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구간(모래재~슬치재)

[JKhigh]

# 1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민족 최대 명절 추석을 버텨낸 몸은 영양 초과다. 가족 친지 친구들의 잔을 모두 받았다. 3번의 모의시험을 통해 내 몸의 현주소는 어디라는 것을 알고도 그랬다. 절대 오기는 아니었다. 역설적으로 주말 호남정맥 첫 구간 종주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땀은 말이 없다. 그간 흘린 땀의 결실이 맺혀지고 있었다.

어김없이 이형도 팀장의 문자가 왔다. 의연하게 짐을 꾸렸다. 3주간의 공백도 잊었다. 인간에게 이런 정신력은 조물주가 내린 큰 복이다. 선행자들의 자료도 몇 편 읽어보고 마음속의 종주도 마쳤다. 불과 얼마 전 탈출을 통해 꺾인 기도 자연 치유가 되었다. 이러면서 묘한 기분이 문득문득 들었다. 출전을 앞둔 선수마냥 마음을 비우고 길게 늘어져 있던 차 핸드폰이 울렸다. 최귀철 후미대장이다.

“오늘 올거쥬. 먼저 얘기한 거 잊지 말구요.”

“잘 모시고 있으니 걱정 말고, 한방에 날리지나 말구.”

이번에는 기흥휴게소 막걸리 모임이 없었다. 밝은 불빛에 깨보니 어느새 정안 휴게소다. 습관적으로 화장실을 다녀와 보니 빈자리가 많았다. 이 팀장이 저녁식사 시간을 배려한 모양이다. 다시 내리니 정상교 회장과 이 팀장, 김대군 대장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 회장이 이 팀장에게 질문하고 선두 대장은 듣는 분위기다.

“지금 호남 정맥을 하는 팀장에게 자문을 구해봐라. 반쯤 한 거 같다. 첫 구간이 그나마 수월하고 나머지는 쉽지 않다는 얘기가 들린다. 구간 거리 조정을 검토해 보자.”

“(묵묵부답) 그땐 한 여름이고 4~5구간을 3으로 해서 무리는 있었다. 걷기 좋은 가을철로 접어들어 능률이 오를 거다.”

“그래도 한 번 통화해 봐라.”

새벽 2시 30분이 넘어 내린 모래재 휴게소에서 등산화 끈을 더욱 세게 조였다. 세 정맥 분기점 주줄산 이정표에 손을 얹고 마인드 컨트롤도 했다. 이번 산행이 나에게 이런 무언의 행동을 하게 만들고 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있다. 구간 첫 문을 열어준 모래재는 이런 곳이었다.

모래재에 관한 2014년 2월 28일자 전북도민일보 기사다. 제목은 ‘진안 모래재 명품 메타세쿼이아 도로 조성’이다.

「진안군은 드라마와 영화 촬영의 배경으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부귀면 모래재 도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명품 파크웨이로 조성한다.

모래재 도로 5km 구간에 2억7천만 원을 투자해 메타세쿼이아나무 240여주를 보완 식재해 도시 생태계의 연결성 강화 및 아름다운 도로변 경관 확보로 가치 있는 녹색도시를 구현하는 명품 파크웨이를 조성하게 된다.

파크웨이(Park-Way)는 자연을 즐기고 아름다운 경관에서 휴양활동을 하기 위해 우수한 자연 안에 조성된 도로 또는 철도를 일컫는 전문용어로 자연경관을 감상하며 ‘드라이브하는 길’로서 주변자연과 문화자원을 활용한 휴양활동의 전초기지를 말한다.

장기적으로는 진안과 완주를 잇는 모래재와 곰티재 도로(연장 23km)에 중앙정부로부터 총사업비 50억 원을 지원받아 역사·문화·생태자원을 종합하는 숲길을 조성함으로써 여가와 건강을 위한 트레킹 수요를 충족하고 새로운 여행문화를 창출하는 ‘역사·문화 탐방 힐링 프로젝트’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출발부터 정 회장의 뒤에 바짝 붙어 곰치재까지 걸었다. 자연스레 시작된 대화가 내내 계속되었다. 그간 숱한 야간산행 경험에서도 어느 누구와도 이렇게 긴 시간 문답을 주고받으며 걷기도 처음이었다. 초반부가 걷기 편했다는 얘기와도 통한다.

“애들이 몇이냐. 나는 아들이 둘이다.”

“딸 둘이다.”

“사내아이들이 크면서 아버지를 많이 닮는 것 같다. 군에 있는 작은 애가 추석 기간 집에 오기 전에 설악산을 다녀왔더라.”

“오래 전부터 산을 좋아했나 보다.”

“바위를 탔었다. 덕분에 결혼 전 장인어른이 산에 다니는 사람에 대한 큰 믿음을 주셨다. 단 조건은 바위를 금하라는 의견을 주셨다.”

“물론 그리 했겠다.”

“그렇다.”

짐작한 대로 초반부는 약간의 오르고 내리는 구조라 부담이 적었다. 요즘은 경사진 언덕을 보면 가슴이 먼저 알고 방망이를 친다. 대간을 끝내고 나서 없어졌던 현상이 다시 도진 모양이다. 이번엔 주줄산을 다녀온 팀과 그냥 진행한 팀 둘로 나뉘었다. 선두와 후미대장 둘 다 앞에서 걷고 이 팀장이 후미 팀을 리드했다. 정 회장이 말을 잇는다. 자기가 나고 성장한 지역을 하나라도 더 일러주는 배려가 묻어난다.

“전북은 곡창지대다. 연유로 음식이 많이 발달했다. 대학시절 교수도 그런 말을 자주 했었다. 품앗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양보하는 모습도 다른 지역에서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감이 있다.”

“나 역시 많이 듣고 있었다.”

“산간 지방과는 문화 차이 많다.”

“지역문화 형성에는 우리가 하고 있는 대간과 정맥과 많은 연관이 있다. 덕분에 요즘 산경표 공부에 매달려 있다.”

“그런 자세로 산을 알면 몇 배 보람이 있을 거다.”

“절판된 책은 국회나 국립중앙도서관에 부탁해 복사하는 정도까지 왔다.”

걷다보니 이 팀장이 십여 미터 앞서고 나머지가 뒤따르고 있다. 정 회장이 한 마디를 더한다.

“선두와 지금 정도의 거리를 두고 걷자. 이래야 길을 찾는데 부담이 없다. 바짝 붙으면 당황하게 되어 길을 잘못 들 수 있다.”

이번 구간 초반부와 지나온 금남호남구간과의 수종 차이는 어둠에도 느껴질 정도다. 전봇대보다 크고 굵은 참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소나무 종류로 착각될 정도로 잘 빠진 참나무들이 이렇게 많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이 모습을 사진에 남기라는 말을 하던 정 회장이 ‘너와나’에게 어려운 산행 와중에 사진을 남기는 거는 대단한 봉사라고 한다.

정 회장이 주로 질문을 하고 나는 듣고 답하다 참나무 군락에서는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천여 종의 나무가 있고 그 중 참나무는 도토리가 달리는 몇몇 나무를 합쳐 부른다. 참나무의 한자 이름은 진(眞) 나무다. 재질이 좋은 진짜 나무라는 뜻이다. 정말로 쓰임새가 많은 나무다,

“지난해 숲길교육 주관식 시험문제 하나가 참나무 종류를 쓰는 거였다. 그래서 겉핥기로 알고 있던 차에 중앙일보에서 아주 자세하게 정리를 해줘서 더 깊게 알게 되었다. 잎 생김새와 도토리 모양에 따라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등 모두 6종을 참나무라고 한다. 기회가 되는대로 교육에 참석하면 어떻겠나.”

“교육 받고 싶다.”

참나무는 그리 높지 않은 야산이나 동네 뒷산에는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가 흔하다. 땅의 힘이 좋고 습기가 많은 계곡에는 졸참나무와 갈참나무가 버티고 있다. 산 능선 주변의 척박한 땅에는 신갈나무가 터줏대감이다. 떡갈나무는 습도도 적당하고 통풍이 잘되는 고갯마루를 좋아한단다.

신갈나무 잎은 짚신 크기로 깔창 대용으로 써서 붙여진 이름이다. 굴참나무 껍데기로 지붕을 얹은 집을 굴피집이라고 한다. 한국산 콜크다. 졸참나무는 이름처럼 잎의 크기도 작고 도토리 크기도 참나무 중에서 제일 작다. 다른 참나무 도토리들은 떫은맛을 제거하기 위해 물에 담구지만 졸참 도토리는 처음부터 떫은맛이 없다. 그래서 묵 맛이 매우 좋다. 다른 참나무 도토리들은 떫은맛을 제거하기 위해 물에 담궈야 한다. 작다고 얕보면 안 된다. 참나무는 산행에서 매번 가장 쉽게 만난다. 그 나무 밑둥치를 잘 보면 탐스러운 영지버섯도 만날 수 있다.

이날은 장안산 첫 구간이 연상될 정도로 하늘에 무수한 별이 나왔다. 크고 우람한 참나무 덕에 별과 대화는 곰치재에게 휴식을 취하며 보기로 미루고 일단 진행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고개에 도착했을 땐 여명이 시작되면서 별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곰티재는 호남정맥 첫 구간에서 첫 번째 만나는 재다. 전주에서 진안으로 가는 옛길의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뒷산에 위치하고 있다. 곰 웅자를 써서 웅치라고 한다. 이곳에는 10m 높이의 전적비가 있다.

지금은 전주 진안간 도로가 모래재에 새로이 개설되어 차량과 사람의 통행이 없다. 연유로 곰티는 정맥꾼들과 유적지 답사자들이 들르는 곳이 되었다. 나 또한 정맥 길에서 처음 만났다. 얼마를 더 걷다 한 번 길게 내려서 만난 검은 구조물이 웅치전적비다.

티, 치, 재, 고개는 대개 한자로 峙 峴 嶺 등으로 표기한다. 모두 한 가지 뜻이나 고개의 규모에 따라 한자 표기는 다르다. 이 곰티재는 티에다 또 재까지 덧붙이고 있다. 이를테면 역전앞과 같은 우리말의 겹말풀이 현상이고 이중어법도 같은 말이다. 지리산의 정령치도 같은 의미다. 소설 춘향전을 읽으면 이런 표현이 자주 나온다.

전적비에 나타나있는 웅치 전투는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에 기록될 정도로 중요한 싸움이었다.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인 징비록은 영의정, 도제찰사 등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자리에서 임진왜란을 겪은 유성룡이 지난날을 반성하고 앞날을 대비하기 위해 후손에게 남긴 고통의 기록이다.

또한 징비록은 우리 역사에서 드물게 보존되어 온 기록문학으로서 서책으로는 드물게 국보 1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로 징비란 "予其懲而毖後患(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로부터 유래한다. 그 기록을 보자.

「당시 왜군은 경상우도에서 전주 부근으로 들이 닥쳤다. 이들을 웅치고개에서 맞은 ‘정담’과 ‘변응정’은 목책을 이용해 산길을 가로질러 막고 왜적과 싸워 수많은 적을 물리쳤다. 적은 물러서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저녁 무렵이 되자 적은 다시 쳐들어왔다. 이미 화살도 다 떨어진 우리 군사는 온 힘을 다해 싸웠으나 결국 당하지를 못하고 무너졌으며, 두 장수 또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유성룡과 신립의 대화를 더 보자. 역시 징비록의 기록이다. 임진왜란 당시 우리가 일본을 얼마나 얕잡아 보고 있었는 지 이 대화를 통해 충분히 실감이 간다. 무비유환의 대표적 사례다.

「그 무렵 집으로 찾아온 신립에게 내가 물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큰 변이 일어날 것 같소. 그렇다면 그대가 군사를 맡아야 할 터인데, 그래 적을 충분히 막아낼 자신이 있소?”

신립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 까짓것 걱정할 거 없소이다.”

나는 다시 말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과거에 왜군은 짧은 무기들만 가지고 있었소. 그러나 지금은 조총을 갖고 있습니다.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닌 것 같소.”

그러나 신립은 끝까지 태연한 말투로 대꾸했다.

“아, 그 조총이란 것이 쏠 때마다 맞는 답디까?”

신립은 내 말을 무시한 채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

이번에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이 숭고한 장소가 뜻있는 이들로 인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이들의 염원이 반드시 관철되었으면 한다. 지난 8월 4일 웅치 전적비에서는 장렬하게 산화한 영력들을 기리는 ‘제 422주기 웅치전투 추모제’가 열렸었고, 이 자리에는 200여 명이 참석했다는 전북일보 기사다. 이어지는 기사는 이랬다.

「지난 7월 18일 웅치전투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발대식을 가진데 이어, 추모제를 기점으로 웅치전적비 국가지정문화재 승격 추진, 웅치전투 묘역 조성, 웅치전투 박물과 조성 등 ‘웅치전투 성역화 사업’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인 음력 7월 8일에 매년 웅진 전투 추모제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후미 일행들은 곰치재에서 배낭을 내리고 간식을 하며 휴식 시간을 가졌다. 대부분 먼저 물을 마신다. 다음엔 떡이며 과일을 꺼낸다. 물을 마신 나는 이 팀장이 권하는 인절미를 본체만체하며 혹시 알콜 좀 있냐고 물었더니 이 팀장이 야속하게도 단칼에 베어버린다.

“술은 10시 넘어서 한다.”

정 회장님 개인사를 적는 결례를 범할 차례다. 장인은 추석 전일 소천 하셨다. 들머리부터 나눴던 대화의 시작도 여기부터였다. 강남 봉은사에 모셨다고 했다. 정 회장 배낭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속은 화수분이다. 중간 중간 나오는 게 기대될 정도다. 하이라이트가 내리기 직전 봉우리 정상주라는 건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그동안의 하산주는 술을 즐기지 않으셨던 장인어른의 유산이었다. 콜렉터와 소비자의 묘한 조합이었다. 이 자리에서는 인절미와 절편이 나왔다. 역시 먼저 주변 사람을 배려한다.

“봉은사 떡이다. 맛들 봐라.”

하나 둘 받는 사이 나는 모르는 척하고 슬쩍 옆으로 빠져 물을 마시고 양갱을 뜯었다. 정 회장은 내가 떡이 싫어 피한 줄 알거다. 솔직히 아직도 내가 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종류 불문하고 예식을 치룬 음식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안 된다. 젯밥에만 생각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나 나는 다르다. 모르고 먹을 땐 모른다. 다만 앞에 놓고 나면 몸에서 거부 반응이 나온다. 언젠가는 고쳐져야 할 고약한 병이다.

너무 오래 쉬면 피가 멈춰 걷기 힘들다며 이 팀장이 출발을 알린다. 다음 들머리까지는 얼마의 포장길을 걸었다. 한 무리가 내는 발자국 소리가 새벽 산속에서 작은 울림으로 돌아온다. 이들의 마음은 다 달라도 다음 목적지가 만덕산이라는 건 같다. 762m 만덕산까지는 대략 3km 내외다. 들머리인 곰치가 430m이니 300여m를 올라야한다. 모르면 약이나 나는 인도어 클라이밍을 한 덕에 어금니를 물었다.

첫 봉우리를 오르며 헤드랜턴을 껐다. 무명 봉우리 정상에서 일출 직전 붉은 기운을 띤 앞 능선을 봤다. 풋과일 맛이다. 아무리 서두른다 해도 만덕산 정상에서 일출을 만나기는 물리적으로 힘든 계산이 나온다. 제2 쉼터라는 이정표 직전 최 대장을 만났다. 볼 일 보고 오듯 길 없는 능선을 올라오고 있어 물으니 뭐라고 했는데 지금 기억을 못한다. 다만 쉼터에 몇 명이 있을 거란다.

얼마 뒤 쉼터에는 낭만 산객 ‘너와나’가 오늘도 당연하고 자랑스럽게 쉬고 앉아 헐떡이는 일행에게 특유의 입담을 날린다. 이래서 일부는 배낭을 내렸고 그러다 시간은 조금 더 흘렀고 이 팀장은 다시 출발을 재촉했다. 오른쪽에 원불교 수련원이란 이정표가 있었다. 반대편엔 한참을 같이 온 산속 철조망 너머 흑염소 떼가 아침을 달라며 마냥 울어대고 있었다.

몇 발 옮기기 전에 멀리서 보던 암봉을 만났다. 설마 저기를 지날까 하던 그 봉우리다. 현장 사정은 더 험했다. 수직에 가까운 경사에 배까지 고프기 시작했다. 하여튼 몸은 철부지다. 시도 때도 없이 자기표현을 한다. 이게 정상이면 이런 표현을 하는 내가 비정상인가.

하늘이 보임에 남은 거리는 지척이나 두발 오르고 한발 내리는 식이라 생각보다 진도는 늦다. 언덕에 사정사정하고 나서야 정상에 오르니 고진감래라고 신선의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엔 선계에서 만찬중인 앞선 일행들이 있었다. 역시 그들의 눈도 정확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아예 등산화 끈을 풀고 자리를 잡았다.

땀 흘리는 사람에게 주는 조물주의 선물인 양 이 무렵 시계는 완벽했다. 일단 마이산 연봉이 눈에 들어왔다. 한 폭의 담채화다. 아니 인간 작품이 아닌 신선의 담채화다. 내 등반역사에 경륜이 쌓이다 보니 초대장도 격이 점점 올라간다. 아니 전에는 초대된 자리에서 졸기 일쑤였다. 돼지 앞에 던진 진주였다. 이젠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새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걸 마음껏 담아보려고 영혼 없는 석고상마냥 굳어 있던 나를 깨운 이가 정 회장이다.

“거기만 보지 말고 일어나라.”

“예...”

그 동네 제대로 보려면 토박이와 함께 하라는 말이 있다. 아주 평범한 말이지만 그 속에 담긴 진실은 어떤 명언에도 뒤지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기 무섭게 산정을 네 등분하며 설명을 해준다. 문화 해설사를 중심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저게 전주 시내다. 익산 왕궁 쪽이다. 저쪽은 부안이다. 아래는 완주다. 그 아래는 광주다. 다시 동쪽을 보자. 마이산과 성수산이다. 서쪽은 내장산이다. 남쪽은 무등산이다. 북쪽은 대둔산이다.”

옮기기엔 필력의 한계라 가장 간략하게 기억해 봤다. 식사를 마친 이들이 여기 저기 사진기를 들이댄다. 그 중 한 명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버스 앞자리에서 늘 혼자 조용하게 앉아있던 여자 분이다. 사진기부터 예사롭지가 않았다. 이 팀장이 일본에서 오자마자 와서 고맙다고도 했던 분이다. 그러고 나서야 그가 촬영차 일본에 다녀온 것을 짐작해봤다.

염치불구하고 한 컷 부탁하니 너무 자연스럽게 승낙한다. 그간 똑딱이를 들고 지나온 흔적을 남기던 나였다. 이번 팀을 만나 확대해서 걸어둘 작품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번엔 더 기대가 된다. 이미 찍어본 수천 장의 사진 중에 올바른 게 하나 없어 뽑아놓고 아직 보지 않은 게 부지기수다. 사진도 주인을 잘 만나야 한다.

뒤늦은 식사 역시 풍족했다. 오늘도 서로의 나눔이 있었다. 마음의 배가 더 불렀다. 식욕도 별로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소식도 해보고 굶기도 하는 요즘 이 한 끼의 식사로 다 날려버렸다. 이 핑계 저 핑계를 찾아 정맥을 이어갈까 말까하던 잔 머리도 이번에 정신을 차렸다. 참으로 고마운 자리고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

지난 2009년 나로호 1차 발사 실패 후 한 여성 연구원이 낭송한 시가 장기기억 속에서 살아나왔다. 이런 걸 보고 무조건 반사라고 했나보다. 이런 건 척추신경을 통해 나온다. 이래서 사람들은 첫 사랑을 잊지 못한다.

‘걸어가지 못하는 길은 나는 물이 되어 간다. 막혀도 막혀도 그래도 나는 간다.‘

식사 후 첫 만남이 경사도 60도 정도의 바위 내리막이다. 자세를 납작하게 하고 한발 한발 옮기고 보니 앞이 정체다. 그제야 고개를 드니 앞에 우뚝 서있는 암봉이 속된 표현으로 장난이 아니다. 울산바위가 금강산 가다 설악산에 앉았다는 말이 있듯이 이 암봉도 여기가 금강산이라고 착각하고 자리했나 싶다.

여기서 한참을 지체한 이유는 앞선 이들이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나는 그 분에게 작품 사진 하나를 더 부탁하고 싶어서였다. 내가 과연 그 앞에 서도 되는 가를 모르고 어린애 투정하듯 행동을 하고 있다, 이런 걸 욕심이라고 하는 가. 아무런 말을 들어도 결코 그냥 비켜갈 자리는 분명 아니었다. 지금도 이런 내 행동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정 회장이 이 자리 이후는 만나기 힘들다며 다시한번 설명을 해준다. 반복교육이다. 우리나라가 산악 국가라는 건 대간을 통해 이미 봤다. 산에 오르기 전에는 금수강산이라는 말은 솔직히 반신반의 했었다. 나가본 외국의 절경에 감탄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이젠 지구촌 어느 누구를 만나도 대한민국은 금수강산이란 걸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곳을 내리다 인천에서 오신 여자 분이 바위에 무릎을 부딪쳤다. 무릎 보호대를 감싸고 고통을 참고 있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라는 말이 들려 안도하며 바라봤다. 이 팀장이 상황을 봐서 탈출할 테니 먼저 가란다. 서너 명을 남기고 일행들이 떠났다. 나도 그 무리 속에 들었다.

이번 구간은 슬치 지명이 두 곳이다. 먼저 만난 슬치에서 간식 시간을 가졌다. 자리한 면면은 최규철, 불고, 죽전 탑승 회원, 정 회장 등 다섯이다. 술 마시는 게 뻔한 걸아는 강화와 사진작가는 길을 재촉하며 나갔다. 나에게 차례가 온 이 시린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나는 일성을 냈다.

“카~하, 이게 맥주 맛이다.”

강화에서 온 짭쪼롬한 망둥이 말린 게 궁합이 잘 맞았다. 땀으로 뺏긴 염분을 보충하려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먼저 간 이 팀장 배낭엔 아직 전어 무침이 남아 있다. 그때 쓰려고 둔 맥주가 모두 나왔다. 그땐 그때라는 듯 하나둘 나오는 걸 마다하는 사람은 하나 없었다. 모두가 참 맛을 느끼는 중에 브레이크를 밟을 용기는 없었나 보다. 이 맛을 들인 사람들은 속세에서 맥주를 마시지 못할 거라고 자신 있게 한마디 하고 싶다. 최 대장이 무전기를 날린다.

“전어 어디서 할껴.”

“벌목 현장 지나서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빨리 와라.”

“담배 두 개피 하고 라이타 확보 요망.”

아마 내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이 구간의 또 하나 특징은 참나무, 싸리나무, 고사리, 느릅나무, 으름나무 등이 차례로 군락을 이루고 있다. 특히 싸리나무는 굵기가 애들 손목만한 것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싸리 열매로 만두피를 만들면 천하일미라는 게 권영우 시인의 말이다. 일본에서는 싸리 열매로 캐비어상어 알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싸리 열매를 보지 못했다.

또 하나는 이런 군락 속에 사람 한 명 정도 지날 길이 나있다는 것이다. 산 꾼들의 마음 씀씀이는 이렇다. 삼거리에서 어김없이 나타나는 리본과 같이 먼저 지난 이들은 후래자를 위해 이런 배려를 한다. 이 작은 씀씀이가 쌓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하고 큰 사고도 막는다. 하산 후 버스 안에서 회원 한 분이 이런 말을 해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지난 번 생각이 나서 낫을 가지고 왔는데 이번엔 쓸 일이 없었다. 작은 낫이 있어 구했다. 이런 것도 있다.”

한참을 더 산길을 걷다 보니 모처럼 시야가 확 트이는 고개가 나왔다. 벌목 현장이다. 멀리 마을도 보인다. 요즘 탈출 생각을 자주하다 보니 마을을 보면 마음이 편하다. 베어진 나무 밑둥치는 참나무다. 그 자리를 편백나무, 단풍나무가 대신 자리했다. 어떤 방면이던 배려하는 정 회장이 이번에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진작 이래야 했던 거야.”

벌목 밭을 지나니 주저앉기 좋은 자리가 보인다. 역시 거기엔 이 팀장이 있었다. 이 팀장은 홍길동이다. 아니 헷갈릴 때도 종종 있다. 배낭 속에서 전어를 꺼내 비닐장갑을 끼고 무친다. 자리가 워낙 정숙해선지 옆에선 이들이 군침 흘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마치 무슨 예식을 구경하듯 숨소리조차 없다. 일을 마친 이 팀장이 반으로 나눈다. 그러더니 칼을 꺼내 캔맥주를 자른다. 멀쩡하게 있는 마개를 두고 칼로 자르는 데 가만있을 수가 없어 물었다. 아무튼 볼게 많은 자리다.

“칼로 맥주를 따다니.”

“아직 언 상태라 부어서 녹이려고 한다.”

“그 걸 지금까지 지고 다녔냐. 정력이 넘친다.”

“집 사람이 내 배낭 무게를 보더니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전어다. 맛있게 먹자. 나머지는 뒤에 오는 사람들 몫이다. 나무에 걸어놓자.”

“산짐승이 덤빈다.”

손끝으로 한 번씩 집어 입어 넣는 이들마다 탄성이다. 옆 사람 입에다 넣어주는 수고도 마다 않는다.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분위기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동이 났다. 강화 생활이 오래인 내가 한 마디 꺼냈다.

“이러지 말고 강화 한 번 와라. 아무래도 서울보다 물이 좋고 가격도 싸다.”

“정말 강화에서 시간한 번 갖자.”, 일동

“등산하고 포구에서 하자. 꽃게도 많다. 인삼은 깍두기처럼 썰어 안주를 한다.”

이 팀장이 강화에게 한 마디 더 보탠다.

“다음 산행 때 전어만 가져오셔. 양념은 내가 준비할 테니.”

“알았다.”

이러는 사이 시간은 또 흐르고 있었다. 지난 구간은 문화유적 답사를, 이번 산행은 소풍을 겸했다. 이들에겐 이런 여유들이 있었다. 그리고도 예정된 시간에 정확히 하산을 한다. 구간의 정도를 봐서 시간을 조정하는 지 아니면 뒤풀이 시간을 조정하는 지 아무튼 서울 도착 시간은 오차 범위다.

이러는 동안 후미가 도착했다. 보기만 하면 시가 줄줄 나오는 ‘너와나’의 입담이 좌중을 다시 사로잡는다. 다행히 무릎 다친 분도 모습을 보였다. 준비해 간 소염제와 이완제를 건냈다. 아까는 이런 생각이 나지 않았었다. 지난번 멀쩡한 길을 나두고 탈출해 사서 고생했듯이 요즘 내가 가끔 이런 행동을 한다. 술을 줄여야 될 때가 오나보다. 이걸 보고 뜨끔 하는 이가 나오지 말아야 한다.

이 팀장의 배려 덕분이라는 주변 사람들이 말을 들었는지 남은 반도 잠깐 없어졌다. 콩 한쪽도 나눠먹던 조상들 유전인자가 흐르는 우리들이다. 맥주와 소주를 말다 보니 소주가 떨어졌다. 그냥 맥주만 마시자니 심심하다다 뭐다나 하는 소리가 들린다. 불고가 한 마디 거든다.

“소주가 아니라도 좋다. 담금주도 환영 한다.”

결국 국화주와 맥주가 만났다. 정 회장은 가지고 온 꼬냑을 하산주로 쓰려고 끝까지 고수했다. 이러면 5차가 남았다는 말인가. 그것마저 떨어지니 술꾼들의 속성이 나온다. 내가 최 대장에게 물었다.

“지고 다니던 맥주 어쨌냐.”

“아까 아 이 맛이다 하던 게 그 맥주다. 그때 다 마시고 없다.”

임도와 작은 봉우리를 반복하다 보니 사람 사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고갯길 밭에는 콩과 고추가 수확기를 넘기고 있다. 버려진 밭에는 잡초가 점령했다. 참으로 사람 보기 힘든 게 요즘 농촌 실정이다. 벌목한 능선엔 편백 묘목이 있고 시원하게 뚫린 산 아래로는 차가 다닌다. 먼저 가던 이 팀장이 소리친다.

“여기 박뫼이산에서 배낭 털고 가시죠.”

그 말에 여름 날씨로 돌아선 땡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용감하게들 봉우리를 넘었다. 마치 조조나 나폴레옹이 써먹었던 유형의 한 마디였다. 허나 봉우리를 넘고 다시 넘고 임도를 걷고 1km 이상을 걸어도 산은 없었다. 그 말은 한 이 팀장이 시야에서 멀어진 지는 벌써 오래다.

급기야 고속도로가 보이고 과수원이 보이고 민가도 나왔다. 새벽 3시에 올라 오후 2시까지 도상거리 21km를 해냈다. 박뫼이산 옆 고개에 큰 규모의 인삼밭이 인상에 남았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인삼밭이 아닐까 한다. 이건 고랭지 채소가 아니라 인삼이다.

날머리를 2km 정도 남겨두고 시야가 한 눈에 다시 들어온다. 마이산이 또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번까지 마이산을 한 바퀴 돌았다. 정 회장이 마지막 브리핑을 이어간다. 끝에 고속도로 종착점이 광양이라며 말을 맺는 데 불고가 다시 한 마디 한다.

“차타고 광양까지 가자.”

홍길동 이 팀장이 또 나타났다. 아니 잔디밭에 앉아 있었다. 하산주 차례다. 꼬냑에 치즈다. 오이도 보인다. 귤과 거봉도 나온다. 아니 무슨 힘들이 있기에 여기까지 이걸 지고 왔을까. 산 속에서 개복숭아를 따던 일행들도 합석해 하산 뒤풀이를 했다. 늘 하던 일들이라 능숙하게 시작하고 끝낸다. 역시 또 이 팀장이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나는 내려면 끝이라는 생각에 이 팀장 뒤를 바짝 쫒았다. 체력안배(?) 덕에 이번 산행은 발바닥 통증이 조금 있다 뿐 멀쩡하다. 알콜 기운인 지 아니면 그간 모래주머니 차고 열심히 체력을 기른 덕인지는 그 당시 상황에서는 누구도 답을 낼 수 없을 거다. 20분 이상을 속보로 걷고 마침내 오매불망하던 슬치휴게소 앞에 섰다. 나만 그런 가 요즘 종착역이 그리 반가울 수 없다.

끝인 가 했더니 이 팀장이 도로를 건넌다. 나도 영문을 모른채 신호까지 무시하면서 4차선 도로를 건넜다. 때마침 옆에 가벼운 자동차 접촉사고로 동네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이 팀장이 그걸 구경하러 오는 아저씨에게 길을 묻는다. 사고 구경에 급한 아저씨는 고개만 끄덕이고 빨리 갔으면 하는 표정이다. 이 팀장이 와중에 수도까지 확인하는 순발력을 보인다.

마을회관 옆에 수도꼭지가 있다. 나에게 저 봉우리가 마지막이란다. 바로 뒤에 국화주 님이 따라왔다. 그러면서 휴게소가 종착지 아니냐며 묻는다. 이 팀장은 수도를 틀고 머리를 식히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슬그머니 U턴을 했다. 안 하던 짓을 하면 이런 이런 일을 만난다.

길을 다시 건너다 앞에 있는 모텔 이름이 ‘재미있는 모텔’이다. 뭐가 재미있나 보니 건물 자체가 약간 다른 구조다. 이 정도롤 재미있는 모텔은 분명 아닐터고, 모텔에 들어가는 게 재미있다는 표현은 맞지 않을 거라 고개를 갸웃하다 길을 건너다보니 거기에 답이 있었다. 현수막도 아니고 아예 고정간판을 만들고 거기에 이렇게 써놓았다. 그 담에는 다른 말도 많이 있었으나 기억을 못한다. 당시 문구는 한 번 들어가 확인하고 싶을 정도였다.

‘모텔에 손님이 없으면 염소 사료는 무엇으로 주나요.’

버스에 오르고 나서부터는 한 발도 떼기 싫었다. 갈아입을 옷을 들고 세면장으로 갔다. 바지를 두고 왔다. 발바닥 통증을 이기며 다시 다녀왔다. 제 정신이 아니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얼음같이 시원한 물에 땀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비누를 빌려 머리도 감았다. 우화이등선(羽化而登仙)이란 싯구는 이럴 때 쓰나보다.

한참 뒤 이 팀장과 국화주 님이 약간은 상기된 모습으로 버스에 올랐다. 둘은 예약한 전주비빔밥 집에서 땀을 씻었다. 식당이 겉은 몰라도 속은 궁궐 같은 분위기다. 유기그릇에 비빔밥이다. 말 그대로 전주식이다. 달걀노른자가 빠져서 그렇지 목이버섯이 곁들어진 밑반찬도 정갈했고 맛도 좋았다. 다만 옥의 티라고 짠맛을 희석하느라 일부가 밥을 더 먹었다는 거다.

출발부터 적당한 간격을 두고 안내를 하는 이 팀장에게 정 회장은 이렇게 말했었다.

“이 팀장이 이젠 완숙한 경지로 들어가고 있다. 산에서 잘 배우고 있다.”

이래서인지 다음 구간을 위해 마지막까지 살피는 수고에다, 완전 지친 몸으로 버스를 기다리다 잡는 왕복 수고까지 하고도, 가장 늦게 도착한 회원까지 기다려 살피고 식사권한 후, 그제야 자리를 하는 이 팀장을 나는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의 제의로 모두는 잔을 들었다. 정 회장이 선창하고 일행에게 합창을 권한 건배사는 ‘의리’였다. 물론 우렁차게 울렸다.

‘호남정맥을 위하여’

‘의리’

의리는 전어 무침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아니 정 회장이 한 말이다. 이 말에 ‘너와나’는 ‘어 회장님도 농담을 하시네.’ 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 나이가 되면 집 사람과 각방을 쓴다. 그러다 밤늦게 화장실 앞에서 부인을 만나면 둘이는 ’의리‘하고 서로를 확인한다.’ 기억이 맞는 줄 모르겠다. 아무튼 호남정맥은 의리로 시작했으니 의리로 마치겠지.

# 2

호남정맥을 시작하면서 ‘박성태’ 선생이 ‘신산경표’에 써 놓으신 ‘산경표 식 산줄기 분류의 예와 명칭’을 살펴본다. 명명에 대해 논란 부분은 생략하고 있다.

아직은 접근 단계라 대부분을 그대로 옮겼다. 차츰 이해하기 편하도록 간편히 정리해 볼 생각이다. 대간과 정맥을 하는 사람들은 산경표를 다시 살려내려고 오늘도 자신을 희생하는 이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야 한다.

산경표 이해가 곧 우리의 문화 언어 풍습을 바로 보는 길이다. 일본에 의해 왜곡된 이 땅을 다시 살려야 하는게 우리 모두의 몫이다. 이 시점에서 지리학자들의 나태함을 탓하는 게 아니다. 이걸 알고도 바로 잡아가지 못하는 우리가 후대에 더 큰 죄인이 될 수 있다.

어짜피 우리는 호남정맥 완주란 큰 배에 올랐다. 개인 기록 차원에서 남기던 후기가 이젠 책임으로까지 느껴진다. 배가 출발한 이상 내릴 곳은 없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적지까지는 가야한다. 썩은 무라도 베어야 한다.

「‘산경표’에 나타나는 산줄기 이름은 대간 1개, 정간 1개, 정맥 13개로 총 15개다. 이 15개 산줄기들은 우리나라의 큰 강 10개를 구획하는 산줄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산경표가 산줄기 분류의 기준으로 삼은 우리나라 큰 강 10개를 유역면적 기준 강의 크기를 보면 압록강 한강 두만강 낙동강 대동강 금강 청천강 임진강 섬진강 예성강 순이다.

먼저 ‘한북정맥, 낙동정맥, 낙남정맥’의 고유명사는 강 명칭에서 따오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의 주행과 명칭을 취하고 있는 것들이다. 10대 강을 에워싸는 산줄기를 정맥이라는 격을 주었다. 예컨대 한북정맥은 ‘한강의 북쪽 산줄기’를 말한다.

‘청북정맥, 청남정맥, 해서정맥, 임진북예성남정맥’의 공통점은 대간에서 분기한 산줄기가 10대 강 2개를 구획하며 서쪽으로 달리다가 2개의 정맥으로 나뉘면서, 그 사이에 또 다른 10대 강 하나를 포함한다는 점이다.

‘한남금북정맥, 한남정맥, 금북정맥, 금남호남정맥, 금남정맥, 호남정맥’은 위에서 열거한 3개 정맥과 유사한 경우이나 ‘2개의 정맥 사이에 10대 강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 경우 2개로 나뉜 산줄기들 사이에 10대 강이 없으므로, 백두대간을 연장하는 개념을 사용해 10대 강의 발원을 확인할 이유가 없게 되었다. 관련된 한강, 금강, 섬진강이 이미 백두대간에서 발원을 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겹침산줄기를 정맥으로 처리하고 이름을 부여할 수 있었고, 거기에서 나뉜 2개의 정맥들에게는 겹침산줄기 정맥을 이름을 나눠 주었다. 예컨대 한남금북정맥은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이고 호남금남정맥은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이다.」

호남정맥은 조약봉(565m)을 시작하여 광양만 외암포구에서 맥을 다하는 약 430km 산줄기로 남한 9정맥 중에서 가장 길다. 다른 기준으로는 영취산(1076m)에서 분기하여 섬진강 망덕산(197m)에서 끝나는 522.4km를 취하기도 하고 이 거리는 이미 마친 금남호남정맥이 포함된 수치다.

후자 즉 전체 호남정맥에 대해 ‘조석필’님이 ‘산경표를 위하여’에 쓴 글을 읽어본다.

「호남정맥은 세 번 솟는다. 시작과 끝 그리고 에두른 복판이 천 미터 넘게 솟아, 전체적으로 뫼 山 자를 연상케 하는 골격을 갖추고 있다. 시작인 장안산(1237m)이 가장 높은 산이고, 다음으로 끝인 백운산(1218m), 중간인 무등산(1187m) 순서이다. 그 외에 마이산(686m), 내장산(763m), 제암산(807m), 조계산(884m) 따위가 두드러진 산군을 이룬다.

산군은 중심이 되는 산 양쪽의 낮은 재를 경계로 해서 구분될 수 있다. 정맥에서 가장 높은 재는 밀목재(750m), 가장 낮은 재는 과치재(130m)로 기록된다. 이 경우 무령고개(930m)나 한재(850m)는 산군의 경계라기보다 산의 일부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백두대간의 영향권에 있는 장안 팔공산군이 가장 뚜렷한 산세를 보이는 반면, 영월부락국도에서 과치재에 이르는 16km는 그야말로 비산비야(非山非野) 지역이다. 무등산군과 백운산군이 대표되는 산 하나로 뚜렷한 반면, 경각 내장 추월산군은 어슷어슷한 산들이 저마다를 뽐내는 영역이다.」

여기서 산군이라는 용어가 있다. ‘산경표를 위하여’에서는 산군을 다시 대소로 나눈다. 지난번에 마친 금북호남정맥을 산군으로 나누면 이렇다. 먼저 ‘장안팔봉산’군(大)은 장안산(小)과 팔공산(小)으로 나눈다. ‘마이만덕산’군은 마이산과 만덕산으로 나눈다.

장안산(소군)에는 영취산(1076m) 무령고개(930m) 장안산(1237m) 밀목재(750m) 사두봉(1015m) 송계재(700m) 원수분(530m)이 있고,

팔공산(소군)은 신무산(897m) 차고개(670m) 팔공산(1151m) 오계치(870m) 신광치(750m) 성숙산(1059m) 옥산동도로(440m) 30번 국도(370m)가 있다.

마이산 소군에는 은수사도로(480m) 마이산(686m) 야인동치(350m) 부귀산(806m) 오룡동도로(380m)가 있다.

이번 첫 구간은 만덕산 소군에 속한다. 주화산(565m) 모재재터널위(460m) 곰치재(430m) 만덕산(762m) 박이뫼산(316m) 슬치(250m)가 있다. 다시 대장정의 길을 나서본다. 아무리 천리 길이라도 역시 한걸음부터 시작이다.

소설가 ‘김홍신’에게 글이란 향기다. 향기는 상처 아픔 고통이 있어야 난다. 당장 눈에 보이는 풀을 베어보면 안다. 나도 비바람이 두려웠다면 이 길을 택하지 않았을 거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역설적으로 상처뿐이라도 영광을 누리고 싶다.

산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은 두 발로 걷는 사람과 의지로 걷는 사람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본질적인 자아를 향해 걸어 나아가는 사람은 체력보다는 정신력으로 길을 헤쳐 나간다고 하면서, 그런 사람에겐 길이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목적 자체이기 때문이라고 어떤 이의 말 한마디가 나 같은 사람도 다시 산에 들게 한다.

[하늘비]

숨죽여 호흡을 길게 멈추고, 1구간 산행을 다시 한번 더 하고 갑니다.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최귀철(신작로)]

산행기 잘 읽고 갑니다.수고많았습니다.~^&^~
개똥쑥 형님 자 ~ 알 먹겠습니다.고마워요.ㅋ ㅋ .

[시누대]

산행자체만해도 힘들터인데 이렇게 장문의 산행기를 쓰는 모습에서 감동과 많은걸 배우고 있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함박웃음]

가슴에 와닿는 산행기 잘 보았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이형도(팀장)]

지난구간 탈출하신분들과 처음오신분들 호남 분기점을경유 호남 길을 잡아 나가야 하는데
몇몇은 그러지못했고 슬재~실치재 동물 이동통로 슬재복규 안내했는데 아쉽내요~!!!
고생하셨습니다~~~

[블랙홀(김대군)]

깊은밤~, 깊은느낌을 가득담고. 꿈나라로 흘러 들어갑니다. 수고하셨음다 ^^ ^^^

[너와나]

후기로 많은 가르침을 주시는 글들에 숙연 해 집니다 찬찬히 잘읽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

[정상]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호남정맥
갈수록 깊은 맛이 더할거라는 기대가 앞섭니다.
많은 자료를 확보하고 정리해서 산행기를 남기는 영호동지에게 감사드립니다
참나무종류 6가지 라는 사실부터
산경표.호남가.전적지.버섯.역사다큐맨터리 현장등등
관심의 영역이 넓어진 기분입니다
개똥쑥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