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品】 벗♡ 쉼터 幸福 사랑
<타본관 성씨에 얽힌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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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高)·부(夫)·양씨(梁氏)
고씨는 양씨, 부씨와 함께 탐라(耽羅), 지금의 제주도 이들 3성의 시조탄생에 대해서는 삼성혈(三姓穴) 전설이 알려져 있다. 옛날 한라산 북쪽 기슭 모흥혈(毛興穴)에서 세 신인(神人)이 솟아났다. 양을나(良乙那), 고을나(高乙那), 부을나(夫乙那) 그들은 수렵을 하여 살았는데, 하루는 바다에 이상한 상자가 떠 내려와 건져보니 세미녀와 오곡의 종자, 망아지, 송아지가 들어 있었다. 세 신인은 세미녀와 각각 결혼하여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되니 그로부터 탐라는 개척되었다 한다.
2. 안동권씨(安東權氏)
안동권씨의 시조는 권행(權幸)이라고 한다. 권행(權幸)은 원래 성이 김(金)씨였다고 한다. 권행(權幸)은 고창(古昌:지금의 安東)의 수령이었는데, 고려와 후백제가 충돌하자 고려 편을 들어 공로가 컸었다. 이로 인하여 권행(權幸)은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이 되고 왕건(王建)에게서 권(權)이라는 성(姓)을 받기까지 하였다. 그러니 안동권씨는 따지고 보면 그 집안이 안동김씨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동권씨와 안동김씨는 같은 혈족이라 하여 서로 혼사하지 않는다. 성이 다르면서도 혼사 할 수 없는 집안이다.
3. 김해김씨(金海金氏)와 김해허씨(金海許氏)
가락국(駕洛國)의 김수로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설화가 있다. 수로왕의 왕비는 허황옥이었고, 그 사이에서 아홉아들이 태어났는데, 둘째 아들은 왕비의 소원을 따라 어머니의 성을 따라 허씨(許氏)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설화대로라면 김씨와 허씨는 비롯 성이 다르더라도 같은 혈족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김해김씨와 김해허씨는 한 집안이라고 전한다. 「조선여속고(朝鮮女俗考 ) 第二章 十二 九」
4. 천씨(天氏)
천씨의 본관은 연안(延安)·우봉(牛峰)인데, 설화에 의하면 연안지방에서 냇가에 버려진 한 아이가 있어 동네사람들이 거두어 길렀는데, 이 아이가 보통 아이가 아니므로 성을 천(天)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5. 제갈씨(諸葛氏)
제갈씨는 원래 중국에서 우리 나라 신라 흥덕왕 때 건너와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뒤 고려 고종때에 이르러 제갈홍(諸葛泓)·제갈형(諸葛瀅)의 두형제가 복성(復姓)을 서로 한자씩 나눠 쓰기로 하여 형은 제씨, 아우는 갈씨로 분종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구한말(舊韓末)에 이르러서 성씨 환원운동이 일어나 일부 【名品】 벗♡ 쉼터 幸福 사랑 제씨(諸氏)와 갈씨(葛氏)가 다시 제갈씨(諸葛氏)로 복성했다 한다.
6. 우씨(禹氏)
목천(木川)우씨에 전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왕건이 고려를 세울 무렵 목천(木川:지금의 충남 천원군)지방 백제 유민들이 백제 부활을 간했다는 이유로 몹시 노한 왕건(王建)이 이 지방민에게 소우(牛), 코끼리상(象), 돼지돈(豚), 노루장(獐) 등의 성을 억지로 붙여 주었다는데, 그 중 우(牛)씨가 뒷날 우(于)씨로 다시 우(禹)씨로 성이 바뀐다는 것이다. 옛날 책을 보면 목천상씨(木川尙氏), 목천돈씨(木川頓氏), 목천장씨(木川張氏)가 나와 있는 것을 보면 같은 음의 다른 글자로 성을 바꾼게 아닌가하는 신빙성을 주기도 하지만 믿을 수는 없다.
7. 승씨(昇氏)
고려 공민왕때 중국의 황족(皇族)이었으며, 그의 어머니와 더불어 망명해 왔다. 그는 망국 황족으로서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기 부끄럽다 하여 명자(明字)를 떼고 【名品】 벗♡ 쉼터 幸福 사랑 승자(昇字)를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우리 나라 신부예복(원삼·족두리)을 보급한 사람으로 전한다. 승씨의 시조는 명승(明昇)이라는 사람인데, 그의 시조의 유언에 따라 벼슬길에는 일체 나가지 않았다. 승씨에 의하면 명씨와 승씨는 같은 조상이므로 지금까지 서로 혼사하지 않는다고 전한다.
8. 안씨(安氏)
안씨의 도시조는 당나라 사람인 안원(安瑗)이며, 그는 원래 이(李)씨였는데 신라 애장왕(哀莊王)때 귀화하여 【名品】 벗♡ 쉼터 幸福 사랑 그의 아들이 왜구를 무찌른 공으로 안씨(安氏)를 사성 받았다.
안씨는 죽산(竹山), 광주(廣州), 순흥(順興) 등 3본이 대본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하며 특히 순흥안씨가 전체 안씨 인구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한다.
9. 문씨(文氏)
감천문씨(甘泉文氏)와 정선문씨(旌善文氏)는 원래가 타성으로 성만 같을 뿐 본관은 다르고 조상도 다른것으로 전해온다. 감천문씨의 시조 문원길(文元吉)은 원래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경주김씨(慶州金氏)였는데, 그의 선대(先代)에서 중국에 갔다가 이름을 날려 문씨 성을 사성받아 문씨로 갈았다고 전한다.
정선문씨(旌善文氏)의 시조 문임간(文林幹)은 본래 전씨(全氏)였다고 한다. 그도 중국에 들어가 글로 이름을 날리게 됨으로써 문씨(文氏) 성을 얻어 귀국하였다고 전한다.
10. 남씨(南氏)
남씨의 시조는 남민(南敏)인데 본명은 김충(金忠)이다. 원래 당나라 사람인데 사신으로 일본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경북 영덕군 바닷가에 표착, 신라 사람이 되었다 한다. 신라 임금은 그에게 「남쪽에서 왔다」는 뜻으로 남성(南姓)을 사성 호를 내리고 영양현(경북 영양)을 중심으로 살게 되었다고 전함.
11. 차씨(車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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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씨의 시조는 신라 애장왕 때 충신이었다. 애장왕의 숙부가 왕과 왕자를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자, 좌승상의 벼슬을 버리고 전왕의 원수를 갚으려 했다. 그러다가 【名品】 벗♡ 쉼터 幸福 사랑 사전에 발각되어 몸을 숨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왕의 체포령을 피해 황해도 구월산에 들어가 성을 유씨(柳氏)로 바꾸고 이름도 색으로만 했다. 차씨와 유씨는 윗때 이처럼 한 집안이었다.
12. 왕씨(王氏)
해주왕씨(海州王氏)의 시조 왕유는 본성이 박씨(朴氏)였는데 왕건(王建)이 박유에게 왕(王)이라는 성을 내린 것이다. (李朝)가 생기고 왕씨들에게는 대대적인 멸족의 위기와 고난을 받게 되었다고 전한다.
13. 서문씨(西門氏)
본관은 안음(安陰) 단본인데, 이성은 중국 정나라 대부(大夫)가 살던 지명을 따서 지은 성씨다. 시조 서문담은 고려 공민왕때 원나라 위왕(衛王)의 딸 노국공주를 따라 우리 나라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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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덕수장씨(德水張氏)
장씨의 본관은 안동인데 고려 공민왕때 노국공주(魯國公主)를 따라온 아라비아 사람 장백창(張伯昌)이 우리 나라에 귀화함으로써 덕수 장씨가 하나 더 생기게 된 것이다.
15. 능성구씨(綾城具氏)
시조는 검교장군인 구존유다. 그는 송나라 한림학사 주잠(朱潛)의 사위인데 주잠이 우리 나라에 귀화할 때 사위인 그도 따라온 것으로 전한다.
16. 일본계(日本系), 우록김씨(友鹿金氏)
사성 김해김씨(賜姓金海金氏)의 시조는 김충선(金忠善)이다. 우록김씨 세보(友鹿金氏世譜)및 모하당전집(慕夏堂全集)에 의하면 그는 일본사람으로 본래 성(姓)은 사씨(沙氏)요. 이름은 야가(也可)이며 아버지의 이름은 익(益)이요. 조부는 옥국(沃國)이며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加藤淸正)의 우선봉장(右先鋒將)이 되어 3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침공해왔으나 조선의 문물과 인정풍속을 흠모한 나머지 경상도 병마절도사(慶尙道兵馬節度使) 박진(朴晋)에게 귀순한 후 귀화하였다. 그는 1597년 선조(宣祖) 30년에 왜군이 재침하였을 때와 1627년 인조 5년의 정묘호란(丁卯胡亂) 때에 공을 세워, 도원수(都元帥) 권율(權慄)과 어사(御使) 한준겸(韓浚謙)의 간으로 성명을 하사받고 정이품(正二品)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승진하였다. 그의 무덤은 경북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 삼정산에 그의 부인의 무덤과 나란히 있음. 그의 묘비앞에 ‘증정헌대부(贈正憲大夫) 병조판서(兵曹判書) 김해공(金海公) 휘충선지묘(諱忠善之墓)’라고 쓰여져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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