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의 시화기행] 관념의 파괴 … 해체주의 건축이 빚어낸 미래의 조각 (19) 루이비통 미술관
문화일보 2020년 01월 23일(木)
▲ 하늘을 나는 새 한 마리처럼 혹은 유유히 떠가는 흰 배처럼 (김병종, 루이비통미술관, 27×39㎝, 종이에 먹과 파스텔, 2020)
- (19) 루이비통 미술관
모두 NO 할 때 YES 외치는
루이비통 아르노 회장이 구상
집 허물어 집짓기로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창작
50개 천장 가진 1층짜리 건물
개관전 작품이 건축의 일부로
지금까지 없었던 미술관 탄생
설이다. 이 연휴에 모처럼 미술관 쪽으로 가족 나들이를 한 번쯤 해보는 것은 어떨까. 날씨마저 이른 봄처럼 따스하다. 연전에 중국 최대의 현대미술관이라는 진르(今日)미술관에서 초대전을 한 적이 있다. 요즘 시황제로 불린다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에게 주어진 내 작은 그림 하나가 인연이 돼 성사된 전시였다. 천장의 가장 높은 층고가 무려 17m에 달하는 데다가 전시장은 운동장처럼 커서 두 층 전시관을 채우느라고 땀깨나 흘렸었다.
그런데 전시 기간에 춘제(春節)가 끼어있었다. 중국에서 춘제는 그야말로 명절 중의 명절임을 그때 실감했다. 노랑, 빨강 옷들을 차려입고 미술관으로 줄지어 들어서는 것이었다. 그때 아하, 춘제는 미술관 가는 날이구나 하는 인상 하나가 새겨졌다.
요즘 파리 외곽에 세워진 새로운 미술관 하나가 화제란다. 그 건물을 보러 일부러 파리에 가는 이가 있을 정도라고 했다. 도대체 어떤 집이길래?
루이비통미술관. 집을 해체해 다시 짓는다는 해체주의의 거장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만년작이라고 해서 더 화제다. 그는 이미 빌바오미술관의 파격으로 명성을 날린 바 있다. 그러고 보면 이미 우리 시대의 건축가는 차츰 설치미술가와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 같다.
미술관 안의 전시작품보다는 누구의 건축 작품인가를 더 따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은빛 물고기 떼를 닮은 입체주의의 이 거대한 작품은 층 구분 없는 4층 높이에 총 2000억 원 정도가 투입돼 6년여의 기간에 걸쳐 지어졌단다. 건축보다는 미래주의의 조각으로 불리기도 한단다.
처음 나는 개선문 근처의 루이비통 옛 미술관 빌딩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수위는 약도를 그려주며 불로뉴 숲 북편으로 이주해갔다고 했다. 미술관이 들어선 불로뉴 북쪽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숲이라고도 알려진 곳. 어려서부터 몸이 병약했던 그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엄마와 헤어지는 것이라고 했을 만큼 예민하고 여린 성격이었다. 어린 시절을 이 숲에서 보냈던 그는 훗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연작 12권을 썼다.
그는 예술을 신의 은총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예술을 통해서만 현실의 비루함을 벗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는 베르그송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현실에 속하는 것은 모두가 허상이며 변화하지 않는 지속에 속하는 것은 오직 예술뿐’이라고 했던 예술 지상주의자였다. 루이비통미술관은 어찌 보면 이 숲에 어린 그의 혼이 불러서 들어선 것인지도 모르겠다.
루이비통 제국을 일으킨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며 숲속의 미술관 한 채를 떠올린다. 그는 전복적 사고로 이름난 CEO였다. 임원회의 같은 데서 처음 어떤 안을 제시했을 때 ‘모두 쌍수를 들며 그건 안 된다고 하면 속으로 이건 되겠구나’하며 저지른다는 인물이다. 어쨌거나 그날 그는 비행기를 타고 대륙을 건너 노(老) 건축가 게리를 만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지금까지 없었던 미술관을 구상한다.
프랭크 게리. 알다시피 왜 집은 기둥과 지붕으로만 돼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던 사람이다. 그 질문의 끝에서 그는 집을 허물어 집을 짓는다는 자신만의 알고리즘 하나를 완성하고 평론가들은 재빨리 그런 그의 집짓기에 ‘해체주의’라는 명패 하나를 달아준다.
미술관은 대체로 사람으로 북적대는 곳에 세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르노는 전원형 미술관을 꿈꾸었다. 꾸불꾸불 불편하게 찾아가는 미술관, 게다가 시각 예술뿐 아니라 콘서트홀까지 갖춘, 그리하여 건축과 미술, 음악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예술생태학적 건물을 꿈꾼 것이다.
미국으로 게리를 찾아가 이 생각을 말했을 때 노인은 머릿속으로 생애의 방점을 찍을 대작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당장 초음속 항공기를 만드는 최첨단 프로젝트가 동원됐고 무려 서른 개가 넘는 기술 특허의 과정을 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래 예술이 이토록 긴밀하게 공학에 연결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가까이서 미술관을 바라보며 나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도대체 공중에 매달린 것 같은 수많은 은빛 조각 구조 속에 어떻게 미술품을 걸 수 있다는 말인가 하는 것이 첫 번째 의문이었다.
그러나 입구로 들어서면서부터 건축가는 ‘미술품을 건다’는 루틴에서부터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테면 개관전으로 출품된 올라푸르 엘리아손(Olafur Eliasson)의 작품 콘택트(Contact)는 전시가 끝나고도 건물 앞의 인공 폭포와 그대로 연결되면서 건축의 한 부분이 돼 버렸다. 노란 기둥을 따라 걷다 보면 빛이 쏟아지는 대기 속으로 나갈 수 있고 물소리가 들려온다.
인공과 생태, 소리와 빛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귀착지에 서게 되는 것이다. 파리시의 까다로운 건축 규정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설도 있지만 기존의 층간 구분이 사라져 버린 것도 이 집의 특징이다. 4층이지만 여러 개의 기묘한 중간층들로 구성돼 얼핏 보면 1층이 된다. 천장이 무려 50개나 되는 1층인 셈이다.
건물을 돌다 보면,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는 숨바꼭질 놀음이 생각난다. 갑자기 천공을 향해 휑하게 뚫린 공간이 나타나는가 하면 그 하늘을 수백 개의 투명 우산으로 떠받치고 있는 듯한 형상들도 보인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배 한 척 같은데 가까이서 보면 대여섯 척의 하얀 배가 정박해 있는 모습. 미술관의 진화가 이쯤 되면 ‘다음’을 생각하게 된다. 요다음 만나게 되는 미술관은 대체 어떤 형태일까. 어쩌면 지상을 떠나 허공에 매달린 비행접시 같은 집 하나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 나같이 평생 그리고 칠해온 환쟁이가 설 곳은 어디일까.
화가·서울대 명예교수
첨단 과학기술 동원 … 미술관 자체가 설치작품
파리 외곽 불로뉴 숲 북쪽 끝자락에 세워진 프랭크 게리의 설계작품. 4층 규모이지만 층간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도심이 아닌 자연을 배경으로 산과 구릉을 닮은 제2의 자연으로 창조됐다. 엄청난 공학적 기법과 최첨단 과학기술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다. 천문학적인 물량이 투입됐고 하나의 거대한 설치 작품을 방불케 한다.
건물 앞부분에 계단식 폭포를 설치해 건물이 흐르는 물 위에 떠 있는 형태로 구성됐다. 건축가 게리가 미국에서 직접 현장으로 날아와 오랜 구상 끝에 완성된 것이다. 루이비통그룹은 이 미술관을 일정한 기간 후 파리시에 기증하기로 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