內내 佳가 山산 怡이 野야
내 안의 내가 아름다운 산이요, 즐거운 들판이다.
적어도 나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산과 들이란 내가 만나고 접하고 부대껴야 내 것이 되고 내가 되는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산을 내 것으로 만들고픈 욕심의 발동에서 이번에는 아내와 친구들과 중국의 타이산(泰山)을 찾았다.
나의 작은 꿈 중의 하나는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 그리고 해외산행이다. 국내여행도 많이 해보았고, 국내산행도 많이 해보았다. 이번 태산은 아내와의 첫 번째 해외산행이다. 그 동안 나는 혼자서 여러 차례 해외산행을 했다. 늘 미안했고 언젠가는 함께 다니리라 마음 먹었다. 처음에는 안 가겠다고 했다. 동부인할 친구가 몇이냐고 물었다. 10여명이 된다고 거짓말을 해가며 어르고 달래고 꼬시고 유혹하고 사정사정하여 겨우 같이 가기로 했다. 친구들은 나와 아내를 위해서 동행해 주는 것으로, 나와 아내는 친구들을 위해서 기꺼이 동행해 주는 것으로 착각을 하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있는 최고의 산여행을 꿈꾸며 태산을 향해 인천공항 하늘을 날아 올랐다.
올해는 경복49산우회가 발족된 지 15주년이 되는 해이다. 10주년이 되는 해에는 황산으로 해외산행을 했다. 그 때는 회사일로 참여를 못했지만, 이 번만큼은 만사를 제쳐놓고 반드시 아내와 함께 가기로 마음을 먹었고, 신기하게도 현실로 이루어졌다. 많은 친구들이 동부인했으면 더욱 좋았으련만 어쩔 수 없이 한영동 유일근 나 세 부인만 동행하게 되었다. 그나마 아내 홀로가 아니었음이 천만 다행이다. 아니, 혼자였다면 여왕 대접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지나친 욕심이었겠지만 아무튼 아내와의 첫 해외산행이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내의 몸과 마음이 조금도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신경을 썼다. 그렇다고 평상시 잘 못해준 것에 대해 전부가 보상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동부인한 일근이나 영동이도 나와 똑 같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음을 알고 있다.
산을 즐기는 방법은 사람마다 각자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五感(視聽嗅味觸)과 마음(心)을 총동원해야만 산을 내 것으로 만들고 내가 산이 될 수 있다. 이번 태산산행에서는 視聽嗅味觸心을 최대한 활용하여 산을 오른다.
여행가이드와 등산가이드를 포함하여 20명의 대원이 행화촌이라는 마을에서 버스를 내린다. 그 사이 가이드의 설명은 내가 아는 만큼만 들리고 나머지는 듣자마자 잊혀진다. –사랑하면 보이나니, 보이면 알게 되나니 –누군가가 그랬다.
주변의 이목 때문에 빠른 행동으로 마을 속으로 스며든다(08:15). 태산이 내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기본등산로를 이용할 경우 일인당 이 만원의 입장료를 내야 한단다. 그러나 우리는 입장료 때문이 아니라 남들이 잘 모르는 절경을 찾아 오로지 우리만의 산행을 위한 산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임승권 통역사의 도움으로 노여사가 위생간을 핑계삼아 동네 아줌마와 인사를 나눈다. 가정집 위생간의 모습이 어떤지 궁금하다. 짧은 미로형 동네골목을 지나니 산줄기가 보인다. 왠 노인이 좌측 언덕 위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승권이가 대꾸하지 말고-중국말을 모르니 대꾸할 능력도 없다-모른척하고 등산가이드인 呂선생만 따라 우측으로 가란다. 갑자기 일행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조용 가이드를 졸졸 따라간다. 중국촌부는 여전히 소리를 질러댄다. 대충 느낌은 산길 초입을 알려주려는 것이었고, 우리가 가는 길은 조금 틀렸으니 자기가 있는 쪽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결국 촌부를 다시 만났고 짧은 구간 동안 촌부는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그다지 도움을 받았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마음만은 고맙다. 가이드가 인사치례로 캬라멜 한 곽을 건네니 고마워하며 손을 흔들어준다. 내가 사진까지 찍어주니 손으로 V자를 만든다. 가이드 둘, 그리고 중국이 고향임을 강조하는 승권, 영주, 한우가 촌부의 말을 알아들었음에도 아무런 통역도 없이 그냥 통과한다. 왜 그랬을까? 날씨가 뿌옇다. 안개인지 공해인지는 모르겠으나 시계가 별로 좋지 않다. 별다른 경치도 없다. 약간 황폐한듯한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습에 이름 모를 과실수가 심어져 있다. 밤나무 꽃은 시들어 특유의 냄새는 돌아다니질 않는다.
날씨가 더워 쉬엄쉬엄 오른다. 새까맣게 깔려있는 염소똥이 우리를 반기며 길은 제법 경사가 가팔라진다. 전 인원이 함께 산행할 수 있도록 선두에서 영수가 계속 뒤를 돌아보며 속도조절을 한다. 발걸음이 빠른 남재와 범섭이가 조금 답답했을 지도 모르겠다. 물을 많이 챙기라고 힘써 이야기하던 승권이의 말이 현실로 들어나기 시작한다. 당장 목이 마르니 아껴서 먹어야 한다는 생각도 못한다. 2인 분을 짊어진 나로선 대단한 영광이다. 서울에서부터 케이블카를 주장하던 윤여사는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아주 여유롭게 잘도 오른다. 케이블카팀으로 굳게 합의를 보았던 노여사 역시 사뿐사뿐 잘 오른다. 모두가 헉헉대며 다시 휴식에 들어간다. 우리가 택한 등산로와 구성원의 상태를 잘 아는 승권이가 반 강제 반 권유로 일부 인원이 하산해야만 한다고 소리 높여 강조한다. 산행시작 한 시간 반 만에 1/6지점에서 기로에 놓인다. 스스로는 천희와 승권이가, 강제로는 종욱이가, 권유로는 영동(현명하게도 배여사는 처음부터 케이블카였다)이가 하산을 한다. 이들은 버스와 케이블카를 타고 태산정상을 오르기로 한다. 자랑스런 노여사 윤여사는 본인은 물론 어느 누구도 케이블카팀에 합류할 것을 선택도 강요도 권유도 않는다. 참으로 대단하고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 우리 모두의 자랑이다. 경복산학회(4박5일간 우리일행을 태우고 다닌 버스 전면에 ‘경복산학회’라고 쓰여있어서 괜찮다 생각하고 임시로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의 부인자격으로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갖춘 아름다운 어부인들이다. 하산팀으로부터 그들이 소지했던 물과 식량을 건네 받고 우리는 다시 오른다. 태산은 두발로 올라야만 큰 泰산이고, 편안한 泰산이고, 너그러운 泰산이고, 거만 떨고 교만한 泰산이다. 우리는 태산이 간직하고 있는 태고의 신비와 비경을 찾아내야만 한다. 태산은 태산답게 우리의 오름짓을 결코 쉽게 허락하질 않는다. 충분한 대가를 치르며 오른다. 하산하던 승권이가 갑자기 우리를 부르는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기다린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 지는 듯 한데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왠 일일까? 잠시 고민했지만 염소몰이꾼의 염소 부르는 소리였다. 얼마쯤 올랐을까? 일행은 가이드에게 자꾸 묻는다. 1/6? 1/5? 1/4? 알 수 없는 부정확한 우리의 위치로 더욱 힘들어들 한다. ‘묻지 마라! 그리고 현재를 즐겨라! 이 좋은 산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어지도록 노력해라!’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드디어 태산의 진면목이 눈 앞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름을 알 수 없는-차라리 모르는 편이 낫다- 봉우리들이 우리를 압도한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이어진다. 엄청난 급경사를 어렵사리 오른다. 노여사가 수상하다. 일근이가 여유 있게 보호를 한다. 그가 있기에 나도 안심이다. 광연이는 자기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어리광이다. 양교와 영식이는 옆에 있는 듯 없는 듯 조용 조용 잘도 올라 간다. 경사가 끝나고 이어지는 톱니바위능선-내가 이름을 붙였다-길은 정말 존경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저절로 군침이 돌 정도로 마음에 쏙 든다. 양 쪽으로 깊이를 알 수 없는 낭떠러지와 가물가물할 정도로 멀리 보이는 계곡을 끼고 있는 결코 쉽지 않은 바위능선이다. 때론 네 발로 기고 때론 엉덩이를 이용하고 때론 눈을 감고 싶을 정도의 살벌한 모습이지만 좌우 건너편에 보이는 용트림을 하는듯한 칼바위능선과 봉황이 날아 오르는듯한 무명의 능선들이 우리가 태산에 오른 이유를 대변하고 있다. 亞雪嶽山이요, 亞北漢山이다. 가뭄으로 인한 물 없는 깊은 계곡에서 마른바람 무리가 우리에게 인사하러 바삐 올라온다. 머리 속 뼈 속까지 시원하다. 태산 골바람으로 우리는 腦마사지를 받고 心마사지를 받는다. 하산을 해야만 했던 팀들이 함께하지 못함이 안타깝기만 하다. 순간순간의 절경을 눈으로 간직하기 바쁘고 카메라에 담기가 바쁘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이 없건만 /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케이블카 타고 오르더라 //하고 잠시 옛시조를 각색해서 읊어본다. 조선시대에 케이블카가 있었더라면 양사언도 이렇게 읊었으리라. 나도 언젠가는 이 곳에 다시 찾아와 보름달을 애인 삼아 술 한 잔 걸치며 대나무 피리로 세상을 노래하며 밤을 지새운 뒤 칼바위능선을 탐하리라 마음 먹는다. 그러면 나도 신선이 되는건가?
알뜰한 몽상을 하는 사이 윤여사 노여사는 날개 달린 천사처럼 훨훨 날아 겨우 모습만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까마득히 멀리 가버린다. 내 걱정은 전혀 하지도 않고 잘도 간다. 가지 못할 하강코스가 보인다. 철헌이와 군침을 흘린다. 안타깝다. 자일이 없다. 암벽장비가 없다. 한 시간 만에 톱니바위능선길은 끝이 난다. 아쉽고 아깝고 애가 탄다. 모두들 한 시간 동안의 황홀했던 순간을 자랑스럽게 늘어 놓는다. 긴장이 끝나자 ‘야! 염소들만 올라올 수 있는 곳을 한우가 어떻게 따라 올라왔냐?’하는 한길이의 우스개 소리에 모두가 배꼽을 잡고 박장대소를 한다. 그리고 다시 오른다. 아직도 500M정도 고도를 올려야 한다. 잡목 숲을 통과한다. 누군가 자꾸 뒤를 따라 오는듯하여 뒤를 돌아볼 때면 그녀(山)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바짝 따라온다. 또 다시 뒤돌아 보면 또 다른 모습으로 유혹하며 나의 발목을 잡는다. 정말 가기 싫다. 그러나 앞서간 윤여사가 부른다. 나는 윤여사를 따라가야 한다. 비가 온다. 대국의 태산답게 빗방울이 굵다. 우산을 쓰고 비옷을 입고 배낭커버를 씌우고 마지막 구간을 오른다. 이 비는 태산의 옥황상제께서 하사하시는 선물이다. 뜨겁던 몸을 식혀주고 흐릿하던 시야를 맑게 해주고, 그런데 살짝 춥다. 비가 서서히 그친다. 멀리 계단이 보인다. 산으로서의 태산이 끝나는 지점에 출입금지 간판이 소리 없이 우리를 야단치고, 역사 속의 태산이 시작된다. 나는 태산의 역사는 모른다, 다만 산으로서의 태산의 위용을 조금은 알고 있다. 태산은 산이 아니라 神이었다. 겨우 산줄기 하나를 산행하고서 태산을 노래한다는 것은 엄청난 과오다. 無字䠋를 세울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을 이해할 수가 있다. 또 역대 왕조가 封禅儀式을 거행한 이유를 알만하다.
천 년을 버틸 수 있도록 잘 만들어 놓은 돌계단을 밟으며 이를 만드느라 수고하고 고생한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그들은 역사를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나를 위해서? 그 일을 했을까? 위황딩(玉皇頂)에 오르자 또 다시 비가 내린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빠글빠글하다. 날씨와는 상관 없이 중국인들은 평생 한 번은 태산에 올라야만 하는 모양이다. 아무도 눈여겨 보아주지 않는 등산화에 등산복 차림은 의기양양하게도 우리 뿐이다. 景福山學會 만세다. 케이블카팀을 만나 점심을 먹으며 짜릿하게 즐겁던 톱니바위능선을 회상하는 소리가 아주 자랑스럽게 들린다. 나는 내 아내 윤숙영과 함께 태산을 올랐다는데 대해 모든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두 아가씨 덕분에 산행이 더욱 아름답게 빛났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슬프게도 하산길은 케이블카 7분과 버스 17분으로 끝나고 말았다. 오호 통재라! 오호 애재라 ! 이를 어찌할꼬?
2011.06.18. 金 基 寅
첫댓글 泰山이 그 태산이었어요? ^^ 울메나 높은지 가볼걸 그랬나..... 사진을 보니 갑자기 아쉬어질라하네요.
멎진 산행이었군! 그동안 열심히 준비한 임박사와 김회장님 수고가 많았네요. 그리고, 山學會(山友會와는 다른 조직?) 회원님들의 뿌듯해 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추카.....(다만 유감은 金基寅 神仙의 산행기가 넘 야하다는 것. 웬만한 총각의 연애편지도 못 따라올 정도로...ㅎㅎ...尹 처녀 좋겠다...)
숙영아가씨와 인숙아가씨를 부러워 하며 영자는 마음이 태산이어서 태산을 못가본 심정 가슴아퍼라.... 꼭 가보고 싶은 태산이여라. 다음기회가 또 찿아올 런지요....
산행기 와 사진만 보아도 태산을 다녀온 기분 입니다. 모두 무사히 잘 다녀 오심을 감사 드리면서. 모두 수고 하셨습니다.
비싼 돈 들여 갔기에 다들 후회 없도록 장황하게 화려하게 그럴듯하게 글을 썼읍니다만 사실 우리의 설악산만 못하고 북한산을 조금 뻥튀기 해놓은 정도 입니다. 너무 부러워 마시고 다음 기회에 더 좋은 곳을 여행하게 되면 그 때는 꼭 같이 가도록 하시지요.
넹 ~ ^*^ 명가이드와좋으신분들과의 나들이 아쉬움이죠.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