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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반가운 이름들!!!
날짜 : Sun, 14 Mar 2010 10:46:17 +0900 (KST)
보낸이 :"bigman" newc21@hanmail.net
오늘 아침, 메일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한참을 그냥 그대로 있었다.
많은 것을 잃고 살아가고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보고 싶은 이름들을 잊고 있었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될까?
바빠서, 서울생활이 다그런 것,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살다보니...
글쌔?아무래도 시간적, 공간적 이유가 크겠지. 하지만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는 것...
관심의 문제 일수도 있지..암튼 나는 그동안 많은 것을 잃고살았다.
정모야 고맙다.
너무 늦은 저녁 시간에 전화하는게 아닌데..
그냥 술을 먹으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잖아...
서울 생활 32년! 그동안 앞만보고 살아왔다.
은규의 글을 읽어니 가슴이 아프다.
그동안 친구들 얼굴 보면서 이야기할 틈도 없이...서울에 있는 친구들과도 지금은 만날 시간이 허락치 않는다.
애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지?
나도 시간이 지나면 친구들 만나러 꼭 갈 거다.
정모야, 연하야, 은규야, 숙자야, 창조야(지난번 전화했는데 전화 못해 미안), , , , , , ,
건강하게 잘 지내라.
일요일 아침에 황 희 종
제목 : RE: 반가운 이름들!!!
날짜 : Mon, 15 Mar 2010 10:10:54 +0900 (KST)
보낸이 :"천사" drparkme@hanmail.net
생명의 봄비가 추억처럼 내린다.
봄비가 이런 저런 소식을 한 꾸러미 싣고 왔네.
우선 귀인양의 사감선생님 등극을 祝賀한다.
그 내용은 담에 차츰 알아보기로 하고.(억수로 궁금하지만...)
글구 희종이 오랜만이다.
열심히 잘 살고 있다는건 귀동냥으로 진작 알았다만,
이 방에서 만나게 되니 반가움이 배가 되네.
여긴 사람 사는 냄새가 향기로운 방이다~^&^~~
항상 삶의 소재가 풍부한 정모야~~
한 가득 채우곤 또 나눠져서 고맙다.
얼굴은 모르지만 투병중인 친구 쾌유를 빈다.
우리가 이런 나이다.
뭇 생명들의 숨소리가 빗속에 젖어 든다.
모두 힘내고...
파이팅~~~
Subject: RE: RE: 반가운 이름들!!!
Date: Mon, 15 Mar 2010 11:50:09 +0900 (KST)
From: "조정모" cjm2813@hanmail.net
고향 그리고 엄마
--박 두련 창원거주 (군북 오곡 출생)
밥하고 빨래하고 농사일도 거들며 자란 소꿉친구 영아가 잘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에 비해 나는 하늘 똥구멍은 고사하고 겨우 땅 밟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영아 어머니는 몇 년 전에 돌아 가셨다.
그러니 잘 사는 영아보다 내가 더 행복한 거 아닌가?
유난히 겁이 많았던 탓에 엄마는 내가 늦게 오는 날에는 늘 마중을 나오셨다.
호야불을 켜 들고 동생 둘을 앞세우고 신촌까지 오셨다.
오실에서 신촌까지는 40여분을 걸어야 하는 꽤 먼 거리다.
내가 시집가 던 날,
"만날 마중 가던 일 잊지 않겠제?"
하며 눈시울을 붉히셨다는 말을 동생한테 전해 듣고 가슴이 아렸다.
시간 약속이 철저하신 탓에 항상 그 자리에서 만난다.
엄마와 함께 있으면 칠흙 같은 어둠도 두렵지 않고
음산한 기운이 도는 상여집도,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귀퉁이의 묘지도,
하얀 소복에 긴 머리의 처녀귀신이 손을 씻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웅덩이도
무사히 통과한다.
또 간간이 들리는 산짐승 소리도 엄마만 있으면 무섭지 않다.
낡은 시간이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 오실골...
그 시간과 함께 오랜 세월동안 머물러 있는 오실골 사람들.
수없이 들락거렸던 골목길을 돌아 나오면 빛바랜 추억이 묻어나는 정든 집이 나온다.
슴이 벅차다.
따뜻한 햇살이 마루 가득 내려 앉아 나를 반긴다.
도란도란 낯익은 목소리 들린다.
"엄마~~!!"
"아이고 왔나! 말도 없이 오노. 김서방 어서 오게!"
아픈 사람에게는 세배 안 하는 거란다.
마동 아지매도 세배 안 받으신다하고...
"엄마가 이렇게 살아 있으니 얼마나 좋노. 이렇게 만날 수 있고"
마동 아지매의 말씀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허드렛물로 사용하기 위해 가마솥 가득 물을 데운다.
타닥타닥 대나무 타는 소리에 온 몸을 휘감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튼실한 부지깽이로 불덩이를 뒤적이며 소중한 얘기 나눈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기억된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엄마 곁에 바짝 붙어 "엄마예"하고 엄마를 불렀다.
"와예"
부모님께 존댓말 쓴다는 확인 도장을 받아가야 했기에 이렇게 존댓말(?) 한마디를
끝으로 아직도 엄마께 반말을 쓰고 있다.
편안해서다.
구석구석 빛바랜 흔적을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시선이 머무는 곳 마다 소중하다.
언뜻 고개를 치켜드니 커다란 바위하나 눈 가득 들어온다.
찬란한 상대미 바위다.
억겁의 세월 속에 굳건히 마을을 지키고 있는 수호신같은 바위.
독수리, 매, 부엉이, 까치, 뀡... 새들의 낙원이기도 하였다.
커다란 날개를 쫙 펴고 위풍당당하게 마을을 한 바퀴 휭 돌 때면 무서워서 기둥을 꽉 잡고 꼼짝도 못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은 꿀밤 줍기에 바빴다.
윤기가 흐르는 쌉스레한 꿀밤묵 맛은 천하의 일미다.
꿈 많던 어린 시절 성공해서 상대미산을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졌다.
상대미바위와 앞산을 잇는 케이블카를 설치하여 관광지로 만들면 우리 마을이 부자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꿀밤묵과 빵떡이 특산품이 되는...
이런 대형(?) 프로젝트를 친구들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친구가 있어 산을 보면서 피식 웃는다.
발아래 또다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엄마가 조심스레 지푸라기를 걷어내면 연록의 새싹이 뾰초롬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엄마도 나도 푸른 마음이 된다.
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엄마가 내년에도 그 다음해에도 오래도록 새싹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함안소식 3월호 발췌)
특별한 동창회
조희련 -진해거주(군북 사촌 출생)-함안소식1월호 발췌
<12월 13일 일요일. 오전11시>
군북 사촌초등학교 26회 동창회 날이다.
땅따먹기, 고무줄놀이. 그 추억을 되찾고자 30년 만에 학교 옆 사랑목 가든에서 모였다.
오래전에 폐교가 된 교사는 쓸쓸한 적막감이 흘렀고, 어린 시절 뛰어 놀았던 그렇게 크고 넓었던 운동장은 지금 보니 부잣집 베꾸마당만 했다.
단발머리, 까까머리는 흔적 없고, 희끗한 머리카락과 눈가의 주름만이 세월을 말해준다.
아무리 변장술이 뛰어나도 쉰이 넘은 세월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지난해부터 치매를 앓고 계시는 시어머니 때문에 그동안 모든 모임에 불참을 했던 내 친구 정자. 오늘 그녀의 특별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팔순이 되신 시어머님을 모시고 동창회에 참석했다. 물론 남편이 하루쯤 보살핀다 했지만, 며느리가 눈앞에 보여야 맘이 편안하시다는 시어머니. 동창회 날인 오늘도 어김없이 두 팔 벌리고 며느리를 가로 막는 시어머니를 모른 채 할 수 없어 아예 모시고 온 거였다.
방 한편에 자리 잡은 시어머니는 착하시고, 귀여운 애기처럼 순하셨다.
편을 갈라 족구 하는 모습을 어찌나 즐겁게 구경하시는지, 연신 싱글벙글 웃으시며 며느리 팀을 응원 하시는 듯했다.
쉰이 넘은 며느리를 딸인양,
“정자야! 우리 정자......”
며느리 뒤만 졸졸 따라 다니신다.
앞으로만 가실 줄 알고 되돌아오실 줄 모르는 시어머니.
그래서 자주 집을 잃어버리신단다.
2년 전,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당신의 생활에 변화가 왔다한다.
매일 보따리를 싸시는 이유가 뭘까?
영감님이 그리워 그 곁으로 가고 싶어서일까?
점심을 먹고, 의상대 절에 소풍을 가기로 했다.
사십 여년 만이다. 초등학교 6년 동안 의상대는 단골 소풍 장소였다.
하늘을 찌를 듯 높았던 절벽.
의상대사가 쓰던 소나무 지팡이를 꽂았다는 장소가 여기쯤인가, 저기쯤인가, 약간의 의견 충돌도 있었지만, 이미 고사한 소나무는 말이 없었다.
다만,
"이 소나무가 살면 내가 살았을 것이고, 죽으면 내가 죽은 줄 알아라.''
의상대사의 말씀이 전해질 뿐이다.
3층 석탑 원효탑은 분실 되었다하나 불탄 암자는 재건되었으니, 의상대의 역사가 길이 빛나기를 부처님 전에 단체로 엎드렸다.
다시 사랑목 가든으로 내려와 저녁을 먹고 아쉬운 작별을 했다.
우리들의 손을 잡으시며, "자~알 놀다 갑니다."
"어머님, 건강 하세요!"
반가움과 아쉬움과 감동이 있는 하루였다.
며칠 후, 밀양 정자 친구에게 시어머님 안부를 물었다.
며느리 따라 놀러 오셔서 즐거우셨나구?
"내 아무데도 안 갔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온갖 질병이 다 있으니
부모를 섬긴들 몇 해를 섬기겠는가
아마도 못다한 효성을 일찍 베풀어 보아라.]
-박인로-
p.s: 소득도 없는 원고 부탁에 군소리 없이 원고 주신 멜방친구들 정말 탱큐요.
(연하, 권제, 명래, 경희, 희련, 두련...그 외 선후배님들)
제목 : 트집잡기나 하다가
날짜 : Wed, 17 Mar 2010 00:07:08 +0900
보낸이 :"이연하" yh1689@paran.com
또 한편의 멋진 사모곡이다.
돌아 보면 먼 길을 온 것 같다.
정모가 이 멜방을 개설한 게 언제더라?
까마득하여 통 기억이 안나네. 허기 그건 뭐 주요하지 않다.
그냥 이대로 좋기 때문이고 앞으로 더 즐거움만 커질 것을 확신하게
만들어 주는 친구들이 곳곳에 조밀하게 포진하여 이 우주를 거의 점령하고 있어서?
오늘 사무실에서 '함안 소식'을 받자마자 바로 친구 두련의 글이 실린 페이지를 찾는다.
머 그리 오래 걸릴 것도 없다.
실물보다 좀 더 잘 나온 꽃을 배경으로 실물보다 훨 덜 나와 억울해 할
두련의 언제나 웃는 얼굴이 확 다가 오더라.
이 때 우째야 되노? ㅎㅎㅎ
제 버릇 어디 가겠나?
좀 따져 보자 ㅎㅎ
어제 멋진 침대 하나가 공짜오 생겨서 오늘 일찍 퇴근하였고
그 공짜 물건 위에 황토메트 깔고 몸을 충분히 데운 후 나왔으니 시간도 많다.
침대가 공짜로 생긴 것은 다음에 생각나면 얘기 하기로 하고
1. 잘사는 소꿉 친구 영아의 풀 네임, 사는 데는?
이 거는 충효가 궁금해 할 것 같아서 묻는 것이다.ㅎㅎ
2. 유난히 겁이 많았다는 데 대해서 숙자와 희련이 동의 못하겠다는 데 우찌된기고?
사실은 간이 배 밖에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ㅋㅋㅋ
3. 그 당시 휴대폰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겨우 있다는 게 유수 형님이 운영하셨든가?
유선으로 연결된 스피카로 '통신 연락입니다"라는 특유의 멘트로
온 동네에 우사 다 시키던 그런 시절이었는데
간 큰 딸내미가 늦게 오실지 빨리 오실지 우찌 아시고 마중을 나오셨는강?
4. 당시 대부분의 골짝 동네 집집에는 '등불'이라 하여
문종이 바른 나무 상자 속에 사기 호롱 넣은 것이 대부분이었고
좀 형편이 나은 사람은 그 문종이 자리에 비싼 유리가 대신하여
좀 더 밝게 비치는 정도의 것을 사용하였는 것일진대
'호야' 라는 상당히 고가의 신제품을 들고 나오신 것을 본 사람이 있는지?
5. 낡은 시간이 오래 동안 머물고 있는 오실골 ... (이 것도 절창이다)
낡은 시간?
세월이 좀 먹는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주장이다고?
오실골? 이 것은 같은 말이 중복되는 데 ㅎㅎㅎ 억지 주장이다.
'지명 뒤에 붙는 '실'은 곡(谷), 골 또는 골짜기를 의미하는 우리말인데
예를 들면 오실 -> 오곡 박실 => 박곡 ㅎㅎ 말이 안되도 막 할 수 밖에 없다.
6.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쓴 존대의 말 그것도 숙제라서 할 수 없이
그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ㅎㅎㅎ
인정합니다. 학생이 되었으니 존댓말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밤에 잠도 못 이룬 경험이 생생하기 때문에
7. 상대미 바위(또는 상데미 바위)
=> 데미는 더미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방언이라 하고 그래서 무더기를 뜻한다고 보면
상데미 바위는 산 위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커다란 바위덩어리를 말하는것?
=> 각데미산의 각데미는 네모 비슷하게 각이진 큰 바위 산이라는 뜻이 되고
육이오 때 미군이 그 전투의 처절함에 질려서 God Dam이라 한데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설과 어느 것이 맞는기고?
=> 그래서 이 엉터리 논객은 대미 => 대뫼 => 竹山의 한자 표기를 반대하는 것인즉
대미, 데미, 더미는 그 일대의 올망졸망한 봉우리가 모여 있는 지형을 나타낸 것일
있다고 만강의 혈성으로 외칩니 다.
정감 있게 써내려간 좋은 글 그냥 이런 정도로 시샘하고 말란다.
어머님이 건강하게 오래 사시기를 빈다.
이 멜방에서 사모곡의 원조는 안가네 즉 정모군인데
수년전 멜방 초창기
문디손들이 신창 당산에 있던 정모군 친정 보리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얘기
노벨 문학상 감인데 그 문디손 나무라시던 분도 가신지 오래고
건강하게 오래 살라고 정모라는 작명
그림 그리는 것 좋아하는 딸을 위해 마당 통채로 제공하셨던 부친 얘기도
필란돌이라 낯선 이름을 들고 나타난 조필남 선수가
바톤을 이어받아
월촌 벌판을 무대로 사모곡, 사부곡 읊으셨는데 요즘 조용하고
연하도 사모곡 하나 올리려다가 관두고
요즘 재원은
입원해 계신 어머님 모시랴
20억원 들고 선산 사러 다니랴 바쁜 와중에도
울사까지 5반 친구들 대동하고 상근이 문병을 갔다는 소식이 잡히는데
그러고 보니
희련이는 일본 원정 산행 갔다 온 얘기 안 올리나?
일본 아소화산 오르다가 누구에게 삐졌나? 다리가 삐졌나?
억수로 궁금타
....
그냥 답장 쓰기가 좀 뻘쭘해서
혼자 난리 부르스 생트집 잡다가 ... 잘란다.
건강하시라. 모두들
Subject: RE: 트집잡기나 하다가
Date: Wed, 17 Mar 2010 12:19:31 +0900 (KST)
From: "잉어" trip-cho@hanmail.net
국실 모티가 있다면,
나래이 모티는 더 웅장하고 음산한 기운이 도는 곳이다.
두련이 모친이 호야등 들고 이곳 까지 마중을 왔을 것이고,
상여집이 있는 곳을 지나면 신촌이든가?
초등시절 날씨가 꾸무리한 어느날 ,
숙자와 두련이 상여집앞을 지나고 나래이 모티를 돌아 집으로 가는길,
옆 산기슭에서 으흐흐흐 귀신 소리와 함께 작은 돌들이 날아와
혼비백산하여 뛰었다는 이야기.
그 이후로 두련은 충격으로 아직 까지 그 키를 유지하고 있고,(10센치는 더 클수 있었는데 ,)
숙자는 종아리가 굵어져 모델의 꿈을 접었다는 ....
더 충격적인 이야기는
동창회때 그 시절 이야기를 하는데
역시 범인은 가까이에 있다는말,
콩밭골,따밭밑,일명당 일대에 사는 반 친구들이(박양모 포함 서너명)저질렀다고 자백을 한것.
문디손들이 신창에만 출몰하는줄 알았는데ㅋㅋㅋ
옥색 마그마가 펄펄끓는다는 아소 할화산
지천에 두고 못 봤다.
날씨는 너무 화창하고 좋은데 바람분다고 입장불가.
365일중 관람기회가 절반,
바람부는 방향에따라,구름 ,안개 ,비,,,,, 3대가 덕을 쌓아야 볼수 있다네,
구중산 산행 이야기는 산들바람 카페를 들리면 멋진 사진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날수 있습니다.
멋있고 중후하게 나이 먹는다는것,
희종을 첨본 느낌이었다,
입방을 축하하며 반갑다.
언제 진해 출장올 기회는 없는가요?
제목: 역시 오곡의 맑은 정기가
날짜 : Wed, 17 Mar 2010 오후 22시 42분 58초 +0900
보낸이 :"이연하" <yh1689@paran.com>
그런 멋진 추억들이 있을 줄이야
역시 오실골이 최고여
첨부한 사진에 일현군이 보이고
멋진 시를 보낸 명래의 주소창에 용국이가 보이길래
한 오년 전에 정모가 멜방을 열었을 때
내한테 부여한 미션이 있었는데
하인을 막론하고 이 방에 새로 들어 오는사람은
자기 신고를 '거하고 질펀하게'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그 사실을 고지하는 막중한 책무를 나에게 맡기셨도다. 용비어천가다.
그러니 내가 뭐 원래 그런 성질 더런 놈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 이해하시고
두 분 자기 소개 좀 하수
일현이는 명동 박대목을 부친으로 두셨고
울 아버지는 그 조수 또는 시다 아니면 미쟁이 역할로 많이
같이 일하시러 다니셨는데 그 시절 그 젊은 분들 이제는 못 볼 ...
용국이는 권제가 젤 좋아한 사람인데
하림 초등 축구 선수로 활동할 당시 군초로 친선 경기왔을 때
혼자 멋진 축구화를 신고
특유의 조숙한 몸매에다가 허옇고 육감적인 허벅지를 짧은 검정 팬티 아래
벌건 대낮에 드러내 놓고 군초 운동장을 누비는 바람에
골키퍼 희열이가 정신줄 놓고 잇다가 졌든가?
하여튼 그 때 이후로 체육부장 권제가 좋아 하기 시작하엿고
같이 산행하는 길에서 간혹 용국이 얘기 나오면
아직도 그 축구화 그 허벅지 얘기한다.
몇년전 30주년 동창회 때 배구할 때도 혼자 옷을 훌러덩 벗어던지고
런닝구와 팬티 바람으로 젊음을 과시하는 바람에
주위 많은 머스마들을 주눅 들게 하였고
난 지금 속이 더부룩 하고 딸꾹질이 계속 된다.
어제 손님이 와서 참치 집에서 이른 저녁을 하고 끝낼 즈음
초밥 세개가 남았길래 주인 아줌씨를 불러
"집에 계시는 어부인이 눈에 밟혀 넘어가지 않다는"면서
그 것을 싸달라고 한다. 주위 사람들이 웃는다.
멀리 대구에 떨어져 살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그 아주머니가 큰 사각 봉지를 들려 준다.
제대로 된 초밥 도시락이 준비되어 잇다.
낭패다. 농담 한 것이 이렇게 판을 키운 것이다.
이사하면서 냉장고도 보냇기 때문에 ㅎㅎㅎ
뒤 베란다 서늘한 곳에 두었다.
아침에 일어나 직원들에게 갖다 줄까 생각하다가
다들 사는 패턴이 있을 테고
그걸 깨뜨리는 것도 일종의 폭력행위일 수 있다고 참으로 너그러운 맘 새를 갖추고
이 한몸 희생하겠다는 각오를 세운다.
급하게 다 먹는다.
그 때 이후로 속이 더부록 하고
딸꾹질이 멈추지 않는데 우째야 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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