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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회 감정의 유희(遊戱) +++++++++++++++++++++++++++
*같이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일년동안 그녀와 한 사무실에서, 칸막이 하나를 사이를 두고 같이 생활해 왔다. 내가 처음 부임하던 날, 뜻밖의 눈맞춤, 그녀와의 어떤 예감,
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그녀와 부딪칠 때마다의 떨림,
나의 이런 숨겨진 마음, 기심(欺心,dception)을 그녀가 눈치챌까 봐
무척이나 조심했고, 전전긍긍했다.
어떤 때는 6,7M 정도 떨어져 있는 부속실에 근무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고 싶어
안절부절할 때가 많았다.
가끔은 볼 일없이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면서 일부러 그녀의 얼굴을 훔쳐
본 적도 있었다.
어느 시인의 시(詩)처럼,
"같이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를 지나서,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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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열기속에서
어느 날 밤이었다. 그녀가 낮에 미결된 업무적인 일을 보고하느라 전화를 걸어 왔다. 그녀는 편안히 쉬실텐데, 밤에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얘기했다. 그날 밤 나는 두블럭 떨어진 그녀의 아파트와
보이지 않는 어떤 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녀의 전화를 받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생각에 젖었다. 그녀는 왜 밤에 전화를 했을까..
꼭 전화하지 않아도 될 일을 가지고,
밤에 전화할 정도로 시급을 다투는 일도 아니였는데...
혹시..... 또다시 전화가 걸려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고!
끝내 전화가 없어, 심지어 내기 무슨 자연스러운 전화 걸 명분이 없을까,
하고 고민했다.
그녀의 음성이라도 한번 더 듣고 싶은 욕망에
전화기를 들었다놓았다를 반복하며, 참느라 밤새 곤욕을 치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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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사병인가?
하루종일 같이 지내고도 저녁에 홀로 아파트에 돌아오면
그녀 생각이 자동적으로 났다. 생각을 막을 수가 없었다.뇌에서 하는 일,누가 막겠는가?
이게 상사병인가?
잠 들기전에 항상 그녀 생각으로 잠이 들었고,
아침에 깨면 바로 그녀 생각이 났다. 아침에 출근하여 그녀를 보면 아무렇지도 않는듯 시치미를 뗐다. 그녀가 명쾌한 근무복장으로 아침인사를 할 때에는
엊저녁 밤새 혼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폈던 것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풍기는 업무적인 분위기때문에,
그 전날 밤이 주는 묘한 분위기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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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의 돌연변이
이것이 사랑의 감정인가, 욕망인가? 사랑과 욕망을 딱 잘라 이분법(二分法)으로 구분할 수는 없지만,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중년의 주책이다.
내 자신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돌연변이다.
이렇게 확실한 감정은 일생에 한,두번 밖에 안온다는데, 이제와 이 나이에 첫사랑과 같은 열정에 휩싸이다니.... 내 몸안에 사랑을 관장하는 도파민 호르몬이 날개를 치고 있었다.
그녀는 20대 중반의 젊은 처녀이고, 나는 40대 후반의,
무엇보다 한 가정을 가진 유부남이다. 또한 그녀와 나는, 소위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가장 통속적인
"여비서와 사장"과의 관계이다.
흔히 비평받는 불륜 드라마의 대표적 소재이다. 돈많고, 나이 많은 사장과 젊고 아름다운 여비서와의 관계,
여기에는 인격이나 사랑이 끼어들 틈이 없다.
돈과 욕망, 서로의 이해타산만 존재할 뿐이다. 만약 내가 어떤 시도를 한다면,
이것은 전형적인 직장 상사에 의한 부하 여직원의 성희롱(性戱弄)사건이다.
불륜이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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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틈새와 빈틈
그래서 나는 지난 일년동안 내 자신과의 피나는 싸움을 해왔다. 나는 언제든지 "사장"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그녀를 유혹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아는 나이(年齡)였다.
자연스럽게 같이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기회도 여러 번 있었다. 그녀는 틈새와 빈틈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가을 날이었다. 직장건전모임으로 볼링동우회 멤버들과 어울려 볼링을 치고난 후,
술을 곁들여 저녁식사를 했다.
그녀가 볼링을 열심히 배워 내가 속해 있는 볼링회에 가입한 것은 그리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자기가 모시고 있는 상사와 같은 취미를 가지는 것은 조직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직장에서 상사가 바둑을 좋아하면 바둑부가 흥하고,
등산을 좋아하면 등산부에 사람이 몰리는 것은 조직생태학상 흔히 있는 현상이다.
마치,대통령후보자와 같이 산에 몰려다니는 정치인들이
정말 등산을 좋아하는 것인지 의아스러울 때가 있듯이 말이다. 한번은 내가 졸병으로 근무할 때, 상사가 스쿠버다이빙(scuba diving )을
좋아한다고,
그 당시 우리들에게 정말 생소한 취미였는데, 갑자기 모두들 장비를
구하는 등 난리를 쳤다. 그가 다른 곳으로 전출하자, 모두들 좀 머슥한 기분으로
스쿠버다이빙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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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와 욕망
나는 모방송국의 "토요볼링"에서 본선 2회전까지 진출할 정도로
실력도 갖추었고,좋아했다. 그녀와 나는 한 조가 되어 볼링을 즐겼다.
스트라이크를 치거나 어려운 스페어을 처리하면
서로 손바닥을 맞부딪치며 하이파이브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지난 겨울, 연말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볼링이 끝나고, 기분이 좋아 호프 집에서 모두들 생맥주를 즐겼다. 그녀는 즐거워하며,내 옆에 바짝 붙어 분위기를 돋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술공세를 취했으며,
본인도 어느정도 주량을 과시하였다. 귀엽고,예쁜 여자가 술잔을 권하는데, 누가 그것을 거절할 강심장이겠는가? 독약(?)이라도 마실 판이었다.나도 간만에 취했다. 그녀는 내가 술이 좀 취했다는 명분으로 자신이 숙소로 모시다
드리겠다고 제의했으며,
사장님 혼자 사시는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다며, 속삭이기도 했다. 그 때는 운전기사도 일찍 보내고,택시를 잡아 타야할 판이었다. 그것은 늦은 밤 시간에 그녀와 한방에 같이 있을 기회를 뜻하기도 했다. 나는 얼떨결에 손사래를 치며, 혼자 갈 수 있다고 거절하였다. 그날 밤 집에 홀로 들어와 잠자리를 펴면서,
그녀의 청을 거절한 것에 얼마나 후회했는지, 그녀는 잔뜩 취해 있었는데,억울한 생각까지 들었다.
남자로서 내 어리석은 행동에 통탄을 금지 못했다.
혼자 사는 남자(?)방을 밤늦은 시간에 구경하고 싶다는 말이....확대 해석인가?
그러나, 그녀와는 어떤 연분도 맺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조심했고, 절제했다. 어쩜, 두러워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물론 나는 호박씨를 깔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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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중성
인간의 내면에는 고귀한 기질과 천박한 기질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한 사람이 전사(戰士)와 시인(詩人)의 마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이 아니겠는가?
또한 도둑심보와 도덕선생님이 함께하고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의 이중성이다.
가끔 범죄자가 남을 도와주는 미담의 주인공이 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나는 도덕, 양심, 체면, 명예, 지금까지 내가 쌓아올린 사회적 지위, 나를 아는 사람들의 실망, 인격의 무너짐, 아내의 분노, 애들의 실망, 아버지자리, 사장의 지위, 수많은 사원들이 보내주고 있는 존경심, 내가 가진 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나의 자제심을 지켜 주고 있었다. (제 5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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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랑의 열병이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흥미진진합니다.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종구님이 열심히 달아주는 성의있는 댓글에 힘입어 더욱 흥미를 더해 갑니다. 앞으로 도 계속 성원을 부탁드려 봅니다!
님의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행복합니다.감정의 유희.도파민호르몬.년륜.틈새와빈틈.인간의이중성등..간결하고 함축적인 언어..5회까지의 멋진 소제목들! 초하풋보리님은 혹 또다른 수상작이나 게재중인글이 있는가요? ..호박씨 그림도 넘 멋졌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바람 부는 날. 멀리 펼쳐진 초여름 보리밭의 코끝을 스치는 훈향을.. 혹 아시는지요? 님의 글에서는 이런 향기가 납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마음의 울림...이었습니다.. 님의 글 오래 실어 주셨으면...감사드립니다.
옛날, 고향, 낙동강 길은 온통 보리밭,하늘엔 노고지리 지지배배, 들판엔 봄바람에 일렁이는 초록의 보리물결,우리 모두가 가슴에 간직한 고향들판의 추억의 모습이지요. 관심과 과분한 칭찬 댓글 감사드린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