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 가사 문학의 산실 - 담 양

[김덕현]

 

송강 가사 문학의 산실 - 담 양

  1. 떠나본 자만이 느낀다.

“훌쩍 떠나본 자만이 느낀다.”라고 했던가? “버리는 사람만이 얻는다.”라고 했던가? 남해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찻간에서 우리는 도란도란 이런 말들로 일탈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참으로 빠르게 훌쩍 지나간 한 학기였다. 그렇지만 모름지기 일은 처음과 끝이 있는 법인데, 의미 없는 한 학기의 마침표를 찍고 싶지 없었다.

7월 20일 정오에 창원을 출발하여 담양의 환벽당, 식영정, 가사문학관, 소쇄원, 송강정, 면앙정 등 가사문화권을 돌아오는 빠듯한 여정이지만, “정말 떠나오길 잘했다.”며 이구동성 연발하는 탄성은 점점 낮아지는 전라도의 부드러운 산세 때문일까? 아니면 배달말을 잘 부려쓴 가사문학의 일인자 송강의 흔적을 만날 것이라는 설렘 때문일까?

한국 고전의 3대 시인이자 가사문학의 일인자－송강. 그는 붕당의 소용돌이가 극심했던 16, 17세기를 살면서 정치적인 부침(浮沈)을 거듭하는 파란만장한 일생 속에서도 찬란한 문학의 꽃을 피웠다.

송강 정철(鄭澈, 1536～1593)의 작품을 일컬어 김만중은 “우리나라의 참문장은 단지 이 세 편밖에 없다(左海眞文章只此三編).”라고 하여 그의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 세 작품을 최고의 자리에 올렸다. 서포 김만중의 작품 선정의 변을 정리하면, “모두들 남의 나라글(한문)을 흉내내기에 급급한 시대에 우리말을 자연스럽게 부려썼다는 점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최고봉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정철 문학의 산실을 탐방한다는 것 자체가 배달말 교육을 담당하는 우리들에게 큰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주단처럼 편안한 호남고속도로 ―.

토요일 오후 담양을 향해 달리는 시간은 흡사 ‘옛날로의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퍼득퍼득 지나가는 이정표 ― 곡성, 옥과, 담양……. ｢열녀춘향수절가｣에서 더욱 낯익은 지명들. 이제 그 옛날 이름 없는 묵객으로 돌아가 당대의 가객들과 풍류를 즐기고 있는 몽상에 빠져 있을 때 우리를 태운 차는 벌써 담양 읍내 방향으로 접어들어 좌우를 갸우뚱하고 있었다.(아! 생각보다도 더 빠르게 살아가는 현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현실, 그러나 빠르지 않으면 적응하기 힘든 현실이여!)

  2. 송강문학의 텃밭 - 창평

너무 쉽게 달려온 담양 창평(昌平). 송강이 정치적 출사와 낙향을 거듭한 가운데 주옥같은 작품을 창작한 곳이 이곳 창평이다. 

한양에서 출생하여 두 누님과 막내 누이가 궁실로 출가한 덕분에 순탄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송강은 그의 나이 10세(1545) 되던 해, 집안은 을사사화로 형은 유배되어 죽고 부친은 귀향 가는 신세가 된다. 그러다가 송강의 나이 16세, 부친이 유배에서 풀려 자리 잡은 곳이 바로 조부 위(潙)의 산소가 있는 전라도 창평이었다.

송강이 26세 때 진사시험에 일등을 하고 이듬해 3월 문과 별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기까지 10여 년을 이 창평에서 살게 된다. 그후 순조로운 벼슬살이를 하던 중 35세에 부친상을, 38세에 모친상을 당하여 경기도 고양 신원(新院)에서 시묘를 한 후 40세인 선조 8년 10월에 창평에 내려오게 된다.

낙향과 출사를 반복한 정철에게서 있어 창평은 정치적으로는 실의의 공간이면서, 술과 풍류를 즐기며 자연을 벗하고 학문을 익히며 문학 작품을 창작했던 공간이었다. 43세에 조정에 출사하였다가 다음 해 다시 낙향한 송강은 “강호(江湖)에 병이 깊어”(자연을 사랑하는 병이 깊어) 이곳 “죽림(竹林)에 누웠다.”고 노래했다.

송강의 나이 45세 정월, 선조께서 관동 팔백 리의 방면(800리나 되는 강원도 관찰사의 임무)을 맡아, “어와 성은이야 갈수록 만극하다.”고 외치면서 일사천리 연추문(경복궁 서쪽문)으로 달려들어 치악산(원주), 소양강(춘천)으로 향하는 모습에서 역동적인 가운데 그의 진솔함과 시원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에너지의 충전소가 송강에게는 이 창평이였던 것이다.

  3. 전후 미인곡의 산실 - 송강정

창평과 송강에 대한 화제들이 분분한 가운데 계획에 없던 ‘망월동’ 이정표를 발견하고 놀라워하며 한참을 되돌아와서 찾은 송강정(松江亭)!

어렵게 구한 것이 귀하다고 했던가! 힘들여 찾은 송강정은 ―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 ― 200여 가파른 돌계단 위에서 죽록천(竹綠川)과 넓게 펼쳐진 들판을 의연히 굽어보고 있었다.

정자의 정면에는 송강정이라는 현판이, 그 측면에는 죽록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어 원래 이름이 죽록정(竹綠亭)이었음을 말해준다. 또 죽록천을 따로 송강(松江)이라고도 불렀는데 정철의 호인 송강은 여기서 따온 것이다.

45세 정월에 성은에 감격하며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고, 다음해 병조참판, 대사성을 지내지만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또다시 창평으로 내려오게 된다. 또 몇 개월만에 중앙의 관직에 복귀하게 되지만 동인들의 탄핵을 받아 50세 무렵 다시 창평으로 낙향하게 된다.

이 무렵 약 4년 동안 송강은 자연을 벗삼아 독서와 풍류를 즐기면서 시 창작에만 전념하였다. 이때 그가 지은 것이 송강정이다. 이 곳에 머문 기간은 정치적으로 실의와 역경에 처했던 시기에 해당하지만, 문학적으로는 그 아픔을 딛고 주옥같은 작품을 산출한 시기였다. 서포 김만중이 ‘동방의 이소(離騷)’라고 일컫는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비롯하여 수많은 시조들을 여기서 창작하였다. 이 전후 미인곡은 연군류 시가의 모범이 되고 있으며, 특히 속미인곡은 대화체 형식으로 문학성이 더욱 돋보이는 작품으로 꼽는다.

송강정 주변의 대나무를 보니 사미인곡의 “일모수죽(日暮脩竹)의 혬가림도 하도 할샤”(해가 저문 때에 긴 대나무에 의지하여 생각할 일이 많기도 많구나!)라고 한 정철의 고뇌가 느껴지고, 굽은 노송은 당시의 애절함을 증언하는 듯했다.

지금 송강정 주변에는 퇴락한 플래카드가 너풀거리고 있다. 송강정이 인근에 큰 도로를 내는 계획에 의해 그 봉우리 한쪽이 잘려 나갈 지경인가 보다. 세월이 흐르면서 소실되어 그 흔적만 남아 있던 송강정을 영조 46년(1770)에 후손들이 언덕에 소나무를 심고 정자를 다시 중수했다는 것을 돌이켜 볼 때 참으로 아둔한 존재가 현대인(?)이라 생각하며 송강정 돌계단을 무겁게 터벅터벅 내려 왔다.

4.  죽향․문향․사림의 고장 - 담양

송강정을 떠나 정철문학의 발생의 근원지이자 호남가단의 중심지인 환벽당과 식영정으로 향하는 길가에는 7월 한여름 배롱나무가 바알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7월이 되면 나무 아래쪽으로부터 피어오르기 시작하여 9월까지 백 일간 붉은 빛을 발한다고 하여 백일홍이라 부른다.

목백일홍이라는 딱딱한 말보다는 순수한 우리말인 배롱나무가 어감이 좋게 느껴진다고 뒷자리에 탄 ‘ㅈ’선생님이 한 마디 거든다. 그말에 어느새 나도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나도 그라～지라 요～잉. 배롱배롱......

환벽당, 식영영, 소쇄원으로 향하는 길 오른쪽엔 솔숲 사이로 언듯언듯 너른 광주댐의 푸른 물이 넘실대고 있었다. 그 옛날 임억령, 송순, 김인후, 양산보, 김성원, 정철, 기대승, 김덕령 등 호남의 인물들이 거닐었을 그 곳엔 이제 광주호가 자리하고 있다. 인공의 댐 건설로 인해 석병풍, 자미탄(紫薇灘)은 매몰이 되었다. ‘자미’는 목백일홍나무의 별칭이고 ‘탄’은 여울이라는 뜻이니, 그 옛날 깎아 지른 석병풍과 배롱나무가 발갛게 핀 사이를 창계천이 유유히 흘러 가는 정경, 거기서 문학과 사상을 논했던 인걸들의 모습도 이젠 호수 속 전설로 남게 된 셈이다.

광주호반 끝닿은 창계 원류에 다다를 무렵 커다란 기념관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풍류와 자연애의 고장 담양이 자랑하는 명물로서 2000년 10월에 완공된 ｢가사문학관｣이다.

전라남도 북쪽에 위치한 담양은 대쪽같이 올곧은 선비정신을 이어받은 조선시대 사림(士林)들이 누(樓)와 정자(亭子)를 짓고 빼어난 자연 경관을 벗삼아 시문, 특히 가사문학의 꽃을 피웠던 곳이다.

호남가단의 터잡이 송순의 ｢면앙정가｣로부터 정철의 ｢성산별곡｣,｢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을 비롯하여, 이서의 ｢낙지가｣, 정식의 ｢축산별곡｣, 남극엽의 ｢향음주례가｣,｢충효가｣, 유도관의 ｢경술가｣,｢사미인곡｣, 남석하의 ｢백발가｣,｢초당춘수곡｣,｢사친곡｣,｢원유가｣, 정해정의 ｢석촌별곡｣,｢민농가｣, 작자미상의 ｢효자가｣ 등 18편의 가사가 전승되고 있는 점에서 담양을 가사문학의 산실로 부르기에 충분하다.

가사문학관이 위치한 곳이 담양군 남면 지곡리 319번지, 송강은 바로 이 성산 아래 지곡(芝谷-지실마을)에 살면서 송순 문하인 김인후, 기대승, 양응정에게  학문을 배우고, 호남의 사종(司宗)으로 일컬어지는 석천 임억령에게 시를 배웠다. 

웅장한 가사문학관을 들어서면 만들어진 인공호수엔 잉어떼가 몰려다니고 있었고 전시실에선 그 옛날 유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의 호탕한 기상은 느낄 수 없고 경직된 진열품으로만 만족해야 하는 안타까움.

더운 7월의 오후 ― 문득 떠오른 ｢장진주사｣ 첫 구절,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 아! 구절이 더욱 간절한 것은 단지 목에 차 오르는 갈증 때문일까?

자신의 갈등을 호쾌하게 풀어내는 호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 번쯤 가져야할 기개가 아닐까? “북두성(술잔)을 기울여 창해수(푸른 동해의 물=술) 부어내어” 술을 권하는 송강의 스케일! 이 시대의 송강이 아쉽기만 하다.

5.  환벽당, 소쇄원, 식영정에서 무르익는 시심

가사문학관의 왼쪽 길 건너 창계(滄溪)를 건너면 환벽당이 보인다. 환벽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 지붕 목조기와 건물로 사촌 김윤제가 나주목사로 있던 중 을사사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낙향하여 창건한 것으로 6.25 이후 복원하여 광주기념물 1호로 지정되어 있다.

담양 창평의 지실마을에 가족들과 함께 내려온 16세의 송강, 그 때까지 유배를 거듭한 부친을 따라다니느라 공부를 거의 못한 송강이 비로소 창평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27세에 관계로 나갈 때까지 유숙하면서 수련했던 곳이 바로 이 환벽당(環碧堂)이다. 송강은 환벽당의 주인인 김윤제의 제자가 되고, 17세에 그의 외손녀인 문화 유씨 강항의 딸과 혼인하게 되는데 그 유래는 이러하다.

송강이 모친과 함께 순천에 은거한 둘째형의 집으로 가던 중 날씨가 무더워 환벽당 아래 계곡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낮잠을 자던 김윤제는 용 한 마리가 나무에 올라가는 꿈을 꾸고는 이상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냇가로 나가보라고 했다 한다. 이때 이끌려온 소년이 바로 송강인데 그의 총명함을 알아본 김윤제는 자기의 문하에 두고 글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유씨와의 결혼도 바로 그가 주선한 것이다.

아! 인재는 인재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송강이 목욕했다는 용소(龍沼), ｢성산별곡｣에 나오는 조대(釣臺)가 환벽당 출입문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철 푸른 소나무 사이에는 ‘조대쌍수비’가 세워져 성산(星山)의 네 신선(임억령, 김성원, 고경명, 정철)이 이곳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시를 읊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고 창계에 마음의 낚시를 드리워 보지만  다음 여정으로 떠나야할 마음이 너무도 조급하구나.

벌써 오후 6시, 여름이라 아직 어두워지는 시간은 아니지만 건너편 식영정보다는 한국의 대표적 원림인 소쇄원(瀟灑園)을 좀더 밝을 때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그곳으로 향했다. 

인공적인 조경작업을 통하여 꾸민 것이 정원이라고 한다면 원림은 동산과 숲을 자연상태 그대로 조경으로 삼으면서 적절한 위치에 집칸과 정자를 배치한 것이 원림(園林)인 것이다.

원림 소쇄원은 조광조의 제자 양산보(梁山甫:1503～1557)가 낙향하여 30대에 조성하기 시작한 후 40세 때 송순의 도움으로 완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연의 풍치를 그대로 살리면서 곳곳에 인공을 가한 멋진 공간에서 기대승, 송순, 정철, 백광훈, 고경명, 김인후 등 조선에서 내로라는 시인, 묵객, 문사들이 문학과 사상을 논했던 것이다.

소쇄원 입구 대나무 사잇길을 들어서는 우리는 모두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왜냐하면 대나무 길을 넘어서는 것이 흡사 무릉도원으로 들어가는 환상적인 느낌을 공통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이 입구를 통과한 모두는 신화의 입사식을 끝낸 신선처럼 광풍각을 향해 거니는데…….

어～이! 이 보드라～고 잉.

아! 단꿈을 깨우는 그 한 마디. 관람시간 이제 다 끝났단 말에 우리의 꿈은 현실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돌아서 식영정을 향했다.

식영정은 환벽당 맞은편 300 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다. 식영정으로 오르는 길 입구에는 후손들이 송강의 문학을 기리기 위하여 ‘송강 정철 가사의 터’라는 탑을 세워 놓았다. 탑을 왼쪽 계단으로 식영정을 오르니, 정면 두 칸, 측면 두 칸의 골기와와 팔작지붕에 한 칸짜리 서재와 넓은 툇마루로 구성된 식영정의 모습이 완연하다.

식영정은 서하당 김성원이 그의 장인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1560년에 지은 정자인데, 지명상 담양군 남면 지곡리 성산(星山)에 위치하고 있다. 식영(息影)을 직역하면 ‘그림자도 쉰다.’는 말이 되지만, 원래 ｢식영정기｣에 나타난 서하당과 석천의 대화에는 ‘그림자도 쉬고 있다.’는 뜻으로 새기고 있다. 말하자면 세속을 떠나 자연에 묻혀 사는 삶을 뜻하는 낱말일 것이다.

송강은 ｢식영정이십영｣, ｢잡영｣ 10수 등을 지어 식영정 앞에 흐르는 시내와 펼쳐진 산야의 빼어난 경치를 묘사하였고 이 곳을 배경으로 성산별곡을 지었다. 시원스레 내려 보이는 광주호반, 정자를 에워싼 키가 훤칠한 아름드리 노송들이 당시의 모습은 아니어도 참으로 빼어난 풍광이었다.

어두워져 가는 광주호반을 내려보며 말없이 식영정 마루에 걸터 앉아 본다. 그리고 그 옛날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다간 시인들을 생각해 본다.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고 자연과 함께 한 사람들. 자연 사랑의 병이 고칠 수 없다고 하며 물욕을 억누른 사람들. 밖이 아니라 끊임없이 내면 수양에 힘쓰며 순리를 따른 사람들의 얼굴들이 스쳐 간다.

 6. 신선 송강과 작별하고 오는 길

‘성산별곡’의 가장 직접적인 창작 배경이 된 식영정을 내려와 부용당과 서하당을 둘러보고, 이젠 머물고 쉴 곳(息影)이 아니라 먹을거리를 찾아(食營) 광주호반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반세기 전, 출사와 낙향을 거듭했던 송강은 이 어디쯤 난 길을 통해 한양을 오르내렸겠지? 그리고 이 산천을 변치 않고 출사의 기쁨과 낙향의 처절함을 함께 한 벗으로 여겼으리라. ｢관동별곡｣에는 상계의 신선(神仙)인 자신이 온 백성들에게 고루고루 사랑을 베풀겠다고 하는 호연지기가, ｢속미인곡｣에는 자신이 너무 임에게 버릇없이 굴다가 임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다고 자탄하는 여성스러움이 나타난다. 이와 같이 카오스와 코스모스적 사고를 교직(交織)할 수 있었던 심리적 배경엔 송강이 늘 의지할 마음의 고향인 변치 않는 자연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지금 광주호반의 야경은 그 옛날 도포를 입고 풀밭 길을 헤치며 스적스적 걷던 어두운 밤길도 아니고, 지줄대며 흐르는 창계의 물소리를 들으며 한없이 기다릴 줄 알던 그 넉넉함도 아니다. ‘인사(人事)는 변해도 자연은 변치 않는다.’는 평범했을 진리 대신에 ‘자연도 필요하다면 바꿔야 한다.’는 저돌성이 자리하고 있다.

오페라하우스 같은 원형 극장식 카페, 서부의 통나무집 같은 식당들이 쏟아내는 현란한 네온 불빛을 보며, 과거 속에 현대가 아니라 현대 속에서 잠시 몽상하는 과거를 느끼며 현대와 과거가 조화를 이룬 현재이기를 갈망해 본다. 또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 경상도와 전라도 담양이라는 공간을 넘나든 답사를 통해 이 시대의 송강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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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락문학> 기고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