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산리
임형묵
어슴푸레한 골목길로 일 나갔던 사람들이 들어서고 집집마다 전등불이 켜진다.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한 집 건너 만큼이다.
동네로 들어서는 길이 비좁아 간 길 되돌아 나와 차를 세워두고 나서도 오가는 사람 어깨에 걸릴 것 같아 팔려가는 소를 바라보는 심정이 된다.
그 너른 들녘에선 거름 냄새가 풍겨온다. 오래도록 쌓여 있어도 나무라는 사람 없다. 치우라고도 하지 않나보다. 마을이 도시에 붙어 있는데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늦은 시간에 들러 고생한다며 할머니가 대소쿠리에 있는 홍시를 건네고 옆집 아낙은 녹차를 덩그런 쟁반에 담아낸다. 며칠 전 왔을 때 인심 그대로다. 얼굴 안다고 곁에 붙어 참견하는 수염이 덥수룩한 할아버지의 웃음도 보기 좋다. 이만한 고향이 또 있을까.
고향동네를 닮아 한 번 와보고 싶었던 발산리. 아내가 농촌 사람들의 생활 실태를 조사하는 일을 하는 중에 따라 나왔던 것인데 너무나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사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도 그저 넌지시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앞에는 하천이 흐르고 뒤로는 야트막한 산과 과수원으로 둘러쳐져 있다. 촘촘하게 지어진 집 사이로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외양간에는 젖소들로 가득하다. 동네가 둥그렇게 터를 잡은 데다 골목길이 여럿이라 숨바꼭질하면 좋을 것 같다.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낯선 나그네를 반기고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개 짓는 소리 요란하다. 오롯이 서 있는 종탑도 인상적이다. 종소리를 자주 듣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가슴도 따뜻하겠지.
길에서는 쇠똥 냄새가 나고 주인의 옷에서는 젖소 냄새가 난다. 나도 그를 처음 보고 그도 나를 처음 보지만 오랜만에 만난 사람처럼 반긴다. 거무칙칙한 얼굴에 모자를 눌러 썼는데 소 돌보는 일이 곧 끝난다며 잠시만 기다리라 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고향동네 승현이 아버지를 닮았다.
여러 날 대문이 굳게 닫힌 집도 있지만 발산리가 정겹다. 땅거미가 드리워진 처마 밑의 저녁연기가 구수하다.
수건을 머리에 둘러 쓴 어머니가 아궁이 앞에 앉아 있다. 부지깽이로 타지 않은 등걸을 뒤적이시는 어머니. 불이 사그라지면 어머니는 고구마 몇 덩이를 아궁이에 넣으셨다.
고구마가 가장 맛있는 경우는 살이 여물지 않은 것을 골라 물을 흠뻑 배게 쪄낸 다음 밤새도록 장독에 올려놓는 것이다. 얼음이 살짝 얼어 물이 질벅질벅한 게 차갑고도 맛이 있다. 동생들이 깨기도 전에 소리 나지 않게 방문을 열고 나와야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나에게도 아궁이 차지가 왔다. 쇠죽을 끓이는 일이었다. 농촌에서는 소가 없으면 힘을 못 쓴다. 귀하신 몸이라 일을 가도 사람 품을 받는다. 쌀겨나 콩깍지를 넣고 영양이 될까하여 들깨꼬투리를 썰어 넣어주기도 했다. 소가 여물을 먹고 나면 오랜 되새김질을 하는데 그걸 보고 있노라면 듬직함이 느껴졌다. 농부들은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쇠잔등을 쓸어줄 때만큼 흐뭇해 할 때가 없다. 겨우내 잘 먹여 놓아야 이듬해 농사가 편하다.
그 시절엔 땔감도 귀했다. 대체 연료가 없어 낙엽까지 긁어다 때다보니 산은 대부분 벌거숭이로 변해 갔다. 나무꾼들은 점점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지게를 짊어지면 땅 바닥에 질질 끌려 멜빵을 잔뜩 움켜쥐어야 비탈을 내려올 수 있었지만 갈퀴를 지게 상단에 깃발마냥 꽂고 지게작대기를 휘저으며 집을 나설 때는 개선장군이 된 듯했다. 몇 간이 몰려다니는 재미가 쏠쏠해 겨울이 추운 줄 몰랐다.
어느 날인가는 먼 산에서 나무를 해 가지고 산마루를 내려오는 중이었는데 동네에 상감이 나타났다는 전갈을 받았다. 면에서 나온 감시원이지만 얼마나 무서워했으면 동네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그러니 들키는 날에는 취조를 받고 곤혹을 치를 게 두려워 땅거미가 질 무렵까지 내려오지 못 했다. 그런 날이면 수다를 떨며 나무를 하고 도시락을 먹던, 그렇게 들떠 있던 기분이 싹 가시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약주를 좋아하셨고, 농토거리가 많아 일 하는 날에 쓰려고 누룩으로 술을 자주 담갔는데 상감들은 매번 우리 집은 빼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물러서는 엄니가 아니었다. 광에다 자물통을 매달기도 하고 허술한 행랑채 외양간에 숨겨 놓기도 했다. 그곳도 안전한 곳이 되지 못했다. 뒤꼍 공터를 파고 누룩이 뜰 때 냄새가 풍기지 않도록 술 항아리에 비닐까지 폭 씌우고 그 위에 나무를 잔뜩 해다 쌓아가며 갖은 위장술을 펴도 용케도 찾아냈다.
그렇게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향수를 달래게 하는 발산리지만 동네 한 옆으로 공장이 여기저기 들어서고 불 켜진 사무실도 곳곳에 보인다. 어느 집에 들어서려 하니까 얼씬도 못하게 하고. 그런가 하면 어느 여인은 생전처음 보는 아내를 붙잡고 신세한탄을 하며 통곡을 했다. 돈이 될 만하면 어김없이 객지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도.
거름냄새보다도 더 고약한 돈 냄새로 진동하기 전에 동네 입구에 받쳐 놓았던 차를 얼른 끌어다 뉘어놓아야겠다.
* 발산리 : 청주시 사천동 북쪽에 위치한 농촌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