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후기(백무동-세석대피소-장터목대피소-천왕봉)2008.2.8-9 한 시간 동안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한 체 컴퓨터 모니터만 노려보고 있다. 지리산에 쌓인 눈처럼 막막한 하얀 컴퓨터 모니터에서는 무슨 글이든 빨리 쳐서 입력하라는 듯 커서가 깜빡깜빡 거리며 재촉하고, 머릿속에는 지리산의 흑백의 설경들이 슬라이드 사진처럼 순서 없이 마구 뒤섞여 지나갈 뿐, 그저 어둠속의 산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지리산 등산을 계획한 것은 아마도 1월1일 해맞이 산행이후가 아닌가 싶다. 4년 전 구례에서 대원사까지 지리산 종주를 마지막으로 한 번도 가보지 못했었다. 등산을 취미로 오랜 활동을 한 사람이라면 1년에 한두 번은 꼭 지리산을 찾아가야 하는 의무감? 명절에 고향을 가보지 못하는 섭섭함이랄까. 적어도 내겐 채증처럼 가슴 한켠에 찜찜한 응어리로 남아 있었다. 제물포역 05시37분에 도착하는 첫 전철을 타기위해 막내 동생과 나는 집을 서둘러 빠져 나왔을 때, 올려다 본 새벽하늘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조용하게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전날 저녁에 꼼꼼하게 확인하고 확인했다지만 뭔가 빠진 듯한 찜찜한 기분은, 평소 덜렁대는 성격을 소유한 내 자신을 아직도 신뢰하지 못함을 다시 확인하며 20kg배낭의 어깨끈을 조였다. 휴일 첫차인데도 동암역에 와서는 빈자리가 없다는 것이 다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연휴 마지막 날에 첫차를 타고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아직 겨울밤의 두꺼운 어둠이 차창에 달라붙어서 사람들을 졸음으로 몰아가고 있는데. 조는 듯 마는듯하면서 용산역에 도착하니 6시30분. 대합실 안에 있는 편의점에서 김밥을 사들고 6시50분 여수행 무궁화호 기차에 올라탔다. 처음에 세웠던 계획은 구례에서부터 2박3일 종주를 계획했으나, 아무리 설 명절 한 달 전이라 해도 차편이 있을 거라 쉽게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발등에 불 떨어진 격으로 이리저리 알아보니 여수행 기차는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진주터미널에 다음날 9일 오후 6시, 인천행 고속버스를 예매할 수 있었다. 잠이 쉽게 든다는 핑계를 상식처럼 만들어 동생과 나는 김밥을 먹으며 소주를 마셨다. 평소 같으면 눈곱도 떼기 전 아침인데. 200밀리 한 병을 다 비우고 나니 우리가 앉은 좌측 창가에는 수원역이 지나가고, 조금 후 붉은 해가 넓은 차창에 한 컷의 사진처럼 붙박였다.한 시간 남짓 잤을까. 차내 스피커에서는 신탄진역에 도착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동생은 아직도 한 밤중이었다. 창가에는 마시다 남은 소주가 드리워진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2월의 아침 햇살을 받으며 경쾌하게 찰랑거리고 있었다. 정확히 도착 소요시간 4시간을 10분을 넘긴 11시에 남원역에 도착했다. 백무동에 도착해서 시계를 쳐다보니 12시 27분. 예상했던 것 보다 조금 빨리 백무동에 도착했다.1시. 우리는 백무동 매표소에서 꿀맛 같던 라면을 끓여 점심으로 대충 해결하고 세석 대피소를 향해 힘차게 첫 발을 내 디뎠다. 장터목 대피소는 천왕봉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로 예매가 시작되는 날, 5분 만에 예매가 끝나 버렸다. 하는 수 없이 세석대피소에 예매를 하고 천왕봉 일출에 맞추어 장터목 사람들보다 2시간 정도 일찍, 4시에 기상해서 천왕봉을 등반계획을 세워야 했다. 백무동 들머리부터 내린 눈이 얼어 반들반들했다. 동생은 소풍정도 근교 산을 올라 봤을까, 옷과 장비를 갖춘 겨울 등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었다. 아이젠과 스패츠를 꺼내서 바로 착용하게끔 도와준 다음, 스틱의 사용법을 몸을 써가며 가르쳐 주었다. 스틱만 잘 사용해도 오르막에선 다리에 실리는 체중을 30퍼센트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초보 때는 무지로 무시해 오다가 나중에서야 절실히 몸으로 배웠었다. 동생은 나와는 달리 자신의 젊음과 체력을 과신하지 않는 신중함은 좋으나, 내 말과 행동에 너무 신중해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동생은 모르긴 몰라도 기대와 설렘이 이만전만 아닐 것이라 생각되었다. 아무튼 형과의 영원히 남을 좋은 추억하나를 만들어 집으로 돌아갔으면 싶었다. 내가 보여 주겠다고 약속한 눈꽃도 꼭 함께 보고서.처음 철다리가 나오기까지 3,40분쯤 걸었을까, 아직 세석대피소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다리 아래로는 한신계곡으로 흐르는 물이 얼어서 눈에 덮여 있고,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아래는 작은 소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나중에 산에 관한 책자를 보고 안 것 이지만 소로 떨어지던 물줄기가 첫 나들이 폭포였고, 세석평전까지 가는 중에 철다리가 계속해서 나왔는데 총 8개였음을 알았다. 언젠가 한번 한신계곡으로 내려 온 적이 있었지만 백무동입구에서 막걸리와 파전을 진탕 먹고 가던 기억만 날뿐, 그땐 지리산의 철따라 아름다운 주변 경관을 세세히 둘러보며 즐길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나이는 아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지에 깃발을 꼽듯 오직 오르고 내리는 일에 열중이었으니까. 2월의 하늘이 가을 하늘을 닮았다. 몹시도 푸르른 하늘과 청아한 물소리 그리고 땀 벤 옷 속으로 스며들어 마음마저 맑아지는 카타르시스의 바람. 다음날도 지금처럼 맑은 날씨로 맞아 주었으면. 그래서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는 일출을 꼭 보았으면.
가내소 폭포 김 성 용 얼어붙은 가슴줄기 겨울 눈물 속에 지리산 한 자락 하얗게 어리네 목마른 나그네 때 낀 마음 비칠까 땀 벤 日常들만 가지 끝에 널어놓고 정월 초하루 아침하늘 이토록 깊었던가, 구름 한 점 건너간 자리 까마귀 한 마리 빠져 버렸네
여름에는 한신계곡이 피서객들로 북적대지 않을까 미루어 짐작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굽이굽이 이어지는 물줄기와 폭포, 크고 작은 소들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세석 대피소까지 1.3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였다. 백무동에서 세석대피소까지 6.3km, 거리상으로 따지자면 다 온 거나 마찬가지겠지만, 경사가 심해서 평소 운동을 안 하는 사람이라면 무척 힘들어 하는 구간이었다. 앞서 갔던 사람들이 하나 둘 보였다.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는지 걸음이 몹시 무거워 보였고, 옆을 지나칠 때는 숨이 곧 머져 버릴 것처럼 몰아쉬었다. 세석대피소 700m. 동생의 속도가 조금 쳐져서, 기다렸다가 이온음료와 초코바를 건넸다. 힘들다고 좀처럼 말하지 않던 동생이 땀을 닦으며 힘들다는 말을 긴 한 숨으로 대신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체고 유도를 했던 체력이 남아 있어서 인지 잘 ?아 올라온 셈이었다. 20kg배낭의 무게가 부담으로 작용 할 만큼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삼겹살에 소주 생각이 간절해서 힘이 절로 솟는 듯 했다. “얼른 올라가서 먹자, 배고파 죽겠다. “ 4시. 아, 세석평전, 정말 오랜만이구나. 백무동에서 3시간에 걸쳐 올라 온, 지루하고 갑갑한 밀림 속 같은 계곡을 빠져 나오니 가슴 후련하게 탁 트인 세석고원이 나왔다. 그리고 세석대피소가 찬란한 오후 햇살을 받으며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고. 세석평전 위로는 촛대봉이 아스라하게 푸른 하늘에 묻혀 있었다.사람들이 무척 많아 보였다. 산장 주변 어느 구석진 자리도 없이 등산객들이 둘러 앉아 하루 산행을 마친 노고와 감격으로 먹고 마시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지글지글 고기 굽는 소리와 냄새가 진동을 하며 내 뱃속을 견디지 못할 만큼 자극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세석고원으로 오후 햇볕처럼 따스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탁자 한쪽을 간신히 얻어서 우리도 맛있는 이른 저녁을 준비했다. 이런 야전에서 언제나 동생은 유감없는 요리 실력을 발휘한다. 식구끼리 야외로 낚시를 가거나 휴가를 갈 때면 웬만한 음식은 막내 동생이 도맡아서 하는 셈이었다.햅반을 데우고, 라면도 끓이고, 고추장과 김치를 넣고 만든 환상의 돼지 두루치기를 입으로 먹었는지 쑤셔 넣었는지도 모르게 허겁지겁 허기진 속을 채웠다. 지금 생각해도 군침 도는 맛이 아닐 수 없었다. 동생은 수통의 물과 내일 아침 식사로 해 먹을 물을 받으러 식수대에 갔다가 눈 속에 숨어 있던 멧돼지와 마주 쳤다고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시커먼 멧돼지가 생각보다 무척 크고, 사람을 경계하지도 않고 길가다 만난 사람처럼 그냥 지나가더란다. 강원도의 산이나 지리산 정도면 종종 등산객들에게 눈에 띄는 흔한 야생동물이지만 나는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산장 주변에서 따듯한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려고 했던 생각을 싹 가시게 만들게끔, 해 질 무렵 기온이 곤두박질치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시각적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물이 닿은 자리는 금방 얼어붙어서 거울처럼 반작 거리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배정받은 자리에서 준비해온 간식거리로 조촐하게 소주를 마셨다. 소주가 부족한 것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랄까, 즐거운 산행이었고 무엇보다도 동생과 함께 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소란스런 소리에 깨어 시계를 보니 새벽 4시10분임을 침낭 속에서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일찍 서둘러 천왕봉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준비하는 소리에 자던 사람들이 뒤척였다. 동생과 나는 침낭을 접고 배낭을 정리한 다음 취사실로 갔다. 햅반을 데우고 라면을 끓이는 동안 천왕봉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이른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눈이 바람과 함께 수직으로 꺾이며 날리고 있었다. 산장 벋어나자 칠흑 같은 어둠이 달려 들었다. 해드랜턴이 불빛이 닿는 곳에는 어둠이 잠시 물러났다가 불빛을 거두면 와락 덮쳐 왔고, 눈은 겨우 앞사람을 분간 할 만큼 점점 거세게 내렸다. 산장에서부터 얼결에 일행이 되어 버린 두 명의 여자는 우리 뒤를 바짝 따라 붙었다. 아무리 등산로가 잘된 지리산이라지만 캄캄한 어둠에 눈보라까지 치는 산에 남자인 나로서도 은근히 겁이 날 지경인데 여자로서 오죽 하겠는가. 어둠과 눈보라를 밀쳐 내고 오르다 보니 어느새 촛대봉과 장터목 이정표가 불쑥 나타났다. 날씨만 좋으면 촛대봉 일출도 천왕봉 못지않은데 이번 지리산 등산도 천왕봉일출을 보기 틀렸구나 싶은 생각에, 아쉬움도 아쉬움이거니와 은근슬쩍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내 박복한 탓으로 여기고 차근차근 달래며 능선 길을 따라 걸어갔다. 어둠속에서 삼신봉과 연하봉을 지나쳐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할 쯤, 부스스하게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장터목대피소에도 비박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대피소에 자리가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닐 텐데 동생은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 해 보였다. 나도 처음 산에 다닐 때 비박을 사람들과 어울려 안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추운 날씨는 자재하는 편이 여러 사람들에게나 자신에게 이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초코바를 먹고 물을 마시려는데 물통의 물이 꽁꽁 얼어 버렸다. 버너를 꺼내 녹이자니 귀찮고 해서 어쩔 도리 없이 얼음을 깨서 얼음을 씹어 녹여서 먹었다. 장터목대피소를 뒤로하고 조금 올라가니 고사목 군락지가 나왔다. 공동묘지에 온 느낌이랄까, 안개까지 껴서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살아서 백년, 죽어서 천년’ 이라는 알림판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오대산 비로봉의 주목은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고 쓰여 있던 글이 갑자기 떠올랐다.제석봉에서부터는 어둠속을 헤쳐 나오느라 보지 못했던 설경들이 장엄하게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 놓고 있었다. 오직 흑과 백의 조화만으로도 모든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움과 경이로움 그리고 또 다른 아름다움의 발견. 눈꽃은 또 어떤 한가. 혹독한 겨울의 감춰진 또 다른 모습이 아닌가. 아기자기하면서도 갓난아기의 손등처럼 보드라운 희디흰 꽃잎과 훅하고 불면 날아 가버릴 것만 같은 꽃송이들. 아름다운 모습들을 담기에는 구닥다리 디지털 카메라의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리산의 보여주는 겨울의 설경에 온 정신을 뺏기면서 오르다보니 어느새 통천문에 다다랐다. 하늘로 통하는 문, 통천문. 통천문에서 올려다보니 천왕봉이 안개와 눈발에 가려 가물가물했다. 마지막 천왕봉을 오르는 길에는 바람과 눈이 몹시 거세게 몰아 쳤다. 안면 가리개까지 뚫고 들어오는 바람은 칼날로 살갗을 도려내는 듯이 매서웠고, 손끝이 시려오기 시작 했다. 내리던 눈도 바람을 타고 다시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드디어 천왕봉. 세석대피소에서 출발한지 2시간 20분이 걸려 도착했으나 천왕봉 정상에서는 추위와 바람 때문에 잠시도 서 있기 힘들 정도였다. 사진만 찍고 내려간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고, 동생에게는 괜스레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세석대피소에서부터 동행한 두 명의 아가씨와 기약 없는 아쉬운 작별을 하고 우리는 중산리로 하산 방향을 잡았다.중산리로 내려가는 지리산의 남쪽은 다행히 바람은 불지 않았다. 지루한 중산리 하산 길.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는 절, 법계사를 지나 로타리 산장에서 잠시휴식을 취한 다음 내려가던 중에 동생이 무릎 뒤쪽이 아프다며 조금 절며 걸었다. 나도 예전에 경험했던 일이라 큰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파스를 뿌리고 소염진통제와 근육 이완제를 나란히 한 알씩 먹었다. 하산 길에 무릎이 많은 충격을 받는다. 이런저런 운동을 하면서 터득한 것이라면 고통을 참으면 더 큰 상처를 만든다는 것이다.
바위능선을 내려오는 길에 아이젠의 8발 중 하나가 부러져 몇 번이고 다리를 겹질릴 뻔했다. 빙판과도 같은 하산 길에 아이젠을 벋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난감하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근 8년간을 나와 겨울 산을 함께 하면서 나를 지켜준 물건인데, 이제 떠나보내야 할 때가 된 것이리라. 1시 10분. 드디어 하산 완료. 매점의 따듯한 꿀 차가 추위와 피로를 다소 달래 주었다. 돌아다 본 지리산이 안개와 구름에 쌓여 여전히 우리의 아쉬움을 풀어 내지 않고 있었다. 한 시간 가량 중산리에서 버스를 타고 진주 터미널에 도착했다. 오후 6시로 예약한 고속버스의 시간이 많이 남아서 우리는 기다리는 동안 자연스럽게 술집으로 들어가 못내 아쉽지만 오래도록 기억될 우리의 추억을 위해 소주를 마셨다.
술을 어지간히 마셨고, 편한 우등버스 좌석이건만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동생은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 들어 골지 않던 코까지 미약하게 골았다. 세석대피소에서 화장실 가는 길에 올려다본 별이 자꾸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반짝거렸다. 한참을 올려다 본 밤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별들은 황홀하게 반짝 거렸고, 심지어 별들이 소근 대는 소리까지 들리는 듯 했다. 사뭇 내가 우주 속에 들어 와 있는 듯 한 느낌. 그러다 문득 별들은 혹시 우리의 영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영혼은 저 깊고 깊은 하늘에서 반짝거리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나는 뭔가 크나큰 위안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내 영혼을 얼마나 아프게 했을까, 얼마나 기쁘게 했을까. 기쁨보다 아픔이 더 많았을 내 영혼, 내 별. 별은 내가 아파해도 영원히 반짝 거려 주겠지? 아직도 잠결에선 아파도 반짝이는 별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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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순수열정 원문보기 글쓴이: 순수열정
첫댓글 즐거운 여행이었네요...나도 언젠가는 지리산에 함 가봐야 하는데...잘 읽고 갑니다...^^*
세상에나~세상에나~~여기 계셨군요..겨울산행 한번 하고 싶은데 그다지 쉽지 않네요..김성용님 참 좋습니다..설경이~~ㅎㅎ
지리산산행기를보니 마치내가 다녀온느낌이군요. 몇년전에 아마동식구들하고 당일종주한일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는군요.감사합니다.
아주 좋습니다...형제간의 우애도 돈독하고 좋은 경치 사진과 함께 잘 읽었습니다... ㅎㅎㅎ..나도 담주 토욜날 한라산 가는데... 눈쌓인 한라산 풍경이 어떻게 반겨줄지......
사진으로 보는 눈꽃이 저렇게 예쁜데 직접 본다면 더욱 환상적이겠네요. 언젠가는 꼭 보고말 거예요. 나중에 저도 좀 데려가요.^^.
눈내리는 겨울 산행기를 보니 몇년전 설악산의 짜릿한 추억이 떠오릅니다. 무사히 등반하심을 축하합니다. 다음엔 회원모두와 길잡이되셔서 인도해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그래요 정말 언젠가 여름 장터목에서 비박하다 눈을뜨니 온통 주먹만한 별들이쏟아지는거있죠...잊지못할겁니다
역시!.... 정말 잘표현 하고 사진도!!....날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