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들의 믿음을 본받읍시다.(히13:7-8)
벤쳐 기업이란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정부에서 이런 기업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이유는 조금만 도와주어도 성공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벤치마킹이란 어떤 모델을 놓고 그의 장점을 더 보완하여 더 좋은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성공에 성공을 플러스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신앙생활에 이 벤치마킹을 도입하고자 합니다.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훌륭하게 사신 분들을 모델로 그분들의 장점을 더 보완해서 더 좋은
내 신앙생활을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으로 창업하는 기업에게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것처럼 이런 정신의 신앙인에게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말씀가운데 보라 하시면서 너희도 그렇게 하라는 말씀과
너희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나누어집니다.
욥의 결말을 보라고 하시는 것처럼 성경의 모든 사람과 사건의 역사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모델입니다.
즉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나를 거룩한 사람으로 가꾸기 위한 거울이라는 말씀입니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바르게 고치라는 것입니다.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성공한 것의 장점을 파악하고 따라하는 것입니다.
더 좋은 창조는 새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따라하는 것에부터 시작합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도 합니다.
아기에게 입모양을 보고 따라하게 함으로 말을 가르칩니다.
이론보다는 실전이 중요합니다.
요13:14-15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께서 직접 허리에 수건을 동이시고 제자들의 발을 하나하나 씻어주시고는
너희들도 이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봉사하라, 사랑하라, 겸손 하라. 는 이론이 아니라 내가 한 것처럼 이라는 실전을 보이신
것입니다.
교회가 말만 앞서고 삶에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힘이 없는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벧후2:6-8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 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참 중요한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유황불로 심판하신 것은 다음 사람들에게 경건치 않은 자들의 본으로
삼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악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해가 되고,
선하다고 해서 유익이 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악한 것들과 함께 있으면서 매일 그들을 보고 들음으로 택함을 받은 사람의 마음이
그들처럼 상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매일 보고,듣는 일이 나를 만들고 열매 맺는 환경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보고, 듣자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면 내 영은 새로워지고. 악한 세상을 가까이 하면 영혼이 악하고
상하게 됩니다.
결국 소돔과 고모라성은 롯을 살리기 위해 심판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끝장에도 악한 일을 행하는 자는 계속 악한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더러운 자는 더러운 그대로 놔 두어라.
의로운 사람은 계속 의롭게 살도록 하며, 거룩한 사람들은 계속 거룩하도록 하여라.
(묵22:11)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한 대로 심판을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살리시려고 악한 세대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벧전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이러한 일을 하신 것은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예수님처럼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믿음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영적인 눈과 귀먹은 우리를 따라오라고
앞장서신 것입니다.
†종자도 좋아야 하지만 옥토가 되어야 합니다.
밑거름이 있어야 잘 자라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잘 먹이지도 못하고, 보상도 해주지 않고 부려만 먹는 것이 착취입니다.
충분한 여건을 주고 결과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없는 것에서 취하라고 우리에게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가 능히 할 수 있도록 은사를 주셨고, 곁에서 도우십니다.
그래도 하지 않는 것은 당연히 책망 받을 일입니다.
예수님이 반석이라고 하셨고 이 터 위에 내 교회를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결코 허공에다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우리 교회가 이 신앙의 옥토에 세워졌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개척한 교회가 아닙니다.
선진들이 닦아둔 터 위에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100년 전 역사하셨던 성령님의 뜨거웠던 역사가 바로 이 지역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옥토위에 오늘 우리가 뿌리를 내리기만 하면 됩니다.
자라고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두 한 알의 믿음, 소망, 사랑의 밀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믿음의 열매, 성령의 열매,
생명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하실 것입니다.
이번 집회를 준비하는 것이 추억을 되살리고 그때의 숫자를 채우자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선배 형제들이 얼마나 뜨겁게 주님을 사랑했는지, 어떻게 말씀을 사랑했는지,
얼마나 열심히 복음을 전파했는지, 형제와 이웃을 무엇으로 사랑하였는지를 우리는
알고 그들을 본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웃에게 자녀와 자손들에게 아름다운 믿음의 본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원한 상급이며 열매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님들은 우리처럼 안락하거나 편안하게 사신 분들이 아닙니다.
하나에서 열 가지 모두 두 손을 거쳐야 하고 몸으로 하지 않고는 어느것 하나
해결되지 않는 시대에 사셨습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도 약도 없어서 저절로 낫기를 기다리다
죽어가던 시절에 오직 믿음으로 소경이보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역사가 이 자리에서
있었습니다.
기회를 허락하시면 그 가족들의 산 간증을 듣는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교회가 성장하지 않고, 열매 맺지 못하는 것이 어떤 교파나 교리 때문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가 삶속에서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
(요한8,12)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을 본받고, 따라가면 어둠속에 살지 않고, 영원한 생명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훈계하시는 말씀이니 우리가 진정으로 광명을 받아 깨칠 마음이
있고 마음의 소경됨을 면하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의 생활과 행실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 우리는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포도나무는 지주를 따라가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포도나무가 땅에서 마음대로 뻗어 가면 열매를 하나도 맺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결국 찍어버리시고 불에 태워지게 됩니다.
이것이 심판이요 멸망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을 본받자는 것은 그분들이 예수님만 바라보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하셨습니다.
선배들과 함께하셨던 주님의 은총과 능력이 지금 우리에게 또 우리 자손 모두에게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영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