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친구들은 수산제를 직접 본적이 있나?
<경상남도기념물 제102호 수산제수문(守山提水門)>
수산제 복원공사후 관찰테크를 만들어 놓았지만 수문은 물속에 있어 관찰할 수가 없다
수산제 수문은 국도25호선에서 하남읍 수산에서 진출하여 지방도 1008호선 초동방면으로 진입하다가
300미터지점에서 좌회전을 한후 곧바로 우회전을 하면 지금의 안강교가 나온다.
좌측에 보인는 도로가 지방도 1008호선 초동 ~ 부곡방면의 도로이다.
오늘 비로소 과거 내가 찍었던 사진을 찾을수가 있었다
천부인권님께서 블로그에 올려주신 글을 보니 지난 2003년경에 PSB 방송인가?
어느 방송인가 모르지만 수산제 수문에 대한 영상 촬영이 있다고 해서
수산제 수문이 있는 지역에 며칠간 양수작업을 해서 촬영이 가능하도록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제가 수문안에 직접 들어가서 기록을 남겨놓고 싶어 사진을 찍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사진을 혹시 수산제 수문을 찾아 오시는 분이 있으면 이 사진으로나마 보여드리라고
직원에게 남겨주고 왔는데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 이렇게 올라와 있어 매우 반갑습니다.
저도 자료가 없어져서 언제 다시 양수작업을 할수가 있을 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내가본 사진이 그대로 올라와 있어서 천만 다행입니다.
< 천부인권님의 글입니다.>
수산제 수문(守山堤 水門)을 찾으려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 963번지에 가보니 안강교 옆에 경상남도 기념물 제102호인 수산제 수문(守山堤 水門)에 대한 안내판만 서있고 문화재청에서 본 바위로 만든 수문은 볼 수가 없었다.
Daum에서 제공하는 위성지도를 보면 귀명리 야산의 한 곳을 수산제라고 안내하고 있어 그곳으로 가 봤으나 찾을 길이 없어 12월 6일 일요일에 그곳으로 다시 찾아가 그곳에 사시는 분에게 물어 보니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막막함을 뒤로하고 하남읍사무소에 찾아가 당직을 서시는 분에게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어디론가 전화를 하면서 받아 보라고 한다. 전화를 받아 수산제 수문을 기록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리니 자신이 자료를 가지고 있으니 커피한잔
하면서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기다리고 있으니 하남읍 이영관 주사님이 직접 자료를 가지고 오셨다. 일요일 날 가족과 오붓하게 지내다 수산제 수문을 찾는 손님 때문에 출근을 하게 된 것이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분이셨다. 그리고 생생한 사진자료를 건네주시어 너무 감사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21DA8194B1E52467C)
<수문이 있는 곳>
![](https://t1.daumcdn.net/cfile/blog/131DA8194B1E52467D)
<수문 양쪽에는 이렇게 물이 고여 있다.>
혹여 수산제 수문을 찾으시는 분이 계신다면 안강교에 가서 구경만 하시고 하남읍사무소에 가셔서 자료를 얻거나 아니면 제가 올린 자료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수문은 물속에 잠겨있어 볼 수도 없고 사진으로 찍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41DA8194B1E52467E)
자연암반을 높이 약 2m정도, 넓이180cm정도, 길이 약 4m정도를 파내어 성인 어른이 충분히 오갈 수 있는 크기로 만들었다. 그리고 낙동강의 지류인 용진강(龍津江)의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저수지 안쪽에 나무를 끼울 수 있는 홈을 팠다. 이 홈은 이중으로 되어 있어 두개의 판을 끼운 후 중간에 흙을 채우면 바깥의 물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어 삼한시대 선조들의 지혜를 알게 한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61DA8194B1E52477F)
수산제 수문은 일직선으로 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뱀처럼 약간 휘어져 있어다고 보면 됩니다
수문안에 들어가 보니 올챙이가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처음 발견당시는 수문안이 위의 사진처럼 붉은색 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렇게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삼한시대에 돌을 인력으로 굴착해서 길이 25미터 정도의 터널을 만들었다고
보면 됩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51DA8194B1E524780)
![](https://t1.daumcdn.net/cfile/blog/161DA8194B1E524781)
수문에 사용되었던 두꺼운 판은 현재 다른곳에서 보관 하고 있다고 합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81DA8194B1E524882)
수산제 수문(守山堤 水門)의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다.
『수산제는 삼한 시대 농사용 저수지로서, 김제의 벽골제(碧骨堤), 제천의 의림지(義林池)와 더불어 고대에 만들어진 3대저수지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제방의 길이는 728보[보(步)는 한걸음을 떼었을 때의 길이]이고, 둘에는 20리 정도였다.
저수지는 지금의 수산리, 귀명리 지역과 인근 초등면의 검암리, 금포리에 걸쳐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삼한시대 이후 수산제가 계속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황폐화 되었다고 전한다. 일제시대에 수리시설을 새로 설치하기 전에 황토로 된 제방이 약 1km정도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고 저수지는 논으로 바뀌었다.
이곳의 제방은 낙동강의 지류인 용진강(龍津江)이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것이며, 물을 빼내기 위해 자연 암반 밑으로 수문을 내었다.』
<자료 : 천부인권님의 블로그>
수산제 수문을 직접 볼수가 없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역사 공부를 하기 위해 들릴만한 곳이기도 하다
수산제 수문을 왔다가 허탕을 하면 마음이 너무 허전하다.
그러나 지방도 교량밑을 지나면 약 50여미터 아래쪽 야산에는 어정(御井)이라는 곳이 있다.
어정이라는 곳은 임금님이 마시던 우물이다..
안강교에서 지방도교량을 지나는 좁은 비포장 도로가 있다
그곳으로 약 50미터 지점에이르면 좌측 야산에 조그마한 비석이 보인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우물로서의 역할을 할수가 없다
관리도 되지 않아 낙옆이 많이 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