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선 166호 9월 +10월
계란 프라이 하나
이십여 년 전 가진 것이라곤 300만원이 전부였습니다. 그걸 가지고 가난한 우리 손님들을 위한 작은 민들레국수집을 차렸습니다. 가난한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은 참 쉽습니다.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가난하게 돕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가난한 사람의 입장과 처지에서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래 전입니다. 딸과 딸의 친구들에게 짜장면을 사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같은 값이면 고급 중식당에서 짜장면을 대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초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고급 식당에 들어가면서부터 아이들이 주눅이 들어서 제대로 짜장면을 먹지를 못합니다.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나왔습니다. 다음번에는 동네에 있는 보통의 중국식당에 아이들과 함께 갔습니다. 얼마나 재잘거리며 신나게 먹는지 그 때야 알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일상으로 경험하는 환경보다 약간 더 좋은 곳으로 가난하게 다가서야한다는 것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처음 시작할 때도 우리 손님들이 주눅 들지 않고 편안하게 들어올 수 있게 간판은 희색 바탕에 노란색 글씨를 써서 만들었습니다. 우리 손님들에게는 식당이 무료급식을 하는 곳이라는 표시가 없는 것이 마음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식당 문을 여는 시간을 기존의 무료급식소와는 다르게 했습니다. 식사시간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길게 늘였습니다.
왜냐하면 무료급식소가 시간을 정하는 것보다 손님들이 식사시간을 스스로 정하게 하면 굳이 두세 시간 전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줄을 서지 않으니 마음에 들지 않는 다른 손님과 다툴 일도 없습니다. 그래서 식사하러 왔다가도 마주치기 거북한 손님이 있으면 동네를 한 바퀴 돌다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곳저곳 식사하러 다닐 필요가 없이 같은 곳을 두세 번이라도 찾아와서 식사할 수 있게 됩니다. 생존에 필요한 시간이 줄어들면 그때야 비로소 우리 손님은 생각을 할 여유를 가지게 됩니다. 무료급식소에서는 정해진 운영비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운영시간을 최소로 적게 하고 짧은 시간 동안 집중하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운영시간을 되도록이면 자원봉사자들을 확보하고 또 활동하기 좋은 시간으로 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식사할 수 있는 인원을 정해진 급식비로 대접할 수 있는 인원을 정합니다. 식사 인원은 300명으로 정하고, 식사 시간은 낮 12시로 정해서 주 5일간 운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식사시간을 오후 4시나 5시로 하기도 합니다. 대다수 급식소는 하루 한 끼 식사를 제공합니다. 그래서 노숙하는 손님들은 각각의 무료급식소 시간표를 잘 알고 있어야 하루 두 끼 정도는 겨우 먹을 수 있게 됩니다.
무료급식소에서 식사인원을 300명으로 정하면 음식도 300명분으로 준비하게 됩니다. 그런데 노숙하는 사람은 배가 고픕니다. 급식소에서 먹는 것 외에는 배고 고파도 먹을 수가 없습니다. 또 사람마다 필요한 식사량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한 손님이 정해진 음식 분량보다 더 먹게 되면 여러 문제가 생깁니다. 다른 사람이 먹을 것이 줄어듭니다. 줄을 서서 두세 시간을 기다렸는데 음식이 다 떨어지면 그냥 배를 곪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손님이 식사인원 300인분을 준비한 무료급식소에 줄을 섰는데 300번째에 섰습니다. 자기 차례가 되었는데 바로 자기 차례 앞에서 밥과 반찬이 전부 떨어졌습니다. 음식을 배급하는 봉사자가 손님에게 드릴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합니다. 그냥 맥없이 뒤돌아설 뿐입니다. 그렇다고 돈도 없으니 사 먹을 수도 없습니다. 굶어야 합니다. 이렇게 생존의 위협을 받은 그 손님은 다음 날에는 첫 번째로 줄을 서기 위해서 두세 시간 전에 와서 줄을 섭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식사시간 몇 시간 전부터 줄을 서는 손님들이 많아집니다.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면 손님들이 아주 예민해집니다. 어떤 사람이 새치기라도 하면 큰 싸움이 일어납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는 식당이 기존의 무료식당들보다 아주 작습니다. 그 대신 식사 시간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늘였습니다. 손님들이 줄을 서지 않아도 됩니다. 원하는 시간에 와서 드시면 됩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손님들이 줄을 서면 꼴찌부터 식사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손님들이 기다리는 경우에도 줄을 서지 않고 자유롭게 떨어져 있을 수 있습니다. 새치기 때문에 싸울 일도 없습니다. 간단한 뷔페식이어서 손님들이 직접 밥과 반찬을 접시에 담습니다. 밥과 반찬을 남기지만 않는다면 몇 번을 더 먹어도 괜찮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손님들이 오기 때문에 식당을 여는 동안 계속 자원봉사자들은 반찬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식사량을 몇인 분이라고 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손님들이 하루에 두세 번 와서 식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손님이 필요한 만큼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밥이 떨어지면 라면이라도 끓여서 드릴 수 있습니다. 아니면 조금 기다려서 밥이 뜸이 들면 밥을 드실 수도 있습니다. 배고픈 손님들이 좀 더 선하게 식사할 수 있게 거들면 놀라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배고픈 우리 손님들이 더 배고픈 사람들 걱정을 합니다. 다음 사람이 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합니다. 다른 사람도 먹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2020년 초에 코로나19가 심각해지면서 실내에서 모이는 일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안에서 식사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도시락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민들레 식구들이 발 벗고 나섰습니다. 새벽부터 도시락을 준비해서 오전 11시에는 손님들에게 도시락 꾸러미를 나눠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민들레국수집 앞길에 포장마차를 마련했습니다. 손님들이 도시락을 기다리면서 뜨거운 어묵과 국물을 먹을 수 있게 했습니다. 어묵은 시중에서 판매하는 어묵과 같은 것입니다. 손님들이 마음껏 드실 수 있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엄청 많이 먹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어묵 드실 수 있는 개수를 정해야 하나 하다가 자유롭게 맘껏 드시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손님들이 욕심껏 드시는 것이 아닐 서너 개 드신 후에 다른 사람도 먹어야 한다면서 양보합니다. 나중에는 좀 더 드시라고 강권해야 마지 못해서 하나 더 드십니다. 놀랍습니다. 포장마차를 열면서 커피믹스, 아이스커피, 뜨거운 커피, 아이스크림, 수박, 떡, 빵, 감자 등 군것질거리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로 팬데믹 상황이 길어지면서 특이하게도 노숙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거리에서 지내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노숙인 쉼터도 새로운 사람은 이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찜질방도 폐쇄되고, 숙박시설은 돈이 없으니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우리 손님들이 말합니다. 외로워서 못 살겠다 합니다. 어딜 가도 거부하는 눈치를 받는다고 합니다. 덜덜 떨리는데 걸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지하도에서 자는 데 발로 차고 욕하는 사람. 거리에서 고기 굽는 냄새에 견디기 힘들 때, 남이 먹는 짜장면을 볼 때, 머리를 감고 싶은 데 씻을 수 없을 때, 수건이 없어 그냥 물이 마르기를 기다릴 때, 비에 젖은 옷을 입은 채 마르기를 기다릴 때, 배가 고플 때 참으로 노숙하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동인천역 광장에서 노숙하는 사람들 중에 몇 달 동안 일곱 명이나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이제는 노숙하는 사람들보보다 경로당이나 노인복지관을 갈 수 없게 된 노인 분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2022년 4월말에야 손님들에게 민들레국수집에서 식사 대접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도시락으로만 끼니를 이어온 손님들이 어색해하면서도 제대로 밥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 단골손님인 창명 씨는 서울에 있는 고시원에서 지냅니다. 창명 씨는 목포의 어느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참 많이도 얻어맞았고 많이도 굶었습니다. 고아라서 징집면제로 군대도 갈 수 없었습니다. 배 곪기는 계속되었습니다. 평생을 노숙을 했습니다. 얼마 전에야 구청에 가서 나는 고아인데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는지 물었더니 된다고 했고 조건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습니다.
조건부라서 자활을 해야 하는데 일할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수급비를 팔십 몇 만원 받았습니다. 그런데 자활을 않으니 일부만 지급한다고 해서 사십 몇 만원을 받습니다. 고시원 방세를 주고나면 참 난감합니다. 배고파서 고시원에서 밥 먹으려면 총무 눈치 봐야 해서 그냥 굶는다고 합니다. 라면을 한 상자 드릴까요? 했더니 바퀴벌레 때문에 먹거리를 둘 수 없답니다. 그래서 이 마트 노란가방에 컵라면과 함께 간식거리를 담아드렸습니다. 창명 씨는 나이가 쉰아홉입니다. 왜소합니다. 결혼은 꿈도 꾸지 않았답니다. 가족도 없으니 외로움이 제일 견디기 힘들 답니다. 너무 외로울 때는 소주 한 잔으로 마음을 달랜다고 합니다.
경쟁사회에서 밀려나 거리에서 헤매는 우리 손님들이 또다시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배워서는 절대로 다시 살아날 수 없습니다. 1등만 살 수 있는 세상에서 밀려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경쟁력이 아니라 따뜻한 가족, 따뜻한 이웃, 따뜻한 공동체입니다. 경쟁을 하면 나 외에는 모두기 이겨야 할 적입니다. 나보다 귀한 남을 만나야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보다 귀한 남을 만나면 우리는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삶이 열립니다.
다시 꿈을 꿉니다. 손님들이 민들레국수집에서 환대 속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힘을 얻는 것을 거들 것입니다. 얼마 전에 식당용 소형 삼단 카트를 장만했습니다. 각종 라면과 계란을 싣고 휴대용 가스버너와 프라이팬 그리고 냄비를 장만해서 직접 끌고 다니면서 손님들에게 라면을 끓여드리든지 계란프라이를 해 드릴 것입니다.
“계란프라이 하나는 오백 원. 계란프라이 둘은 공짜!” 우리 손님들은 오백 원 동전 하나 없으면서도 분명 계란프라이 하나만 달라고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먹어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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