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가족여행을 떠났다. 울산 집을 나서려니 아침 9시다. 목적은 동해안 일주였다. 우리는 차를 타고 동해안을 따라 정자 감포 구룡포 포항 영덕 울진 삼척 정동진을 향하여 주위의 문화재나 유적지등등을 살펴보기로 하고 출발하였다. 성탄절이라 행여 동해안선에 차량 행렬이 지체되지 않을까 반신반의를 하면서 오랜만에 가족과 여행하게 되었다. 출발하기에 앞서 가솔들에 미안한 감도 없잖아 있었지만 수년만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고삼, 아빠 대학원 공부, 또 고삼 등등 타이밍을 맞추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올해도 고삼생이 있지만 그래도 가족들의 합의 끝에 결국 여행을 강행하기로 결정을 했다.
차는 발진하여 7번국도를 따라 정자터널을 지난다. 가슴이 터지도록 버겁다. 애마가 4년산인데 신차구입 기념으로 통도사를 간적이 있었다. 그 때는 가볍게 달릴 수가 있었지만, 4년이 지난 지금은 애들이 자라서 오르막길을 빌빌거린다. 시원하게 뻗은 바닷길의 갯내음은 차창가을 밀친다. 그런데 체질이 각각 달라서 멀미로 실실 속이 거북스럽단다. 멀미약을 출발할 때 먹었다고 하는데 어쩐지 얼굴이 핼쓱하다. 고삼이라 공부에 시달려 그런가 마음이 아프다.
다같이 떠나는 오랜만의 여행이라서 가능하면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먹기로 했는데, 벌써 보이지 않는 불만들이 슬슬 고개를 든다. 그러나 차는 7번 국도를 따라 감포를 지난다. 감포는 문무대왕릉이 있는 곳이다. 일단 바람도 쏘일겸 정차했다. 날씨는 그리 맑지는 않았지만 겨울 바닷가의 풍광은 새로웠다. 가벼운 파도는 하얀 포말을 날리고 괭이 갈매기는 먹이에 길들여져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견대는 경상북도 사적 제15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은 경북 경주시(慶州市) 감포읍(甘浦邑) 대본리에 있는 신라때의 유적이다. 문무왕(文武王)의 호국정신을 나타내는 해중왕릉(海中王陵) 대왕암이 보이는 감은사지(感恩寺址) 앞에 있다. 《삼국사기》에 인용된 기록에 의하면, 문무왕은 왜병의 침입을 막고자 감은사를 짓기 시작하였는데, 끝내지 못하고 죽어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해룡(海龍)이 되었다. 이에 아들 신문왕이 왕위에 올라 682년(신문왕 2) 공사를 끝냈다. 그리고 용이 절에 들어오게 하기 위한 것으로 금당 뜰 아래에 동쪽을 향하여 구멍을 하나 뚫어두었는데, 뒤에 용이 나타난 곳을 이견대라고 하였다 한다. 682년 5월에는 왕이 이곳에서 용에게 옥대와 만파식적(萬波息笛)을 만들 대나무를 얻었다고 한다. 한편 《이견대가》라는 가요가 있었다고 하는데, 《고려사》 <악지>에 이와 관련된 기록이 있다.
길을 따라가다 이번엔 호미곶 등대박물관에 들어섰다. 이곳에서 우리는 우리나라 등대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각종 등대의 기기들을 보고 등대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전부터 바닷길의 안전운행을 위해 수행되어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사실 등대는 선박의 안전 운행을 위해 빛, 형상, 전파, 소리등을 이용하여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정말 잘 만들어진 박물관이었다. 포항시가 호미곶의 일출을 전국적으로 알리기 위해 얼마나 대단한 돈을 투자해 개발해오고 있는지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울산의 간절곶은 해가 가장 빨리 뜨기로 유명한데도 불구하고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
이곳의 옛지명은 대보였다. 대보는 고래로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육당 최남선 선생은 조선지리지에서 대한십경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리고 풍수지리학자 격암 남사고 선생은 산수비록에서 이곳을 조선의 명당이라고 말했다. 이곳이 바로 호미등 범꼬리가 아니던가?
호미곶 등대는 경북 포항시 남구 대보면 221-1번지에 있다. 이 등대는 대한제국 융희원년(1907)에 왜넘 선박이 대보리 앞바다의 암초에 부딪혀 침몰한 것을 계기로 지어졌다. 프랑스인이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가 시공을 맡아 1908년 12월에 준공되었다. 높이 26.4M 의 팔각형으로 서구식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기초에서부터 등탑의 중간부분까지 곡선을 그리면서 폭이 점차 좁아지는 형태이며, 다른 고층의 건물과는 달리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벽돌로만 쌓은 것이 특징이다. 등대내부는 6층으로 천장에는 대한제국 왕실의 상징인 오얏꽃 모양의 문양이 조각되어 있었다.
뱃길을 밝히는 횃불은 선사시대부터 해양활동이 활발했던 우리나라에서도 그 기록의 연원을 살펴 볼 수가 있다. 항로표지에 대한 최초기록은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볼 수 있다. 기원후 48년 하늘의 뜻을 받고, 금관가야의 수로왕과 결혼하기 위하여, 인도의 아유타국에서 온 허왕옥을 맞이하기 위해, 수로왕은 9명의 우두머리 중 유천간과 신귀간을 각각 망산도의 승점으로 보내었다. 그 망산도는 지금은 알 수가 없다. 유천간은 바다 서쪽에서 붉은 돛을 단 배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횃불을 들어 승점에 있는 신귀간에게 알리고, 허왕옥이 탄 배를 육지로 인도하였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예로부터 횃불이 항로표시의 한 방법으로 사용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觀海 관해" 라는 전서체의 글씨에 아래 주를 달고 있다. 관해는 "넓은 바다를 바라다 본다"는 의미심장한 뜻이 담겨 있다. 그리고 아래 주를 풀이를 하면 "영덕이란 경승지에 관객들이 운집하고, 날로 새롭게 발전하여, 사는 군민들이 같이 동락하기를 바란다"는 글귀이다^^
영덕 울진은 과메기 오징어 대게로 예전부터 전국적인 유명세를 알리고 있다. 갯마을 덕장에는 오징어뿐만 아니라 과메기, 명태 색히 코다리 까지매기 색히 서대 등등 각종 고기를 자연의 갯바람에 몸을 뒤탈아 가면서 말려지고 있다. 그러자 차를 세우란다. 갯바람에 말리는 오징어는 군 사열하듯이 마른 대나뭇가지에 꿰어 건조되고 있었다. 오징어는 본래 오적어다. 곧 적을 만나면 검은 먹물을 뿜는 고기라는는 뜻에서 얻어진 이름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오징어는 강원도가 삼척 묵호 주문진 등이 토산물의 주산지였다.
지금은 오징어가 명태가 이상기온으로 모두 북쪽으로 회귀하였고, 제주도에서 사는 자리돔이나 열대성 어종들이 남해에서 서식하고 많이 잡힌다고 한다. 오징어는 지금이 적기이다. 찬 갯바람에 얼고 녹이고를 반복하다가 고기의 기름이 빠지고 자연스레 맛이 빼인다고 한다. 덕장에서 한컷을 하고 자리를 떠난다.
사진을 찍고 일하는 아저씨에게 오징어가 한축에 얼마냐고 물으니 일단 구경을 하란다. 그리고 가공장을 안내한다. 들어서니 추운 겨울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늙은 촌노들이 쪼그리고 앉아 상품손질에 여념이 없다. 오징어 한축을 싸가지고 나오는데 마누라가 몇 마리를 구워 온단다. 몇분 뒤에 차안에는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진동한다. 그리고 입안에는 군침이 돈다. 그런데 오징어만으로는 제 맛이 나지 않아, 길가 상점에 들러 순창고추장을 2통을 샀다. 성화에 못이겨 산 고추장을 오징어에 찍어 먹은 그 맛은, 혀끝에서 부터 뇌리에 전달되기도 전에, 감탄이 치밀어 함성부터 나온다.
그것도 잠시 차는 영덕 경보박물관을 볼겸 휴게소에 파킹했다. 그런데 화장실은 2층에 있다고 안내판이 안내를 하네. 2층에 올라가니 그곳은 수석박물관과 보석박물관을 겸하여 있었는데, 거기는 입장료가 대인 4000원, 학생 2500원 5인가족 거금 배추이파리 한 장에 반장을 더해야 될 판이었다. 합의 끝에 중, 고생만 관람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남은 가족들은 돈 안내는 화장실로 향했다. 괜시리 불딱이 났다. 마침 볼일을 보고 나오니 막내가 볼 것이 많다고 입장을 하라네.@@ 또 일을 어쩌나 그넘 돈은 벌면 되는데, 자식들에게 속을 보이는 듯해 아무 말없이 입장을 했다.
지구의 역사는 그 누구도 단언할 수가 없다. 그러나 화석들의 연원을 살펴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고 인류문화학자들은 말한다. 지각변동에 의한 삼엽충, 맘모스, 암모나이트...등등 학창시절에 책에서 보고 배운 실물들이 바로 눈앞에 들어 선다. 직접 들어 본 사람하고, 직접 본 사람의 차이가 다르듯이, 사고 또한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지구의 변동으로 굳어진 나무화석에서 한컷을 하고 자리를 떠났다.
자수정은 자주색 · 청자색 · 적자색 등을 띤 수정을 일컬어 말한다. 그리스어로는 아메시스트라고도 한다. 자수정은 고대로부터 알려진 성서에 나오는 12가지 보석 중의 하나이다. 색의 원인은 함유되어 있는 산화철(산화제이철) 때문이다. 이 함유량이 많아지면 색이 짙어진다. 자수정을 250℃ 전후로 가열하면 이른바 황색의 황수정으로 변한다. 자수정은 뿔면을 지닌 단순한 육각기둥모양 또는 짧은 기둥모양의 결정으로 산출되는 경우가 많으며, 복잡한 결정면을 나타내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집편쌍정(集片雙晶)이며, 누대구조(累帶構造)가 발달되어 있으므로, 하나의 결정 중에서 색의 짙음과 옅음이 현저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색이 균질한 대형 결정은 적으며, 여러 가지 수정 중에서 가장 값이 나간다. 주로 염기성 화산암, 특히 현무암질 용암의 공극(空隙)에서 마노(瑪瑙)나 제올라이트 등과 함께 산출된다. 주산지는 한국 (울주 언양) · 브라질 · 러시아 · 캐나다 · 우루과이 · 인도 · 스리랑카 등이며 한국산과 브라질산이 그 아름다움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울산 언양 자수정은 보석중에 명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amethyst란 명칭은 취하지 않는다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고대에는 자수정에 취기를 고치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지금이 바로 과메기 철이다. 아니나 다를까 로변 바닷가에 과메기 덕장이 줄을 서 있었다. 보통 과메기는 겨울철 영하 2℃~영상 5℃ 기온에서 청어나 꽁치를 갯바람 쏘인 덕장에 내다 걸어 밤에는 어리고, 낮에는 해동하는 과정을 약 15일간 반복해 수분함유량이 40%쯤 되도록 찬 바닷바람을 맞혀 건조시킨다. 그러면 발효되어 생선 비린내가 없어지고 맛과 영양도 훨씬 뛰어난 과메기가 만들어진다.
과메기의 원산지는 동해안 지역인 경북 포항시 구룡포 일원이다. 예로부터 과메기가 구룡포에서 만들어져 온 것은, 이곳이 겨울철 육지의 북서계절풍과 영일만 바닷바람이 교차하는 지역으로, 과메기의 건조과정에 기후조건과 자연조건에 가장 알맞기 때문이다.
과메기의 어원은 청어의 눈을 꼬챙이로 꿰어 말렸다는 관목(貫目)에서 유래한다. 우리말<목>을 구룡포 방언으로 <메기>라고 발음하여, 관목이 <관메기>로 변하고 다시 ㄴ탈락되어 지금의 과메기로 굳어졌다.
과메기는 원재료인 어린이의 성장과 사람들의 피부미용에 좋은 DHA와 오메가3지방산의 양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특히 과메기의 건조과정에서, 핵산이 점점 많이 생겨나 피부노화, 체력저하, 뇌쇠퇴 등의 방지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과메기에 함유된 단백질에는 숙취 해독에 좋은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하여 술안주로도 왔따당.^^
과메기에 옛 문헌도 꽤 발견되었는데, 19세기 전반 이규경이 펴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청어는 연기에 그을려 부패를 방지하는데 이를 연관목(燃貫目)이라 한다>고 하였다. 비슷한 시기의 《규합총서(閨閤叢書)》에도 “청어를 들어 보아, 두 눈이 서로 통하여 말갛게 마주 비치는 것을 말리면 그 맛이 기이하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차는 영덕을 지나려는데 또 차가 막힌다. 이러다가 끼때를 놓칠까 싶어 간단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로변에 있는 기사식당에 들러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시켰다. 그리고 점원에게 상행길의 정보를 얻었다. 여기서 영덕항까지 들어가는 길만 막히고 지나면 괜찮다고 말해 조금은 안심이었다. 시장기에 점심은 아무 투정없이 배를 불렸다. 이 기사음식점 보기보다 맛있는 집이었다. 언제 다시 이길을 가면 꼭 한번 들릴꺼라고 느끼며 차는 다시 떠난다.
올해 우리 학풍에서도 영덕 풍력발전소를 간적이 있었다. 그때는 반술에 취해 올바른 공부를 못했는데, 이번에는 가족들과 함께 동행할 수 있었다. 해는 늬엿늬엿 서산을 넘었고, 성탄 연휴를 맞은 하행길의 차량들이 서로 엇갈려 차는 주차장을 방불한다. 그것도 잠시 차량의 행렬들이 뿔뿔 거리다가 풍력발전소의 상행길이 터진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니 대형 날개가 영덕 고을의 바람을 몰아 세우면서 세차게 빙빙 돌아간다. 족히 6~70M되는 높이에 달린 바람개비는 마치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바람개비 같았다. 산넘어 해는 붉게 또 하루를 마감하려고 한다. 사진을 급히 찍고 체험관을 찾았다. 그러나 겨울철 일몰시간이 빨라 문을 닫으려 한다. 억지로 사정을 해서 급히 3층까지 오르내리면서 몇가지 체험은 했으나 설명문은 다 읽어 볼 수가 없어 셔터만 급히 내리 눌렀다.
앞으로 지구를 살리는 길은 청정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곳과 같이 자연에서 바람을 얻은 풍력, 조수간만의 차이에서 일어난 바닷물의 조력 등등 자연에서도 잘만 활용하면 에너지는 무한하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의 지구는 이산화탄소 때문에 골머리를 안고 있다. 태평양 적도 부근의 바다 표면이 따뜻한 물은 보통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무역풍에 의해 같은 방향으로 이동 한다. 따라서 바다 동쪽의 남아메리카 부근의 해수 온도는 낮아지고, 서쪽 동남아시아 부근의 해수온도가 높아지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무역풍의 힘이 약해지면 따뜻한 바닷물의 이동도 약해져서 태평양의 해수온도는 평상시보다 낮게 되고, 동 태평양의 해수 온도는 올라가는데 이 현상을 엘리뇨현상이라 하는 것이다.
지구의 내핵은 지구가 만들어질 때 철과 니켈같은 무거운 성분이 지구의 가장 중심부까지 가라앉아서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고 현재의 우주과학자들은 추정한다. 그리고 지구의 내핵의 온도는 태양의 표면의 온도와 비슷하지만, 지금의 지구는 높은 압력으로 인해서 고체 상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외핵은 지진파 중 S파가 통과하지 못하고 P파의 속도가 감소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액체인 것으로 추정된다. 충격파 실험에 의하면 외핵의 구성 물질은 순수한 철보다 밀도가 낮게 나타난다고 한다. 따라서 외핵은 철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가벼운 원소, 즉 황, 규소, 산소등과 화합물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위기의 지구 어떻게 구할 것인가? 우리가 지구에서 쾌적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이산화 탄소와 같은 대기중에 온실가스가 온실의 유리처럼 작용하여 지구 표면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00년 동안 온실가스의 농도가 급격히 증가해 인류는 지후변화라는 전 세계적인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약 60%는 이산화탄소에 의한 것인데 이산화 탄소는 주로 석유류같은 화석연료를 사용할 때 배출 된다. 지금의 과학자들은 2100년까지 지구의 평균기온이 1.4~5.8도 까지 올라가게 된다면, 남극이나 북극의 빙하와 킬리만자로의 만년설과 알프스 등등...... 설산들은 점차 녹아 내릴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해수면은 지금보다 약 100CM 정도까지 상승한다고 예견한다. 이러한 초기의 현상들이 겨울철에는 기온이 상승하고, 여름철에는 집중호우가 빈번한 현상들이라고 한다.
이를 마지막으로 하루의 여행을 마감했고 차는 밤길을 따라 삼척을 항했다. 그곳은 척주동해비가 있는 곳이다. 종일 운전으로 피곤한듯해 운전대를 맡겼다. 그리고 잠시 차안에서 조는듯 했는데 차는 삼척 시내를 다가섰다고 깨운다. 그리고 숙소를 찾아 여장을 풀고 저녁을 했다. 오늘은 게장맛에 삘이 꼿히다@@
첫댓글 ㅎㅎㅎ, 토민이 아들이 붕어 빵이네......
ㄱ ㅡ공장 그 제품 아니건낭@@
즐감하고 아들은 형님 딸은 형수님 복사판 요새같으면 의료보험 혜택도 볼낀데 옛날에는 둘이상이면 대역죄인 본인도 마찬가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이라도 해야 할지
언제는 제주도도 가던구낭@@
든든하시겠습니다.. 즐거운 가족여행 즐감하고 갑니다.. 저는 처형네와 애들이 비슷하게 어려서 여러 애들 챙기느라 사진도 제대로 못찍고.. 국장님 사진으로 만족하겠습니다...
구케 말이당@
보기 좋아요.
살다가 그런날도 있더구낭@@
행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판박이네요 내조카들이 세명인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ㅋㅋㅋㅋㅋㅋ
정말행복해 보이십니다 즐거운 여행다니시는 모습 늘가족이 있어 행복하시겠습니다 형수님과 조카들 앞으로도 더욱 즐겁고 행복하십시요
@@ 후배님아! 우리 가솔이당ㅋㅋㅋㅋㅋ
아이들이 커가니까 가족여행도 쉽지가 않는가 보군요. 오붓한 가족 여행이 정말 보기 좋습니다. 제2탄도 기대가 됩니다.
^^
모자가 멋지다 ^^*
차 키를 메단 폼이 올때도 운짱했으면 좋아하는 약주는 어떻게 해결했노....그게 제일 궁금하다.
니는 민날 도체 오데 갔다 온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