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개벽을 이룬 상하이 | ||||||||||||||||||
홍콩이 영국과 청나라의 아편전쟁 후 1842년 난징조약에 따라 영국에 넘겨져서 초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하게 되었고, 양자강 어구의 조그만 어촌인 상하이도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영국, 프랑스 그리고 미국이 치외법권을 누리는 조차지로 국제적인 도시로 변하였지만 사회주의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상하이는 홍콩의 그늘 속으로 빠져들어 그리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하고 있었다. 국제도시로서의 상하이의 위상은 중국의 최대 무역항으로 중국경제발전의 한 축으로만 남아있게 되었지만 김정일이 놀란 상하이의 천지개벽의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는 않은 것 같다.
중국이 반세기 동안 우리의 적대국으로 지내왔기 때문에 상하이도 멀게만 느껴왔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타이페이 보다도 더 가까운 곳으로 비행시간이 1시간30분 정도에 불과한 이웃인 것이다. 상하이의 푸동공항의 진가는 첨단 공항시설 보다는 공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독일기술진이 건설한 시속 400km로 달리는 자기부상열차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그러고 보니 우리 나라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만 기차노선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 주변에 들어선 고층건물들도 와이탄에서 바라 본 야경이 홍콩의 야경을 뺨칠 정도로 상하이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상하이를 찾는 여행객은 누구나 찾는 곳이 되었다. 와이탄의 변화는 황포강 아래로도 이어진다. 와이탄과 푸동을 황포강 아래로 무인조정케이블카로 연결하는 해저터널은 마치 나이트클럽에 들어온듯 레이져조명이 터널 내벽을 화려하게 수놓아 기존에 갖고 있던 상하이의 인상을 완전히 뒤바꿔 놓는다. 동방명주방송탑에서 황포강을 건너 와이탄 지역을 바라보면 외백대교(와이바이두) 쪽으로 흉물스럽게 세워진 인민해방탑을 제외하면 상하이의 역사가 스며든 유럽풍의 건물들이 강변을 따라 늘어서 있고 그 뒤로 새로 세워진 고층건물들이 병풍처럼 버티고 있는 것이 상하이의 어제와 오늘을 한 눈에 보는 것 같다. 와이탄의 한쪽 끝 인민해방탑 아래 위치한 조그만 황포공원은 150년 전에 영국인에 의해서 세워진 상하이 최초의 근대식 공원으로 공원 자체보다는 예전에 이곳에 중국인과 개는 출입금지 구역이었다는 뒷얘기에 초점이 맞춰져 소개되고 있다. 그 만큼 당시에 유럽인이 중국인을 얼마나 하찮은 존재로 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 옆에 있는 상하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의 하나인 외백교도 그 뜻이 외국인은 무료로 통행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와이탄 뒤로 얼마 들어가면 명나라 시절의 공원이 잘 보존된 위위엔(예원)이 나타난다. 아무리 상하이가 국제적인 도시라 해도 중국에서 차이나타운을 찾는 것이 이상하겠지만 위위엔은 400년의 역사를 지닌 상하이에서 가장 중국다운 곳이다. 원래는 중국의 도교사원으로 지은 것이지만 가운데 인공호수와 이를 지그재그 형태로 가로지르는 다리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데 지금은 그 주변이 상하이에서 가장 분주하게 돌아가는 시장으로 남아있다. 위위엔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민속공연도 중국무협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중국의 전통무술과 무용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위위엔 주위의 주택가 골목에는 양지바른 곳에 담소를 나누며 수예품을 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정겨운 모습과 함께 마작판을 벌이는 주민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띤다. 마작판에 올려진 동전들을 보니 그리 판돈은 크지 않은 것 같지만 도박을 즐기는 중국사람들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인민광장 정면에 새로 지은 상하이오페라하우스도 중국 전통의 경극만을 생각해온 이미지와 종합예술의 하나인 오페라에서 느끼는 중후한 분위기를 완전히 탈피하여 최첨단의 디자인으로 지은 대형컨벤션센터의 모습이다.
중국에서 오랜 동안 자유로운 여가생활이 제한된 상태에서 대중댄스가 공개적인 레져생활의 하나로 자리잡아온 것 같다. 옛날 만주제국의 중심지였던 장춘에서 찾은 조선족 일요일 모임에서도 공식적인 학습에 들어가기 전과 후에 한국가요에 맞추어 춤 선생의 리드에 따라 단체로 춤을 추는 모습을 보았고, 인천시 치과의사회와 국제교류문제로 방문한 웨이하이시에서도 늦은 밤 시청광장에서 카세트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시민들을 보았지만 상하이에서는 태극권을 즐기는 시민들 못지 않게 이른 아침부터 사교춤을 추는 모습은 보니 변화하는 중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간직하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아침 9시가 되니 인민광장에서 상하이오페라하우스와 마주보고 있는 시립박물관에서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나와 방송에서 나오는 음악에 따라 체조를 하는데 학창시절의 조회시간을 떠오르게 한다. 직원들뿐만 아니라 출근길의 시민들도 가방을 내려놓고 공간만 있으면 여기 저기서 함께 참여하는 모습을 보니 단체행동에 익숙한 사회주의에 젖어온 생활을 엿보는 듯 하다.
도심에서 좀 벗어나니 상하이 서민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육교 아래의 자전거 보관대를 보면 아직 상하이 중심지를 제외하면 서민들의 교통은 자전거가 책임지고 있으며 자전거를 타고 통학하는 학생들의 목에는 예외 없이 사회주의의 상징이기도 한 빨간색 머플러를 두르고 있다. 네거리의 한 모퉁이에 있는 신문게시판에 지나가는 시민들이 모여들어 그 날의 소식을 찾아보는 광경도 중국다운 모습이다.
임시정부가 있던 집은 빨간 벽돌집으로 그 내부에는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의 요인들의 사진과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곳곳을 둘러보면 전시할 물품이 모자라는 것도 아니고 이곳을 찾아온 정치인들이 사인한 것도 버젓이 관람객 눈에 뜨여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데 상하이 뿐만 아니라 중국의 모든 대도시들이 개방의 물결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데 이곳에까지 와서 구태를 못 벗는 우리 정치인들의 추태를 보니 씁쓸한 생각을 가지고 상하이를 떠나게 되었다. |
첫댓글 ㅋㅋㅋㅋㅋ....우리여기 다 가본데네.....나의 초이스는 정말 센스가 있다니까....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