊이 빠지고 맙니다. 자신이 창조된 목적을 부인하고 나면 삶의 의미를 상실합니다. 자율의 대가는 무의미, 무목적 속의 삶입니다.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에 자신을 쏟아 붓기 전에는 생을 즐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에 여러분은 비로소 의미와 보람 속에 살게 될 것입니다.
그때 흑암 가운데 앉아 있는 여러분의 삶 속에 밝은 빛이 비치게 될 것입니다. 이미 인생을 의미 있게 사시는 분께서는 어두움 속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게 하십시오.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의 삶은 사망의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을 비추는 사역임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결코 원숭이가 진화해서 만물의 영장 인간의 위치에 오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Ⅰ-2).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지은 것들을 신으로 섬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 안에 있는 예배적 인격을 회복시켜 주십시오. 하나님을 바로 알고 사랑하고 섬길 때에 비로소 만족하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여러분 인생에 가장 우선적인 일입니다.
복 주시는 하나님
두 번째로 창세기 1장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22절과 28절을 주목하십시오. 거기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하나님의 모습은 복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하나님은 복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복의 근원이시며 복을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물고기와 날짐승까지 복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와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창 1:22)고 복을 선언하십니다.
이어서 그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창 1:28)
사람을 향해 하나님이 복 주신 내용입니다. 물고기나 날짐승처럼 생육, 번성, 충만을 선언하십니다. 생명체는 생육, 번성,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생육, 번성, 충만하는 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뜻입니다(Ⅱ-2).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생육, 번성,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적용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 여러분이 처한 영역에 적용시켜 보십시오. 둘만 낳아 잘 기르는 것보다 셋을 낳아 잘 키우는 일도 해당됩니다. 두 명으로 시작한 사업체가 스무 명으로 확장되는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생육, 번성, 충만은 자연적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 생명, 영적 생명을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우리 주님이 명령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같은 이웃 초청 잔치를 앞두고 우리의 이웃들을 우리가 만난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모쪼록 최선을 다합니다.
뿐만 아니라 복 주신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우리 인간의 본래적인 사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문화적 사명이라고 부릅니다(Ⅱ-2). 사람은 종교적인 존재인 동시에 문화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동시에 하나님처럼 창조적인 일을 할 때 만족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복은 무엇입니까? 누가 복 받은 사람입니까? 돈을 많이 벌어 많은 땅을 차지하고 온갖 뒷거래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이 선언한 복은 사람이 제구실하는 것입니다.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이제 수능시험도 지나갔습니다만 다시 한 번 생각을 가다듬어 봅시다. 결코 공부가 다가 아닙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의 가치와 행복을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독교교육은 잘못된 가치관을 교정해 주는 일입니다. 남들 하듯이 과외를 시키고 학원을 보내는 것이 자녀를 행복하게 만들고 부모노릇을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 공부를 잘 할 수는 없습니다. 글재주 있는 사람, 손재주 있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노래하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실 때 다양한 소질을 주셨습니다. 자녀가 스스로 즐길 수 있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자신의 특별한 소명을 알고 그렇게 살아가도록 지도하십시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대 주재 하나님이 세우신 그 위치에서 충성하도록 격려하십시오. 서로 돕고 살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도록 합시다. 자라난 배경과 살고 있는 환경이 다른 사람들은 서로 도울 수 있습니다. 재능과 은사가 다른 것은 서로 돕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서로는 경쟁 상대가 아니라 협력하고 돕는 대상임을 망각하지 마십시오. 비록 생존경쟁이 치열한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임을 망각하지 마십시오. 적당주의가 판을 치고 이기주의가 팽배한 곳에서도 소금의 역할을 하기로 결심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남아 있으면 세상도 사람 살만한 곳이 될 것입니다.
스스로 하신 일을 기뻐하시는 분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창세기 1장에서 보여주는 또 하나의 하나님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 1:4, 10, 12, 18, 21, 25, 31)
성경의 하나님은 스스로 하신 일을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Ⅲ-1). 하나님은 자기 손이 지은 것에, 자기 손이 하신 일에 만족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여러분의 젊은 날을 돌아보십시오. 지난 20년, 30년을 돌아보십시오. 특히 내다볼 날보다 돌아볼 날들이 더 많은 이웃 여러분, 지난 40년, 50년, 60년을 되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그 날들에 대해서 스스로 어떤 평가를 하시렵니까? 여러분이 걸어온 길을, 여러분의 손이 한 일들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모든 것을 되돌아보면서 보기에 좋았더라고 하실 수 있는 분은 여기 얼마나 앉아 계실까요? 마치 아무도 밟지 않는 눈 내린 벌판을 걷고 나서 뒤를 돌아보면서 느끼는 심정과 같을 것입니다. 자신은 바로 걷는다고 걸었지만 되돌아보면 구불구불 걸어온 발자취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만족보다는 아쉬움을 가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선언과 거리감을 느낄 것입니다.
오늘 이 귀한 자리에 나아오신 이웃 여러분, 여러분의 남은 인생길을 어떻게 걷기를 원합니까? 하나님이 부르실 때 어떤 마음으로 그분을 뵙기를 원합니까? 만약 여러분이 보람된 인생을 마감하기 원하신다면 창조주 하나님, 복 주시는 하나님, 당신의 사역에 만족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남은 날은 하나님의 능력주심에 따라서 걸어보십시오. 그 지혜주심에 따라서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을 되돌아볼 때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Ⅲ-2). 교회를 다니기로 결단하십시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새롭게 시작해보십시오. 물론 좋은 뜻, 좋은 계획만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 손의 수고를 만족하며 기억하기 위해 기도하며 땀 흘리는 날들이 필요합니다.
기도할 때에 계획한 한 모든 일이 성취되는 보람을 여러분은 맛보게 될 것입니다. 계획한대로 되지 않았을 때도 그것이 오히려 더 잘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여러분은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각자에게 맡게 주신 일에 만족하는 열매를 거두기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가정에서 가장으로, 주부로 여러분의 위치와 할 일이 있습니다. 지역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여러분이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립니다. 좋은 뜻, 아름다운 계획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볼 때 아쉬움이 남는 원인입니다. 그러기에 이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보십시오. 복 주시는 하나님을 여러분의 인생에 모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손이 수고한 것으로 만족해하시는 전능하신 분을 사귀어보십시오.
이제 그분께 여러분의 소원을 아뢰십시오. 간절히 주인 되신 하나님의 뜻이 여러분의 삶에 구현되도록 간구하십시오. 하나님은 그 지혜와 능력을 간구하는 자에게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러기에 그가 주시는 지혜는 창조적 지혜이고, 그가 주시는 능력은 전능자의 능력입니다.
악한 세상에서 사람답게 사는 것은 우리가 가진 능력의 한계 밖의 일입니다. 처음부터 우리는 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질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고 지극히 높으신 자의 능력”만이 대답이 되십니다. 그러기에 그 능력, 그 지혜를 얻기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로 작정하십시오.
그 지혜와 그 은혜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로 결심하십시오. 그 뜻이 기록된 성경말씀을 읽기로 결심하십시오. 시간을 들여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그러기 위해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을 아껴 사용하십시오. 남은 세월을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하십시오. 세월을 아껴서 보람 있는 일에 자신을 드리십시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의미 있는 남은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인생길이 다하는 날 하나님께서 당신의 만족에 여러분을 함께 초대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좋았더라” 아멘.
이제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을 만나 보십시오. 하나님 없이 살아온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정직하게 바라보십시오. 혼돈, 공허, 흑암이 결론은 아닙니까? 질서, 의미, 빛 속으로 들어오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여러분의 주인이십니다. 인생은 하나님을 만날 때 비로소 만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공허한 인생입니다. 돈과 명예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재산과 권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을 지으시고 여러분의 호흡을 주장하시는 그 분을 만나야만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십시오.
여러분의 새로운 삶의 시작을 위해서 하나님은 그 아들 구원자 예수를 보내셨습니다. 그의 십자가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연결하는 다리가 되십니다. 새로운 길이 되십니다. 그분을 만나면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왜 여러분의 삶이 공허했습니까? 복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서입니다. 여러분에게 생육, 번성, 충만하기를 바라시는 그분께 인생을 맡기십시오. 그때 삶은 새로워질 것입니다. 사는 것이 황홀해질 것입니다. 눈뜰 때마다 마음에 벅찬 감격이 샘솟을 것입니다. 눈감는 순간마다 달콤한 휴식을 누릴 것입니다.
왜 지금껏 여러분의 삶에 만족이 없었습니까? 창조의 하루하루를 마감하시며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시던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서입니다. 창조의 엿새를 마치시고 “그 지은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서입니다. 이제라도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그러면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기도하면 내일은 감사와 기쁨의 결실을 거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 믿기 원하시는 분은 가만히 손을 들어 표시해 주십시오.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십시오. 옆 사람에게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뜻을 하나님께 나타내십시오. 여러분이 내미는 손을 하나님은 붙들어 주시기 원하십니다. 손드신 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십시오.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그리고 저를 따라서 소리 내어 기도해 주십시오.
“예수님, 나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을 통해서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통해서 우리를 복 주시길 원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 의미와 만족을 주시길 원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주님, 지금껏 내 맘대로 살아온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이제는 주님을 통한 새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근두 목사
고려신학대학원 졸업
남아공 포체프스트롬 대학교 신학부 신학박사
두레교회, 탄포리교회 개척 시무
국제 제자훈련원 자문위원
사단법인) 십대들의 둥지 이사장
CBS재단이사
울산사랑실천운동 대표회장
마이코즈 대표이사
울산광역시 청소년단체협의회 회장
울산교회 담임목사
<저서> 『구원사의 서곡』, 『영광의 소망 그리스도』외 다수의 강해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