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ㆍ망ㆍ을ㆍ검ㆍ색ㆍ하ㆍ는ㆍ도ㆍ시ㆍ의ㆍ야ㆍ경ㆍ꾼
‘구멍가게’라는 것이 있었다. 예전에 동네 어귀마다 들어서 있던 그 가게는 기성세대에게 매우 친숙한 풍경이다. 그 공간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사귐이 이루어지고 이런저런 소식이나 소문들이 모여들고 퍼져나가는 ‘허브’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구멍가게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슈퍼마켓이 그 자리에 들어서 규모와 가격으로 세를 확장했고, 그 슈퍼마켓마저 얼마 전부터는 대형 할인 마트에 밀려나고 있다. 슈퍼마켓은 더 이상 ‘슈퍼’하지 않다. 하기야 아예 ‘미니 슈퍼’라는 기묘한 합성어가 일찌감치 등장하지 않았던가.
구멍가게와 슈퍼마켓이 대형 할인 마트에 위협당하는 가운데 동네마다 속속 들어선 소형 매장이 있으니 바로 24시간 편의점 convenience store이다. 70년 전 미국에서 생겨나 1989년 한국에 첫 선을 보인 편의점은 그동안 그 규모가 급속하게 신장하여 2006년 전국의 편의점 수는 1만 개를 돌파하였고 2007년에는 1만 4천 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전체 매출액은 4조 6천억원으로 매년 10% 이상씩 늘어났다. 이렇듯 놀라운 성장의 비결은 무엇인가?
그 경쟁력은 우선 ‘24시간’이라는 영업 시간에서 비롯된다. 매출이 가장 높은 시간대가 밤 8시에서 자정까지라는 통계에서 알 수 있듯이 편의점의 성장은 도시인들의 생활양식의 변화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귀가 시간이 점점 늦어질 뿐 아니라, 집에 와서도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일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본다. 특히 최근에는 인터넷 때문에 잠자는 시간이 더 줄어든다. 이러한 생활의 변화는 편의점의 신장과 관련된다.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품목이 우유, 삼각 김밥, 소주(비식품류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상품은 일회용 라이터이다)라는 통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심야에 출출할 때 간단하게 요기할 음식이나 일상에서 소소하게 필요한 것들을 거기에서 ‘간편convenience하게’ 조달할 수 있다.
편의점은 주로 인구가 밀집한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매장의 넓이가 보통 25평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그 안에 진열된 물건은 무려 1천 2백~2천여 종에 이른다. 물건뿐만 아니라 공공요금 수납, 택배, 휴대전화 충전, 팩스, 꽃배달 주문, 공연 티켓 예매 발권, DVD 대여, 보험상품 판매, 우편 대행, 디지털 사진 인화 등 다양한 서비스도 제공한다. 또한 그 안에서 컵라면을 먹을 수 있도록 테이블과 끓는 물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는 한국의 편의점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이렇듯 편의점은 집 근처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를 당장 충족시킬 수 있는 매장으로서 백화점, 대형 마트 등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틈새시장을 잘 개척해온 것이다.
큰 창고가 없는 편의점에 그렇게 많은 물건을 구비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판매와 재고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POS(판매 정보 통합 관리) 시스템, 그리고 그 자료에 근거해 하루에 1~2번씩 순회하면서 각 가맹점마다 ‘볼펜 몇 자루, 라면 몇 개’ 하는 식으로 완전히 맞춤형으로 공급해주는 배송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전국 체인점을 관리하는 본사가 상품을 일괄 구매하여 유통하는 규모의 경제, 그리고 각 동네에 깊숙하게 파고들어 주민들의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섬세하고도 신속하게 제공해주는 유연화 전략이 맞물린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구멍가게나 슈퍼마켓, 백화점, 대형 할인 마트, 그리고 홈 쇼핑과도 겨룰 수 있는 경쟁력의 원천은 바로 거기에 있다.
편의점의 또 한 가지 차별성은 매장의 디자인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선 조명이 환하다. 천장을 잘 보라. 형광등이 빼곡하게 걸려 있고 대낮에도 환하게 켜져 있어 그 어느 공간보다도 밝다. 밤이 되면 그 밝음은 일종의 화려함으로도 느껴진다. 우리는 편의점에 들어설 때 다소 신선하고 활기찬 시공간을 경험한다. 이렇게 명도(明度)를 높이는 것은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고전적인 수법으로서 백화점의 쇼윈도에서 그 극치를 이루지만, 편의점은 그러한 비일상성을 일상 가까이에 끌어들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건을 진열하는 데도 불빛이 어떤 각도로 반사되어야 소비자에게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킬지를 면밀하게 계산하여 조명과 선반의 위치를 규격화해놓고 있다.
그렇듯 밝은 실내 분위기는 진열된 상품들을 빛나게 할 뿐 아니라, 드나드는 이들을 안심시키는 효과도 갖는다. 여성들도 심야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편의점에 들어갈 수 있고, 낯선 손님들이 옆에 있어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구석구석을 환하게 비추는 불빛덕분이다. 그리고 투명 유리를 통해 바깥에서 내부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어 더욱 안심이 된다. 또한 도난 방지용으로 설치된 볼록거울을 통해 계산대 직원의 시선이 점내에 두루 미칠 수 있는 구조도 고객을 안심시킨다. 흥미로운 것은 그 밝은 불빛이 매장 바깥으로도 뻗어나가 어두운 도시에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이는 지역의 치안에 도움이 된다. 실제로 일본의 어떤 편의점에는 ‘아이들과 여성의 110번(한국의 112번) 점포’라는 안내문이 창문에 붙어 있고 천장이나 간판 옆에 경광등을 설치하여 비상시에 사이렌을 울린다. 위험한 상황에 처하거나 다급한 일이 있을 때 누구든지 편의점에 도움을 청할 수 있어 말하자면 파출소의 역할까지 겸하는 셈이다.
편의점은 도시 문화의 산물이다. 도시인, 특히 젊은이들의 인간관계 감각과 잘 맞아떨어진다. 구멍가게의 경우 주인이 늘 지키고 앉아 있다가 들어오는 손님들을 에외 없이 ‘맞이’한다. 따라서 무엇을 살 것인지 확실하게 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편의점의 경우 점원은 출입할 때 간단한 인사만 건넬 뿐 손님이 말을 걸기전에는 입을 열지도 않을뿐더러 시선도 건네지 않는다. 그 ‘무관심’의 배려가 손님의 기분을 홀가분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특별히 살 물건이 없어도 부담 없이 들어가 둘러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인간관게의 번거로움을 꺼려하는 도회인들에게 잘 어울리는 상업공간이다(대형 할인 마트가 백화점보다 매력적인 것 가운데 하나도 점원이 ‘귀찬게’ 굴지 않는다는 점이 아닐까). 그러므로 ‘익명’의 고객들이 대거 드나드는 편의점에 단골이 생기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편의점은 24시간 열어놓고 있어야 하기에 주인들은 자기가 계산대를 지키기보다는 아르바이트 점원을 세우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 점원들이 고객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이 어느 편의점이든 똑같고 유니폼처럼 표준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편의점뿐 아니라 패스트푸드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서, 사회학자 조지 리처 George Ritzer는 그의 저서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The Mcdonaldization Society』에서 ‘각본에 의한 고객과의 상호 작용’, ‘예측 가능한 종업원의 행동’ 등의 개념으로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햄버거 가게에서 종업원들이 고객을 대하는 규칙이 매우 세밀하게 짜여 있고, 그 편안한 의례와 각본 때문에 손님들이 매료된다고 보고 있다. 종업원이 누구든 그 외모, 말씨, 감정 등이 예측 가능하기에 고객들은 편안하게 주문하고 구매할 수 있다. ‘쿨’한 인간관계 그 자체다. 그리고 그러한 효율적인 소통이 짧은 시간에 많은 손님들을 접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패스트푸드점의 그러한 속성을 편의점도 거의 그대로 지니고 있다.
그런데 주인과 고객 사이에 인간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편의점은 역설적으로 고객에 대한 정보를 매우 상세하게 입수한다. 소비자들은 잘 모르지만 일부 편의점에서 점원들은 물건값을 계산할 때마다 구매자의 성별과 연령대를 게산기에 붙어 있는 버튼으로 입력한다. 그 정보는 곧바로 본사로 송출된다. 또 한 가지로 편의점 천장에 붙어 있는 CCTV가 있는데 용도는 도난 방지만이 아니다. 연령대와 성별에 따라서 어느 제품 코너에 오래 머물러 있는지를 모니터링하려는 목적도 있다. 녹화된 화면은 주기적으로 본사로 보내져 분석된다. 어떤 편의점에서는 삼각김밥 진열대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손님들의 구매 행태를 기록한다. 먼저 종류를 정한 뒤에 선택하는지, 이것저것 들어보며 살펴가면서 고르는지, 유통기간까지 확인하는지, 평균 한 번에 몇 개를 구입하는지 등을 통계 처리하는 것이다. 그렇듯 정교하게 파악된 자료는 본사의 영업 전략에 활용된다. 편의점이 급성장해온 이면에는 치밀한 정보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성장이 편의점 주인들의 수익 확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때 편의점은 잘 나가는 사업 아이템으로서 한 달에 3백만 원 이상의 수입이 넉넉히 보장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와서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조기 퇴직자, 부업으로 편의점을 경영하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가맹 희망자들이 줄을 이었고, 본사들은 예상 매출액을 부풀려 개업을 적극 권장했다. 그 결과 가까운 거리에 많은 편의점들이 들어서 제 살 깎기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적자를 보는 가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쉽게 그만둘 수도 없는 것이 기간 만료 전에 계약을 해지하면 엄청난 손실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본사의 ‘편의’대로 작성된 약관을 시정하기 위해 연대 행동에 들어갔다. 그에 대해 2006년 공정거래위원회가 편의점 약관에 대한 심사를 하여 몇몇 조항들을 시정하였지만, 상당 부분을 그대로 유효하다고 판정해 가맹점 업주들과 시민단체 경실련의 반발을 샀다. 기업 간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그 압박은 계속 개별 가맹점에 전가될 것으로 보인다.
주인 못지않게 힘겨운 것이 아르바이트 점원들의 신세이다. 그들은 비정규직으로서 가맹점에 공통으로 제공되는 유니폼을 입고 시급 3천 원 정도의 저임금을 받으며 하루 10시간 정도 노동을 한다. 물건이 들어올 때마다 검수하고 옮기는 일, 창고를 정리하고 상품을 진열하는 일, 가게 안팎을 청소하는 일, 인수인계 때마다 판매된 전체 물품과 계산된 총액의 일치 여부를 꼼꼼히 확인하는 일 등 여러 가지 업무를 수행한다. 특히 밤을 꼬박 새우는 것이 매우 피곤한데 밤중에 술 취한 손님이 들어와 행패를 부리면 난감하기 짝이 없다. 낮에도 가장 고역스러운 일은 까다로운 손님을 상대하는 것이다. 없는 물건을 막무가내로 내놓으라는 손님, 돈이 모자라는데 봐달라며 떼를 쓰는 손님, 슈퍼보다 가격이 비싸다고 항의하는 손님, 커피를 타 달라는 손님 등을 만나면 지극히 곤혼스럽다. 나이가 어리고 손님에게 늘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 입장을 악용하여 함부로 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 점원의 경우 가끔 주인을 잘못 만나면 굴욕적인 일을 겪기도 한다.
‘편리함’을 뜻하는 영어 단어 ‘convenience’는 ‘함께 있음’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왔다. 편의점은 이제 일상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그 깔끔하고 환한 공간을 자기의 방만큼이나 친밀하게 느낀다. 고독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편의점은 ‘도시의 성좌처럼’ 안위를 준다. 늦은 밤 온라인을 배회하다가 출출한 배를 채우고 싶을 때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곳이 편의점이다. 수많은 물품을 진열하고 24시간 연중무휴로 열려 있는 것이 너무 고맙다. 그러나 그곳을 드나드는 소비자들의 욕망은 체계적으로 검색되고 관리된다. 그리고 그 주인과 점원의 업무도 주어진 매뉴얼 속에서 기계적으로 영위된다. 일상의 편리함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고객의 편의를 위해 엄청난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이 있다. 구멍가게와 슈퍼마켓을 밀어내고 촘촘히 들어서는 편의점은 문명의 외롭고 고달픈 속상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의 습관을 알뜰하게 빚어내는 그 거대한 시스템은 도시인의 미래를 어떻게 구상하고 있을까.
생 각 할 문 제
1. 편의점 내부의 물건들은 어떤 방식으로 분류되어 진열되어 있는가? 그 범주와 위치사이에는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는가? 예를 들어 어느 편의점이나 일회용 라이터, 오뎅이나 호빵 등은 계산대 위에, 과자는 가운데에, 음료수는 안쪽에 놓여있다. 그렇다면 다른 품목들은 어떤가? 대표적인 편의점 몇 군델르 골라서 비교해보고, 그렇게 배치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자.
2. 도시를 구성하는 인구 가운데 편의점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층과 가장 이용하지 않는 층을 조사해보자. 남녀, 세대, 직업, 지역 등의 요소로 분석한다면 그 분포는 어떤 스펙트럼으로 나타날까?
3.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일은 무엇일까? 또 이들은 하루 중 어느 근무 시간대를 선호하는가? 그리고 가장 상대하기 힘든 손님은 누구일까? 편의점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보자.
4. 최근 일본의 일부 편의점에서는 노인들을 위해 특별한 서비스를 시작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로부터 전화로 주문을 받아 물품을 집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인데, 점원들은 집을 방문한 김에 노인들이 혼자 살면서 해결하기 어려운 가사를 도와준다. 그리고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벗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만큼 점원들의 노동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운영 비용이 늘어나지만 고령화 시대에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젊은이를 주로 겨냥해온 편의점이 크게 달라지고 있는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한국에서도 일어날까? 한국의 편의점들이 고령자들을 위한 서비스를 개발하여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논해보자.
파놉티콘
인간은 힘을 수력(이후 증기기관)으로 대체한 아크라이트(Richard Arkwright)의 수력틀(water-frame)이 처음으로 도입된 크롬포드(Cromford) 공장에서는 어린이와 여성 노동력이 대거 쓰였다. 아크라이트는 노동자들이 사는 인접 마을에 종을 쳐서 시간을 모르는 노동자들에게 출근 시간을 알리곤 했다. 작업은 아침 여섯 시에 시작해서 열세 시간 동안 일한 뒤 저녁 일곱 시에 끝났고, 야간조는 저녁 여섯 시에 작업을 시작해서 아침 일곱 시에 작업을 종료했다. 노동자들이 작업 도중에 8초 이상 창문 밖을 쳐다보면 근무 태만으로 간주되어 벌금이 부과되었다. (…)
공장에 시계가 도입되면서 작업은 리듬이 아니라 시계의 시간에 맞춰 진행되었다. 초기에는 공장주가 시계를 독점하고 시간을 속여서 더 작업하도록 만드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발생했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이 정확한 시간의 중요성을 체화한 다음에는 노동자들이 노동 시간 단축을 요구하고 초과 노동에 대한 초과 수당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제 시간은 '때우는' 것에서 소비되고 파는 것으로 변했다. '시간은 돈'이라는 식의 관념이 중요해지면서 공장에는 작업 시간표와 작업량을 체크하는 표가 도입되었고, 이는 다시 규율과 시간 관념을 더욱 강화했다. (…)
산업혁명기를 휩쓸었던 기계는 인간의 통제 밖에 존재하는 괴물로 간주되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위력적인 기계 시스템은 나를 고문하고 두렵게 한다. 그것은 뇌우처럼 서서히 가까이 다가오는데, 그 진행 방향이 이제는 확실하다. 이것이 조만간 우리를 덮칠 것이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의 생각이나 얘기는 아무런 도움이 못 된다"라고 당시의 암울한 상황을 묘사했다. (…)
마르크스는 기계가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들의 지배를 완결했다고 보았다.
평생 같은 도구를 다루던 전문성이 이제는 평생 하나의 기계에 봉사하는 전문성으로 변했다. 기계는 노동자들을 어린 시절부터 특화된 기계 부품으로 만드는 데에 오용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노동자들의 재생산에 필요한 비용이 현격하게 줄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공장과 전문가들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과정이 완결되었다.
- 홍성욱, 『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 책세상
하버드 대학에 진학해서 법관이 되는 대신 기계 공작장에 취직해서 엔지니어의 길을 걸어간 프레더릭 테일러(Frederick W. Tayler)의 '과학적 경영'은 기계 산업과 같은 새로운 산업 분야에서 숙련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방편으로 제기되었다. 테일러의 과학적 경영의 골자는 기계 표준화와 시간-동작 분석을 통해 숙련 노동을 단순 노동의 조합으로 분해해서 이를 기반으로 목표 과업과 임금 체계를 세우고, 목표를 초과 달성했을 때 보너스를 지급한다는 것이다. (…)
테일러는 자신의 과학적 경영 방법을 통해서 "기계 작업장의 통제를 숙련 노동자들의 손에서 빼앗아 경영의 손으로 이전하고, 따라서 '주먹구구'를 '과학적 통제'로 대체하는" 목적을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숙련 노동자의 노동을 분석하는 작업은 과학적 경영의 핵심 담당자인 엔지니어들에게 맡겨졌고, 노동자들이 아닌 이들 엔지니어들이 숙련 노동자들의 노동과 기계의 효율적 작동을 위한 새로운 종류의 정신 노동을 담당하게 되었다. 테일러주의는 작업 구상과 기획을 숙련 노동자의 머리에서 화이트칼라 엔지니어가 일하는 공장의 기획부(planning department)로 이전했던 것이다. (…)
그런데 당시 사람들이 열광했던 것은 테일러주의가 아니라 포드 사의 설립자 헨리 포드(Henry Ford)의 포디즘(Fordism)이었다. 테일러가 기술과 노동을 분석해서 새로운 경영 원리를 추출해ㅆ다면, 포드 사의 하이랜드 파크(Highland Park) 공장에 1913년 도입된 어셈블리 라인과 컨베이어 벨트는 새로운 경영 원리를 기계로 구현한 것이었다. (…)
당시 포드의 공장에는 5백 개가 넘는 특수한 공장 가계가 사용되고 있었는데, 이 기계들에 의해 만들어져서 컨베이어 벨트로 작동되는 어셈블리 라인을 통해 공급된 부품들은 단순 작업에 종사하는 만 3천 명의 노동자들에 의해 조립되었다. 이런 '인간과 기계의 포드식 결합'을 통해 포드의 공장에서는 매년 백만 개의 램프, 백만 개의 타이어, 25만 개의 핸들이 제작되었고, 이런 부품이 최종 조립 라인에서 결합함으로써 매년 25만 대의 차가 생산될 수 있었다. 그러나 생산량이 증가하자 자동차 가격은 하락했다. 1905년에는 포드 자동차 한 대가 천 2백 달러를 엄었고, 1908년에는 9백 달러 정도였지만, 생산성 향상에 힘입어 1924년에는 2백 9십 달러로 떨어졌다.
포드의 공장에서는 자동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분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이동되었는데, 노동자 개개인은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자신에게 보내진 부품을 놓고 한 가지 단순 노동만을 (예를 들어, 찰리 채플린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나사를 조이는 것만을 반복하는 장면처럼) 끊임없이 계속하게 되었다. 이 공장에 비숙련 노동자와 단순 숙련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노동을 감시하는 반장과 반장을 돕는 감독과 사무원이 급속히 늘어났다. 노동자에 대한 근본적인 감시와 통제는 공장에서 천천히, 그렇지만 쉬지 안혹 돌아가는 기계가 담당해주었다. 노동자의 노동은 이미 정해져 있는 기계의 표준 일당량에 맞추어졌고, 노동자가 기계의 리듬에 맞추지 못할 경우 그는 바로 반장의 눈에 띄었다. 숙련공이라 할지라도 그의 작업량과 작업 속도는 노동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리 입안된 계획에 의해 결정되었다.
- 홍성욱, 앞의 책
특히 실질적이고 잠재적인 차별을 낳을 수 있는 개인 정보 공개는 법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막아야 한다. DNA 정보의 남용, 전국민 지문의 전산화, 얼굴이나 다른 신체 정보의 디지털 데이터 베이스가 이러한 예에 속한다. 이런 정보는 자칫 오용될 경우 돌이키기 힘든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그의 책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전체주의의 본질은 이렇듯 인간에게서 인간성을 완전히 약탈하고 전체만이 있을 뿐 개인은 쓸모없다는 것을 우선적으로 증명하여 개인들이 스스로 “소모되어도 좋다는 감정(the feeling df being expandable)"을 갖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희생을 이끌어내는 데에 있다고 주장했지요. 물론 이러한 비인간적인 마술을 걸기란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극단적인 세뇌작업이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전체주의적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고 할 수 있는 세뇌작업도 교육과 처벌이라는 두 가지 길들이기 작업으로 이루어졌지요.
여기에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가 당면한 문제, 곧 무엇보다도 심각하지만 자칫 잊기 쉬운 문제가 드러납니다. 그것은 유토피아란 그 이상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그 실현 방법에 있어서도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것이 아무리 이상적이라고 하더라도 실현방법에 있어서 인간성을 말살하는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에 불과하며, 진정한 유토피아는 그 이상뿐만 아니라 실현방법에 있어서까지도 인간의 자유, 존엄성, 사랑과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들이 존중되어야만 한다는 거지요. 바로 이것이 우리가 20세기 역사를 통해 배웠고,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그리고 오웰이 『1984년』에서 제시한 사회공학의 제1강령인 것입니다.
- 레온 불룸 -
[박상우의 그림읽기] 2011.1.22-동아일보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 주변에서 폐쇄회로(CC)TV를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없으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설치한 것만 해도 300만 대가 넘는다고 합니다. CCTV 덕분에 해결한 강력사건도 많고 범죄 예방 기능도 있으니 그것이 늘어날수록 세상이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CCTV만 있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 차량용 블랙박스까지 합하면 세상 전체가 거대한 카메라 감시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른바 ‘지하철 개똥녀’ ‘패륜녀’ ‘성추행남’ 등등의 동영상이 여과 없이 인터넷에 올라오고 해당 인물은 순식간에 ‘신상 털기’까지 당하게 됩니다. |
|
첫댓글 2009-경기도토론대회 결선 주제가. 정보화사회 카피라이트 바람직한가? 가 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