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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의 추석
문화인류학과 202012392 임혜진
목차 1. 서론 2. 우리 가족의 추석 2.1. 본 보고서의 한계 2.2. 초등학생 즈음의 추석 2.3. 성인이 되고 난 후의 추석 3. 우리 가족의 추석 분석 4. 결론 |
1. 서론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추석이란, 우리나라 명절의 하나로 음력 팔월 보름날을 뜻한다. 추석은 신라의 가배嘉俳에서 유래했으며,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추석에 햅쌀로 송편을 빚고 햇과일 따위의 음식을 장만하여 차례를 지낸다. 추석은 한국의 대표적인 세시풍속 중 하나로, 오늘날 도시생활 속에서 추석은 민족 대이동이 부각되는 중요한 ‘뉴스거리’로써 한국인들에게 각인되어 온 개념이기도 하다(김명자, 2005).
본 보고서에서는 먼저, 강원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 재학 중인 평범한 22살 한국 청년인 스스로가 추석 명절을 보내는 방식을 서술해보고자 한다. 다음으로는 「도시생활과 세시풍속」(김명자, 2005), 「추석의 연원에 관한 연구사 검토」(서영대, 2021) 등의 논문을 참고하여 우리 가족의 추석을 분석하면서, 도시생활 속에서 세시풍속이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추석이라는 한국의 전통적 세시풍속은 어디서 어떻게 연원했는지 조금이나마 탐구해보고자 한다.
2. 우리 가족의 추석
2.1. 본 보고서의 한계
평범한 한국 청년인 나는 추석 명절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서술하기에 앞서, 여느 가족처럼 우리 가족의 추석 풍경도 계속 변화해왔음을 언급해야할 것 같다. 일례로 수업시간에 어느 학우가 발표했던 내용처럼,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처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족구성원 전부가 한복을 꼬박꼬박 챙겨입었던 어렸을 때와는 다르게 현재 우리 가족은 외가, 친가를 포함해 그 누구도 한복을 입지 않는다. 그러나 어린 시절 겪었던 추석과 성인이 되고 난 후 겪었던 추석 모두 내게 명절로서 나름의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앞으로 전개될 ‘우리 가족의 추석’에 대한 서술은 기억에 남아있는 초등학생, 혹은 그 미만 시절의 추석을 서술한 후, 성인이 되고 난 후의 추석을 서술하고자 한다.
또한, 우리 가족이 설날과 추석을 보내온 방식이 상당히 비슷하기 때문에, 필자가 보고서를 위해 과거의 기억을 돌아보는 것에 있어 추석과 설날을 혼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앞서 언급하고 싶다. 그리고 보고서를 쓰면서 깨달은 사실이지만, 나는 우리 가족에 대해 아는 것이 극도로 적다. 내가 직접 겪은 차례는 친가댁의 큰 집에서밖에 없는데, 친가 어르신들은 내 앞에서 굳이 자기소개를 해주지 않으셨고, 나는 사촌 언니들과 놀기에 바빴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는 차례 음식 준비에 바쁘셨으며, 아버지는 어르신들과 회포를 풀어야 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내가 친가 어르신들의 얼굴만 알고 있다는 사실을 성인이 될 때까지 깨닫지 못했던 탓이다. 그리고 나 역시, 굳이 자기소개를 하면서 다니진 않았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용돈을 수거했을 뿐이다. 아마 내가 아기 때부터 봐온, 큰 종조부의 손녀들도 내가 누구인지 모를 것이다. 물론 나도 그들의 이름을 모른다. 당사자라기보다도 일종의 참여관찰자로서 존재해온 나는 우리 가족에 대해서도, 우리 가족의 차례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거의 없으며, 이번 추석에는 큰 집에 방문하지 못했던 탓에 차례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보지도 못했다. 이러한 사실 역시 본 보고서의 한계점으로 작용할 것 같다.
2.2. 초등학생 즈음의 추석
앞서 언급했던 내용처럼, 현재 우리 가족은 외가, 친가를 포함해 그 누구도 한복을 입지 않는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나의 친할아버지께서는 차남이시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큰 집으로 불리우는 종조부 댁에서 차례를 지낸다. 나의 아버지는 장남이시지만, 친할아버지가 차남이시기 때문에 차례를 지내는 방법도, 과정도 우리 가족은 알 필요가 없다. 나는 친할아버지 댁에서 대부분의 추석을 보내며, 차례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성인이 된 이후로는 명절에 친척들이 한복을 입은 모습을 목격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렸을 때, 초등학교 시절 혹은 그 미만 시절의 기억 속 추석은 한복을 입는 것이 당연한 날이었다. 한창 유치원을 다니고 있을 즈음 그 사실이 기억에 각인됐던 이유는 어머니가 큰 집에 가기 전 항상 따끔따끔한 재질의 한복을 입혀주셨기 때문인 것 같다.
오빠와 내가 초등학생이던 대략 2010년 즈음의 추석 전날, 우리 가족은 아침 일찍 친가댁에 방문하곤 했다. 추석 당일에는 새벽부터 큰 집으로 출발해 그 곳에서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 뒤 바로 3시간 거리의 외갓댁으로 향해야 했기 때문에, 친가댁에는 전날에 미리 도착해야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추석 전에 친가댁을 먼저 방문하고, 추석 당일에 큰 집을 들린 후 외갓댁으로 출발하는 전통은 작은 아버지 댁도 비슷했으나, 작은 아버지 댁은 친가댁과 거리가 꽤 멀었기 때문에 차가 막히는 것을 미리 예상해 추석 전전날 저녁에 미리 도착하곤 했다. 외갓댁으로 떠나기 위해 친가댁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도 우리 가족보다 훨씬 일렀다.
따라서 추석 전날에 우리 가족이 아침 느지막이 친가댁에 도착하면 작은 어머니와 작은 아버지의 딸들, 내게는 사촌언니인 두 명이 늦잠을 자다가 방에서 나왔기 때문에, 어른들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오빠와 나는 그들과 함께 놀곤 했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촌들이 그렇듯 명절에만 만나는 관계였지만 꽤 친했으며, 온가족이 모인 아침 식사에서도 한데 뭉쳐 밥을 먹었다. 아침 식사 후, 오빠와 나, 사촌언니 둘은 뛰어놀다가도 어른들이 전을 부치는 것을 구경하거나, 다 부친 전을 옮기고, 집어먹고, 송편을 빚으며 하루를 보냈었다.
추석 당일, 나와 오빠, 사촌 언니 둘은 새벽 5시 즈음 일어나서 부모님 손에 한복을 차려입어야 했다. 대략 4살 즈음, 유치원을 다니고 있을 때 즈음의 명절에는 입기 싫다고 울어도 어머니 손에 억지로 한복을 입어야 했는데, 초등학생 즈음에는 어머니께서 먼저 한복이 입기 싫으면 입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한복을 차려입고 큰 집에 도착하면 낯선 사촌 어른들이 친근한 표정으로 말을 거시면서 용돈을 주시곤 했다. 어른들께서는 대부분 나라는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알고 싶어하기보다는 안부를 확인하려고 대화하시는 경우가 많았고, 가끔은 어르신들과 내가 하는 대화의 목적이 그저 가족구성원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것 정도로만 느껴지기도 했다. 큰 종조부께서는 지금도 내가 누구의 자식인지 확인차 물어보신다.
어른들의 관심이 줄어들면 나와 오빠, 사촌 언니 둘은 2층 단독주택 구조인 큰 집의 계단에서 가위바위보를 하며 계단 오르기 놀이를 했다. 본격적으로 차례를 지낼 시간이 되면 여자 가족들은 방에 머무르고 남자 가족들은 1층 차례상 앞에서 절했는데, 작은 아버지는 딸들과 내게 미안했는지 남자 가족들 사이로 우리를 끼워넣곤 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우리 가족은 차례를 지낼 때 남자 가족들이 절한 후, 여자 가족들이 이어서 절했던 것 같다. 현재는 다 같이 모여서 절을 하되, 여자 가족이 뒤에 선다.
차례가 끝나면 곧이어 성묘를 갔는데, 성묘에는 여자 가족들도 어색하지 않게 동참하곤 했다. 기억 속 성묘길은 벌레, 특히 벌이 많았고, 잡초가 우거지고 자갈이 가득한 땅을 한참 걸어가야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는 스스로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성묘를 마치고 큰 집에 돌아오면 조금의 휴식 후 어머니가 다시 친가댁으로 출발하자고 오빠와 나를 부르곤 했다. 친가댁에 다시 돌아온 나와 오빠, 사촌언니들은 친가댁 어른들께 작별인사를 한 후 외갓댁으로 떠나곤 했다.
우리 가족은 외갓댁의 차례가 지나고 나서야 외갓댁에 방문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도 외갓댁의 차례를 겪어본 적이 없다. 우리 가족은 추석 당일 점심이 조금 지난 시점에 외갓댁에 도착해서 차례에 사용됐을 음식들로 구성된 늦은 점심을 먹고 저녁 느지막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따라서 외갓댁의 차례 절차에 대해서는 과거와 현재 모두 말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친가댁은 부분적으로나마 짧게 참여하곤 했지만, 외갓댁은 모든 차례가 끝나고 나서야 방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빠와 내가 한복을 벗어던진 후에도 외갓댁의 사촌들은 한복을 더 길게 입었으며, 외할머니께서 주시는 음식은 항상 친가댁의 음식보다 조금 더 독특하게 느껴졌다는 것뿐이다. 외할머니께서는 항상 닭볶음탕 대신 오리볶음탕을 해주셨으며, 치즈를 넣은 산적을 만드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치즈를 넣은 산적을 만드신 이유는 아마 치즈를 좋아하는 어린 손녀와 손자들을 위해서였던 것 같다. 외갓댁과 가까운 곳에서 외삼촌들이 가정을 이루셨기 때문에, 자주 손녀와 손자들을 돌봐주셨기 때문이다. 나 역시 외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치즈 산적을 좋아했었다.
2.3. 성인이 되고 난 후의 추석
2022년, 올해의 추석은 놀라울 정도로 일상적인 날이었다. 명절이라고 말하기도 어색할 지경이었으며, “명절이라고 말하기 어색한 날이었다.”라고 말하는 스스로에게 한 가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명절이란 보통 어떤 날이어야 하는가? 나에게 명절이란, 일상이라는 공간 속에서 규범적, 규칙적, 의례적, 전통적 공간 속으로 들어오는 날이었다. 즉, 전통을 따르는 날이자, 전통을 만들어낸 과거의 시공간을 향해 예를 표하는 날이 나의 추석이었다. 나는 명절이 되면, 종종 친가댁과 외갓댁에서 평소와는 사뭇 다른 진중한 분위기를 느끼곤 했다. 일상적인 공간이 비일상적인 공간이 되는 느낌. 그 느낌을 접하는 날이 곧 나의 명절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난 후의 추석은 확실히, 명절이라고 말하기 어색한 날들이 많았다. 명절이 되면 으레 느끼던, 일상적인 공간이 비일상적인 공간이 되는 기묘한 느낌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하다가 올해 추석에는 완전히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경향은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느끼는 바가 어렸을 때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내가 수능을 마치고 막 성인이 됐을 때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유행한 탓도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올해 추석, 본격적으로 공식적인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에 나는 본가로 올라갈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외갓댁으로 먼저 출발했다. 추석 전날에 친가댁이 아닌 외갓댁에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빠는 올해 학교를 휴학했고, 나는 추석 전전날에 미리 도착했으며, 코로나로 인해 친가댁의 큰 집에서는 소수의 꼭 필요한 사람만 차례에 참석하는 것이 용인됐기 때문이다. 우연과 조건이 맞아떨어진 탓에, 나는 처음으로 추석 전날에 외갓댁에 방문해 거의 10년 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외가 친척들을 만날 수 있었다.
추석 당일이 아니라 그런 것인지, 혹은 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가족들끼리 미리 의견을 나눈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외가 친인척들이 대부분 모인 자리에서 차례에 관한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명절 음식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은 외갓댁에서 점심을 먹고 서둘러 나왔다. 대화와 식사 외에 기타 활동은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우리 가족은 외갓댁에 머무르는 시간도 짧고, 어렸을 때 나와 오빠가 사촌형제들과 여러 게임을 하며 놀았던 것을 제외하고는 온 가족이 협동해서 무언가를 하는 활동은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저녁 즈음 집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다음날인 추석 아침 8시에 친가댁으로 향했다. 친가댁에 도착하자마자 친할머니는 아버지를 다른 형제들, 그리고 친할아버지와 함께 차에 태워 큰 집으로 보내셨는데, 나의 오빠도 함께 차에 태우시려다가 운전대를 잡고 계시던 작은 아버지가 먼저 차를 출발시키는 바람에 실패하셨다. 친가댁에 온 나와 오빠, 그리고 먼저 도착해있던 사촌 언니 둘, 작은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 친할머니는 오랜만에 같이 아침 식사를 했다. 오빠는 추석에도 어김없이 아르바이트를 가야 했기 때문에 아침을 먹고 곧 버스를 타기 위해 사라졌고, 나는 부족한 잠을 채웠다. 2시간도 채 안됐을 무렵, 큰 집에서 친할아버지 일행이 돌아왔다. 작은 아버지 댁은 곧 외갓집으로 떠나셨고, 우리 가족은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3. 우리 가족의 추석 분석
김명자(2005)는 그의 논문 「도시생활과 세시풍속」에서 도시생활에서 세시풍속의 전개 양상을 설명하고자 했다. 본 단락에서는 도시인들이 세시풍속을 이해하고, 생활과 관련시키는 방식을 살펴본 해당 논문을 통해 우리 가족의 추석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김명자(2005)에 따르면, 세시풍속은 농경문화의 유산이기 때문에 농업구조의 변화는 세시풍속에도 충격을 가하며, 우리나라 역시 고향인 농촌에서 외지로 떠난 사람이 많아짐에 따라 설이나 추석을 맞아 대거 귀향하는 새로운 명절의 양상이 발생하면서 ‘민족 대이동’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산업화가 본격화되는 1970년대를 전후하여 전통적인 세시풍속은 도시에서 그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으며, 1970년대와 80년대, 90년대를 거치는 동안 도시에서의 세시풍속은 차례와 성묘, 그리고 고향을 찾는 민족 대이동이라는 교통지옥 등으로 표상화됐다(김명자, 2005). 산업사회 이후,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은 설날과 추석의 행사로 집약되기에 이른다(김명자, 2005).
김명자(2005)는 농경문화적인 성격을 지녔던 과거 전통사회에서의 세시풍속과 현재의 세시풍속이 달라졌음을 지적하는데, 우리 가족의 추석 또한 그의 논문이 담은 내용에서 예외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가 지속해서 고도화됨에 따라 과거의 농경문화는 점차 희미해져가고, 우리 가족 또한 나의 할아버지 대부터 서서히 농경생활이 아닌 도시생활을 누리기 시작하면서 세시풍속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코로나 시대를 맞아 나의 친가댁, 외갓댁 모두 짧은 만남을 지향하게 되면서, 나의 어렸을 적과 성인이 되고 난 이후의 추석 역시 명백히 변화해왔다. 이는 우리 가족이 세시풍속을 대하는 방식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변화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재 우리 가족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은,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것에 목적이 있기보다는 명절이라는 휴일을 통해 서로의 얼굴 즉 안부를 확인하고자 하는 목적성이 더 강화되어온 것 같다. 특히 명절에 한복을 입다가 서서히 입지 않게 된 것은, 우리 가족이 추석을 보내는 방식이 변화해왔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명자(2005)는 명절빔들에게서 계절제로서 세시풍속의 성격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하며, 따라서 명절에 한복을 입는 것은 세시풍속의 재현인 동시에 민속문화 관련기관에서 설날이나 추석명절에 한복입은 사람을 각별하게 대우하는 것은 세시풍속을 전승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 가족이 한복을 더 이상 입지 않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앞서 언급했듯이,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것에 명절의 목적을 두기보다는 도시생활 속에서 명절이라는 휴일을 통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으로 그 목적이 옮겨져 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으며, 이러한 경향성은 앞으로도 강화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본디 우리가 추석을 통해 계승하고자 했던 전통문화란 대체 무엇인가? 서영대(2021)는 그의 논문 「추석의 연원에 관한 연구사 검토」에서 추석 유래와 본질에 대한 문제를 다루면서, 세시풍속은 생활주기에 공통성을 부여하여 사회구성원들의 일체감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문화적 의미가 큼에도 대표적인 명절인 추석을 집중적으로 다룬 연구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언급한다. 신종원(2021)과 신라의 추석 자료를 모아 그 성격과 본질에 대해 논한 그의 논문 「추석 명절의 정체성 -신라를 중심으로-」 초록에 따르면, 신라 초기 기록에, 왕경의 6부 여인들을 두 패로 나누어 한 달간 베짜기를 시킨 뒤 그 많고적음을 가늠한 뒤 진 편은 술과 음식을 내놓고 슬피 울며 노래를 불렀다 한다. 뒷풀이를 포함한 이 명절을 일러 ‘가배’라 하고, 이 말이 변하여 (한)가위가 되었으니 곧 추석의 우리말이다(신종원, 2021).
4. 결론
서영대(2021)와 신종원(2021)은 모두 추석이 신라에서 기원한 것은 맞으나 전승기원설, 적마시합 기원설 등은 그대로 믿기 어려우며, 추석이라는 세시풍속은 확실하게 정립된 개념이 아님을 시사한다. 따라서 추석이란, 상당히 모호한 개념임에도 각각의 가정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그 개념을 정립해왔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두의 추석이 자체의 의미와 의의가 있다는 의견으로 본 보고서를 마무리짓고 싶다.
※ 참고문헌
김명자. (2005). 도시생활과 세시풍속. 한국민속학, 41(), 17-49.
서영대. (2021). 추석의 연원에 관한 연구사 검토. 한국사학보, (84), 7-56.
신종원. (2021). 추석 명절의 정체성 -신라를 중심으로-. 한국사학보, (84), 57-94.
국립국어원. “추석”,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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