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구들
다 기
다기는 차를 담는 그릇이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릇 또한 중요하다
다기를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면 차맛을 제대로 내기 어렵다
보통 다기는 처음 차를 시작하는 사람은 흰색계열이 좋다
차의 색깔을 잘 볼 수 있기 때문인데 조금 익숙해지면 다양한 다기를
음미하는게 좋다
그러니까 분청중에서 백분이 발라져 있는 것이나 백자가 좋다
보통 다인들은 분청을 좋아하는데 분청의 투박한 맛과 소박함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백자의 특징은 차의 맛을 그대로 바쳐주는 것인데 그것은 다기의 견고함 내지는
표면의 조밀함 때문이다.
다기는 다관,숙우,잔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관:이것은 차주전자이다.보통 손잡이가 옆으로 붙어 잇는 것을 많이 사용하는데
위로 손잡이가 붙어 있는 것도 좋다.
숙우:이것은 물을 식히는 그릇이다.
차는 특성상 고급차일수록 물을 식혀서 먹어야 맛이 좋아진다
이런 이유로 식히는 그릇이 필요하다
*다관이나 숙우의 구별은 절수 즉 물이 잘 끊어지는 것이 좋다
찻잔:찻잔은 선이 원만하고 마시기에 편한게 좋은 데 차를 마시는 사람은 이런 선을 알게
되는데 어떤 곳에서 보면 이런 것이 좀 부족함이 보인다
퇴수기:물을 버리는 곳
차시(차칙):차를 뜨는 숟가락으로 보통 대나무나 나무를 이용한다
여기에는 엽차용과 말차용이 있다
다포:차상을 덮는 천
다건:찻잔을 닦는데 사용되는 천
차상:보통 행다용 차상은 다인들이 짜맞춘 상이나 옛날 떡판을 수리해서 만든 것을 애용한다
소반:찻잔을 나르는데 사용하는 찻잔이 3-5잔 담기는게 좋다
역시 다기도 차를 마시는 사람이 만드는게 좋다.
독창적 다구의 발달
한국의 다구는 중국다구의 영향도 받았으나 대체로 매우 독창적인인 것이었다. 의식다례가 유난히 발달한 한국은 다구도 제사때나 예의를 갖출때 쓰는 것이 발달하여 민족문화적 특성을 지녔다. 그리고 일찍부터 야외용 다구가 발달하였다. 산이나 들의 천신(天神), 용신(龍神), 그리고 옥외(屋外)부처 등에게 차를 바쳤고 선비들은 물가나 산 속에서 즐겨 차를 끓여 마시는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다도를 예술문화로서 즐기는 계층이 귀족이나 백성들보다는 문인들이므로 심미적 기준도 이 땅에 사는 선비들의 예술적 감각과 사상에 기초하여 그 차원이 무척 높았다.
다조(Boiling Tea Table)와 상보(덮개 보자기)
다조는 온갖 다구를 올려 놓고 찻일을 하는 넓은 탁자의 종류로서 조리대에 해당된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쓴 고려인의 음다풍속을 보면, 붉은색의 다조를 놓고 그 위에 온갖 다구를 놓은 후 붉은색의 비단상보를 덮는다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큰 다조가 사랑방이나 마당 혹은 처마밑에 놓여 있는 것을 차끓이는 풍속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평평한 큰 다조에 화로와 퇴수기를 제외한 온갖 다구를 올려 놓고 차를 끓인다. 때로는 다조가 다과상(茶菓床)을 겸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조위에서는 물을 다루는 일을 하므로 천을 깔아 일하기 편하게 하며, 상보를 덮어둔 오늘날의 다조상보는 고려의 전통에 따라 역시 삿된 액을 쫓아내는 붉은색을 쓴다.
석지조와 다구함
신라의 네 화랑 선인인 사선(영랑, 술랑, 남랑, 안상, 6세기 이전)이 경포대와 한송경에서 석지조라는 돌못화덕을 사용하여 천신께 차를 끓여 바쳤다. 석지조는 큰 돌덩이 하나에 바람구멍이 있는 풍로와 물을 담는 작은 못이 함께 파져서 만들어져 있는 것으로 한국만의 독특한 다구이다.
또한 승려화랑인 충담(忠談, ~765~)은 남산의 부처에게 차를 끓여 올렸는데, 이때 다구를 담아 짊어졌던 앵통(벗나무 다구 Box)이 있었다. 충담은 육우와 동시대인이나 다구는 사뭇 다르다.
찻그릇(茶器)
한국은 의식다례용 찻잔이 발달하였는데, 그 용량이 매우 크거나 굽이 무척 높은 찻잔이 많이 쓰였다. 그리고 "茶"字를 써 놓은 신라.고려.조선의 오래된 다기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 제사에 쓰는 다병(茶甁)이나 신이나 부처에게 올리는 찻잔에 "茶"字를 새긴 것은 일반 그릇과 구별하여 예의바르고 귀중하게 다루어야 했기 때문이다.
일반 음다용 잔은 1인용 잔과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마시는 큰 잔이 있었다. 문사다도가 성했던 고려 말렵에는 1인용 찻잔의 안쪽에 학이나 그름 모양의 백색상감이 새겨져 있는 잔들이 많았는데, 이는 탁한 乳茶(Milky tea of powder)보다 맑은 탕차를 선호함으로 인해, 다탕을 담았을 때 그 형상이 비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귓대다완이 있어 말차를 솔로 점다할 때나 탕차를 삼베에 걸러 각잔에 따를 때 썼다.
오늘날의 한국다기는 실용성과 손바닥의 촉감을 중시하는 편이다.
다술과 공대와 다선
고려시대에는 말차를 끓일 때 거품을 일으키기 위해 여럭 가지 모양의 고리다술(many ring tea spoon)을 써서 휘저였다. 또한 단차를 잘게 부수기 위하여 대나무 막대로 된 공대(Kongdae)를 썼으며 17세기에는 말차를 휘젓는 대나무 다선(dasun, tea 솔)을 세계 최초로 독창적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