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7월 20일 상트페테부르크
아침 일찍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준비를 했다.
장마와 더위를 오가는 이곳과는 달리 가을의 시작과도 같은 날씨가 계속된다는 일기예보다. 터미널에서 일행을 만나 공항으로 향했다. 동행하는 후배 부부는 해외여행 처음이라며 잔뜩 부풀어 있다. 낙천적이고 긍정의 에너지가 넘치는 다정한 부부의 모습이 멋져 보인다. 인천공항에서의 화려하고 즐거운 쇼핑을 마치고 러시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 8시간 반가량의 비행을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상트페테부르크는 러시아의 옛날 수도이며 과거의 레닌그라드로 익숙하게 알려진 도시로서 러시아어,영어,독일어가 합성된 단어로 현재 국제적으로 공시된 명칭이며 성스러운 피터의 마을이란 뜻이 있다고 한다.
과거의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도시에 도착해 공항으로 향하는데 당황스런 일이 발생하기는 여러번 여행중 처음 경험해본다. 30분이면 도착될 숙소가 버스기다리느라 한참이고 어두운 길거리를 헤메고 다니느라 공항도착후 세시간이 넘는 2시 20분경이 되서야 호텔에 도착되는 어쩌구니 없는 일을 겪었는데 여러가지 교훈을 남겨주는 일이다. 힘들고 짜증나는 첫날이지만 앞으로의 즐거운 여행을 위해 모든 일행들이 참아가는 모습들이다.
2013년 7월 21일 상뜨페테부르크
9시에 출발하기로 한 버스는 한시간이 지난 열시에 출발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이 되어 짜증이 났지만 즐거운 여행을 위해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곳의 인구는 480만명이며 유동인구를 합하면 550만명 정도로 관광객들로 붐빈다고 한다.
시내 중심지에 도착해서 성 이삭성당을 외부에서 둘러보았는데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피터 대제의 수호신이라고 하는 이곳 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40년간 50만명의 인원을 동원해서 건축했다고 하니 그 규모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성이삭 성당 뒷편에는 니콜라이 1세의 동상과 마리아의궁전이 자리잡고 있고 드넓은 광장이 펼쳐졌다. 네바다강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피터대제의 청동기마상은 당시의 인물이 얼마나 위엄 있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지금도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군사법원에 자리잡은 기마병들 또한 당시의 용맹함이 지금도 느껴질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 졌다. 네바다강을 끼고 한가하게 유람을 즐기는 사람들과 커다란 정원을 한가로이 즐기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우리 일행도 일원이 되어본다.
시내 외부 관광후에는 국립박물관인 에르미타쥐 국립박물관을 방문했다. 엄청난 규모의 전시장과 화가들의 작품이 모여 있는 이곳은 세계 곳곳에서 온 관람객들 발 디딜틈이 없다. 요르단의 계단을 따라 대연회장에 전시되어 있는 미술품들을 전시한 곳을 지나 알렉산더1세의 조국전쟁관과 대옥좌관을 거쳐 3층 미술관으로 이동했다.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3대 박물관으로 꼽히고 있다. 3층의 미술관은 다른곳과는 달리 약탈이 아닌 돈을 주고 구입해서 전시한 작품들이다. 수 많은 작품들 중 중요한 작풍들은 트라이온의 새벽에 장을 보는 목동들, 빛의 효과를 강조한 그림으로 언젠가 봐왔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피카소의 초기작품인 청동의 시대, 엇갈린 쌍둥이의 운명을 묘사한 작품이다. 한명은 성직자로 한명은 범죄자로 부등켜 안은 다른 모습이 인상적이다. 모네의 미래 애인상을 그린 유일한 인물이 들어간 작품과 고갱의 열매를 든 여인, 앙리 마티스의 붉은방 작품을 감상하고 그외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3층의 전시장을 지나 다시 2층으로 내려와 당시 황실의 어린이들 화려한 방이 인상적이다. 금으로 장식된 화려한 피아노와 악기들 모두가 금장식으로 화려한 방이다. 또한 황금의 방에 금으로 도배하고 살았다는데 사치스러움의 극치를 이룬 곳이다. 황동 공작시계의 섬세한 제작과정을 영상으로 바라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마지막 작품인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작품 앞에서 한참을 감상해 본다. 방황하던 아들을 끓어 않은 아버지의 모습과 이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형제들의 모습중 나는 어디에 속할까 한참을 고민해 봤는데 답이 없다. 이작품 하나만을 보기 위해서 다시한번 찾아왔다고 할 만큼 대작품임에 틀림없단다.
에르미타쥐 국립 박물관을 장시간 둘러보니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한다. 조금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두시간 이상을 달려 러시아의 까다로운 출국 수속을 마치고 에스토니아로 들어왔는데 이곳 국경은 육로를 통과하는 많은 사람들과 차들로 무척이나 분주하다. 러시아에서 오래된 관습인 비자를 조만간 없앤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까다로운 입출국 심사로 인해 많은 불편을 초래한다. 에스토니에 입국심사를 마치고 또 한참을 달린 버스에서 바라보는 창밖은 푸른 자연이 끝없이 펼쳐진 확트인 광경으로 시야를 즐겁게 해준다. 아무리 높아도 50미터를 넘지 않는 이곳의 고도로서 평지가 계속되어 밀밭과 감자밭 등 드넓은 평지에 농작물을 재배하는 곳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오후내내 달린 버스는 탈린 시내에 도착하여 오늘의 숙소인 이루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
2013년 7월 22일
에스토니아의 탈린에서의 오전 관광을 시작했다. 한가로운 호텔 주위와는 달리 구시가지의 모습은 모든것이 활기차다. 이곳은 가장 높은 고지가 50미터라고 하는데 고지대란 뜻의 톰페이언덕에 올라왔다. 에스토니아 국화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톰페이성과 러시아 정교회의 넵스키 교회, 학교라는 뜻의 똠꼴리 등 옛날 에스토니아의 시내 모습이 그대로 펼쳐저 있다. 고지대는 성직자와 귀족들만이 살았다고 한다. 언덕에서 내려다 본 빨간 지붕들이풍경화처럼 펼쳐지니 쌀쌀한 날씨임에도 마음만은 후련해진다. 성탑을 지나 평지로 이동했는데 성니콜라스교회, 1406년부터 탈린시청으로 사용했다는 구시청사가 들어서 있는 넓은광장은 많은 인파들로 붐비는 아름다운 광장이다. 각종기념품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특히 호박으로 유명한 곳이 이곳이란다. 바다가 얼고 있는 추운 이곳 발틱해는 원래는 소나무 밭이었는데 빙하가 녹아 바다가 되어 호박이 많이 있단다. 이곳에서 잠깐 개인 시간을 가지고 광장을 둘러보고 시내거리를 지나 합살루를 향해 출발했다
합살루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합살루 대주교성을 둘러보았는데 이곳이 에스토니아의 요새였다고 한다. 러시아 정복시기에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지만 전체적인 성곽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해저를 둘러싼 성이라 특이한 곳이다. 성곽을 지나서 개인주택이 늘어선 거리를 가로질러 러시아의 유명한 음악가 차이코프스키가 머물렀던 발틱해안을 거닐며 장미와 바다가 어우러진 멋진 배경으로 작품사진을 만들어 본다.
합살루역의 한적한 대합실에서 러시아를 오가던 예전의 인물들을 그려보았다.
이곳 합살루 역을 떠나 파르뉴로 향하는 차창밖은 밀수확이 한참이다. 파르뉴의 해변은 부드러운 모래밭으로 빙하가 녹아 짜지가 않고 겨울에는 얼어붙는다고 한다. 파르뉴의 비내리는 해변을 거닐며 산적한 가을기분을 느껴보았다. 또다시 한참을 달려 오늘의 숙소인 타르투에 도착하여 식사후 호텔에 들어오니 피곤이 밀려온다.
2013년 7월 23일
오늘은 흐린날씨지만 어제와 같은 추위는 덜한 편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타르투 시내를 둘러보았다. 탈린은 에스토니아의 첫번째 도시이며 정치 경제의 중심지이면 이곳 타르투는 두번째 도시로 문화와 예술의 도시이다. 시내 중심 곳곳에는 예술 작품들이 있는데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그린 동상과 중심부에 있는 키스하는 학생든 동상을 비롯해서 여러 작품이 있다. 카르투 대학건물이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 대학은 2만여명의 학생들이 재학중이고 지금은 방학기간이라 조용하다. 본관 뒷편 언덕으로 오르면 일부 허물어진 대성당이 있는데 아픈 과거의 역사를 말해준다. 건축양식이 조금씩 다른 건축물이 보수한 흔적을 나타내듯 이곳도 마찬가지다. 역사발물관이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다. 천사의 다리와 악마의 다리가 있는데 숨을 멈추고 천사의 다리를 건너며 소원을 빌어보았다. 소원이 꼭 이루어 지길 바라면서 언덕을 내려와 에스토니아의 국경을 지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발틱3국은 러시아 등 외세에서 750년간 지배를 받아오다 1991년에 독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곳도 독립의 의지로 200만명이 620키로미터로 인간띠를 만들어 독립의 의지를 전달해서 독립을 쟁취하여 현재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중인 나라가 에스토니아다.
국경을 통과해서 라트비아로 들어왔는데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라트비아의 작은 마을 시굴다로 들어와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투라이다 성의 꼭대기에 올라 가오야강이 흐르는 확트인 푸른 초원과 나무들이 두 눈을 시원하게 만든다.
투라이다 성은 1214년도 부터 건축이 시작되었는데 수많은 외부의 침입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다.
발틱은 전부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곳만이 유일하게 산이 있어 라트비아의 스위스라고 불리는데 구트마니스 동굴이 있다. 동굴이라 하기에는 초라하지만 이곳 지형에서는 그나마 구경하기 힘든 동굴이다.
현지식으로 식사를 하고 다시 리가로 향했는데 리가는 라투비아의 수도이며 발틱 도시중에 80만명의 인구로 가장 많고 활기찬 도시이다. 백만송이의 장미 음악으로 분위기를 잡아 가며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간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 유산 리가 역사지구는 8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깊은 도시로 좁은 지역에서 다양한 유럽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건축양식을 나란히 볼 수 있는 곳이다.
돔성당과 대통령궁, 비터성당, 시청건물, 베드로교회, 나트비아 점령 박물관을 둘러보고 점령 당시의 참혹한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공원을 둘러보며 여유로운 산책을 하고 시내를 중심으로 번화한 곳에 한세기씩 다르게 건축된 삼형제 건물을 직접 보고 나니 이 시대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 든다. 상점을 둘러 이곳 사람들의 생활을 짐작해 보고 시원한 생맥주 체험도 곁들여 보았다.
리가 시내를 여유있게 즐기고 한식으로 저녁식사를 한 후 숙소로 향했다. 아직도 밖은 훤한 백야이지만 오늘은 피곤에 지친다.
2013년 7월24일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의 밤을 보내고 룬달레로 향했다. 라트비아의 베르사유로 불리우는 룬달레성은 입구부터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8세기 바로크 시대의 건축물이지만 로코코 양식의 건축물 이다. 러시아 시대 횡제들의 휴양지로 황금의 방, 하얀방, 공작의침실 등 많은 방이 꾸며져 있으며 에까뜨리네 대제의 초상화를 비롯한 표트르 대제 등 많은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 베르사이유 궁전을 본따서 만든 정원은 창문 을 통해 멀리서 보는 걸로 만족했다.
라트비아의 마지막 관광지인 룬달레성을떠나 리투아니아의 국경을 통과하여 한적하고 평화로운 마을 슈레이(샤우레이)마을에서 점심 식사를 했는데 이곳 마을 사람들의 한가롭고 여유로운 모습이 부러워 졌다. 리투아니아는 발틱3국 중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은 나라이며 세계적으로 농구에 대한 열기도 대단한 나라이다.리투아니아 첫번째 방문지는 십자가 언덕으로 인근 야산에 만들어진 십자가 언덕은 수많은 십자가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데 이곳의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상업적인 수단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다. 크리스찬의 의미있는 말씀이 되새겨진다.
이후 우리는 600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카우나스 라는 도시로 이동했다. 카우나스에는 흰백조라는 별명의 구시청사가 있는데 지금은 결혼 신고서로 이용중인 것이 특이하다. 작은 도시에 성당이 네군데나 있으며 일부가 허물어진 성당은 이들의 아픈 역사를 말해주고 있고 카우나스 성 역시 당시의 성 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모습이지만 과거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리투이니아 중세건물의 진면목을 가장 잘보여주는 고딕양식 건물 페르쿠나스 집이 시내 중심에 자리잡고 있으며 짧은 도시에서의 관광을 마치고 식사후에 드루스키니카이로 이동하여 주변의 호수와 분수쇼를 보며 하루를 마쳤다
2013년 7월 25일
여유있게 하루를 시작했다. 드루스키닌케이는 숲과 .호수. 강.언덕 등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마을이다. 아름다운 마을처럼 광천수로도 유명하다. 리투아니아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어 다른 북쪽 지방보다는 덜한 추위로 산책하기에도 알맞은 도시인데 이곳에서 나무조각 공원을 둘러 보았다. 울창한 숲에 둘러쌓인 공원 안에는 섬세하고 익살스런 모습과 재미있는 표정들이 살아 있는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작품의 조각가는 원래는 통나무 집을 짓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은 취미 생활이라는데 취미 이상의 작품 생활에 존경스럽고 상쾌한이곳에서의 생활이 부럽기만하다. 이곳 드루스키난카이를 떠나 트라카이로 항했다. 트라카이 돼지고기 점심식사후 트라카이성 주변 호수에서 요트를 타고 둘러보았다. 이곳 트라카이 성만이 파괴되지 않은 채로 보존이 되어 있는데 예전 병사들이 지내고 있었다 한다.
리투아니아의 마지막 방문지인 수도 빌뉴스를 향해 출발했다. 전체 인구 60만명중 50%가 리투아니아인이고 15 %는 러시아인, 20 %는 폴란드인 이라고 한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누어 지는데 성마리아성베드로 성당의 모습을 보고 구시가지로 이동했다. 빌뉴스는 중세 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데 시내에 26개의 성당이 있다고한다. 대통령궁, 빌니우스 국립대학교, 대성당,도시를 지키는 새벽의 문, 러시아 정교회인 성 카지미엘스 성당, 게다미나스 성, 전망대, 성안마교회 등 구시가지의 모습들이 이곳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호박전시장 및 가장 번화가인 중심지를 둘러보며 활기찬 모습 대열에 동참해본다. 이들이 이용하는 마트에서 시장도 보고 간단한 맥주 맛도 즐기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이곳 도시를 마지막으로 발틱 3국 관광을 모두 마친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트아니아 각각의 나라들이 1991년에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해서 이제 겨우 20 년이 지난 시점에서 경제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유럽 중에서도 생소한 나라들이란 이미지를 벗어나 북유럽과 같은 선진대열에 합류 하기를 바라며 모스크바를 향한 준비를 시작하기 위해 호텔에 들었는데 내일은 새벽2시반 비행기 탑승예정이다.
2013년 7월 26일
새벽 2시 반에 호텔을 빠져나와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올랐다.
모스크바는 대한민국 면적의 171배에 달하며 인구는 14백만명인데 차량등록대수가 700만대라서 엄청 혼잡하고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길은 서울의 도심지보다도 혼잡하다. 이곳은 시간에 구분없이 차가 막히는 곳이라서 모스크바 중심지까지 가는데 한참을 가야만 했다.
처음 도착한 곳은 붉은 광장 입구에 있는 무명용사의 묘에 서있는 러시아 병사들의 모습이 있다. 프랑스 군대의 침략에 맞서 싸워 러시아를 지킨 무명용사들을 기리기 위한 묘이다. 넓은 규모의 붉은 광장은 다른 어느 광장보다도 큰 규모로 공산주의의 산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넓은 광장에는 각국에서 방문한 관광객들로 가득차 있고 특히 중국인들이 많으며 오랜만에 한국 관광객을 볼 수가 있었다. 한가운데 있는 레닌묘는 다른 곳으로 이전이 진행되고 있다. 왼쪽으로는 궁백화점이 있는데 3층건물로 우리의 백화점과는 다른 모습으로 산책 개념의 백화점이다.
이후 성바실리 성당은 아홉개의 돔을 가진 불균형의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곳으로 하늘에서 내려다 볼때는 십자가의 형상이 보인다고 한다.
시내를 돌며 한식으로 식사를 한후 참새언덕이란 곳에 올라왔는데 187미터 고지이지만 이곳에서는 가장높은 언덕이라 이렇게 불리어 진단다. 참새언덕에서 머지않은곳에 모스크바 대학을 둘러보았는데 대학건물이라하기보다는 건축물의 한편을 보는 듯 했다. 스탈린 양식의 건물이 균형 잡혀 있어 멀리서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1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정도의 명문대학이며 학생이 3만명이고 교수가 천여명에 이른다고 하니 엄청 큰 규모의 대학이다. 이후 크레믈린 궁을 둘러보았는데 14세기 타타르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궁이다. 성내에는 국보1호인 성모승천교회와 성수태교회,대천사교회등 3대 성당이 있으며 수도원과 궁전, 관청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특히 정중앙에 있는 이반대제의 종탑이 모스크바의 정중앙에 해당된다.
크레믈린 궁을 끝으로 모스크바의 관광을 모두 마쳤는데 새벽에 모자란 잠으로 인해 걷기 힘든 일정이 되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지난해부터 와보고 싶었던 러시아의 도시 상트페테르 와 모스크바 그리고 발틱3국까지 나라들 마다 아름다운 모습들이 스쳐지나간다. 특히 발틱 3국의 자동차 운전습관은 부러울 정도이다. 보행자가 미안할 정도로 운전자가 양보하는 미덕은 한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러시아의 까다로운 입국절차와 국민성, 교통 문화는 바뀌어 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여행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일정들이 뜻있는 여행이었으며 또다른 다음의 여행을 준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